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6,403

향후 3년이 국내 반도체 시장 골든타임인 이유 [스페셜리스트 뷰]

산업 일반

바야흐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의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OpenAI’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등장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함과 동시에, 인간의 삶을 한층 더 안락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 반도체 설계 기업인 엔비디아 ▲시스템 반도체 제조사 TSMC ▲AI용 메모리인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의 선두 주자인 SK하이닉스 ▲반도체 장비 기업인 한미반도체 등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반면, 한때 전통의 강자였던 인텔의 몰락과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의 부진은 업계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韓 반도체, 반전의 기회는 지금이다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6일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날을 기준으로 지난해 말은 한국 반도체 산업 50주년이었다. 그러나 기념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끄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전영현 부회장은 주주와 임직원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회복하고 품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 실적을 보면 SK하이닉스가 23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15조1000억원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AI 반도체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엔비디아의 공식 승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적자 상태인 파운드리 산업의 시장 점유율은 8.1%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결국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월 말, 9년 만에 부활한 삼성 임원 교육에서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직접 언급하며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을 강조했다. 이는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다.본 글에서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골든타임이 향후 3년이라는 전제하에, 경영·기술·산업 생태계의 세 가지 관점에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3년으로 설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AI 반도체 기술 수요의 승부처가 향후 3년 안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OpenAI를 비롯한 인프라 기반의 AI 기술 투자의 방향성은 2027년 말에 결정된다. 이러면 엣지 컴퓨팅·온디바이스 AI의 어떤 제품군이 주류로 자리 잡을지 윤곽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시기는 다양한 기술들이 각축을 벌인 끝에 과점 형태로 재편되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둘째, 향후 3년이 삼성전자 중심의 파운드리 산업이 좌초할지, 혹은 TSMC와 겨룰만한 기업으로 성장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마지막 반전의 기회일 수 있다.셋째, 현재 메모리 반도체 기준으로 약 2.5년에서 3년 정도의 기술 격차를 보이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추격해 올 가능성이 커지는 시기가 향후 3년이기 때문이다. 그 격차를 유지하거나 다시 벌려야만 한국의 메모리 주도권이 유지될 수 있다. 반도체 승부수, 세 가지 관점을 보라이처럼 골든타임인 향후 3년 안에 국내 반도체 산업이 승부를 보려면 세 가지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 관점은 반도체 기업의 경영 패러다임 변경이다. 국내 반도체는 1960년대의 미국이나 1970년대의 일본보다 늦어진 약 20년 후에나 관련 사업에 착수했다. 후발주자로서 추격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1974년 1월 26일 삼성에 인수된 한국반도체의 사업은 답보상태였다. 그러다 1983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도쿄선언’을 통해 사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이 회장은 일본이 미국에게 이긴 유일한 산업이 반도체임을 알고 있었다. 이에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그룹의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라고 주문했다.이후 용인시 기흥구에 반도체 생산단지 1라인 조기 착공에 돌입했다. 1987년 초 전자산업 수요 감소로 반도체 사업 자체의 위기감이 고조됐던 시기에도 이 회장은 생산단지 3라인 투자를 지시했고 결국 이는 결실을 맺었다. 이와 같은 주문들이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성공을 이끌었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이후 10년 만인 1993년, 국내 반도체는 디램(DRAM)분야 세계 1위에 오르며 현재까지 메모리 분야 1등을 지키고 있다. 보통 반도체는 ‘설계’와 ‘생산’,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삼성과 인텔은 설계와 생산을 모두 내부에서 처리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를 표방했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기업 내부에서 모두 운영하는 것은 내부 기술 협력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다른 회사들은 쉽지 않은 일인 셈이다.하지만 시간이 흘러 제품군이 PC에서 모바일, 그리고 AI까지 확대되는 시점에서 한 회사가 모든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을 장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각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인텔은 삼성전자와 달리 모바일 부문에서 반도체 사업의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인텔을 제치고 글로벌 반도체 1등 기업으로 올라섰다. 당시 인텔의 최고경영자(CEO)는 기술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었다. 결국 CEO의 의사결정 실패로 위기에 몰린 셈이다.종합 반도체 회사에서 설계와 생산을 나누는 방식을 창안한 곳은 TSMC다. 특히 TSMC에는 여러 반도체 설계회사들이 몰렸다. TSMC가 반도체 설계 특화 회사로 올라선 배경이다. 자연스레 TSMC는 반도체 시장 장악에 성공했다. 하지만 몇 가지 사건에서 보듯 설계 분야에 있어 삼성전자의 성과는 요원하다. TSMC와 삼성이 애플 아이폰 생산으로 경쟁하던 지난 2014년, 삼성은 설계 분야의 핵심 기술 기업인 ARM의 기술까지 내재화하려는 전략을 세웠지만, 실패했다. 결국 아이폰 생산 수주를 TSMC에 내어주는 단초를 제공하게 됐다. 또한 삼성전자는 모바일 반도체 설계 기업인 퀄컴의 스냅드래곤 설계의 핵심을 알아내고자, 퀄컴의 기술을 삼성 모바일폰 설계에 활용했다. 그리고 자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핵심 부품인 코어까지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몽구스 프로젝트’를 극비에 운영했지만 2019년 결국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두 번째 관점은 생산에 있어서 ‘삼성전자는 모두의 적, TSMC는 모두의 친구’라는 일갈을 냉정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TSMC는 설계 회사의 기술 보안을 위해 생산 라인을 따로 지정하고, 내부 직원의 정보 유출마저 강력히 단속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핵심 기술을 제외하면 고객이 요청하는 정보에 대한 문서가 체계화돼 있고, 고객 대응 조직이 상당히 두터운 편이다.반면 삼성전자는 이미 선단 공정의 첨단 기술 문제나 수율이라는 생산성 문제에 뒤처져 있음에도 내부 기술보안 정책을 기준으로 정보 공개에 서툴거나,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이유로 대응이 늦은 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업의 개념에 대한 성찰이 요구됨을 보여준다.세 번째 관점은 반도체 산업 생산체계에서 상생협력의 기조를 재수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업 후발주자로 제품 개발에 집중하며 반도체 생산을 위한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를 해외에서 주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었다.