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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사장…“등산경영, 고스톱경영 마지막 벽까지 깨부쉈다”
-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사장…“등산경영, 고스톱경영 마지막 벽까지 깨부쉈다”
환갑에 디카·PDA 애용 4월 22일로 해태제과 인수 100일째를 맞는 윤 사장을 지난 6일 서초동 크라운제과 사장실에서 만났다. 부도까지 났던 회사가 화려하게 재기했습니다. “원래 크라운이 그렇게 엉망인 회사는 아니었어요. 98년 부도날 당시에도 크라운은 50년 된 튼튼한 회사였죠. 문제는 그때 내가 운전이 설어서 부도난 거였어요. 차는 좋은데 운전사가 초보였던 셈이죠. 나중에 등산하면서 느낀 것인데 크라운이 화의에서 빠져나온 것은 내 재주가 아니라 크라운이라는 회사가 원래 괜찮은 회사였기 때문이죠.” 첫 질문에 답하면서 ‘등산’이라는 단어가 바로 나왔다. 윤 사장은 “등산이 회사를 살렸다”고 공언하는 사람이다. 그는 ‘등산경영’이라고까지 한다. 요즘도 그는 매주 두 차례 이상 등산을 간다. 물론 회사 직원들과 함께다. 아마 회사 직원 중에는 등산이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의 거구가 중력을 거스르며 북한산 세 봉우리를 하루에 오르내리는 체력을 보고 직원들이 “산에는 왜 갑니까”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환갑을 맞는 사장이 PDA를 애용할 정도면 회사 내 IT 인프라와 마인드는 따로 체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6000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CEO가 직접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며 읽는데 직원들이 독서를 한가하게 ‘취미’란에 적는 모험을 감행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세미나·해외출장 때 디카를 직접 들고 다니며 찍는 노익장을 보면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나 제품 정보를 그냥 머릿속에만 담아 두지는 않을 것이다. 화의에서 졸업한 지 불과 1년 만에 업계 4위가 2위를 인수한 이변은 바로 이런 내부 혁신에서 출발했다. 사실 최근 몇 년 새 크라운에서 벌어졌던 일은 요즘 첨단의 경영학 이론에 비춰 보면 혁신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윤 사장의 말처럼 “몸도 튼튼히 하고, 마음도 튼튼히 하라는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보약이 그렇듯 기초를 튼튼히 하는 작업은 한번 효과가 나타나면 오래간다. 최근 해태제과 인수 이후 언론과 세간에서는 ‘크라운·해태제과가 업계 1위를 넘본다’는 얘기가 많지만 그는 이전부터 ‘크라운은 사실상 업계 1위’라고 생각해 왔다. “2000년 이후 우리 회사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미 2~3년 전부터 우리 회사가 제과업계 1등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적어도 직원 개개인의 경쟁력으로 보면 그렇습니다.”그중에서도 그는 등산이 오늘날 크라운을 만든 주역이라고 말한다. ‘등산경영’이라고까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까? “등산을 하면서 회사가 바뀌었죠. 일단 체력에 도움이 됩니다. 그 다음으로 커뮤니케이션도 되고, 의견도 들을 수 있고,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저도 산에 오르기 전엔 몰랐어요. 등산은 일단 모이면서 얘기가 시작되잖아요. 안색이 안 좋은 사람에겐 ‘낯빛이 왜 그래’하면서 말 걸고, 잘 올라가는 친구에게는 ‘힘 좋아졌어’라고 하죠. 정상에 올라가서는 ‘어이, 이런 생각은 어때’하면서 아이디어를 슬쩍 던져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게 회사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회사에서는 슬쩍 물어보면 과잉 해석하는 경우도 많아요.” 대화하는 장소가 바뀌면 대화하는 태도도 바뀐다는 얘기다. 직원들을 ‘무장해제’시켜 놓은 상태에서 윤 사장이 공략하는 셈이다. 등산은 단순히 산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이벤트로 연결된다. “등산 갔다 오면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고스톱도 칩니다. 끝나고 같이 목욕도 하죠. 먹고 마시면서 서로 웃고, 터놓으니 이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가끔 목욕탕에서는 팔굽혀펴기도 합니다. 벌칙이 아니라 힘자랑을 하는 거죠. 멀쩡한 어른들이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인상 쓰고 다니는 주말 등산이나 야유회와는 차원이 다르죠.” 등산·목욕·회식…. 다 좋다. 그런데 고스톱까지? 너무 나간 것 아닐까. 윤 사장은 “고스톱도 다 이유가 있는 크라운만의 코드”라고 말했다. “같이 즐기다 보면 흉허물이 없어집니다. 등산·회식을 통해서도 남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벽까지 깨자는 거죠. 물론 기본적으로 고스톱은 리스크 매니지먼트 훈련도 되고요.”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다 등산에서 출발한다.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기법이지만 효과는 충분하다. 윤 사장은 그래서 회사에서보다 산에 오르면서, 고스톱 치면서, 목욕하면서 나오는 말을 더 꼼꼼히 챙긴다. 그가 PDA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이런 얘기들을 모으기 위해서다. 지금은 ‘등산경영’ 수준에 도달했지만 윤 사장은 원래 싱글 수준의 골프 매니어였다. 하지만 부도가 나자 골프장에 다닐 수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래도 운동은 필요했고, 더욱이 혼자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궁리해 보니 등산이 ‘딱’이었다. 게다가 돈도 거의 들지 않았다. 