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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발판으로 세계 속으로

국내 1위 발판으로 세계 속으로

계양전기.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연 매출 1천2백여억원(2001년 기준)의, 크다고 할 수 없는 회사. 크기만 보고 이 회사를 그저 그런 중소기업으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25년간 전동공구를 만들어왔고, 활짝 열린 한국시장에서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을 제치고 1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동공구분야에서 계양전기는 세계적인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으로 덩치가 10배가 넘는 미국의 블랙앤데커(Black&Decker)나 독일의 보쉬(Bocsh), 일본의 마키다(牧田) 같은 다국적 기업들도 한국에서는 계양전기의 아성을 넘보지 못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이들 다국적 공구회사에 맞서 국내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회사로는 우리나라의 계양전기가 유일하다. 외국 대기업들을 상대로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텃세’ 덕이 아니다. 오히려 계양전기는 후발주자로 이들에 맞섰다. 계양전기가 전동공구 사업에 뛰어든 때는 1977년.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LG산전을 빼고는 전동공구를 만드는 회사가 거의 없다시피했다. 창업자인 고 단사천 총회장이 이 점에 착안했다. 처음 4년간은 적자로 고전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연구개발(R&D)을 한 끝에 81년 흑자로 전환했고 84년에는 드디어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그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전동공구 시장에서 계양전기의 약진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용자가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소비재와와는 달리 전동공구는 공사나 작업을 생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고객이다. 당연히 성능과 품질에 예민하다. 어떤 점에서 가격은 부차적일 수도 있다. 악기·음향기기·화구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의 경우 대개 외제가 국산을 압도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전동공구도 그런 상품에 속한다. 하지만 계양전기의 제품은 국내 시장 점유율 36%로 외국산의 전체 셰어 25%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이는 계양전기의 제품이 품질면에서 앞서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도 있다. 경쟁사 제품에 비해 15∼30% 정도 저렴하다. 높은 기술력은 끊임없는 기술개발에서 나온다. 한눈팔지 않고 전동공구에만 매달릴 수 있는 것도 다 기술덕이다. 81년 이래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한해도 쉬지 않고 흑자행진을 계속했지만 R&D(연구 개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매출액의 평균 5% 이상을 R&D 투자에 쓴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보다도 높은 비율이다. 중소기업들은 한두 해 흑자가 나다 보면 ‘있는 제품으로 먹고 살지’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이 회사는 달랐다. “전동공구는 기술변화가 아주 빠른 업종입니다. 공구를 직업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조금만 나은 제품이 나와도 그 제품으로 소비자가 옮겨 가죠.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익 사장(59)은 전동공구 업종에선 기술개발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 경쟁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자기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튼튼한 재무구조 덕이다. 창업주인 단총회장은 명동에서 활약한 우리나라 1세대 사채업자 출신이다. 그는 평생 남의 돈을 빌려 쓴 일이 없다. 계양전기도 그랬다. 기업이 남의 돈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무리한 투자나 차입경영을 하지 않았다. 웬만한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수백%를 넘나들던 외환위기 전에도 계양전기의 부채비율은 1백%를 넘지 않았다. 신용을 생명으로 했기 때문에 외상 거래도 가급적 피했다. 덕분에 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이 회사는 오히려 느긋하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의 일화 하나. 95년 설비투자와 중국 진출을 위해 1백억원가량의 해외 CB(전환사채)를 발행했다. 돈이 없었다기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파이낸싱 기술도 익히고 회사 신용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2년 후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외국의 채권자들이 너도나도 채권 회수에 들어갔다. 이사장은 선수를 쳤다. 98년 2월에 팩스를 보내 원래 3년만기인 CB지만 미리 갚겠다고 제안했다. 