국내 대기업들은 주로 수입 대체를 위한 협력사를 양성해 국산화를 달성하는 전략을 썼고 이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특히 일부 산업의 경우 완전 국산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반도체 설계도는 이미지에 불과할 뿐, 반도체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를 조절해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미세 공정을 통해 만들어 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방해하기 위해 글로벌 장비사의 수출 금지를 전략으로 세웠듯이, 장비가 없다면 유려한 설계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반도체 제조에서 장비업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 이후 국내에는 소부장 업체들이 생겨났으며 국산화 비율이 상승했다. 하지만 2023년 산업연구원의 통계를 보면 장비 국산화는 22%, 소재 국산화는 34%에 그친다.또한 반도체 장비 기업은 ‘슈퍼을’의 위치에 있다. 국내 장비회사들은 독자적인 기술력 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 때로는 글로벌 장비사와 특허소송에 휘말리기도 하며, 장비의 단가를 낮추는 전략적 도구로 오용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결국 전략적 협력을 통해서 글로벌 1등 기업들과 함께 과점의 형태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살아남는다. SK하이닉스는 소재 회사를 중심으로 인수합병을 진행했다. 수출 규제 항목이었던 극자외선용 감광액(PR, Photo resist)을 SK머티리얼즈에서 국산화에 성공했고, HBM의 핵심소재 EMC(Epoxy Molding Compound·반도체 방습·발열을 하는 탄소 물질) 관련 일본회사와 독점적 계약을 맺고 경쟁력을 확보했던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또한 대만의 사례도 눈에 띈다. 대만은 산업 정책상 반도체 장비 기업을 양성하는 것보다는 글로벌 회사의 장비 구매 방식을 활용했다. 구매 이후 품질 보증기간이 끝난 뒤 장비 유지보수와 개조개선 회사를 자국 내에서 양성해 ‘장비사 수입대체’ 방식을 피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인재와 기본기최근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모든 기업이 발 벗고 나서는 상황에서 ‘국내 1등 기업’이라는 타이틀은 더 이상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기술로 창업에 성공한 이들이 새로운 세대로 등장한 상황에서는 여전히 사업의 의사결정 방향이나, 세부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재무 담당자에게 기술인력이 허락을 받는 의사결정 방식은 개편돼야 한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스탭 조직과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기술부서의 의사결정 구조 및 권한 배분 방식도 변경돼야 한다.결국 기술에 대한 면밀한 존중이 필요하다. 또 기술 인력을 중시해야 한다. 故이병철 회장은 1976년 상공회의소 기고문에서 ‘인재 확보와 양성을 못하는 것은 부실 경영만큼 기업인의 범죄’라고 강조했다.수율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제품 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업의 ‘현재’가 무너진다. 수율은 투입 수에 대한 완성된 양품(良品)의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불량률의 반대어다. 수율은 특히 반도체의 생산성, 수익성 및 업체의 성과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른 산업과 달리 반도체 수율은 특정 연구개발 조건을 바꾼다고 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소에 천여개에 달하는 공정 조건을 만들면, 제조센터에서 수많은 장비로 동일한 공정 결과를 구현해야 수율 확보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수천대의 장비가 똑같이 움직일 때만 가능하다는 얘기다.현재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TSMC, 인텔 등의 모든 반도체 기업들은 90% 이상 동일한 글로벌 장비를 쓰고 있다. 왜 같은 장비를 쓰는데 수율에서 차이가 있을까?삼성전자는 반도체 핵심 제작 신기술을 먼저 개발하고도, 수율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TSMC 추격에 실패하기도 했다.수율 문제는 단품 중심 경영에서는 이익 창출의 문제겠지만,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비즈니스 기회 창출과 연결되는 핵심 사항이다. 이 문제는 천재급 인재를 데려와도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다. TSMC는 어떻게 수율을 확보한 신규 제품을 꾸준히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이는 결국 기술의 기본기를 강조하고 존중했다는 데 있다. 최근 반도체 칩을 이어 붙이는 ‘패키지 공정’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삼성전자HBM의 성공과 실패에는 패키지 공정 개발을 단시간에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품 개발 중심 기술 임원들의 오판이 작용했다.TSMC가 삼성전자에게서 애플 수주를 빼앗아 올 때도 패키지 공정의 진일보가 있었다. 이후 TSMC는 패키지 공정마저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설계 회사들은 고비용을 지불해야 함에도 TSMC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SK하이닉스 또한 상대적으로 전략적 움직임보다는 기술 인재들을 존중했고, 설계와 제품 중심이 아니라, 공정과 장비기술 및 웨이퍼 공정과 패키지 공정의 수평적 위계를 통해서 미세공정에 대한 대응력을 높였다. 반도체, 안정된 생태계 확보돼야최근 대기업에서는 시니어 인력들을 ‘뒷방 늙은이’라고 힐난하면서 그들의 숙련을 고임금의 저성과자로 간주하며 쫓아내기 바쁘다. 생태계 확보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모욕을 감내하며 버티고 있다. 대기업은 인력 순환의 정점이 돼 산업 인력 양성소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들어간 인재들은 대기업이라는 온실에서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썩어가고 있다.국내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결국 기술 유출의 혐의를 받으며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생긴다. 반면 중견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의 절반이 중고신입으로 1년 만에 퇴사하는 등 인력난을 겪는다. 중견기업의 신입 직원들은 1년 전후로 다닌 경력을 없애더라도 취업시즌이 되면 대기업 신입 채용에 눈길을 돌린다. 대기업이 최종 종착지가 돼버린 지금, 산업 생태계 확보 및 중견기업 이하 처우 개선은 국가 차원에서 돌아봐야 하는 문제다. 반도체 산업협회의 2022년 통계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반도체 인력은 약 30만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양성되는 방식으로는 약 7만7000명 정도가 부족한 실정이다.특히 대기업들은 ‘계약학과’ 방식으로 우수 인력들을 미리 확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반도체 계약학과의 경우 실제 현장과 동떨어진 수업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약학과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인재 확보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반도체 장비는 정밀한 ‘기계 설계’와 ‘가공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우수 기계공학 전공자들이 필요한 분야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에서 화학 반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유관된 전공에서 관련 지식체계를 습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기술인재 양성 대학인 폴리텍 대학은 최근 반도체 전공을 강화하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에서도 반도체 학과가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숙련 기술직에 대한 선호도는 낮다. 정부가 인력 양성의 미스매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연한 정책을 펴야 할 때다. 또한 반도체 생태계 안에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 기업들에게 두터운 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 수율의 핵심적인 기능은 아주 작은 볼트·너트의 품질에 달려 있다. 체결과 구동의 미묘한 품질 변화가 곧 기술력이다.그렇지만 볼트·너트 등 값싼 소모품을 제조하는 기업들은 매우 영세하다. 국가 단위에서 반도체 신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개발 지원은 당연한 과제이지만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정밀 기계 공업, 소재의 순도에 영향을 미치는 정밀 화학 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회사를 위한 기술 인프라 확보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향후 반도체 미래 3년에 가장 단단한 뿌리며 줄기가 될 것이다. 이처럼 국내 반도체 산업은 기술 인재의 존중과 중요 기술에 대한 재정의가 시급히 요구된다. 또 생태계 확보를 위한 전 국가적 노력은 몇몇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두텁게 쌓아가야 한다. 한국 반도체의 명운이 걸린 앞으로의 3년을 위해 이제 하루에 한 걸음씩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다.

