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딘'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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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연고 후시딘, 상처치료제 선도 제품 된 비결은[백약불태]](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4/05/09/ecn20240509000023.353x220.0.jpg)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OTC).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지만, 비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OTC도 의약품인 만큼 잘 알고 복약해야 합니다.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OTC의 성분과 효능을 뜯어봅니다.
사람들은 즐겨 쓰는 상비약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그 덕에 일반의약품(OTC) 중에선 장기간 인기를 얻으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품이 많다. 일부 제품은 고유명사가 되기도 한다. 동화약품의 상처치료제 ‘후시딘’도 타박상 등으로 생긴 상처에 바르는 연고의 고유명사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라”기보다, “후시딘을 바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후시딘이 고유명사가 된 이유는 국내 상처치료제 시장과 역사를 같이 해서다. 후시딘은 1962년 덴마크의 제약사 레오파마가 개발한 상처치료제다. 동화약품이 1976년 레오파마와 기술 제휴를 맺으며 후시딘을 국내 들여왔다. 상처치료제라는 단어도 익숙하지 않았던 국내 시장에서 후시딘이 입지를 잘 다진 셈이다.그렇다고 후시딘이 국내 상처치료제 시장에 무혈입성하진 않았다. 이른바 ‘빨간 약’으로 불린 소독약 ‘머큐롬’이 시장에 출시돼 있었고, 동국제약도 비슷한 시기 상처치료제 ‘마데카솔’을 국내에 도입했다. 성분과 제형 등이 다소 다르지만, 상처에 쓸 수 있는 약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후시딘은 상처치료제의 고유명사인 만큼, 최근까지도 안정적인 매출을 내고 있다. 2018년 2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 2023년을 기준으론 234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이 사그라들며 야외 활동이 늘어난 덕으로 풀이된다. 매출 측면에선 이미 경쟁 제품을 앞지른다.상처를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상처에 세균이 감염되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이를 위해 후시딘은 피부감염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과 연쇄구균에 대한 항균 효과가 있다. 농피증과 모낭염, 종기와 종기증, 화농성한선염 등으로 인한 상처에 쓰고, 화상이나 외상, 봉합창, 식피창으로 인한 2차 감염을 예방할 때도 쓴다.후시딘이 상처 치료에 효과가 있는 이유는 퓨시드산나트륨이라서다. 퓨시드산나트륨은 세균이 생존, 번식할 때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해 신장 인자(Elongation Factor-G)에 붙어 상처의 감염을 예방한다. 표피 아래 진피까지 침투해, 피부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염에도 효과를 낸다. 특히 강한 살균 효과가 있어 상처의 2차 감염을 예방한다.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후시딘은 10g 연고 제형이다. 하지만 후시딘은 밴드와 겔 등으로 제형과 용량을 확대하고 있다. 습윤밴드를 비롯한 다양한 제형의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고 있는 만큼, 후시딘의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출시해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2024.05.14 06:00
2분 소요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의 장남인 윤인호(38)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다. 전무로 승진한 지 4년 만이다. 21일 동화약품에 따르면 윤인호 전무는 이번 정기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게 됐다. 발령 일자는 3월 1일이다. 제약업계 최장수 기업인 동화약품의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신임 부사장은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2013년 동화약품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14년 중추신경계(CNS)팀 차장, 2015년 전략기획실 부장, 2016년 전략기획실 생활건강사업부 이사로 매년 한 계단씩 직급이 올랐다. 2018년에는 입사 4년 만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2019년 3월에는 등기 임원 자리에 오르며 이사회에 합류했다. 이번 승진으로 COO 자리에 오르며 회사 운영의 책임을 맡아 내부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전망이다. 현재 윤 신임 부사장은 동화약품의 지분 2.3%를 보유하고 있어, 부친 윤 회장(5.13%)에 이어 오너 일가 중 두 번째로 지분이 많다. 윤 회장은 슬하에 윤현경 상무(42)와 윤 신임 부사장 등 1남 1녀를 두고 있으나, 윤현경 상무는 여전히 미등기 임원이다. 동화약품은 이번 임원 인사를 통해 마케팅실장에 김대현 상무, 미래전략실장에 성경수 상무보, 경영관리실장에 유정훈 이사대우를 각각 선임했다. 동화약품은 1897년에 궁중 선전관(경호원) 출신이며 '활명수'를 발명한 민병호와 그의 아들 민강에 의해 '동화약방'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됐으며, 1930년에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1962년에 '동화약품'으로 상호를 바꿨다. 상처치료제 '후시딘'과 소화제 '까스활명수' 등 인지도가 높은 일반의약품을 보유하고 있다. 1937년에 회사를 인수한 보당 윤창식이 '제2의 창업자'로 꼽히며, 윤 신임 부사장은 그의 증손자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2.02.21 16:01
