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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양상선, 표류10년만의 ‘화려한 외출’

범양상선, 표류10년만의 ‘화려한 외출’

10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예정이라서 업계의 화제다. 범양상선의 복잡한 ‘법정관리 내역’을 알아보려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이 되시오.” 범양상선의 창업주이며 당시 해운왕으로 불리우던 고 박건석 회장이 지난 1987년 4월19일 서울 을지로 두산빌딩 회장실 창문을 열고 투신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에 담겨 있던 말이다.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경영권 갈등으로 빚어진 사건으로 유명하다. 당시 이 사건은 80년대 후반 기업비리의 전형으로 손꼽혔고, 우리 사회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던졌다. 덩달아 이 말도 한창 회자(膾炙)됐다. 박회장 자살사건은 범양상선이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되는 단초가 됐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부실이 낱낱이 드러났고, 채권단 관리를 거쳐 지난 92년 10월 법정관리로 들어가게 된 것. 범양상선은 故 박회장의 자살 사건 이후에도 끊임없이 화제와 파문으로 관심을 끌었다. 우선 박회장 유족측과 산업은행 같은 채권단 간의 ‘주식 분쟁’을 들 수 있다. 지난 93년 회사정리계획안이 승인될 때까지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주식분쟁의 내막은 이렇다. 89년 매각방침을 정한 채권단은 제3자에게 원활하게 팔기 위해 대주주 지분을 대폭 줄여야만 했다. 반면 박회장의 장남 박승주씨(현 범양식품 회장)로 대변되는 유족측은 선친 기업을 되찾기 위해 故 박회장의 지분을 고스란히 갖고 가야 한다는 입장. 양측의 동상이몽(同床異夢)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웠던 범양상선의 정상화가 계속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주식지분을 놓고 밀고 밀리던 양측의 줄다리기는, 91년 3월29일 제25차 정기주주종회에서 박승주씨의 경영참여 선언이 터져 나오면서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결국 박승주씨는 91년 11월9일 회장에 취임했다. 채권단은 이에 반발, 신규여신을 완전 중단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채권단은 유족측이 1년 전인 90년 6월에 제시했던 ‘상속채무 탕감에 따른 주식지분 전량 인도’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 끌기’의 술수로 받아들이고 마지막 카드로 ‘법정관리’를 빼들었다. 채권단은 이듬해인 92년 4월 법정관리를 법원에 신청했으며, 10월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6년간에 걸친 양측의 주식분쟁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벼랑 끝에 몰린 유족측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원에 ‘회사자구계획안’을 제출했었다. 하지만 93년 10월 법원은 채권단에서 제출한 ‘회사정리계획안’을 인가, 결국 경영권과 사후 처분권이 채권단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박승주 회장 체제가 불과 2년 만에 막을 내린 것. 채권단은 이후 회사정리계획안에 따라 유족측의 지분 54% 중 35.8%를 무상 소각해 버려 유족측 지분이 18.2%로 낮아졌다. 따라서 故 박회장의 죽음 이후 6년 동안을 끌어오던 채권단과 유족측의 주식분쟁은 채권단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범양상선의 대주주 지분이 크게 줄어들면서 매각작업은 지지부진해졌고, 특히 IMF 위기는 매각작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더욱이 유족측은 꾸준히 주식을 매집해 40%까지 지분율을 높였다. 매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법원과 채권단은 99년 4월 범양상선 공채 1기 출신의 유병무씨를 관리인으로 선임했으나, 유씨가 비자금 조성 혐의로 2000년 11월 구속되는 바람에 매각 일정은 더욱 더 지연됐다. 이같은 내외홍(內外訌)을 겪고 난 후인 2001년 초 다시 매각이 추진됐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마감일을 연장하면서 최종인수제안서, 다시 수정제안서를 접수받는 등 질긴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했고, 범양상선측은 2001년 9월 매각의 잠정중단을 선언했다. 채권단은 범양상선 매각 실패가 ▲과도한 부채 부담 ▲40%에 달하는 대주주 지분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우선 범양상선의 재무제표 건전성에 주력키로 했다.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채권단은 2001년 말 출자전환 방침을 정했다. 이어 지난 2월6일 열린 범양상선의 관계인 집회에서 4월1일부로 2천3백억원의 출자전환을 골자로 하는 정리계획안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범양상선은 출자전환이 이뤄지는 오는 4월께 법정관리를 벗어날 전망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무려 10년 만의 일이다. 채권단은 향후 범양상선의 증권거래소 상장과 제3자 매각 방침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나 상장요건을 갖추려면 시간이 꽤 소요될 것으로 보여, 현재로서는 제3자 매각이 우세하다는 분석이다.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기존 자본금을 최대 40대 1로 감자하면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단은 범양상선 지분 99.4%를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그동안 범양상선 매각에 걸림돌이었던 박승주씨측의 대주주 지분은 거의 소멸될 전망이다. 따라서 범양상선 매각이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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