2025.04.19 10:00

9분 소요
요즘 주목받는 스타트업 스튜디오…VC와 어떤 차이점이[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스타트업 스튜디오(Startup Studio) 보육 모델이 침체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스타트업 스튜디오 제도화를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스튜디오는 스타트업 육성의 모든 단계에 적극 관여하는 보육 및 투자 모델이다. 창업자의 제안서를 읽거나 사업계획서 발표를 평가해서 피투자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창업 기획자나 벤처 캐피털들과 달리, 스타트업 스튜디오는 창업자와 함께 창업 아이템을 찾아 나선다. 투자금 유치는 물론 투자금 회수(exit)까지 함께할 정도로 스타트업의 생애 주기 전반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필자는 몇 년 전 유럽 출신의 외국인 투자자를 만나면서 스타트업 스튜디오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창업자 출신인 그는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찾고자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목적 역시 투자할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서다. 1990년대 중반 나온 컴퍼니 빌딩과 비슷스타트업 스튜디오가 새로운 개념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비슷한 유형의 창업 기획 제도가 있었다. 바로 컴퍼니 빌딩(company building)이다. 이름처럼 투자자와 창업자가 함께 회사를 만들어가는 보육 모델이다. 컴퍼니 빌딩의 시초는 1990년대 중반 북미에서 설립된 기술 창업 육성 기업 ‘아이디어 랩’(Idealab)이다. 한국에서는 2012년 처음으로 패스트트랙아시아(Fast Track Asia)가 컴퍼니 빌딩을 표방하며 오늘날까지 여러 스타트업을 육성해오고 있다.북미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컴퍼니 빌더들은 굵직한 성공 사례들을 내놓으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컴퍼니 빌딩은 낯선 제도이다. 해외 성공 사례를 빠르게 내재화하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례적으로 컴퍼니 빌딩 모델이 쉽사리 정착하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벤처촉진법의 보호를 받는 창업 기획자 혹은 벤처 캐피털과 달리, 컴퍼니 빌딩은 상법의 영향을 받는다. 창업 기획자는 외부에서 투자금을 얻어 펀드를 조성하여 이를 피투자 스타트업 지분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투자한다. 이에 반해, 컴퍼니 빌딩은 내부 자금을 활용하거나 자체적으로 확보한 자본을 이용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기업 운영에 적극 관여한다. 내부 자금 활용과 지배적으로 보이는 경영 간섭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창업 기획자와 벤처 캐피털의 투자 모델이 한계점을 드러냈다는 시각도 있다. 투자자인 그들은 외부 자금으로 결성된 펀드를 운용한다. 피투자 기업이 성장하는 데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컴퍼니 빌더만큼은 아니다. 창업 초기부터 창업자와 함께 아이템을 기획하고 공동 성장하는 컴퍼니 빌더들이 보육 회사에 임하는 자세는 특별하다. 업계에서 활동하는 한 컴퍼니 빌더는 “컴퍼니 빌더와 보육 스타트업의 관계는 공동 창업자의 관계처럼 소유권을 나누어 가진 사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외부에서 투자금만 지급하는 투자자와의 관계와는 분명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최근 컴퍼니 빌딩 모델이 스타트업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는 현상을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변화하는 신호탄으로 보는 흥미로운 의견도 있다. 국내 벤처 캐피털은 금융업 색채가 강하다. 실제로 자금 운용 규모를 기준으로 상위권에 속한 대다수 벤처 캐피털은 금융사에 속해 있고,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는 다수의 심사역은 금융인 출신이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외에서 스타트업 스튜디오 모델을 제안하고 주도하는 이들 대부분이 창업자 출신임을 주목하고 있다. 즉, 스타트업 스튜디오 모델은 금융인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창업자들이 존재감을 보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스타트업 스튜디오 국내 정착할 수 있나 지난 3월 스타트업 스튜디오 활성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스타트업 관계자와 입법 기관 관련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침체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리고자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다. 업계는 이날 토론회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스타트업 스튜디오 모델 도입에 진척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스타트업 스튜디오 모델이 공식적으로 정착한다면, 시장에 크고 작은 변화가 예상된다. 먼저 법과 규제에 가로막혀 어렵게 활동하고 있는 소수 국내 컴퍼니 빌더들의 행보가 과감해질 것이다. 해외 스타트업 스튜디오들이 국내에 진입해 활동할 동인도 생긴다. 이 외에도 투자 시장에서 창업자들이 더욱 앞장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해외에서 스타트업 스튜디오는 최근 몇 년간 큰 주목을 받은 보육 모델이다. 북미 지역에서는 성공한 창업가들이, 가족 기업이 많은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패밀리 오피스들이 벤처 스튜디오 모델을 활용해 창업 꿈나무들을 적극 후원해 왔다. 과연 스타트업 스튜디오 모델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알맞게 정착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2025.04.19 07:00