2분 소요![[단독 | 혹시 ‘당근마켓’에서 의료기기 사셨나요?] 유축기·심장사상충약 등 개인 판매 불법, 버젓이 “팔아요~”](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2/24/ecn2041357502_IbBGvKJ2_1.353x220.0.jpg)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판매 규제 사각지대 커진다 “인슐린 주사기 팝니다. 사람용 당뇨 주사기인데 애완견에게 사용했던 겁니다. 바늘이 얇아서 애완견이 아파하지 않더라고요”“유축기 판매합니다. 양쪽 동시 유축 가능하고 건전지로도 작동 가능합니다. 수동 유축기도 있으니 필요하면 함께 사세요.”직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이 의약품과 의료기기 불법 판매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약품 거래가 지적된 바 있지만 의약품뿐 아니라 개인 판매가 불법인 의료기기도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근마켓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면서 선을 넘는 판매 제품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당근마켓 월 평균 이용자는 1200만명을 넘었다.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당근마켓에서 중고 의약품 식용억제제 디에타민을 직접 구매한 경험을 말하며 “이 의약품은 마약류관리법에 의한 향정신성 전문의약품이자 필로폰 중독자 사이에서 마약 대체재로 쓰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는 “서비스 초기부터 신고 기능 등으로 제재하고 있지만 운영 인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최근엔 기술적으로 보완했고 원천적으로 해당 거래를 차단하고 있는 만큼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국정감사 지적에도 당근마켓에는 다양한 의약품뿐 아니라 의료기기도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라는 직접적인 키워드로는 검색되지 않지만 관련 제품 브랜드 이름이나 세부 대표명사로는 판매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본지는 식품의약안전처 의료기기정보포털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로 소개된 의료기기인 모유착유기, 콧물흡입기, 창상피복재를 당근마켓에서 판매되는지 살폈고, 모두 판매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외에도 인슐린 주사기부터 후시딘 등 의약품 연고, 동물의약품인 심장사상충 등의 판매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법적 다툼 여지에 부작용 위험도 문제는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개인 판매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의약품은 의료법과 약사법에 따라 의료기관과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고, 의료기기는 의료기기법 17조에 따라 영업소 소재지의 해당 지자체 보건소에 의료기기 판매업으로 신고한 의료기기 판매업자만 팔 수 있다. 온라인 판매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기 판매업으로 허가 받은 사업자만이 온라인으로 의료기기를 판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적으로 올바르게 구입한 의약품과 의료기기라도 이를 지자체 보건소의 허가를 받지 않은 개인이 당근마켓으로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게 되면 불법이다.물론 판매를 규제하는데 있어서 예외인 물품도 있다. 의료기기법에 의료기기 허가·신고·심사 등에 관한 규정 제49조에 따르면 전자체온계, 자동 전자혈압계, 자가진단용 모바일 의료용 애플리케이션을 탑재한 제품, 임신 진단키트 등은 의료기기판매업 신고면제 제품으로 의료기기 판매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도 판매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당근마켓에서 판매되고 있는 체온계는 불법이 아닌 셈이다.하지만 해당 면제 제품 외에 모유착유기, 콧물흡입기, 창상피복재 등의 판매는 모두 불법이다. 식품의약안전처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개인 판매가 가능한 물품과 불가능한 물품에 대한 정보는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알리거나, 공지 등은 띄우진 않았으나 의료기기 판매업자 또는 당근마켓과 같은 직거래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법적 다툼 여지 외에도 부작용 위험이 존재한다. 식품의약안전처 의료기기정보포털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의 대표로 소개된 모유착유기와 콧물흡입기를 보면 살펴 보자. 식품의약안전처는 모유착유기 사용시 주의사항에 ‘중고제품을 사용할 때 감염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 세척하고 소독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중고 모유착유기는 긴 호수에 미세한 모유가 남아 있어 비위생적이고 오염된 호수로 인해 이후 사용하는 산모와 아기가 균에 감염될 수 있다. 콧물흡입기도 여러 아이가 사용하면 교차오염에 노출되기 쉽다. 한 아이가 사용한 후, 제대로 세척되지 않은 것을 다른 아이가 쓰면 전에 사용한 아이 코에 있는 세균에 그대로 감염될 수 있다.동물의약품인 심장사상충약 역시 부작용을 나타날 수 있다. 이영호 반려동물 임상수의사는 “지속적으로 심장사상충약을 먹어온 건강한 강아지와 고양이는 문제가 없지만, 이미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있어서 성충이 체내에 있는 반려동물인 경우에 일반 개인이 먹인 심장사상충약으로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중고거래로 의약품을 구입해서 먹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건강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당근마켓 “검색어로 찾아내는 데는 한계” 명확한 불법 판매 행위에 대한 당근마켓의 제재는 아직 소극적이다. 당근마켓은 애플리케이션 내 고객센터 게시물에 ‘판매금지 물품’ 글을 올려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을 판매할 수 없다고 게재하고 있다. 또 이 같은 물품 판매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면 개별적으로 메신저를 보내, 불법 판매임을 알리고 게시물을 내리도록 조치한다. 한 번의 메신저 경고를 어겼을 경우 강제로 당근마켓 이용을 중지시킨다. 당근마켓 측은 “식품의약안전처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매 글을 모니터링하며 불법 판매를 중단시키고 또 머신러닝을 작동시켜 관련 검색어를 찾아내 판매 자체를 선제적으로 금지하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판매인 개별에게 메시지를 보내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식품의약안전처로부터 받은 리스트에만 집중해 판매 글을 찾아내는 것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판매자가 조금만 다르게 판매 글을 작성하면 당근마켓 내 검사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적에 당근마켓 관계자는 “당근마켓 전체 공지에도 내용을 띄우고 불법 판매를 알리는 캠페인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시적으로 펼쳤다”며 “전 세계 모든 의약품과 의료기기 명칭을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에 검색어로 세계 모든 의약품과 의료기기 판매 글을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2021.01.16 15:28
4분 소요![[수요층 다양해지는 공유오피스] 스타트업만? 중견기업 본사가 옮기기도](https://image.economist.co.kr/data/ecn/image/2021/02/24/ecn2949993301_vxhXDJyV_01.353x220.0.jpg)