외환위기인지라 CB를 산 크레디 스위스(Credit Swiss)측이 내심 불안해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제안에 떨떠름해 한 쪽은 오히려 크레디 스위스였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한국에 금융위기가 온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우려하는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지만 계양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채권금액은 나중에 만기가 되면 받겠다.’ 스위스에서도 계양의 신용을 믿었다. 실제로 계양은 흔들림이 없었다. 3년 만기 시점인 98년 말 이 회사는 채무를 다 갚았다.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그 당시 모든 채권자들이 한국 기업은 못 믿겠다는 눈초리로 봤습니다. 그래서 한국에도 이런 기업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지만 이 회사는 99년부터 10여개의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거래업체들과 현금으로만 거래한다. 1백50여개사 중 납품을 하는 10여개의 대기업을 빼곤 전부 현금 거래다. 외상은 물론 어음도 찾아 볼 수 없다. 계양전기의 협력업체들은 대금을 받으러 계양전기로 찾아오는 일이 없다. 모두 은행 계좌로 자동이체 된다. 물건이 들어오면 바로 현금이 지급된다. 여느 중소기업에서 보듯이 출납창구에서의 실랑이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좋은 기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투명한 기업이라는 것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전산과 은행을 통해 이뤄지죠. 어떤 기업보다도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사장은 계양전기의 가장 큰 강점은 기술력과 투명성이라고 말했다. 대리점도 마찬가지다. 지급보증도 없고 외상거래도 거의 없다. 대리점의 85% 이상은 현금으로만 거래한다. 현금으로 거래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준다. 가격할인과 제품 우선 공급 등 이익을 누린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대리점들이 본사와 채권 채무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니 IMF 때도 대리점 몇 개가 쓰러지면 본사도 같이 충격을 받지요. 대리점과 현금 거래를 하면 위기 때 도미노 도산을 피할 수 있습니다.” 사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장이나 임원들의 판공비가 없다. 월급 외엔 무조건 영수증 처리다. 정직하지 않으면 회사가 바로 설 수 없다는 원칙이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덕이다. 이사장은 지난해 최대 성과로 ‘무차입 경영’을 꼽는다. 2000년까지 30% 정도이던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8% 수준으로 낮아졌다. “종업원들의 퇴직 충담금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빚이 거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단사천 총회장이 주창해온 무차입 경영이다. 현재 계양전기의 자산 규모는 1천2백억원인데 그 중 3백억원이 현금이다. 재무적으로는 지나치게 보수-안정 위주의 경영을 하지만 경영시스템이나 기술개발은 다르다. 이사장은 계양전기를 “끊임없는 이노베이션을 지속적으로 해 온 회사”라고 자평했다. 계양전기가 품질 경영 시스템과 IT 기술 도입에 박차를 가한 것은 94년 그가 대표이사에 취임,사령탑을 맡으면서부터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쌍용양회공업㈜에서 사회 첫발을 내딛은 그는 72년 계양전기 관계 회사인 한국제지로 전직하면서 계양과 인연을 맺었다. 79년 계양전기 감사로 취임하면서 계양전기의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상무와 전무이사를 거쳐 계양에 몸담은 지 22년 만인 94년 최고경영자가 됐다. 실제 계양전기는 그가 취임한 후 회사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회사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소프트웨어 쪽에 전략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계양전기의 품질 경영 시스템과 IT 기술 도입은 힘을 받았다. “기업은 가급적이면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어야 합니다. 과거엔 시스템이 잘 안 돼 있어 불필요한 절차가 많았고, 프로세스도 너무 복잡했어요. 이를 고치기 위해 ERP를 도입, 프로세스를 단순화·합리화 했습니다.” 당장 생산 과정이 이전보다 60% 정도까지 짧아졌다. 의사 결정 시간도 단축됐다. 예전 같으면 결산에 3∼4일이 걸렸는데 지금은 마감만 하면 결과가 그 다음날 곧바로 나온다. 이사장은 IMF 체제를 겪으며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한테서 나온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PDM(제품정보관리) 시스템이다. PDM은 생산에서부터 유통·폐기에 이르기까지 제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통합 관리해주는 시스템. “98년 투자를 시작할 때는 직원들도 의아하게 생각했어요. 다들 어려운데 그거 해서 되겠냐는 것이죠. 그래서 제조업체의 경쟁력은 제품정보관리에 있지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지요.” IMF 체제라는 혹한기였지만 과감한 투자를 했다. 중견기업으로서 상당한 액수인 20억원을 쏟아부었다. 처음에 반대의견을 펼치던 직원들도 PDM 시스템이 정착돼 가자 입을 다물었다.