3분 소요
소렌 안달 블루오카캐피탈 CIO

증권 일반

“‘숨은 보석’ DN오토모티브는 한국 중소형주 투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미국의 행동주의펀드 블루오카캐피탈의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 소렌 안달은 지난 17일 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안달 CIO는 한국 시장에 진입 하는 투자로 DN오토모티브 투자를 굉장히 좋은 기회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회사 DN솔루션즈 상장이라는 단기적인 촉매도 가지고 있지만 회사 자체의 사업이 굉장히 우수하고 동종 최고의 마진을 기록하고 있다”며 “레버리지 없는 기준으로 한 9% 정도의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있고 수주 잔고도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에 비해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은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이 되어 있어서 DN오토모티브가 한국 시장에 진입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딜이라고 생각을 했다”며 “특히 한국의 중소형주에 대해서는 해외 투자자들 특히 미국 투자자들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수한 회사가 저평가가 되어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중소형주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는 많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루오카캐피탈은 최근 DN오토모티브의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DN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진동 방지용 부품 및 공작기계를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이 회사는 5월 상장하는 DN솔루션즈의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다. 블루오카캐피탈은 DN오토모티브가 자회사 DN솔루션즈의 상장에 따른 기업가치 향상을 노리고 지분 매입에 나선다. 블루오카 캐피탈은 DN오토모티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롱 포지션(매수)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격이 상승할 경우 수익을 실현할 전망이다. 블루오카캐피탈은 IPO를 통한 DN솔루션즈의 기업가치가 DN오토보티브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하는 5~6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DN솔루션즈 IPO의 구주매출 비중은 57%로, DN오토모티브가 보유한 주식을 시장에 팔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증권가에선 상장 이후 DN오토모티브가 3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해, 부채비율이 100% 이하로 개선될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하는 ‘중복 상장’이나 ‘기업 훼손’ 우려도 나온다. DN오토모티브는 기존에 공작기계와 자동차 부품(축전 등) 부문을 이중구조로 가지고 있었는데, DN솔루션즈가 핵심 수익원인 공작기계 부문을 안고 나가면 실질적인 ‘사업 이탈’ 혹은 ‘자산 유출’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안달 CIO는 “DN솔루션즈의 상장이 어느 정도 가격대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DN오토모티브의 주주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며 “DN솔루션즈가 IPO를 하면 어느 정도의 희석이 발생하기는 하나 수용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밸류업 노력 한국 중소형주, 가치 높아질 것” 그는 “반면에 DN솔루션즈가 별도 상장이 됐을 때의 장점은 순수한 공작 기계 회사로서의 밸류에이션 평가를 받을 수 있다”라며 “지금은 DN솔루션즈의 공작 기계 부문이 다른 사업부와 같이 DN오토모티브에 묶여 있다 보니 시장 입장에서는 이걸 어느 정도의 배수로 평가를 하는 게 맞는지 판단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DN솔루션즈 같은 경우에는 현재 공작 기계 부문에서 거의 최고 수준의 마진을 내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상장이 되었을 때에도 다른 공작 기계 상장사들의 배수 중에서도 상단의 배수를 받을 수 있을 거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인 블루오카캐피탈은 DN오토모티브에 대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 없다고 언급했다. 안달 CIO는 “DN오토모티브의 경영진이 이미 경영을 굉장히 잘하고 있다”며 “사업성이 탄탄하고 현금 흐름 창출력도 뛰어난데 다른 투자자들이 이 회사를 잘 모르는 같아 우리가 이 회사를 숨겨진 보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우수한 경영진이 있고 사업성이 우수한 회사가 있다는 거를 다른 투자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게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안달 CIO는 앞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중소형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직접 한국 증권 주식 시장에서 거래를 체결을 하는 게 좀 어려움들이 있었다”며 “한국의 중소형 주들의 경우에는 별도의 기업설명회(IR) 부서가 없거나, 공시 자료도 한국어로만 내는 등 상대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는 기업 입장에서 원한다면 영어 자료 등을 낼 수 있는 솔루션들도 쉽게 채택이 가능할 것이며,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이라든지 한국에서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노력 등을 통해서 한국 주식 시장이 상승할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시장이 상승을 하게 되면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이 중소형주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안달 CIO는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 관세 전쟁 등으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에 대해 “지금 관세 등으로 인해서 엄청난 변동성이 생겼고 그게 사실은 큰 리스크다”며 “그런데 리스크의 수준은 주식 시장마다 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도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의견을 강조했다. 안달 CIO는 “미국은 지금 워낙 밸류에이션이 높은 선에 형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리스크가 높은 시장이 됐다”며 “상대적으로 밸류에이션이 낮은 유럽 시장이 최근에 선전을 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더 저평가돼 있는 한국 시장도 상대적으로 미국 시장에 비해서는 리스크가 낮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2025.04.18 17:35

4분 소요
구미' 금오시장로' 청년예술 창업특구 변신

여행

구미 금오시장로가 청년들의 창업과 예술활동이 어우러진 활기찬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구미시는 금오시장로 일대를 청년 예술인의 창업거점으로 조성하는 '청년예술 창업특구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17일 밝혔다. 이 사업으로 예술 분야에 뜻을 둔 청년 창업가들에게는 지역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상품기획, 임차료, 홍보비 등 창업 초기자금을 최대 2,5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창업 전 과정에 걸친 맞춤형 교육과 전문가 멘토링도 병행할 계획이다.또한, 5년간 총 10억 원을 투입해 금오시장로 일원에 25개소의 예술 창업 공간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 해당 특구는 '구미청년 상상마루', '도심형 예술캠퍼스' 등 청년 예술 프로젝트와 연계돼 창업과 창작, 교육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김장호 구미시장은 "청년예술 창업특구는 예술인 청년들의 성장을 견인하고,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구미시가 문화예술산업의 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홍성철 기자 thor0108@edaily.co.kr

2025.04.17 17:22

1분 소요

국제 이슈

포르셰 회장이 자신의 별장에 쉽게 가려고 오스트리아 산에 개인용 터널을 뚫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현지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독일 포르셰 창업주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82) 회장은 2020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카푸치너베르크 산을 관통하는 약 480m 길이의 터널을 뚫을 계획을 세웠다.그가 이 지역의 별장 한채를 900만달러(약 120억원)에 매입했는데, 별장에 쉽게 가기 위해 개인용 터널을 뚫어 별장의 지하 주차장과 이으려던 것이다.이 계획은 보수 성향인 인민당 소속 전 잘츠부르크 시장으로부터 승인도 받았다.하지만 시장이 바뀐 뒤 녹색당 등 일부 시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포르셰 회장의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시의회 녹색당 대표인 잉게보르그 할러는 "개인이 산을 뚫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면서 "슈퍼리치를 위한 특혜를 거부한다"고 말했다.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주민들은 분노를 표시했다. 16일에는 잘츠부르크 주민들이 거리로 몰려나가 규탄 시위도 벌였다.

