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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공병보증금’ 여기저기서 샌다

[추적]‘공병보증금’ 여기저기서 샌다

맥주·소주·청량음료 유리병에 붙어 있는 ‘공병보증금’이 새고 있다. 술을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의 ‘일부’가 엉뚱하게 술·청량음료 제조업체 및 유통업체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일부’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게 문제다. 먼저 공병보증금 제도부터 알아보자. 유리병에 담긴 소주나 맥주나 콜라를 살 때 소비자들이 미리 돈(보증금)을 냈다가, 나중에 빈 유리병을 동네가게에 갖다 주면 이 돈을 되돌려 받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지난 1985년 소주와 맥주병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88년에 청량음료병, 91년에 청주병·과실주병으로 대상 품목이 점차 확대되었다. 공병보증금 징수 규모는 만만치 않다. 청량음료의 경우 주로 일회용 플라스틱 페트병을 많이 사용하지만, 맥주와 소주의 경우 태반이 유리병을 사용한다. 매년 국내에서 판매되는 맥주병 수는 2001년의 경우 약 34억병(5백㎖ 기준, 추정치), 소주병은 약 29억병(3백60㎖ 기준, 추정치)이다. 맥주병에 붙는 공병보증금은 50원(5백㎖ 기준)이고 소주는 40원(3백60㎖ 기준)이다. 이를 계산하면 소비자들이 매년 술 제조업체들에게 미리 내는 보증금은 얼추 연 2천8백억원선이다. 공병보증금과 관련된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병회수율이 매년 반드시 1백%씩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미처 반납되지 못한 보증금은 소주나 맥주 제조업체들에게 ‘짭잘한 잡수익’으로 잡힌다. 이처럼 잡수익으로 잡히는 근거는 법인세법 기본통칙 중 ‘공병 등 용기보증금에 대한 처리’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소비자들이 공병보증금을 온전하게 전액 돌려받을 수 있는 방안이, 제도 도입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당연히 돌려받아야 하는 보증금이 엉뚱하게 빈병 유통을 담당하는 술 유통업자들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먼저 하이트·OB 등 2개 맥주회사, 진로 등 10개 소주업체들의 공병회수율부터 살펴보자. 주류업체들은 “맥주의 경우 공병회수율이 연평균 96∼97%대이며 간혹 1백%를 넘을 때도 있다. 소주의 경우 진로는 90% 전후의 양호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소주병·맥주병을 만드는 유리병 제조업체들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이들은 “소주나 맥주병을 새로 만들어 소주업체나 맥주업체에 납품하는 이유는 소주나 맥주 소비의 자연증가분도 있겠지만, 공병 미회수분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따라서 유리병 업체들이 매년 납품한 실적에 버금갈 정도로 매년 공병 미회수분이 발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실제 유리병업체들이 맥주업체에 판매한 맥주병 실적은 99년에 1억6백36만개, 2000년에 1억8천8백24만개, 2001년에 1억9천9백21만개에 달한다. 따라서 2001년만 놓고 보면 총 맥주병 소비량과 비교할 때 공병 미회수율은 얼추 5% 정도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 유리병업계는 맥주의 공병 미회수율이 많을 때엔 10% 정도 되는 경우가 흔하다면서, 간혹 공병회수율이 1백%를 넘는 일도 벌어진다고 덧붙인다. 소주업계로 넘어가면 공병 미회수율은 더 올라간다. 유리병업체들이 소주업체에 판매한 소주병 실적은 99년에 5억5백61만개, 2000년에 2억9천2백70만개, 2001년에 3억8천만개가 된다. 따라서 2001년만 놓고 소주 공병의 미회수율이 얼추 13%나 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데 유리병업계는 소주 공병의 미회수율이 20%가 된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기도 한다. 주류업체 공병 미회수율에 대한 자료는 국세청이 쥐고 있지만, 공개하길 꺼려 정확한 수치를 집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공병 미회수분이 발생하면 법인세법 기본통칙에 따라 주류업체의 수익으로 잡히는데, 이 규모가 적지 않다. 맥주의 경우 만약 5%의 미회수율이 발생한다고 칠 때 연간 80억원을 거저 챙긴다는 얘기가 된다. 소주의 경우 미회수율 13%가 발생하면 연간 약 1백50억원의 공병보증금이 소주업체들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럴 경우 대충 계산해도 주류업체들은 매년 2백억원의 ‘공돈’을 앉아서 벌어들인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같은 공병보증금 제도가 17년 이상 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잡수익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간 주류업체에서 미회수 공병보증금을 잡수익으로 처리한 금액이 상당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빈 술병 유통시장에서 새는 공병보증금 규모도 작지 않다. 다만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이같은 사실을 알려면 공병이 다시 술 제조업체로 넘어가는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정부가 구상했던 공병 반납 시스템은 소비자가 공병을 소매점에 반납하면, 소매상은 이를 도매상이 갖고 가고, 도매상은 이 공병을 다시 술 제조업체에 넘기는 구조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가정집에서 먹고 남은 맥주병이나 소주병을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동네 슈퍼에 되파는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쳐주는 곳이 사실상 없다. 