중소·대기업까지 관심 가지며 공유오피스 시장 연간 63% 고성장 전망 #1. 까스활명수·후시딘 등으로 유명한 동화약품이 지난 4월 본사를 패스트파이브 시청점으로 옮겼다. 패스트파이브는 지점수 기준 국내 1위 공유오피스 업체다. 1인 창업자나 소규모 스타트업을 위한 업무 공간으로 알려진 공유오피스에 동화약품은 ‘부채표’를 붙이고 본사를 꾸렸다.#2. 기업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그룹 계열사 멀티캠퍼스는 지난 5월 위워크 선릉 3호점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위워크는 지점수 기준 국내 2위 공유오피스 업체다. 멀티캠퍼스 임직원은 위워크 사무공간 전략가와 디자이너가 꾸민 공간으로 입주, 공간 관리 없이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다. ━ 공유오피스 입주 기업 6개월 새 3.5배로 급증 공유오피스 수요층이 다양해지고 있다. 임직원 숫자만 200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이 공유오피스로 본사를 옮기는가 하면 대기업 관계사까지 사무 공간을 공유오피스에 마련하고 나섰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유연근무제 등이 도입되면서 본격화한 기업의 ‘일하는 방법 혁신’ 논의가 공유오피스 입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영상황에 따라 사무실을 손쉽게 확장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입주 유연성도 공유오피스의 매력 포인트다. 특히 대기업은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 사업 프로젝트팀을 공유오피스에 입주시키기도 한다.패스트파이브에 따르면 공유오피스로 사무 공간을 이전하는 중소·중견·대기업이 늘고 있다. 6월 현재 패스트파이브 전체 입주자 1만1000명 중 임직원 수 50명을 넘는 기업 소속 입주자는 4510명(4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패스트파이브가 내놓은 ‘공유오피스 주요 지표’에서 50인 이상 기업 소속 입주자가 1280명(16%)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기업 입주 규모가 6개월여 만에 약 3.5배로 증가했다. 공유오피스가 1인 창업자나 소규모 스타트업을 위한 사무 공간 임대 서비스로 알려졌던 것과 대조된다. 세계 28개 국가에 485개 지점을 둔 글로벌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는 “세계 입주자 중 임직원 수가 1000명 이상인 기업 소속 입주자 비율이 40%”라며 “국내도 기업 입주가 증가세”라고 밝혔다.공유오피스는 말 그대로 사무실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공유오피스 업체는 빌딩의 전체나 일부를 장기 임차해 공간을 나눈 후 개인이나 기업에 재임대한다. 기존 오피스 개념이 빌딩 전체나 특정 층을 한 회사가 사용하는 것이라면, 공유오피스는 공유오피스 사업자가 공간을 여러 개로 쪼개거나 전체를 임대한다. 1인 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필요한 규모에 맞춰 사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또 1개월부터 연간까지 필요한 기간만큼 사용할 수 있다.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공유오피스로 향하는 이유는 공유오피스를 업무 혁신의 대안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오피스는 지정 좌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출근 후 자유롭게 일할 좌석을 정해 업무를 하는 것이 기본인 사무 공간이다. 업무 중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놀이 공간이나 휴식 공간이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돼 있다. 특히 공유오피스 입주 때 부동산을 계약하고 인터넷 연결, 사무기기 임차, 복지·휴게시설 마련 등 업무 환경을 구축하는 데 신경 쓸 필요 없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52시간 근무제와 유연근무제 등이 도입되면서 임직원 개개인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졌고 공유오피스가 대안이 됐다”면서 “개방된 공간인 공유오피스는 탄력적인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도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소연 패스트파이브 브랜딩 팀장은 “특히 기업 내 2030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업무 환경을 만들어 수직적 위계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조직을 만들자는 요구가 늘었고 이 같은 요구가 최근 국내 기업의 공유오피스 입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공유오피스 내 사무실 임대 공간을 회사 성장 속도에 맞춰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개별 기업의 특성에 맞도록 바꾼 사무 공간과 업종별 맞춤 시설도 제공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팀 단위 회의가 잦은 회사에는 소규모 회의공간을 더 늘릴 수 있고, 보안 정보를 다루는 회사는 폐쇄형 사무실을 꾸밀 수도 있다. 위워크에 입주한 콘텐트 회사 액시즈(AXIS CCP)는 공유오피스에 녹음실과 연습실까지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유오피스 입주를 정한 대기업 관계자는 “시장 변화에 맞춰 직원 규모를 늘려야 할 수도 혹은 줄여야 할 수도 있는데 공유오피스는 이에 대한 대응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편”이라고 말했다.동화약품과 멀티캠퍼스 말고도 공유오피스로 옮기는 덩치 큰 기업이 여럿 있다. 하나금융TI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연구하는 ‘DT랩’ 사무실을 위워크 역삼역점에 냈다. 아모레퍼시픽도 사내벤처 여섯 팀을 공유 오피스로 내보냈다. 임직원 수가 150명이 넘는 홍보대행사 프레인도 지난 2월 패스트파이브 을지로 오피스로 본사를 이전했다. 이 밖에 두산그룹과 SK그룹 신사업 프로젝트팀, 풀무원 계열사 등이 패스트파이브에 입주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기업의 사옥을 아예 공유오피스로 바꾸는 기업도 있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SK그룹은 지난헤 초부터 공유오피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유오피스 가치에 주목해 “칸막이에서 혼자 일하고, 만나는 사람은 인사만 나눈 사람을 포함해도 하루에 20명이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일하면 새로운 시도와 비즈니스 모델 변화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 게 계기가 됐다. SK그룹은 현재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C 등 주요 계열사에 공유 오피스 도입을 완료했다. KEB하나은행은 을지로 사옥 24층을 공유오피스로 변경했다. ━ 통근버스 운행에 어린이집 이용까지 다양한 규모의 기업이 공유오피스를 주목하면서 공유오피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코람코자산신탁에 따르면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은 2015년 처음 형성된 이후 지난해까지 총 57개 업체가 192개 공유오피스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2017년 말 기준 18개 업체가 93개 지점을 갖췄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업체와 지점이 각각 3배, 2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공유오피스 면적은 14만5455㎡에서 39만3388㎡로 2.7배로 늘었다. 