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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해진 재건축 추진 리모델링으로 방향전환?

빡빡해진 재건축 추진 리모델링으로 방향전환?

재건축 요건이 강화되면서 재건축이 쉬운 아파트와 어려운 아파트의 가격이 눈에 띄게 벌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재건축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7월부터 서울의 아파트 재건축 허용 연한이 현행 20년 이상에서 준공연도에 따라 20∼40년으로 차등 적용되고, 안전진단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은 아파트의 재건축 시기가 종전보다 크게 늦어지고 안전진단 통과도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재건축으로 인한 막연한 기대감이 사그러들면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도 재건축 연한을 대폭 늘릴 예정이어서 수도권 재건축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됐다.

80년대 아파트 재건축 올 스톱 서울시는 7월1일부터 시행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재건축 허용 연한을 종전 20년 이상에서 건축연도에 따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90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5층 이상 건축물)는 40년 이상, 연립·다세대주택(4층 이하 건축물)은 30년 후 재건축이 가능하다. 70년대 지어진 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 포함)는 종전처럼 20년이 넘으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80년대 준공된 아파트는 건축연도가 1년 지날 때마다 재건축 허용시기가 2년씩 늘어난다. 80년 준공된 아파트는 22년, 81년은 24년, 85년은 32년 후에 재건축을 할 수 있다. 80년대 준공된 연립·다세대주택은 건축연도가 1년 지날 때마다 재건축 허용 시기가 1년씩 늘어난다. 안전진단도 강화돼 일선 자치구에 넘겨졌던 권한이 시로 대폭 이양된다. 투기 지역에서는 재건축 대상이 1백가구 이상, 투기 지역 밖에서는 3백가구 이상이면 서울시가 직접 정밀안전진단 실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또 시가 사업계획 승인시기를 조정할 수 있고, 안전진단 실시기관도 선정할 수 있게 됐다. 구청장은 안전진단 예비평가를 실시한 뒤 시장에게 사전에 보고하고 평가를 거쳐 정밀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번 조치로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인 8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의 사업이 어려워지게 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2월 말 현재 서울 아파트 2천3백36개단지 1백1만75가구(철거 제외) 중 재건축 허용 최저 연수 30년 이상을 적용받는 84년 이후 완공된 아파트는 1천9백70개단지 85만8천6백76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단지로는 전체의 84.3%, 가구 수로는 85%에 달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84∼85년 준공(재건축 연한 30∼32년)된 아파트는 68개단지 2만4천7백21가구, 86∼90년 준공(34년∼40년)은 3백3개단지 21만9천6백28가구, 91년이후 준공(40년)은 1천5백99개단지 61만4천3백27가구 등이다.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이더라도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은 단지들은 강화되는 재건축 연한을 적용받게 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83년 준공된 강동구 고덕 주공 6∼7단지는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재건축이 2011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달 26일 강남구의 예비안전진단에서 탈락한 일원동 대우아파트(83년 준공)도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게 됐다. 지난달 23일 LG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면서 호가가 5천만원 이상 뛴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82년 준공)도 재건축 허용시기가 2008년으로 늦어질 처지에 놓였다. 지난달 말 대림산업을 시공사로 선정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 럭키아파트는 86년 완공돼 계산상 2020년에야 안전진단 신청이 가능하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서울 지역에서 84년 이후 준공된 단지 중 예비안전진단 이상의 절차를 통과한 곳이 10개가 채 안 된다”며 “80년대 중반 이후에 준공된 단지의 대부분이 최소 10년 이상 재건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들도 불안하다. 신종수 서울시 주택국 주택사업팀장은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해도 새 매뉴얼에 따라 정밀안전진단을 받으면 탈락하는 단지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79∼80년에 완공돼 재건축 연한(20∼22년)은 지났지만 강남구가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기 전에 서울시의 사전평가를 받아야 해 예비안전진단 통과부터 쉽지 않게 됐다. 강남구 개포 주공 2∼4단지 등은 예비안전진단만 통과한 상태여서 강화된 재건축 연한은 적용받지 않지만 정밀안전진단이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통과한 업체는 희희락락 반면 이미 재건축 기본계획이 확정돼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 잠실·반포 등 5대 저밀도지구 내 아파트의 희소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와 강동구 고덕동 주공1단지와 서초구 잠원동 한신4차·대림·반포우성 등 중층 아파트 단지도 지난달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안전진단 평가 보고서가 나온 고덕 주공 2∼4단지와 시영 아파트 등은 종전의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하면 돼 통과 기대감이 높은 상태다. 서울 등 수도권의 일선 자치단체들이 법률 시행에 앞서 지난달 말까지 무더기로 안전진단을 통과시켜 준 것이 원인이다. 한광호 세중코리아 실장은 “웬만큼 재건축을 추진 중이던 아파트는 사실상 법망을 많이 빠져나간 셈”이라며 “앞으로 재건축이 쉬운 곳과 어려운 곳의 가격 차가 눈에 띄게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허용 연한은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들은 서울시처럼 지침으로 우선 적용하지 않고 관련 조례를 확정한 뒤 시행할 방침이어서 몇 개월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는 아파트 재건축 허용 연한을 규모에 상관없이 30년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건축하려는 5백가구 이상 아파트에 대해서는 도에서 예비안전진단을 실시해 정밀안전진단 실시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경기도는 이같은 내용의 조례안을 다음달까지 입법 예고하고 도의회 의결을 거치면 이르면 오는 9월 초에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시의 재건축 허용연한 규정은 좀 더 늦게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영하 인천시 주택건축과장은 “현재 인천 지역 재건축 추진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며 “오는 11월까지 허용 연한 문제를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조례 제정 전에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는 종전처럼 20년 이상이면 재건축이 가능해 재건축추진위원회가 구성된 단지들은 강화되는 재건축 허용연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잇따라 안전진단 심의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재건축 시장은 가격이 안정되고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늘어날 전망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책임연구원은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 완공된 아파트를 중심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려는 단지가 많아질 것”이라며 “그동안 지은 지 15년이 지나면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값이 급등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현상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투기 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권 등은 사실상 시장이 예비안전진단 권한을 가지면서 소규모 아파트의 재건축 남발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80년대 중·후반 이후 완공된 재건축 아파트를 수주했던 건설회사들은 재건축이 늦어지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도정법 시행 이전에 시공사를 선정하려는 재건축 단지가 몰리며 서울과 수도권에 시공권을 따낸 단지가 30여곳에 이른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시공사가 선정된 뒤 재건축추진위에 관리비용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건축이 늦어질 경우 추가 자금이 들 수밖에 없다”며 “사업이 지연될 경우 시공권을 포기하거나 지속 여부를 둘러싸고 말썽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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