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진수 해운대 리베라 호텔 사장 | “저기가 아까 우리가 지나왔던 강안(광안)대굡니다. 억수로 멋있지예? 그라고… 여기 이 언덕이 달맞이 고갭니다. 고갯길 옆에 카페도 많고예, 여기서 보면 해운대 밤바다하고 강안리(광안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우와∼ 쥑인다.” 구수한 사투리에 먼저 감탄사를 연발하는 한 40대 남자. 부산 구경이 처음인 듯 혼자 흥분해 북치고 장구치지만 이 사람은 눈 감고도 해운대 주변을 다닐 수 있는 강진수(44) 리베라 호텔 사장이다. 강사장의 해운대 무료 투어는 이제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호텔 투숙객을 상대로 5명 이상의 손님이 요청할 경우 매일 아침 해운대 관광을 시작했다. 강사장의 아침 투어로 해운대를 접하게 된 사람만 줄잡아 6백명이 넘는다. 말 그대로 무료 관광이다. 관광차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강사장의 자가용을 이용한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 가이드에 손님들의 사진사 역할도 자임한다. 가끔 손님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가이드’의 말문이 막히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슬쩍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그냥 상식적으로 설명하는 거죠. 뭐 녹음기 틀어 놓은 듯한 가이드 설명보다는 잘 몰라도 정감 어린 제 설명이 더 좋지 않겠어요?” 사진사로도 이력이 나 있다. 손님들이 뒷배경을 가리면서 포즈를 취하면 “옆으로 살짝 비키이소. 그래야 배경이 나옵니다”라며 전문가인 양 조언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미니밴을 직접 운전하며 손님들을 모시고 호텔→벡스코→광안대로→송정해수욕장→해동용궁사→달맞이 언덕→호텔 코스를 3년째 매주 일요일 아침에 돌고 있다. 평일에는 5명 이상의 손님이 요청할 경우에 투어를 할 수 있다. “손님 유치를 위해서라면 사장·종업원이 따로 없습니다. 경영도 하지만 시간을 쪼개서 손님에게 서비스 하나라도 더 하면 그게 다 우리 호텔에 도움이 되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제가 부산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산을 설명하는 데는 제격이거든요.” 이처럼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강사장의 경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장이 직접 서비스 하는 모닝커피.’ 지금은 무료 룸서비스로 바뀌었지만 1999년 11월20일부터는 40일간 사장이 직접 로비에서 모닝커피 서비스를 했다. “특급호텔도 아니고 위치도 불리한 우리 호텔이 살아남을 길은 친절과 서비스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해 아침 7시부터 제가 직접 모닝커피를 고객들에게 서비스했죠. 사실 커피 한잔이 별것 아닐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고객들은 반응이 상상외로 좋았습니다.” 조그만 호텔이지만 사장이 직접 서비스한다고 하니 투숙객 입장에서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다른 호텔에 가면 최소 5천원은 하는 커피를 아침에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 마다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장이 서비스하면 손님들은 웬만하면 다 좋아합니다. 워낙 사장들이 목에 힘주고 다니잖아요.” 손님들의 호의적인 반응도 좋았지만 강사장이 얻은 것은 그 이상이었다. 우선 리베라 호텔에 한번 온 손님들은 인상깊은 서비스에 호텔을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강사장이 호텔 경영을 맡은 98년 4월 이후 고정 고객이 전체 고객의 50%를 넘어설 정도였다. 일단 한번 투숙하게 되면 리베라 호텔을 다시 찾는 손님이 많다는 뜻. 하지만 진짜 수확은 다른 곳에 있었다. “매일 아침에 나와서 손님들에게 커피 서비스를 하다 보니 호텔에 대한 불만사항을 들을 수 있었어요. 간밤에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직원들의 서비스가 미진한 점은 없었는지를 투숙객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거든요.” 고객에게 직접 듣는 불만을 개선하는 것이 모닝커피 서비스의 가장 큰 수확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강사장의 명함에는 ‘가장 친절한 호텔’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설이나 자원이 부족하지만 사람이 움직이면 가능한 친절로 약점을 극복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강사장 표현대로 ‘몸으로 때우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강사장의 ‘몸으로 때우기’는 호텔 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강사장에게는 택시 운전면허증이 있다. 사장을 맡은 이후 그는 택시 운전도 했다. 99년 한해 동안 한달에 3번 정도 직접 택시를 몰고 부산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유는 호텔 홍보. 택시에 타는 사람마다 리베라 호텔을 홍보했고 주로 공항에서 손님을 모셔 왔다. 정치인들의 선거전략으로 따지면 ‘바닥 훑기’인 셈. “호텔이 잘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알아주고 찾아와야 됩니다. 저는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이 우리 호텔에 반하게 할 자신은 있었거든요. 근데 우리 호텔이 지명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 번듯하게 광고할 형편도 못되고 그래서 택시기사라도 해서 구전 홍보라도 하자고 생각했던 거죠.” 