특히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은 2016년 세계 최대 공유오피스 업체인 위워크 진출을 계기로 시장 선점 경쟁에 돌입, 지난해까지 3년간 연평균 65%씩 공급량을 늘리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600억원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연간 63% 고성장해 2022년 시장 규모가 77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최근 국내 공유오피스 시장 1·2위 업체인 패스트파이브와 위워크가 안정적인 임대료 수익이 보장되는 중견·대기업 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패스트파이브는 입주사 임직원이 이용할 수 있는 출근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엔 입주사 직원을 위한 어린이집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위워크는 사무실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넘어 살 집, 아이를 교육할 학교, 여가를 즐길 커뮤니티까지 모두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2019.06.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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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의약품 제조로 일본과 대만 등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이니스트에스티. 원료의약품 유통으로 시작해 원료의약품 제조, 그리고 신약 개발에 도전하면서 성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정도 매출을 올렸으면 됐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는 몰락한다. 기업은 언제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살아남는다.”한국의 원료의약품(API, 완제의약품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는 원료) 업계에서 중견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국현(58) 이니스트에스티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시 분당수지에 있는 이니스트에스티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샐러리맨 신화를 대표하는 기업인이다.샐러리맨으로 시작해 원료의약품 유통기업과 제조기업 그리고 완제의약품 기업 3개를 운영하는 중견기업인으로 성공했다. 그가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은 조그마한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매년 수십억 매출 올리던 제약회사 판매팀장 1970년대 가난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학생들은 상업고등학교를 많이 택했다. 상고를 나오면 은행에 취직할 수 있고, 이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의 학생들이 상고를 꿈꿨던 이유다.전남 해남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 대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가정형편에 대학을 꿈꾸는 일은 가당치 않았다. 공부는 계속하고 싶었다. 목포상고를 택한 이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마디로 상고 체질이 아니었다. 숫자가 자신과 잘 맞지 않았던 것.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은 상고를 나와 은행에 취직했지만, 그는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1975년 상고 졸업 후 해군에 다녀왔다. 번듯한 옷을 입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것이 제약회사 동화약품이다. 1982년 부채표로 상징되는 가스활명수, 후시딘 같은 약으로 유명한 동화약품에 입사했다. 김 대표는 “나는 제약업계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제약업계는 매력적인 분야다”고 말했다.그는 동화약품에서 ‘잘나가던’ 원료의약품 판매팀장이었다. 의사와 약사들을 상대로 판매부터 수금, 관리 등을 모두 맡으면서 1인 5역을 해냈다. 심지어 그는 직원 한 명과 함께 한 해에 매출 100억원을 기록해 회사를 놀라게 했다. 동화약품이 ‘동화약품을 빛낸 100인’에 ‘김국현’이라는 이름을 넣었을 정도다. 김 대표는 “샐러리맨으로 일할 때도 월급쟁이가 아니라 내 사업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하지만 샐러리맨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줄어들지 않았다. 회사 역시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치킨 대리점을 해보고 싶다”면서 사표를 던졌던 그에게 회사는 “회사를 다니면서 해봐라”고 말할 정도였다.1994년 독립을 결심하고, 동우약품이라는 원료의약품 유통업체 설립 준비를 마쳤다. 그래도 회사는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사표를 내고도 자그마치 3년이 지나서야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독립하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회사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좀 힘들었다. 그래도 독립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고 김 대표는 회고했다. 회사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동우약품 사업자등록증과 사무실 계약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직속상관이었던 임원은 그 서류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후에야 사표를 수리해줬다. 회사와 이런 ‘밀당’을 한 이유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약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친정인 동화약품에서 좋게 나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994년 9월 1일 동우약품 일을 시작했는데, 8월 30일까지 동화약품에서 일하고 나왔다”며 웃었다.서울 대림동의 한 지하사무실에 동우약품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사장인 김 대표와 전화를 받고 사무를 담당하는 여직원 한 명이 전부였다.