2025.04.17 15:20

1분 소요
“韓 스타트업, 해외 투자 유치 위해선 ‘단일성’ 버려라” [이코노 인터뷰]

IT 일반

인공지능(AI)과 바이오·헬스케어, 로봇, 우주·항공, 양자기술 등 첨단 기술과 관련한 딥테크(Deep-tech) 기업이 혁신을 이끌고 있다. 최근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로켓 스타트업인 렐러티비티스페이스로 자리를 옮겼고,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AI 스타트업 다이너토믹스라를 설립했다. 생성형 AI 챗GPT(ChatGPT)를 개발한 오픈AI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59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오픈AI의 기업 가치는 442조원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도 딥테크 기업으로 투자가 쏠리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AI ▲빅데이터 ▲시스템 반도체 ▲로봇 등 국내 벤처 투자 10대 분야에 투입된 자금은 지난해 3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과 비교하면 33.7% 증가했고, 최근 5년 동안 딥테크 분야에 쏟아진 벤처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최대 규모다.딥테크 기업에 몰리는 투자금 규모를 보면 그만큼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기술을 고도화하고 사업을 영속하려면 이를 받쳐줄 투자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첨단 기술 기업이 자체 기술을 상업화해 역량을 제대로 끌어올리려면 이를 판매할 시장이 탄탄해야 한다. 국내 첨단 기술 기업이 기술 개발과 투자 유치 단계에서 해외 기업·기관을 만나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임정욱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와 만나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IBM을 비롯한 정보기술(IT) 대기업은 물론 탈레스·로레알 등 방위·방산 및 뷰티 기업도 중소벤처기업부의 글로벌 기업 협업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기술력, 인재의 수준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모자라지 않다”고 강조했다.글로벌 기업 협업 프로그램은 중소벤처기업부와 글로벌 선도 기업이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해외 시장으로 진입하도록 돕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다. 구글플레이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 모바일 서비스 분야 창업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창구’ 프로그램으로 2019년 시작했다. 6년이 지난 올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글로벌 선도 기업은 엔비디아·MS·지멘스·아마존웹서비스(AWS)·오라클·인텔 등 14개 기업으로 늘었다. 현재까지 창업 기업 1231곳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몇몇 기업은 이들 기업과 기술 실증(PoC)이나 사업 실증(PoV)을 진행하며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임 실장은 미국·프랑스·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로 나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기반을 다졌다. 올해 기업 협력 프로그램에 탈레스·로레알·에어리퀴드 등 프랑스 선도 기업이 여럿 참여한 것이 결과다. 임 실장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수준을 높이 평가하며 협업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글로벌 기업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프랑스 해외출장에서 만난 해외 기업 몇몇이 당시 기업 협력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였고, 참여로 이어졌다”고 했다.글로벌 기업 협력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해외 기업과 손을 잡고 시장을 넓히는 데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스타트업과 사업 협력, 공동 개발 등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려는 글로벌 기업이 좋은 스타트업을 골라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임 실장은 “글로벌 기업으로선 한국의 좋은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오픈 이노베이션에 잘 참여할 수 있을지 우려한다”라며 “기업 협력 프로그램은 정부가 선정한 스타트업을 한데 모아놓고 글로벌 기업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추진, 정부 지원을 받는 형태이기 때문에 참여 동력이 크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첨단 기술 중심의 글로벌 기업과 만나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오픈AI와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기업 협력을 위해 지난해 추진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사례다. 임 실장은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 사례를 바탕으로 화제가 되고, 후속 투자도 유치하는 디딤돌이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벤처 투자 규모는 11조9000억원이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미래 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매년 9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우리나라의 700여 개 스타트업 지원에 쏟는다.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잘 조성된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도 해외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기업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은 마중물일뿐 스타트업 자체적으로 사업 역량을 개발하고 혁신 기술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 실장은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모색하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이라면 여기에 ‘다양성’을 추가하라고도 조언했다. “한국에 갇힌” 기업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임 실장은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려는 기업에 건넬 조언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낼만큼 ‘글로벌 확장성’이 있는 기업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라며 “투자 이후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글로벌 기업과 소통(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임 실장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한국계’를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실질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려면 단일성(homogeneous·호모지니어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해외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기업 내 국가·민족·문화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임 실장은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해외 기업, 기관에서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들여다보면 한국계가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벤처캐피탈(VC)로부터 투자를 받은 사례가 상당수”라며 “기존에는 우리나라를 잘 이해하는 해외 투자자가 글로벌 투자 유치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우리나라가 생소한 해외 투자자도 스타트업에 관심을 두고 투자할 수 있는 단계로 (글로벌 투자 유치의 수준이)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초기에는 우리나라 VC들이 투자를 이끌어도, 후기 단계에서는 글로벌 VC가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투자 유치 형태가 돼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자체 역량을 키우면서도, 해외 투자를 유치한 기업으로부터 경험(노하우)을 공유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라고 했다. 임정욱 실장은 오는 5월 21일 가 주최하는 '2025 이코노미스트 인사이트 포럼'에서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사례를 들어 기업의 글로벌 성공 위한 혁신 전략을 강연할 예정이다.

