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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로 새로운 도전 나선 윤윤수 SBI아시아 회장]“본사 팔리면 나도 불안, 살아남기 위해 인수했다”

[글로벌 CEO로 새로운 도전 나선 윤윤수 SBI아시아 회장]“본사 팔리면 나도 불안, 살아남기 위해 인수했다”

윤윤수 SBI아시아 회장
“아이고, 이제 연봉 얘기는 그만합시다.” 탤런트 중 아이돌(idol) 스타에서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첫인상’이 워낙 강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아이돌 스타들은 그 첫 이미지의 단맛에 물들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아이돌 스타는 잊혀져 간다. 윤윤수 스포츠브랜드인터내셔널(SBI) 아시아 회장은 그런 아이돌 스타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듯 연봉에 관한 질문부터 가로막고 나섰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그는 한때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CEO 중 하나였다. 감봉은 다반사였고 정리해고, 부도도 흔했던 1997년 겨울. 그는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라는 책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운공사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다국적 스포츠 브랜드 기업인 휠라의 한국 지사장에까지 오른 그의 성공담은 당시 직장인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개 연봉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월급쟁이 사장의 신화로 남을 만큼 충분한 성취였다. 하지만 ‘연봉 18억’은 그에게 훈장인 동시에 족쇄였다. 지난 6월11일, 윤회장은 미국계 투자회사인 서버러스, 휠라 아메리카의 CEO인 존 엡스타인과 함께 이탈리아의 휠라 본사를 인수함으로써 연봉의 족쇄에서 벗어났다. 연봉을 많이 받는 다국적 회사의 한국 경영자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의 글로벌 CEO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그의 레퍼토리도 연봉에서 경영으로 바뀌었다. 윤회장이 휠라와 인연을 맺은 건 84년. 윤회장은 당시 휠라 신발에 관한 라이선스를 갖고 있던 미국의 한 사업자가 고전하는 것을 알고 그를 설득해 한국에서 신발을 제조해 공급하겠다고 제안한다. 그해 8월 처음으로 수출을 시작한 후 연말까지 불과 4개월 만에 8백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제조업체였던 국제상사는 물론 휠라와 라이센스 소유권자, 당시 자금을 지원했던 쌍용 파이낸스도 대만족이었다. 윤회장이 소싱한 신발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의류 위주로 사업을 해왔던 휠라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업인 옷보다 신발이 더 큰 비즈니스로 성장한 것. 물론 본사에서도 그 주인공이 진윤(Gene Yoon, 윤회장의 영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휠라 본사가 윤회장과 합작으로 휠라코리아를 세운 것도, 또 당시 연봉 1백50만 달러도 회사 측에서 제안한 것이다.

신발로 전 세계 훨라 살려 91년 휠라코리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후 윤회장의 진가는 더욱 빛났다. 92년 매출 1백50억원, 순이익 4억6천만원에 불과했던 휠라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2천74억원, 순이익 2백65억원을 기록했다. 쾌속성장은 윤회장의 기발한 결심이 기폭제가 됐다. “당시 휠라코리아는 전 세계 시장에 신발을 공급하고 있었어요. 그 커미션만 연간 1천만 달러에 달했는데 제가 당시 휠라 회장에게 ‘연말에 줄 커미션을 연초에 미리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죠.” 이렇게 미리 받은 돈으로 윤회장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고 그 결과 휠라코리아는 전 세계 휠라 중 가장 큰 이익을 내는 회사로 발돋움했다. 덕분에 휠라그룹 내에서 윤회장의 입지도 탄탄해져 갔다. 지난해 기준 휠라의 전 세계 매출액은 약 11억 달러 정도. 이중 휠라코리아의 매출액은 약 1억7천만 달러로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 50개의 법인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비율이다. 윤회장의 연봉도 한때 24억여원까지 치솟았다. 엔리코 후레쉬 휠라 전 회장은 “휠라의 탄생은 이탈리아지만 성장은 한국”이라는 말로 그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비단 휠라 내부에서 뿐만이 아니다.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윤병철 회장도 “월스트리트에서 진윤이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다”고 할 정도다. 생산공장이 없는 휠라의 경쟁력은 말 그대로 CEO의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일종의 마케팅 회사이기 때문에 브랜드 관리 자체가 가장 큰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회장의 성공이 휠라 전체의 성공은 아니었다. 80년대까지 승승장구하던 휠라는 90년대에 들어 어려움을 겪는다. 휠라의 지주회사인 이탈리아의 HDP사는 패션 하우스를 목표로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하다 어려움에 빠졌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발렌티노나 조르지오 아르마니 옷을 생산하는 GFT 등 HDP사는 10여개의 브랜드를 인수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집중력이 분산되고 또 지나치게 제품 연구 개발에 투자하면서 비용이 많이 늘어났다. “휠라는 90년부터 9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면서 본사 경영진이 몇 가지 실수를 범했어요. 품질 우선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해 엄청난 개발비를 쏟아부었고, 스타 마케팅을 위해 농구스타 그랜트 휠에게 8년 동안 8천만 달러를 지급하고, 미국에 6천4백만 달러를 들여 물류 기지를 지었어요. 한마디로 도를 넘는 투자에 결국 발목을 잡힌 셈이죠.” 여기에 유럽시장 부진으로 인한 적자와 은행 부채가 쌓여 결국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 2001년부터 매물로 등장한 휠라는 여러 캐피털회사들이 인수를 시도했다. 1년간 인수협상을 했던 컨티넨털 파트너스는 물론 한국의 모 그룹도 인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현 경영진들의 협조가 없어서 실패했다.