맥주병은 30원(보증금의 60%)을 쳐주고, 소주병은 20원(보증금의 50%)을 쳐주는 게 현실이다. 동네 작은 슈퍼에 빈병을 들고 가면 ‘딴 데로 가보라’고 면박을 당하기 일쑤다. 공병보증금을 완벽하게 돌려받는 방법이 물론 있기는 있다. 이마트나 마그넷 같은 대형 소매점에 들고 가는 방법이다. 단 이때는 그 점포에서 소주나 맥주를 구입했다는 영수증을 반드시 들고 가야만 한다. 영수증을 분실하면 공병보증금 모두를 돌려받는 건 포기해야 한다. 또 하나의 빈병 처리방법은 되파는 것을 포기하고 분리수거만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론 태반이 분리수거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개개인별로 따지면 빈병에 붙어 있는 금액도 얼마 안 되기에 ‘귀찮게 뭘 소매점까지 들고 가냐’면서 되파는 것을 포기하기 일쑤다. 그 다음 처리과정을 살펴보자. 아파트의 경우 분리수거가 되면, 대개 몇 가지 방법으로 처리된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빈병을 모았다가 팔거나, 혹은 아파트 수위아저씨들이 빈병을 모아서 동네 소매점에다가 팔기도 한다. 이때 파는 가격도 역시 맥주병이 30원, 소주병이 20원이다. 혹은 빈병을 수거하는 중간수집상들이 ‘빈병이라는 쓰레기를 치워주는 차원에서’ 그냥 갖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데 어떤 경우든 소비자들에게 공병보증금 전액이 제대로 되돌려지는 예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공병 반납 시스템이 허술하게 돌아가고 있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술 도매상들은 사실 빈병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에서 술 도매업을 하는 김모씨의 얘기. “술 도매업을 하면서 살아남느냐, 혹은 죽느냐 하는 것의 관건은, 맥주병이든 소주병이든 빈병을 얼마나 많이 모아서 술 제조업자들에게 넘겨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빈병을 모아서 갖다준 만큼 술 제조업체에서 술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공병 모으는 일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술 도매상들은 술 소매상은 물론이고, 중간에서 공병을 모아서 파는 빈병 수집업자들과 긴밀히 연계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술 도매상들은 헐값에 빈병을 사들인다. 원래 도매상이 소매상으로부터 빈병을 사들일 때는 병당 55원(보증금 50원+수수료 5원, 맥주 5백㎖병의 경우, 도표 참조)을 내주어야만 한다. 한데 술 도매상들은 빈병 수집업자들로부터 빈병을 사들일 때는 ㎏당 얼마씩 등의 무게 기준으로 사들인다. 병당 58원보다 훨씬 싸게 사들인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관련 홍종호 한양대 교수는 “이같은 부실한 공병 반납 시스템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공병보증금 돈이 엉뚱하게 술 유통업체나 술 제조업체로 돌아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말로 하면 ‘불공정한 소득이전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전문가들은 “현재 90%의 공병회수율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정해도, 공병회수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술 유통업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연 4백억∼5백억원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통과정에서 새는 돈이 주류업체에게 돌아가는 잡수익보다도 더 큰 수준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계속되면 원래 공병보증금을 도입한 취지가 무색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원래 환경보호를 위해서 도입한 게 공병보증금인데, 어차피 돌려받지 못할 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빈병 반납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홍종호 교수의 얘기. “미국의 경우 공병보증금 액수를 술병의 맨 위와 옆에 큰 글씨로 큼지막하게 찍어 놓았습니다. 반면 우리는 병 옆에 아주 조그만 글씨로 찍어 놓았죠. 마음먹고 찾아야 겨우 찾을 정도로 작습니다. 정부의 홍보정책부터 잘못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공병보증금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우선 ‘동네 소매상들도 빈병을 사들이게 하는’ 완벽한 반납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고, 더불어 보증금 금액을 올리는 방법 같은 차선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빈병이나 빈캔(미국에서는 캔에도 공병보증금이 붙어 있음)을 모으기 위해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장에서 경기가 끝나면 학생들이 빈캔이나 빈병을 주으러 다니는데, 보증금이 개당 10센트나 하는 빈캔을 한번에 1천개 정도 줍곤 합니다. 그러면 1백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13만원 정도 하는데, 미국에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죠.” 정부(환경부)에서는 지금까지 국세청의 주세법, 보건복지부의 삭품위생법에 따라 별도로 운영되어온 공병보증금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합, 운영할 방침이다. 하지만 완벽한 공병 반납 시스템을 먼저 갖추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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