2025.04.17 09:01

5분 소요

산업 일반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 스타트업 두어스가 운영하는 지비지오가 서비스 출시 10개월 만에 월 평균 거래액 성장률이 45%를 기록하고, 누적 방문자 수도 500만 명 돌파했다. 지비지오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연결해 제품 판매를 지원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어필리에이트 플랫폼으로, 빠른 성장세로 설립 1년 만에 시리즈A 100억 투자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지비지오는 기존 크리에이터와 브랜드의 협업 방식의 복잡한 운영 과정을 완전 자동화해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하나의 상품을 판매하고 정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크리에이터는 지비지오를 통해 자신이 평소에 사용했거나 혹은 직접 선택한 상품을 본인의 SNS 채널에서 홍보하고,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판매 성과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판매 활성화를 이끌며 플랫폼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여, 출시 이후 지비지오는 월평균 거래액이 45% 씩 성장하고 있다.지비지오의 특징은 다양한 SNS 채널에서 마이크로부터 메가 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까지 규모에 맞는 최적화된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채널별 규모별 성공 사례도 다양하다. 1000명 이하 팔로워를 보유한 A 크리에이터의 경우 뛰어난 숏폼 콘텐츠 제작 능력을 기반으로 지비지오를 활용해 누적 매출 5억원을 올렸다. 약 3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B 크리에이터는 노련한 상품 소구 능력을 바탕으로 인스타그램, X(트위터), 커뮤니티 등에서 게시물 하나로 1~3억의 매출을 달성하고, 수십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튜브 기반의 C 크리에이터는 오랫동안 형성된 구독자 팬덤을 기반으로 롱폼 영상 등을 통해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현재 지비지오는 약 500여개의 브랜드와 협력하며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비지오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는 뷰티·패션 외에도 다양한 커머스 카테고리로 확장 중이며, 해외에서는 K-뷰티와 K-패션 등 국내 브랜드를 해외 크리에이터와 연결해 글로벌 매출을 발생시키고자 주요 파트너사들과 협업 중에 있다.지비지오를 운영하는 두어스의 원지현 대표는 “지금은 다양한 유형과 규모의 크리에이터들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됐다”며 “크리에이터들이 팬들에게 진정성 있게 제품을 소개하고 혜택을 나눠주면서, 동시에 수익화도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해나가겠다”고 말했다.두어스는 앞으로도 플랫폼 고도화에 집중하며 성장세를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카테고리를 확장해 더 많은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윈윈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한편 두어스는 왓챠의 공동창업자로 COO 역할을 했던 원지현 대표가 에이블리 CTO 출신 김유준 이사와 함께 2023년 11월 설립한 두어스는 설립 후 3주 만에 시드 투자를 유치하고, 6개월 만인 2024년 5월 서비스 지비지오를 런칭하며 프리A 라운드 투자를 완료한 바 있다. 지비지오는 거래액이 매주 10%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월 기준 손익분기점(BEP)에 근접하는 등 수익성도 성공적으로 입증하여 서비스 출시 8개월여 만에 시리즈A 투자 100억원 유치에 성공했다.

2025.04.14 14:27

2분 소요
“비가 올 때 우산 씌워주는 VC 만들 것” [이코노 인터뷰]

CEO

2012년 중국어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내세운 스타트업이 설립됐다. 당시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투자사의 관심을 끌었고, 창업 1년 만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의 유명 투자사도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중국어 회화교육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는 이 스타트업에 직격탄이 됐다. 중국어 교육 수요가 꺾였지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오프라인 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이 스타트업을 덮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오프라인 교육 시장은 한마디로 급전직하했다. 그동안 받았던 투자금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인력도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스타트업이 폐업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절치부심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경제 콘텐츠 유튜버 지원 사업을 새로 시작하면서 다시 성장 스토리를 쓰고 있다이 스타트업을 초창기 때부터 지켜봤고 투자를 했던 한 투자자는 재기에 나선 이 스타트업에 20억원의 후속 투자를 결정했다. 2012년 창업 이후 ‘교육’이라는 포인트를 지키면서 사드나 코로나19 같은 예상치 못한 외부 이슈에 대응하면서 사업을 피봇팅했던 창업가의 집념을 높이 산 것이다. 투자자는 창업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구성원들과 함께 해결책을 만들고 구성원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 투자자는 “창업가가 비를 맞을 때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투자자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이 투자자는 하나벤처스의 설립부터 성장을 이끈 후 업력 20년이 넘은 UTC 인베스트먼트의 대표로 지난해 자리를 옮겨 업계의 주목을 받는 김동환 대표다. 김 대표가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심사역으로 일할 때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동반자의 시선으로 눈여겨보면서 후속 투자를 진행했던 스타트업은 ‘어스얼라이언스’다. 김 대표는 후속 투자를 잘하는 투자자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투자 철학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면 투자하지 않는다. 다만, 투자했던 곳이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면 후속 투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만난 성공한 창업자의 공통점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일에 두는’ 것이다.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지만, 그는 짧은 기간 내에서의 워라밸이 아닌 장시간 내에서의 ‘워크 앤 라이프 하모니’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긴 시간을 두고 일과 인생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뭔가 해결해야 할 때는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미국 시카고대 부속 경영대학원인 시카고 부스 스쿨 오브 비즈니스에서 MBA를 취득한 후 골드만삭스에서 고유계정 운용업무를 하다가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에서 심사역을 통해 스타트업 투자 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2018년 하나금융지주가 설립한 하나벤처스 설립 때 대표로 합류하면서 하나벤처스의 성장을 주도했다. 하나벤처스에서 5년 동안 대표로 일하면서 펀드 운용 규모를 8500억원으로 올려놓아 하나벤처스의 현재를 만든 주인공으로 꼽힌다. 그는 리디·에이피알·타파스미디어·어스얼라이언스·이노스페이스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하나벤처스 역사를 만든 대표였지만, 5년 만에 설립 25년이 지난 UTC 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자리를 옮겨 업계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김 대표에게 “좀 더 있었으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을 것 같다”고 묻자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하나금융지주 계열사 중에서 내가 대표직을 가장 오래 했다”면서 웃었다. “조용히 꾸준하게 투자하는 게 UTC 인베스트먼트 장점”하나벤처스에서 일궈 놓은 성공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UTC 인베스트먼트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UTC 인베스트먼트는 1988년 투자자문업을 했던 삼승투자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고 1998년부터 벤처투자를 시작했다. 1998년 현재의 사명으로 바꿨고 펀드 운용 규모는 8200억원 정도다. 그동안 IT·반도체·바이오·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했고 투자 포트폴리오는 240여 곳이다. 업력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조용하게 꾸준히 투자하는 게 우리회사의 장점이다”면서 웃었다. 그가 UTC 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한 지 1년이 이제 지나갔고, 그동안 구성원들과 투자 철학을 공유하면서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UTC 인베스트먼트는 올해 2개의 펀드결성을 추진 중이다. 하나는 바이오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 다른 하나는 콘텐츠와 IT 분야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이다. 눈에 띄는 것은 바이오 분야다. 시장에서 2020년대 초반만 해도 바이오 분야의 투자성적은 좋았지만, 최근에는 가장 어려운 분야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바이오 분야를 선택한 것은 그동안의 재정비 과정을 거쳐 바이오 분야가 다시 성장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2022년을 기점으로 바이오 스타트업의 상장도 벽에 막혔고 성과도 좋지 않지만, 3~4년 동안 바이오 분야가 실패를 피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본다”면서 “지금은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바이오 분야에 다시 관심을 가질 시기라고 판단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김 대표의 투자 철학은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미래를 본다’로 요약할 수 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기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하므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조용했던 UTC 인베스트먼트가 김 대표의 합류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투자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25.04.14 10:00

