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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프라이빗뱅커들① 부자 CEO들은 자수성가형 모험가들

한국의 프라이빗뱅커들① 부자 CEO들은 자수성가형 모험가들

이상화 지점장
서울 역삼동 동원증권 마제스티클럽의 이상화 지점장실에 들어서면 책상 위에 켜켜이 쌓인 책더미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책 이름들이 심상찮다. 경영서적 바로 밑에 와인책, 그 아래 금융책, 그 밑으로 화려한 명품관련 잡지, 책더미 맨 위에는 주가분석과 거시경제 리포트. 종횡무진이다. ‘엄청난 잡식성’ 독서 취향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에는 관통하는 주제가 한 가지 있다. ‘부자 그리고 그들의 라이프 패턴’이다. PB(프라이빗 뱅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무실이다.

부자 아니면서 부자들 이해해야 이지점장의 직업세계 테마는 ‘부자’다. 부자가 그의 고객이요 친구이자, 연구대상이다.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철저히 느끼고 파악해야 한다는 데 PB의 어려움이 있죠. 게다가 거시경제 흐름, 상황에 맞춘 재테크 전술, 부자 고객들이 만족할 정보까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경제 전반에 대한 흐름을 놓쳐서는 안 돼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람 만나 인맥 쌓는 일도 중요합니다. 저 혼자 부동산·세무·법률·교육 등 전 분야에 통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와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는 얘기죠.”할 일은 이렇게 많지만 이지점장의 첫 출발선은 척박했다. “1996년 어느 날이었어요. 당시 동원증권 사장이던 김정태 현 국민은행장이 인재개발팀장이던 저를 부렀죠. ‘FP(파이낸셜 플래너)가 뭔 줄 아나?’하고 물으시더군요. 처음 듣는 단어였어요. 그러더니 일본 경제신문 기사를 하나 내미셨죠. ‘노무라증권 전직원의 FP화’ 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 날의 대화가 이지점장을 PB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 후 이지점장은 동경지사에 연락해 FP관련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그 과정에서 증권사도 PB 영업을 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이듬해인 97년 동원증권은 사내에 ‘PB팀’을 만들었다. 증권업계 최초였다. 그 초대 팀장이 이지점장이었다. 증권업계 ‘PB 1호’가 된 셈이다. 원래 선구자는 고달픈 법이다. PB가 뭔지, 영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의 부자들은 누구인지, 모든 게 낯설기만 하던 시절 PB를 하자니 하루를 48시간 처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날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녁 약속도 대개 2∼3개씩이다. 그런 와중에 한 달에 책을 2∼3권씩 꼭 읽었다. 행여 시간에 쫓겨 못 읽은 신문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 뒀다가 나중에 챙겨 읽었다. 토요일도 자유시간은 아니다. ‘골프 약속의 날’이다. 영업의 연장인 셈이다. 부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쫓아가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다. 가나 아트센터 경매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듣고, 청담동에 뜬다는 카페도 일부러 가봤다. 호텔 식사는 물론이다. 부자 고객들과 골프칠 때 누가 되지 않을 실력도 갖춰야 했다. 2000년 8월에는 홍콩 BNP파리바은행 프라이빗 뱅킹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 책도 3권이나 썼다. 언론 기고, 각종 강연 등에도 열심이었다. 이지점장은 이 모든 과정을 “나 자신의 IR(투자설명회)을 통한 업그레이드”라고 표현한다. 자신을 PB 전문가로 알리기 위한 전략적 노력의 과정이라는 얘기다. 이지점장의 고객들은 그냥 ‘부자’가 아니다. 기업체 CEO들이 타깃이다. 상장기업·코스닥 등록 및 등록 예정 기업의 오너가 주고객층이란 얘기다. 이유는 ‘니치마켓 개척’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동원증권의 핵심 경쟁력은 ‘덩치’에 있지 않다. 브랜드 파워나 덩치로는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을 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다 ‘질’로 승부해 틈새시장의 고객을 사로잡는 것 뿐이다. 이지점장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기업체 오너+법인’을 하나의 고객개념으로 묶어서 ‘기업금융관련 서비스’로 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개인 자산에 대한 관리뿐 아니라 창업·벤처기업 컨설팅, 자금조달, 기업공개(IPO), 등록 후 유무상 증자, 채권발행, 자사주 취득으로 이어지는 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것이다. 대주주 지분 매각이나 기업의 인수·합병(M&A)도 서비스 대상이다.

CEO는 자수성가형 부자들 이지점장의 타깃인 CEO 부자들은 다른 부자들과 다른 특성이 있다. 거의 모두가 자수성가형이다. 자기 사업을 꾸리다가 상장 또는 등록하는 과정의 2∼3년 사이에 급속히 자산이 불어난 부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아끼고 안 쓰는’ 부자는 아니다. 나름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있고, 여가도 즐길 줄 안다. 재테크도 비교적 공격적이다. 은행의 정기예금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중간 이상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특성이 있다. 자연히 ‘돈 인생’도 평탄치 않다. 이지점장이 들려주는 CEO 부자고객들의 프로필은 이렇다. ‘직장생활 10년 전후인 36∼40세에 독립. 한두번 망했다가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잡은 40대 중반. 자수성가형 부자. 그러나 인색하지는 않음. 젊게 사려는 노력. 옷이나 헤어스타일 등도 요즘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들.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가(risk taker). 무엇보다도 한눈 팔지 않고 자기 사업에만 미쳐 있는 일 중독자'. 이지점장은 이런 부자들은 존경받을 만하다고 말한다. 대부분 ‘노력’의 결과로 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지점장이 5년여간 PB 영업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두 가지. 첫째 정직해야 한다. 둘째 차별화된 실력을 갖춰야 한다. 어디까지나 으뜸 자질은 ‘정직’이다. 정직은 신뢰를 낳고 신뢰 없이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정직과 차별화된 실력을 무기로 앞세우는 이지점장의 포부다. “지금 약 2천여개의 상장·등록 및 예정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 중 10%만 우리 고객으로 끌어들인다면 2백명이 되죠. 이들을 모두 마제스티클럽 멤버십에 가입시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1인당 평균 50억원의 투자자금을 갖고 있다고 보면 총 1조원의 수탁고가 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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