당시 한국의 제약업계는 원료의약품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상황이다. 제약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탓에 인적 네트워크는 좋았다. 원료의약품을 수입해서 제약업계에 파는 일은 빠른 시간에 자리 잡아갔다. 그는 “6년 만에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니까 빠르게 성공한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 일본과 대만에서 인정받는 원료의약품 제조기업 연매출 100억원은 상징성이 크다. 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원료의약품 제조를 준비했다. 김 대표는 “원료의약품을 수입해서 유통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원료의약품 제조에 뛰어든 이유를 말했다.2000년 충북 음성에 원료의약품 제조기업인 동우신테크(현 이니스트에스티)를 설립했다. “그때 이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다들 말렸다”고 그는 웃었다. 당시 대형 제약업계는 원료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지 않았다. R&D 비용과 시설투자비 등을 생각하면 수입해서 사용하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원료의약품 제조에 뛰어드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제약업계에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기술력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가 해외로 눈을 돌린 이유다.2002년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목표는 일본 시장이었다. 업계 관련 전시회가 있으면 무조건 부스를 만들어 회사를 알리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시장이고 품질조건만 맞추면 수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일본 기업은 거래가 시작되면 문제가 없는 한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도 일본을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같은 해 6월 연구전담요원 2명이 있는 기업부설연구소도 만들었다. 기업부설연구소는 현재 중앙연구소로 확대 개편됐다. 경기도 성남과 충북 음성에 4개팀 30명이 일하고 있다.2004년 초 일본 제약업계에서 대형 상사로 꼽히는 바이토와 코아상사가 이니스트에스티의 손을 잡았다. 당시 수출을 했던 원료의약품은 고혈압치료제의 원료인 테모카프릴이었다. 김 대표는 “테모카프릴 제조 기술을 인정받으면서 일본 업계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현재 이니스트에스티의 수출 효자 품목은 항궤양제에 사용되는 ‘레바미피드’와 우울증치료제에 사용되는 ‘둘룩세틴’, 전립선비대증치료제 원료의약품인 ‘나프토피딜’ 같은 제품이다. 특히 레바미피드의 경우 이니스트에스티가 고순도 정제기술을 개발한 후 제조에 성공한 제품이다. 일본 제약업계에 수입되는 레바미피드 원료 중 이니스트에스티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한다. 매년 55t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는 “이 제품을 계기로 일본의 납품처와 거래품목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에서도 이니스트에스티는 유명하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한미약품의 팔팔정과 구구정의 원료인 실데나필과 타다라필을 만들고 있다. 특히 구구정의 경우 한미약품이 유럽과 중국에 수출등록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원료의 약품을 유럽과 중국에 팔 수 있는 수출길이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치옥트산, 뇌혈관 질환 개선제 아세틸엘카르니틴 등이 국내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다.이니스트에스티는 2007년 100만불 수출탑 수상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할 정도로 수출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연 매출의 40%가 수출에서 나올 정도로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 시장도 중요하지만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살길이다. 앞으로도 해외 시장 개척에 공을 많이 들일 것이다”고 말했다. 매년 매출액의 10%를 R&D에 투자했고, 기술력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2014년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바로 신약 개발이다. 제약업계 모두가 꾸는 목표지만, 누구도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김 대표도 “신약 개발은 막대한 돈과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김 대표는 2014년 JRP(진로제약)를 150억원을 주고 인수했다. 인수 후 JRP는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김 대표는 “진로제약은 매출 중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잘나간 제약업체였지만, 진로그룹의 경영악화와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면서 “JRP 인수로 완제의약품 40개를 만드는 기업이 됐고, 신약 개발에도 뛰어들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또한 “완제의약품 회사와 원료의약품 제조 기업이 만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제약 기업으로 가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김 대표가 현재 공을 들이고 있는 시장은 미국이다. “미국에서 터졌다 하면 대박”이라고 말할 정도다. 2015년 오송생명과학단지에 글로벌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의약품 및 의료기기를 제조 생산하거나 수입할 때 제품의 안전 등 기준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증하기 위해 식약처가 인증을 하는 것) 규정에 맞는 표적항암제 전용 원료의약품 제조소를 준공한 바 있다. 이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 미국 LSK 바이오 파머사와 양해각서 체결 2015년 10월에는 한국 제약업계가 주목하는 미국발 소식이 전해졌다. 이니스트에스티와 글로벌 제약회사인 미국 LSK 바이오 파머사와 표적항암제의 비임상·임상시험용 시료 공급과 대량생산을 위한 원료의약품 생산 및 공급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것. 당시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동반한 경제 사절단에 참여해 이룬 성과다. 김 대표는 “2014년부터 경제사절단에 참석하고 싶다고 신청해 목표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양해각서 체결 내용처럼 사업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LSK 바이오 파머사는 미국 유타주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다. 