4분 소요
농심-삼양의 '60년 라면전쟁'...K-푸드, '세계의 별'로 만들다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유통

6·25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남대문시장 거리. 한 그릇에 5원 하는 미군부대의 음식잔반을 끓여 죽으로 만든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없이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대책으로 당시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던 인스턴트라면을 떠올렸다. 1963년, 그렇게 한국 최초의 라면이 세상에 나왔다. 한국인을 기아로부터 해방시켰던 구황식품, 라면이 이제 글로벌 식품 시장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 라면업계의 두 거인 농심과 삼양이 있다.이 두 라면 제국의 60년 대결은 단순한 기업 경쟁이 아닌, 한국 식품 산업의 진화와 혁신의 역사다. 각각 40%와 77%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리는 이 두 브랜드는 이제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우뚝 섰다. 전쟁 이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긴급식량에서 시작해, 이제는 한국 식문화의 첨병이 된 두 라면 브랜드의 치열한 경쟁 속에 K푸드의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라면 名가 삼양과 농심의 탄생 한국 최초의 라면을 출시한 것은 삼양식품의 창업자 전중윤 회장이었다. 일본 묘조식품(明星食品)의 회장을 집요하게 설득해 한국시장에 도입된 '삼양라면'은 국물과 면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혁신적인 식품이었다. 무료로 기술을 받고, 로열티도 없었던 파격적 계약 덕에 누구나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인 10원에 출시되었다. 출시 당시 커피 한잔이 35원, 담배한갑이 25원, 자장면이 25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삼양라면은 한국인의 허기를 달래주는 '국민 식품'이 되었다.1971년, 롯데공업(후의 농심)이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라면 시장을 노렸다. 롯데공업은 초기에 '롯데라면'을 출시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삼양라면은 시장점유율 70%를 넘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고, 열세를 면치 못하던 롯데공업은 라면 사업을 삼양에 매각하는 것까지 고려할 정도였다.전세를 뒤집은 건 1982년, 신격호 회장의 동생 신춘호 회장이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안성탕면'과 '너구리'를 선보이면서부터다. 삼양이 닭육수를 고집할 때 농심은 쇠고기 육수로 차별화했다.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게임체인저였다. 적절한 매운맛은 한국인의 혀를 사로잡았고, 시장 점유율은 점점 농심 쪽으로 기울어 갔다. 승승장구하던 농심과 달리, 삼양에겐 재앙이 닥쳤다. 1989년, 인체에 유해한 공업용 소기름(牛脂)을 식용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경쟁사의 고발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삼양을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10년 가까운 법정 싸움 끝에 우지가 건강에 무해하다는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추락했다. '가짜뉴스'의 원조 격인 이 사건으로 한 기업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라면시장에는 이때부터 농심의 독주 체제가 이어진다.파산 위기에 몰린 삼양은 2012년, 승부수를 던진다. 당시 불닭, 매운갈비 등 매운맛 열풍이 만들어진 것에 주목하며 만든 것이 극한의 매운맛을 강조한 '불닭볶음면'이었다.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 해외에서 '불닭 도전' 영상이 SNS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덴마크의 판매 금지 조치(너무 매워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의 정부 리콜 조치)가 역설적으로 '핫 챌린지'라는 전 세계적 현상을 만들어냈다. 금지된 맛에 대한 호기심이 글로벌 마케팅의 엔진이 된 것이다. 삼양은 이때부터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소비자 참여형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였다.삼양의 글로벌 성공의 또 다른 비결은 국내 생산이지만 현지 니즈를 철저히 반영한 현지화 전략에 있다. 미주는 화이트 소스로, 중동은 할랄 인증으로, 유럽은 저나트륨 제품으로 현지 입맛을 공략했다. 2024년, 해외 매출 비중 77%, 그중 89.7%가 불닭 브랜드에서 발생하며 단일 제품 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했다. 급기야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이 농심을 제치며, "라면=농심"이라는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 왔다.농심의 글로벌 전략은 1994년 LA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2005년에 이어 2022년 미국현지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생산을 개시하면서 꾸준히 시장을 넓혀갔다. 중국에서도 상하이에 이어 청도, 심양에 현지 공장을 세우고 현지화를 꾸준히 하며 현지 유통장악력을 앞세워 시장을 서서히 안정적으로 확장해 왔다.두 브랜드의 성공 DNA농심과 삼양의 경쟁은 상반된 전략의 성공사례다. 농심은 신라면을 필두로 정통의 맛을 지키며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현지생산의 글로벌 인프라로 안정적 성장을 추구했다. 반면 삼양은 불닭이라는 파격적 제품 하나로 카테고리를 창조하고, 국내생산을 통해 K푸드라는 브랜드 정체성, 안정적 품질을 추구하며 소비자 참여형 마케팅으로 빠르게 시장을 침투했다. 농심이 '정통성'과 '안정성'으로 승부했다면, 삼양은 '혁신'과 '소비자 주도형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재창조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두 기업 모두 K푸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품질의 일관성을 지켰다는 점이다. 경쟁브랜드인 일본과 인도네시아 제품 대비 고품질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는 이유다.배고픔을 달래던 구황식품에서 시작해 한류의 첨병이 된 라면의 여정은 K푸드 세계화의 교과서다. 농심과 삼양의 60년 경쟁은 단순한 시장점유율 다툼이 아닌,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독창적 문화 코드를 창조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이 세계의 식문화를 바꾸고 있다. 맵고 뜨거운 한 그릇의 라면이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는 이 역설적 성공 스토리 속에서, K푸드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4.12 10:00