글자 그대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한 결과’ 리베라 호텔의 경영 상황은 98년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IMF 직후 적자에 허덕이던 호텔을 강사장이 맡으면서 흑자로 바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흑자기조는 지난해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연간 객실 판매율 90%를 유지했다. 비즈니스 호텔도 아니고 관광지 호텔의 기록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이쯤 되면 ‘이사람 완전히 경영에 몰입한 사람이군’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사장이 원래부터 경영과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편에 있었다. 4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처음 입사한 곳은 우성건설. 89년에 입사한 우성건설은 당시만 해도 잘 나가던 중견 건설업체였다. 하지만 당시 우성건설의 처우는 회사 명성에 비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우성건설은 건설회사 인력 양성소처럼 변해갔다. 강사장의 표현을 빌면 ‘회사 수익에 비해 지나치게 박봉이었던’ 상황이었지만 노조도 없었다. 이미 대학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87년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던 강사장은 입사한 지 28개월 만에 노조를 설립했다. “제가 노조를 설립한 것은 단순합니다. 이념보다는 직원들의 처우도 개선하고 회사의 비효율적 경영이나 관습도 바로잡자는 것이었습니다.” 강사장은 노조설립 당시에도 ‘구사(救社)노조’를 주장했다. 잘못된 직원 처우를 개선해야 직원도 살고 회사도 산다는 생각이었다. 93년 회사가 경영혁신 운동을 할 때 노조 부위원장이던 강사장은 많은 노조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운동에 노조를 참여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스스로 합리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조 활동을 하면서도 경영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차피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 회사도 잘 되고 직원들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택해야죠.” 이처럼 노조 활동에 열심이던 강사장이 어떻게 리베라 호텔 사장으로 변신하게 됐을까? 96년 1월 우성건설이 부도날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강사장은 98년 2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우성건설의 법정관리 허가를 받은 후 회사를 떠났다.“부도 당시 노조위원장이었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책임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정관리 지정을 위해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했죠. 그리고는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 그 후 우성건설 법정관리인이 “리베라 호텔을 위탁경영하겠다”는 발표를 듣고 “같은 조건이면 우성건설 퇴직자들에게 위탁경영 기회를 달라”고 법정관리인에게 편지를 썼다. 그 당시 조건은 보증금 1억원에 월 8백만원의 임대료를 내라는 것. 강사장의 경영자 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강사장이 처음 위탁경영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11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25명으로 늘어났다. 직원들의 임금 수준은 부산의 특급호텔 못지않은 수준이다. 월 8백만원을 내던 임대료도 2천5백만원까지 올렸지만 4년간 매년 흑자를 냈다. 적어도 지난해 말까지 강사장의 경영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리베라 호텔을 인수한 새 주인이 월 임대료를 5천만원으로 대폭 올리고, 주변에 고급 모텔들이 늘어나면서 호텔 경영에도 비상이 걸렸다. 90%를 웃돌던 객실 점유율도 지난해 12월부터는 80%대로 떨어졌다. 경영수지가 악화되면서 올해부터 강사장을 비롯한 전 직원들이 임금 삭감과 자진 반납을 하고 있다. “예전엔 직원에게 월급 제대로 못주는 사장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그런 상황이 됐어요.” 경영이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는 강사장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나왔다. 노조위원장을 지낸 사장으로서 직원 봉급 삭감 결정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잠시 중단했던 무료 관광을 매일 아침 다시 시작하는 것도 이런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어떤 회사도 다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닙니까? 자, 같이 한바퀴 돌아보러 가시죠." 경영 상황을 말할 때 다소 처졌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생기를 얻었다. 어느새 운전석에 올라탄 강사장이 다시 구수하고 활기에 찬 부산 사투리로 손님들과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약력 1959년 울산 生 부산 가야고, 동국대(경주) 법대 卒 87년 동국대 총학생회장 94년 우성건설 노조위원장 역임 98년 해운대 리베라 호텔 위탁경영 사장 2002년 부산↔오사카 카페리 선사인 ㈜팬스타라인탓컴 부사장 겸임 2003년2월∼現 해운대리베라호텔 사장·㈜가족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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