이니스트에스티는 BTK 저해제(항암제에 사용되는 원료의약품의 한 종류)를 공급하게 된다. 공동 개발 중인 표적 항암제는 현재 전임상단계로 동물 실험을 통해 약효와 독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니스트에스티는 비임상시험용 시료 공급의 공정 개발을 완료했고, 대량생산도 준비 중이다. 만일 전임상 단계가 성공한다면 임상으로 진입하게 된다. 김 대표는 “미국 제약사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미국 의약품원료 시장에 진출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임상 단계로 진입하게 되면 이니스트에스티는 100억원대 원료의약품을 수출하게 된다.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지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김 대표는 원료의약품 유통(이니스트팜)부터 제조(이니스트에스티), 신약 개발(이니스트바이오제약)에 이르는 라인업을 완성했다. 2015년에는 각자 이름을 가지고 있던 기업들의 CI를 이니스트로 변경했다. 김 대표는 “JRP를 인수하면서 그룹의 모습을 갖췄다”고 말했다. 3개 기업의 매출을 모두 합하면 1000억원이 넘고, 2017년에는 1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올해는 아토피 치료 보조 화장품을 시작으로 신제품들을 속속 내놓을 계획이다. 이런 결과물을 가지고 2019년에 코스닥에 상장한다는 목표다.- 최영진 기자 cyj7@joongang.co.kr·사진 김경록 기자
2017.01.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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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가 한국경영사학회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찾아서’ 6회는 9월 25일 창사 119주년을 맞는 동화약품이다. 동화약품은 1897년 활명수를 주력제품으로 하여 창업된 우리나라 최초의 제조 기업이고 최초의 제약회사이다. 민강 초대사장에서부터 내려온 동화약품의 기업가정신은 보당 윤창식 사장에 의해 체계화되고 가송 윤광렬 사장에 의해 집대성되고 구체화되었다. 지금의 동화약품을 만든 주요 CEO들의 기업가정신을 조명했다. 부채꽃 까스 활명수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뱃속이 더부룩하고 살살 아플 때 편안하게 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활명수는 무려 4세대에 걸쳐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한민국 소화제의 대명사다. 그러면 후시딘은? 상처난 데 바르면 빨리 낫는 약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활명수와 후시딘을 제조·판매하는 동화약품(대표 윤도준)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백발 노인까지 모르는 이가 없는 장수 기업이다. 하지만 동화약품이 숭고한 독립 운동가들의 땀과 숨결이 배인 ‘민족기업’이라는 사실, 생명을 죽이는 살충제를 생산해야 하느냐 문제로 임직원들이 치열한 내부 논쟁을 벌였던 기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동화약품은 119년이나 되는 역사에 걸맞게 스토리의 보고다. 동화제약의 역사는 활명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종 임금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당시 궁중 선전관(宣傳官)으로 있던 노천(老川) 민병호 선생이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일반 국민에까지 널리 보급하기 위해 서양의학을 접목해 개발한 양약(洋藥)이 바로 활명수다. 당시 조선 백성들은 소화불량과 위장병을 많이 앓았는데, 탕약 외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일찍 손을 쓰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 활명수 약으로 창업한 민강 사장 다행히 노천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여러 비방을 잘 알고 있었고, 기독교를 접하면서 서양의학과 서양의술에도 일찍 눈을 떴다. 그래서 아선약, 계피, 정향, 현호색, 육두구, 건강, 창출, 진피, 후박, 고추틴크, 엘멘톨의 11가지 생약성분을 넣어 일반 백성이 달이지 않고 복용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했던 것이다.이는 생명을 살린다는 뜻의 이 활명수(活命水)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 민강(1883~1931)과 함께 서울 순화동 5번지에 1897년 동화약방(1962년 동화약품으로 상호변경)을 여는데, 이것이 지금의 동화약품이다. 그러고 보면 동화(同和)라는 상호 자체가 의미가 깊다. 주역에 나오는 말로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이 평안해진다” 는 뜻이다. 부채를 상표로 정한 것도 심오한 뜻이 있다.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하여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紙竹相合 生氣淸風(지죽상합 생기청풍)”에서 따왔다.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민족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동화는 이처럼 “좋은 약을 만들어 사회에 봉사한다”는 제약보국의 기업가정신으로 창업했다.초대 사장 민강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던 혁신가였다. 1910년에 국내 최초로 부채표 활명수를 상표 등록했다. 이후 활명수는 소화불량, 식욕감퇴, 과식, 구토 등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면서 동화약품을 먹여살린 효자 상품이 됐다. 연간 1억병 넘게 생산되고 연매출만 400억 원에 이른다. 1910년대 60ml 활명수 1병 값은 50전이었다. 당시 설렁탕 2그릇에 막걸리 2~3잔을 사먹을 수 있는 돈으로 지금처럼 값싸고 흔한 약은 아니었다.민강 사장을 말할 때 빠뜨리고 갈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서울 연통부 기념비’다. 도심 재개발로 덕수궁 롯데캐슬이 들어선 서울 서소문동 동화약품 옛 본사 건물 앞에 있다. 일제 치하인 1919년, 동화약방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서울 연락소인 서울 연통부(聯通府)가 비밀리에 설치되었다. 국내 각 시, 도, 군, 면까지 조직을 갖추고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일을 하던 서울 연통부의 행정 책임자가 바로 민강이었다. 민강은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을 남겨 독립자금으로 임시정부에 전달하곤 했다. 동화약품이 민족기업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동화약품의 기업사를 연구하다 보면 초대 사장 민강을 비롯해 초창기에 큰 족적을 남긴 CEO 3명이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민강 선생은 서울 연통부 활동에 앞서 1909년 경에 각계 인사 80여명과 함께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였다. ━ CEO들의 한결같은 제약보국 정신 민강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부터 1936년까지 동화약방의 사장을 지냈다. 