4분 소요
생두값 3배 폭등...한국인 '아메리카노 사랑' 식을라

유통

한집 걸러 한집이 커피전문점인 대한민국은 여전히 커피공화국이다. 지금도 창업시장에서 커피전문점은 인기 창업 아이템으로 많은 예비 자영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생두값이 치솟으면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업체들은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 여기에 환율 상승까지 겹치며 마지막 카드로 결국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생두값이 안정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커피 업체들이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400센트 바라보는 커피지수…왜?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잇달아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커피나 커피 관련 가격 인상을 단행 및 예고한 커피 프랜차이즈는 ▲스타벅스 ▲폴바셋 ▲할리스 ▲투썸플레이스 ▲메가MGC커피 ▲컴포즈커피 ▲더벤티 등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커피 프랜차이즈들은 대부분 가격을 올린 셈이다.스타벅스는 지난해 8월 가격을 올렸고 올 1월에도 아메리카노를 포함해 톨 사이즈 음료 22종의 가격을 200~300원 인상했다. 이밖에 할리스와 투썸플레이스 등도 주요 커피 가격을 200~300원 올렸다. 이에 스타벅스와 할리스, 투썸플레이스의 아메리카노 가격은 4700원이 됐다. 4000원대 초반대였던 아메리카노 가격이 이제 4000원대 후반이 된 셈이다. 저가 커피 브랜드인 메가MGC커피는 4월 21일부터 기존 아메리카노 가격(1500원)을 200원 인상한다. 컴포즈커피와 더벤티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을 200원씩 올렸다.이처럼 업체들이 대거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은 최근 생두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커피값은 국제 커피지수(ICO)를 기준으로 가격이 산출된다. 여기에 수입통관 비용 등이 포함돼 생두의 원가가 결정된다. 문제는 이 커피지수가 지난 10년간 평균 110센트 수준이었지만 최근 3배가량 뛰었다는 점이다. 2023년 9월 이전 150센트 수준이던 국제 커피지수는 이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 11월 300센트를 돌파했다. 2025년 4월 1일 종가 기준 국제 커피지수는 353센트다. 과거 커피지수가 200센트까지 치솟았던 적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100센트 초반대로 하락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커피지수가 안정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커피업계에서는 커피지수가 100센트에서 200센트가 되면 이는 코스피가 1000에서 2000이 된 정도의 충격이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전망도 좋지 않다. 커피업계 한 관계자는 “커피값은 미국 스타벅스가 선물거래 방식으로 생두를 계약해 전 세계 82개국에 공급하며 결정되는 방식”이라며 “과거에는 가격이 어느 정도 예측이 됐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잦고 경기 불황과 함께 투자자들의 심리 변화도 커서 커피값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반기에도 주요 업체들이 커피값을 또 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커피 한잔값은 얼마나 오르게 되는 것일까. 최근 생두 수입 단가는 1kg당 5000원대에서 1만5000원대로 3배가량 상승했다. 프랜차이즈냐 개인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프랜차이즈의 경우 1kg 생두로 커피 35잔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러면 1kg당 5000원일 때 한잔당 들어가는 생두 원가는 142원이지만 1만5000원일 때는 428원으로 뛴다. 다만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생두를 선물거래로 미리 대량 구입한다. 현재 판매하고 있는 커피는 가격이 폭등한 생두가 아닌 과거 구입해둔 생두일 가능성이 높다. 심재범 커피칼럼니스트는 “생두를 장기계약 방식으로 미리 대량 구매해 리스크 헤지(Hedge)를 하는 것”이라며 “다만 모든 업체가 그런 것은 아니고 회사마다 구입 방식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커피 프랜차이즈들이 과거 사들인 생두로 커피를 제조해 커피 원가를 과거 수준으로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쌓아놓은 생두 재고가 소진되면 꼼짝없이 가격이 폭등한 생두를 사들일 수밖에 없다. 인건비-임대료 부담에 ‘환율 폭등’까지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가격 인상에 대해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국내의 경우 생두값보다는 인건비와 임대료, 물류비, 인테리어 비용 등이 급격히 오르고 있어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국내 한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가게 내부 인테리어 비용도 예전보다 2배가량 상승했다”며 “또 요즘처럼 환율이 오르면 생두 수입 시 폭탄 가격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또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는 “최근 관세 이슈가 있지만 생두는 원두와 달리 로스팅되지 않은 상태로 수입되는 것이어서 할당 관세가 없거나 기본 관세율도 낮다”며 “결국 커피값은 환율이 결정적인데 정부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환율 상승에 제대로 대처를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가격 인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서다. 결국 논커피(NonCoffee) 메뉴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다른 메뉴의 원재료 비용도 상승하고 있어 고심이 깊다. 특히 저가커피 업체들의 경우 커피 메뉴만으로는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미 저가커피업계 1위 메가MGC커피를 비롯해 컴포즈커피, 빽다방 등은 여러 디저트 메뉴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다만 생두값이 계속 오르면 메인 커피 가격도 결국 올릴 수밖에 없다. ‘저가’라는 강점이 사라지는 셈이다. 커피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커피지수는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사실상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 저가커피업계에서 업체들이 이 기간을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2025.04.12 08:00

4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