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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살려 인도를 살린다

농촌 살려 인도를 살린다

Green Profits

2년 전 인도의 거대 기업 ITC는 밀·대두 농사를 짓는 아마르 싱 베르마의 소박한 1층 벽돌 집에 컴퓨터를 설치해줬다. 지붕에 달린 태양열판 동력장치와 위성 안테나 덕분에 베르마와 주변의 농가 수십 채는 인터넷에 접속하고 ITC가 만든 힌두어 전용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웹사이트는 해당 지역의 날씨 정보, 대두·밀의 시장가격, 현대적인 경작법 등을 제공했다.

베르마는 ITC의 권고를 따르는 한편 밭 이랑을 넓히고 교배종자를 심었으며 전보다 효과적으로 비료를 이용했다. 그 결과 약 3천 평의 시험용 경작지에서 수확량 50% 증대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베르마는 “마치 요술 같았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의 시라디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적인 농부가 됐다. 이번 시즌에는 3만여 평 전체에 새 경작법을 이용해 대두를 재배할 생각이다.

ITC는 자산 규모 7백50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주업종이 담배·식품·호텔이다. 한마디로 농업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농업 부문에 뛰어드는 재벌 기업은 비단 ITC뿐만이 아니다. 요즘 뭄바이나 콜카타의 회의실을 벗어나 마디아 프라데시 같은 지역의 논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인도 거대 기업들이 여럿이다. ITC는 농가 생산량을 늘려 식품 생산과 수출을 늘리고 부유해진 농민들을 대상으로 트랙터·머릿기름 등을 팔고 싶어한다. 전자통신 거대 기업인 바티그룹은 중동·유럽에 청과를 팔 계획이다. 대형 공업회사인 타타는 벌써 수출을 목적으로 겨자·포도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자동차·트랙터 제조기업인 마힌드라는 올해 유럽과 수출 계약을 맺고 옥수수·포도 재배를 시작했다.

이들의 소망은 농업을 통한 이윤 창출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농업을 인도 최대의 미개발 자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도 국민 중 약 6억6천만 명이 땅으로 먹고 산다. 농업 부문 생산량은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21%에 이른다. 2001년에는 24%에 달했다. 강우량이 적당한 해에는 2∼3% 추가 성장도 거뜬하다. 기업들은 양질의 기술을 활용하고 작물을 잘 선택하면 비약적인 수출 증가도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이미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청과 생산국이다. 삼모작이 가능한 지역도 많고 사과·망고·꽃상추·양상추 등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재배하기에 좋은 땅도 많다.

지금까지 인도의 농업은 가난과 형편 없는 산업 기반시설에 짓눌려 있었다. 영세한 농가는 낮은 생산성에 허덕였다. 예컨대 인도 농가의 에이커당(약 1천2백 평) 대두 수확량은 미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혁신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국가의 서툰 농업 정책이다. 지난해에 정부는 농가보조금 57억 달러를 집행했다. 보조금의 대부분은 쌀·밀 재배농에게 가격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직접 구매를 해주는 데 사용됐다. 3월 첫째 주에 발표된 새 예산안을 보면 식량 보조금은 10% 가량 줄고 비료 보조금은 총 37억 달러로 25% 이상 증가했다. 한편 정부의 곡물유통공사(FCI)는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쌀과 밀을 수매하고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비상곡물을 비축하는 데 보조금의 상당액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민영 부문이 계속해 압박하자 인도 정부의 자세 또한 느리게나마 변화하고 있다. 만모한 싱 총리 정부의 개혁가들은 농촌 현대화 정책을 수립했다. 농산물 수출업자들을 위해 면세 기간을 선포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이다. 지난해 싱 정부는 곡물·청과물의 구매를 정부 대리인을 통해 하도록 기업들에 강요했던 옛 사회주의식 법률을 폐지했다. 또한 주정부를 대상으로 그와 유사한 지방법을 폐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마디아 프라데시의 정부 곡물 수매인들은 정부가 ITC 등 사기업이 농부에게서 직접 농작물을 구매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마디아 프라데시의 농부들은 ITC에 직접 판매를 하고 있다. 정부의 낡아빠진 저울 대신 ITC 센터의 전자저울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물건을 넘긴 후 결제도 즉각 받는다. 돈을 손에 쥔 농부들은 바로 옆 ITC 상점에 가서 종자나 식용유 같은 물건들을 구매할 수도 있다.

싱과 국민회의당 당수 소냐 간디는 농촌 개발에 대한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 인도 전역을 휩쓴 정보기술(IT) 붐에서 자기들만 소외됐다고 느낀 가난한 시골 사람들의 표가 없었다면 2004년의 총선 승리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 예산안은 농촌 개발에 20억 달러 정도를 할당했다. 대부분 도로와 교량을 개선하는 데 지출될 예정이다.

또한 약 10억 달러가 관개시설에 투여된다. 무엇보다 새 예산안이 갖는 중요성은 투자자에게 유리한 일련의 개혁 작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농산물 무역업자들은 종자와 자본재를 면세로 수입할 수 있고 거대 소매 체인들은 국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청과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정부 관리들은 일련의 새 정책들 덕에 향후 5년 동안 약 50억 달러 규모의 기업 투자금과 약 20억 달러의 해외 자금이 농업 부문에 유입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기업들도 잔뜩 고무돼 있다. “정부가 아주 적극적”이라고 수닐 미탈 바티사 회장은 말했다. 이제 다음 목표는 농민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농민들은 곡물 보조금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해왔다. 인도 GDP에서 농업 부문의 비중이 점차 하락하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전체 수출 물량 중 농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13%에서 2005년에는 총수출액 7백50억 달러 중 10% 이하로 떨어졌다(3월 결산 회계연도 기준). 이런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식용유·과일·야채·꽃 등 고부가가치 상품 생산으로 방향을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산업 다각화와 생산성 증대는 ITC가 자사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촉진하고자 하는 목표다. 컴퓨터를 이용해 농가 수확량을 늘리고 수입 증대를 꾀하는 한편 채산성 좋은 농작물을 직접 재배해보겠다는 자신감을 농부들에게 심어주려는 것이다. ITC는 향후 10년 간 10만 농가와 1천만 농민을 통신망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만약 이들 중 대부분이 ITC에 대량의 농산물을 팔고 또 ITC의 물건을 구매하게 되면 앞으로 7년 내에 약 25억 달러의 추가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고 기업 전략가들은 전망한다.

타타·마힌드라·바티 등과 같은 기업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농가를 대상으로 고부가가치 생산망을 구축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강력한 유인 동기인 이윤을 내세운다. 과일·피망·상추 등 보다 값비싼 농작물을 재배하면 쌀·밀(에이커당 1백25달러)을 재배할 때보다 더 많은 돈(에이커당 6백 달러)을 벌 수 있다고 선전한다. 그와 같은 농작물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하면 증가했지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식품 소매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월마트·테스코·카르푸 같은 해외 소매 체인점들도 인도의 농촌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인도 시골에 불어닥친 기업의 투자 바람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아직 없다. 하지만 기업들의 관심은 더 없이 크다. 일개 무명 회사에서 인도 최대의 휴대폰 기업을 일궈낸 멋쟁이 기업가 미탈은 “잠재력이 무한하다. 광산 기업 같은 거대 회사 1백 개가 농업 부문으로 밀고 들어온다 해도 다른 기업이 들어갈 공간은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농촌을 찾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인도 농가의 생산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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