일제의 탄압을 받았고, 경영침체와 파산까지 갈 뻔한 위기도 겪었다. 그러면서도 민족기업으로서의 명맥을 잊지 않고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민강은 결국 두 차례 옥고 끝에 1931년 순국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동화의 임직원들은 윤강이 별세하자 (주)동화약방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민강의 뜻을 이어받아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면서 동화약방을 운영해간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창기 활명수 신문광고다.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내자 동화약품은 승전보를 알리는 축하 광고를 8월 11일 조선일보에 냈다. 이 광고는 후에 일장기를 지운 마라톤 우승자의 사진을 실어 일제의 탄압으로 정간되는 역사적인 항일 사건으로 이어진다.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담은 활명수 광고를 게재한 것은 동화약품의 민족기업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만하다.동화약품 5대 사장 보당(保當) 윤창식(尹昶植, 1890~1963) 역시 민족주의와 봉사정신으로 똘똘 뭉친 애국자였다. 1931년 초대 민강 사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자 동화약방은 사세가 급격히 기울게 된다. 여러 인물이 사장을 맡았지만 기업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었다. 1937년, 마침내 민강의 독립운동 동지이기도 한 보당이 구원투수로 나서 동화약품을 인수하게 된다.동화약품의 현대화에 기여한 7대 사장 가송(可松) 윤광열(尹光烈, 1924~2010) 명예회장도 해방 전에 광복군 주호지대 5중대장으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처럼 동화약품을 일으켜 세운 주요 CEO들은 단순히 돈을 벌려고 제약회사를 운영한 게 아니라 나라를 살리고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약회사를 운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3명 중에서도 특히 보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당은 1936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사세가 기울던 동화약품을 기적적으로 재건해 동화약품의 제2창업을 이뤄냈기 때문이다.보당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상과(商科) 출신이다. 일찍이 민족기업을 육성하여 자주독립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뜻을 세우고 육당 최남선, 인촌 김성수 등이 결성한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에서 활동했다. 윤창식은 총무를 맡았는데, 다른 애국독립단체와 달리 주식제도를 도입해 자금지원을 외부에 의탁하지 않고 적립해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활동했던 3인방 중 최남선은 저작, 출판으로 하는 애국의 길로, 김성수는 고려대 설립과 동아일보 등 교육, 언론의 길로, 보당은 독립군 자금지원과 빈민구휼 사업을 하게 된다. 보당은 이후 1929년부터 정미업으로 자본을 모았고, 일본인들이 소금을 독점하자 이에 맞서 제염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보당은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도 남모르게 지원했는데, 당시 신간회에는 이상재를 비롯해 안재홍, 조만식, 한용운, 이승훈 등 각계를 대표한 민족지도자들이 많았다. 보당은 해방 후에는 이승만, 김구, 오세창, 장덕수, 윤보선 선생 등 각계 저명인사로 구성된 대한독립촉성회국민회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 보당 윤창식이 이룬 제2의 창업 이런 보당이 한창 나이인 47세 때인 1937년에 동화약방 제5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드디어 민족기업 부채표 동화의 활로가 열리게 된다. 동화약품을 인수한 보당은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동화의 창업이념은 어떤 시대적 불운 속에서라도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한다”며 동화약품을 재건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보당은 임직원들에게 원리원칙, 정직, 성실을 생활원칙으로 강조했고 경영방식을 대폭 쇄신했다. 보당이 회사 내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보당은 임직원들에게 “약을 만들되 생명을 살리는 약”만을 만들라고 강조했다. 이런 유지 때문에 동화약품이 모기약 홈키파를 개발할 때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벌레라도 죽이는 약을 만드는 것은 보당의 뜻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강했으나 일부 임직원들이 “스님도 파리를 잡는다”며 설득해 겨우 홈키파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한다.보당은 혼란한 해방정국에서도 동화약품의 경영정상화에 몰두했고, 1948년에는 생산판매의 적극화로 의약품 생산을 10여 종으로 넓히는데 성공한다. 보당은 6.25전쟁 중에도 피난지 마산에서 생산 판매를 멈추지 않았다. 6.25전쟁 후에는 미국 ICA(국제협조처)의 자금지원을 거부하고 순수민족자본으로 회사를 재건했다. 그리고 1962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해 동화약품을 일으켜 세운다. 보당은 안타깝게도 1963년 운명을 달리하는데, 당시 가족들에게 필생의 유훈을 남기게 된다. “좋은 약이 아니면 아니면 만들지 마라. 동화는 동화식구 전체의 것이요, 또 이 겨레의 것이니 온 식구가 정성을 다해서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어라”는 유훈이 그것이다. 보당의 후계자이자 아들인 윤광렬이 이같은 보당의 경영철학을 나중에 다음과 같이 4가지 ‘동화정신’으로 체계화한다.“첫째, 동화는 좋은 약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봉사하고 그 효험을 본 정당한 대가로 경영되는 회사이다. 둘째, 동화는 정도(正道)를 밟고 원리원칙에 의하여 경영되는 회사이다. 셋째, 동화는 젊어서 정당하게 땀 흘려 일하고 노후에 잘 살아 보려는 동화식구의 회사이다. 넷째, 동화는 동화식구가 업무수행 중 잘못이 있을 경우 이를 솔직히 시인할 줄 알고 고쳐서 전화위복이 되게 하는 회사이다.”21세기인 지금 읽어봐도 낯설지 않은, 정도경영과 고객 및 임직원 만족의 훈훈한 정이 묻어나는 경영철학이다. ━ 빛나는 독립운동정신과 민족기업가정신 동화약품의 제2 창업자로 평가되는 보당은 동화의 정신적 지주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기업가로 평가된다. 