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지자 이사장의 노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조업체가, 그것도 중소기업이 이처럼 선진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기란 사실 쉽지 않다. 보수적 재무관과 혁신적 기술관이 공존하는 셈이랄까? 이 회사의 혁신은 기술쪽에 국한되지 않는다. 혁신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에 가까운 것이 바로 디자인 개념의 도입이다. 지금도 디자인을 경영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흔히 디자인을 핵심 경쟁력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전자 등 굴지의 대그룹이나 돼야 디자인 관련 부서가 있는 정도다. 계양전기는 공구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실용적으로 쓰기만 하면 되는 공구에 웬 디자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외국에 가보면 압니다. 대만 같은 경우 우리나라보다 공구 산업이 더 앞서 있지만 디자인은 영 아니에요. 독일·미국·일본 제품에 비해 한참 떨어집니다. ‘이거다’ 싶었죠. 눈을 확 끌 수 있는 디자인 없이는 세계와 경쟁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계양전기의 공구와 포장 박스의 디자인·CI(Coporate Identity)까지 디자인 전문업체인 이노디자인에 맡겼다. “과거엔 공구 디자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달라요. 공구도 그에 걸맞은 제품 디자인을 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월드 클래스 컴퍼니’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 그의 복안이다. 계양전기는 지금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국내 전동공구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연간 1천5백억원 규모에 달하는 전동공구 시장은 앞으로 큰 성장세를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시장에서의 목표는 점유율을 더 늘려 가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반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다국적 기업을 포함해 세계적인 기업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은 여전히 성장세에 있다. 이에 착안해 계양은 지난해 4월에 중국 소주에 현지 공장을 세우고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는 안산 공장의 절반 정도 규모지만 최신 설비를 들여놓아 한국보다 적은 인원으로 가동할 수 있다. 흔히 중국에 공장을 지을 때 한국에서 쓰던 설비나 시설을 옮겨가지만 이 회사는 더 좋은 설비를 깐 것이다. 인건비가 한국보다 싸지만 노동집약적 형태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 이사장의 생각이다. 자동화된 설비가 대안이라는 것이다. “인건비 보고 중국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이미 중국에는 블랙앤데커·보쉬 등 세계적인 업체들이 들어와 있어요. 이들과 경쟁하려면 최고의 시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앞으로 계양전기의 주 생산기지가 중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계양의 매출 구조는 내수가 60%고 나머지 40%가 수출이다. 아직은 내수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점차 수출을 늘려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미국·유럽 등에 마케팅 법인도 세울 계획이다. 전동공구 외에 자동차 부품으로 쓰이는 모터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매출액의 30% 정도를 차유리창이나 트렁크를 여닫을 때 쓰는 직류모터로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88년부터 시트 조절용 직류모터를 GM에 공급해 왔다. 지금은 GM·포드·크라이슬러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델파이사와 리어사에 직류모터를 공급하고 있다. GM과 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에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려면 QS 9000 인증을 받아야 한다. 계양은 96년 국내 최초로 이 인증을 받았고, 이에 앞서 92년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ISO 9001 인증을 받았다. “중견기업들 중에서는 QS와 ISO 인증이 빠른 편입니다. 경영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적인 표준에 맞추는 것이지요. 그게 결국은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글로벌 표준화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것이 곧 계양의 세계화 전략입니다.” 계양의 지금 목표는 향후 5년 안에 세계 전동공구 5대 기업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사장은 올해를 ‘세계 경쟁력 강화의 해’로 정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세계 수준의 제품 경쟁력 확보·경영 시스템 혁신 등은 중간 목표로 잡았다. “97년까지 지난 20년 동안 국내 입지를 다져왔다면 이후 20년은 세계를 향해 뛰어야 할 시간입니다.” 보수적이면서도 혁신적인 회사, 작지만 커 보이는 기업 계양전기가 20년 뒤에도 성공 스토리를 이어갈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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