과도한 투자로 매각될 운명 “본사가 팔리면 지사장인 저도 불안해지잖아요. 그래서 2002년부터 역으로 내가 휠라를 인수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죠.” 원점을 맴돌던 휠라 본사 매각 작업은 미국계 펀드 서버러스가 인수 작업에 뛰어들면서 활기를 찾았다. 서버러스는 휠라USA의 존 엡스틴 사장과 윤회장이 함께 끌어들인 미국계 투자전문 펀드다. ‘변화가 일어날 때 주도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밀려난다’는 평소 생각대로 오히려 변화에 중심에 선 것이다. 더 이상 매각 작업을 미룰 수 없었던 HDP도 적극적으로 나왔고 곧바로 협상이 시작됐다. 6개월 이상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계속되다 지난해 11월 말 3억5천1백만 달러(약 4천3백억원)로 인수 대금에 대한 의견이 좁혀졌다. 가장 중요한 걸림돌인 인수 대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만큼 협상은 절반이상 성공한 셈. 지난 3월7일 서버러스가 새로 설립한 지주회사 SBI(Sports Brand International)와 HDP가 마침내 인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인수 금액은 당초 합의대로 3억5천1백만 달러로 최종 결정됐다. 윤회장은 이번 인수에서 지분의 5% 정도를 할당받았다. 상장될 경우 지분 가치가 1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봉도 2백만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SBI는 세계 시장을 미국·유럽·아시아 등 3개 지역으로 나눠 별도의 회사를 설립, 휠라를 운영하기로 했다. 글로벌 회장은 휠라USA 사장을 지냈던존 엡스틴이 맡고 윤회장은 아시아 지사 회장을 맡기로 했다. 유럽 사장에는 서버러스 측이 내세운 인물인 밥 갤빈이 임명됐고, 휠라USA는 부사장이었던 톰 오리오단이 사장으로 임명됐다. 휠라는 현재 나이키(7백억 달러)·아디다스(5백억 달러)·리복(3백억 달러)에 이어 세계 스포츠 브랜드의 4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는 세계 4대 브랜드라고 할만하지만 매출 규모로는 ‘빅3’에 크게 뒤떨어져 있다. 때문에 전략도 다르다. ‘빅3’처럼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규모 광고나 물량 공세보다는 소비자의 욕구에 빨리 반응해 선택을 받는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경영 능력 시험대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휠라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 50개국에 있는 현지법인 중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 지역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휠라는 최근 3년 동안 매년 1억 달러씩의 적자를 기록했다. 2년 전부터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지난해 적자 폭을 1천2백만 달러 수준으로 줄이고 올 연말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지만 본 궤도에 오를지 여부는 연말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유럽시장의 사정도 스페인과 독일에서 약간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연간 3억5천∼4억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유럽시장에서 발생되는 적자는 연간 3천만 달러 수준이다. 유럽시장 역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치고 이탈리아와 영국이 부진을 털어 내면 2004년 말께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윤회장이 맡은 SBI 아시아 시장의 경우 국내를 비롯, 일본 등지에서 매출이 늘고 있어 휠라 본사를 지탱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윤회장은 “앞으로 2년 정도면 전 세계적으로 흑자전환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영국의 경우 시장에 정통한 사람으로 사장을 교체했다. 또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가는 농구스타와의 계약이 내년이면 끝난다. 미국 시장도 점차 살아나고 있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년 뒤 흑자전환이 되고 그룹이 정상궤도에 들어서면 뉴욕 증시에 재상장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윤회장의 희망사항이지만 10년 뒤면 빅3에 들어가는 스포츠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윤회장은 이를 위해 SBI 아시아 회장으로 일본·홍콩·중국·필리핀·말레이시아 등 15개국 17개 지사를 총괄하게 된다. 휠라코리아의 업무는 조선묵 사장에게 주로 맡기고 홍콩과 아시아 각국을 오가며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게 된다. 물론 휠라의 글로벌 경영도 파트너의 한사람으로서 책임을 진다. 명실공히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CEO가 됐다. 연봉으로 2000년대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었던 윤윤수 회장. 이제 그의 앞에는 ‘글로벌 경영’이라는 시험대가 놓여 있다. 이 시험대를 통과할 경우 사람들은 더 이상 그의 연봉이 아니라 그의 경영 능력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아이돌 스타를 뛰어넘어 연기파 배우가 될 수 있을지 모두들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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