보당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한국경영사학회 학자들은 “독립운동가로서뿐만 아니라 민족기업가로서 보당을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보당은 생전에 “우리 자본으로, 우리 기술로, 우리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부채표 활명수는 민족기업의 대표적 약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 내 뜻이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는데, 이는 후대 기업인들이 본받을만한 민족기업가정신의 발로라는 것이다. 한국경영사학회장을 지낸 김성수 경희대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보당은 신학문을 공부한 선각자로서 제약기업의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민족 기업이 지켜야 할 길에 대한 소신이 있었으며,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며 높이 평가했다. 경영사학자들은 보당의 기업가정신 못지 않게 보당의 인품과 생활철학을 후대 경영인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보당은 예의와 신의가 있고 훈훈한 성품이었다. 그는 가정이나 회사에서 아랫사람에게 “일이 잘 된다고 들뜨지도 말고, 안된다고 기죽지도 말며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꾸준히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보당은 신의와 신용을 중시했고, 일을 시작하려면 꼼꼼히 열흘이나, 보름 동안 사전에 충분히 계획을 짜서 실행했다. 또 누구와 동업을 할 때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지분을 더 많이 갖더라도 분배는 똑같이 했다고 한다. 이는 결정을 내릴때 내리더라도 나중에 절대 싸움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이야기를 하면 끝까지 경청했고, 남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용서했으며, 한번 친분을 가진 사람과는 절대 인연을 끊지 않았다. 몸에 밴 검소한 생활을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솔선하여 실천했고, 회사에 들어오는 선물이 있으면 직원들과 나누었다고 한다. 직원의 복지를 위해 회사는 어려워도 생산직 월급제를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했고, 6.25 전쟁 후 회사가 곤경에 처했어도 직원들 월급을 빠뜨리지 않고 지급했다. 이런 품성과 경영철학으로 동화약품을 운영했으니 제 2의 창업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보당에 이어 동화약품을 굴지의 제약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자는 가송 윤광렬 사장이다. 가송은 선친 보당을 닮은 독립운동가 정신에다 혁신적 기업가정신을 보여준 CEO다. 가송은 1948년 동화약품에 입사해 밑바닥부터 경영을 배워나간다. 선친을 닮은 민족기업인으로서 그의 진가는 1973년 그가 동화약품의 7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가송은 동화약품 창업자들이 해온 민족경제정신을 이어 받아 끊임없이 혁신하는 것이 애국운동이라고 여겼다. 혁신을 주창한 슘페터가 주장한 혁신기업가는 신기술의 발명, 신제품의 도입 및 개발, 신시장의 개척, 신 원료의 확보, 신 조직의 형성 등에서 혁신을 이뤄내는 기업가인데, 가송은 이와 같은 혁신을 의약품 경영에서 실현시킨 경영자라는 것이 기업가정신 연구자들의 평가다. 가송은 특히 선진 제약국인 일본을 벤치마킹해 제품 생산의 자동화를 도입했다. 병만 투입하면 1분당 750병 이상의 생산력을 갖추도록 하는 자동화로 2000~3000명이 필요한 생산인원을 1/20 정도로 감소시켰고, 정부로부터 KGMP(한국 우수의약품 제조공정 및 품질관리 기준) 적격업체 승인을 받는다. 이런 혁신을 통해 지금의 동화약품을 21세기 제약 산업의 대표적 기업으로 발전시켰다.가송은 임직원들에게 정직하게 살자는 윤리경영주의, 저축하며 살자는 근검절약주의, 같이 번영하자는 공존공영주의 사상을 기본 정신으로 강조했다. 가송은 이같은 경영기본방침을 토대로 특히 다음의 4가지를 생활속에서 실천하도록 강조했다.“첫째, 부정을 멀리하고, 원리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한다. 둘째, 기업주의 이익에 앞서 종업원의 처우개선과 복지향상을 도모한다. 셋째, 근면성실하게 연구하며 일함으로써 좋은 약을 싼값에 팔아 소비자에게 봉사한다. 넷째, 살생보다는 소생하는 약을 만들어 국민보건에 기여한다”는 지침이다. 동화약품 임직원들은 이같은 경영이념을 동력으로 삼아 국내 최장수 기업인 동화약품을 성장시켜 나갔다. 가송의 훌륭한 점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한 가송재단의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부채표 가송재단(可松財團)은 가송과 부인 김순녀 여사의 사재출연을 통해 2008년 4월 설립됐다. 학계발전에 기여도가 크고 연구업적이 탁월한 의약학자들을 대상으로 대한의학회와 공동제정한 윤광열 의학상, 대한약학회와 공동제정한 윤광열 약학상, 대한치과의사협회와 공동제정한 윤광열 치과의료봉사상 등을 수여하고 있다. 장학생 선발 지원은 물론 공모전인 ‘가송예술상’을 제정해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등 전통예술의 가치를 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최고(最古)에서 최고(最高)의 회사로 초대사장 민강, 보당 윤창식, 가송 윤광렬 등 이들 3인의 CEO가 강조한 정도경영, 윤리경영, 생명존중, 민족기업정신, 사원 우선주의 등 동화의 경영이념은 일제시대와 해방정국, 6.25전쟁과 경제재건이라는 큰 변화와 혼란기를 겪으면서도 시류에 퇴색하지 않고 지금까지 굳건히 동화 식구들의 행동지침이 되고 있다. 동화약품은 현재 400여 종의 우수의약품과 30여 종의 원료의약품을 생산, 국내 공급은 물론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하는 일류 제약 기업으로 성장했다.생명존중 정신으로 제약보국의 기업가 정신을 지켜온 동화약품은 이제 동화의 미래를 상징하는 ‘최고최고정신’ 즉, 최고(最古)의 의약품 제조회사라는 자부심에 최고(最高)의 제약회사라는 미래 비전을 위해 전 임직원이 노력를 경주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2010년부터 고 윤광열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 윤도준 회장과 차남 윤길준 부회장이 함께 이끌고 있다. 창사 120주년인 내년까지 매출 7500억원 달성을 목표로 글로벌 신약 발매, 해외 및 신규사업 확대, 일반 및 전문 의약품의 균형성장을 이루어내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국내를 넘어 인류의 건강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글의 마지막은 다시 활명수 이야기다. 바로 활명수의 글로벌화다. 동화약품은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활명수의 의미를 살려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달하고 있다. 처음 시판됐을 때는 우리 민족의 생명을 살리는 물이었던 활명수가 이제 전세계를 아울러 생명을 살리는 물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켜낸 동화약품이 이제 세계를 살리는 기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포브스코리아 특별취재팀·자료 협조 동화약품·한국경영사학회
2016.08.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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