등산이 직원 간에 말이 통하게 하고, 친밀감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됩니까? “골프 치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공이 안 맞습니다. 경영도 마찬가집니다. 경영도 힘을 빼야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서로 격의 없이 얘기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일도 잘 됩니다. 과거에는 ‘죽기살기로’ 3000억원 매출을 올렸고, 지금은 등산도 하고, 책도 읽고, 세미나도 하면서 그 정도 합니다. 매출은 비슷하지만 회사는 달라졌죠. 매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회사는 미래가 없다고 봅니다. 책도 읽고, 등산도 하고, 감성도 키우면서 일해야 미래가 있죠.” 골프도 경영도 힘 빼야 ‘나이스’ 실제 크라운제과는 지난 하반기 이후 제과 4사 중 유일하게 월별 매출이 상승세(전년 대비)에 있다. 보기엔 상당히 공격적인 스타일 같습니다만. “저는 영업 쪽에 ‘물건을 딱 하나만 달리게 공급하라’고 합니다. 시장에서는 하나만 달려도 품귀현상이 생기고 물건이 더욱 가치있는 것으로 됩니다. 사정하는 영업, 매달리는 영업은 그만 해야죠. 결국 그게 매출에 급급한 건데 그래 가지곤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없어요. 저는 ‘튕기는 영업’을 하라고 주문하는 편이죠. 밀어붙여서 될 게 있고 안될 게 있어요.” 윤 사장은 해태에 출근하면서도 매출이나 영업 실적을 챙기지 않는다. 오히려 독서와 등산을 더 적극적으로 챙긴다. “CEO가 독서니, 문화니 하면서 영업실적을 챙기면 결국 직원들은 다른 건 안 하고 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요. 제가 독서·등산·문화를 챙긴다고 직원들이 일을 팽개치기야 하겠습니까? 오히려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업무는 짧은 시간에 밀도 있게 합니다.” 피인수 기업이긴 하지만 해태의 명성이나 자존심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데려갔습니다. ‘점령군’이란 얘기 안 들으려고요. 비서도, 운전기사도 안 데려갔습니다. 운전기사는 해태 기사를 쓰느라고 크라운 기사를 내보냈어요. 해태 직원 입장에서는 작은 업체에 인수된 것이 결코 유쾌한 일일 수 없죠. 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인수하고, 빠른 회사가 느린 회사를 먹었습니다. 이제는 문화가 높은 회사가 문화가 낮은 회사를 거느리는 시대입니다. 크라운이 해태를 인수한 건 크라운이 더 크기 때문이 아니라 더 좋은 기업문화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문화를 굉장히 추상적인 것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낡은 사고방식입니다. 앞으로는 기업 경쟁력에도 문화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겁니다. 일종의 소프트웨어죠.” 구조조정도 할 겁니까? “저는 구조조정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해태 인수 당시 임원급 중 일부를 물러나게 한 것은 인수 과정에서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입니다. 책임 있게 일하고, 자신의 성과에 평가를 받는 것이 임원이죠. 인수당한 회사 임원이 아무도 물러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저는 수술보다 보약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부장들의 ‘혁신회의’가 크라운 경영 해태 인수로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단순히 회사가 양적으로 커진 것 이상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매출이 두 배로 됐으니 예전보다 양적으로 두 배 더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니죠. 질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1조원이라는 규모에 맞는 질을 달성하지 못하면 금방 5000억, 3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질 겁니다. 크라운의 경우 지난해부터 이미 그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부장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혁신회의’가 경영상의 실질적 결정을 합니다. 대한민국 어느 회사가 부장들에게 의사결정을 맡깁니까? 우리 부장들은 이미 경영자 수준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거죠. 임원들은 대신 외부활동과 자기계발에 바쁩니다. 임원 일을 부장들이 하기 때문에 임원들은 사장 일을 합니다. 실제로 해태 인수 당시 막판 협상 때 나는 지방 어느 곳에 그림을 사러 갔어요. 지방 공장에 걸어두기 위해서죠. 가격 협상은 우리 회사 전무가 전권을 가지고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림 사러 다니는 사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건 단적인 예인데 조직이든 사람이든 더 강력한 경쟁력과 역량을 가져야 1조원에 맞는 시장 주도력이 생길 수 있겠죠.” 해태에도 예외가 아니다. 영업소장(과장급) 중 26명을 뽑아 6개월간 일을 안 시키고 교육을 한다. 이른바 ‘리더과정’이다. 등산·독서·세미나·문화체험 등 크라운에서 했던 교육을 다양하게 적용한다. 지방에 거주지가 있는 사람들은 하숙집까지 잡아준다. 6개월간 완전히 업무 면제다. 6개월간 업무에서 벗어나 교육만 받는 회사가 어디 흔한가? 윤 사장이 미래를 장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윤 사장은 해태제과만으로 2010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뉴 스타트 플랜’을 3월 29일 발표했다. 거액을 들여 해태를 인수했습니다. 그 돈이면 더 매력적인 신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과거의 제과 산업, 말하자면 입만 즐겁게 하는, 간식으로 먹는 제과 산업은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었죠. 하지만 앞으로 제과 산업은 그런 단순한 간식거리 이상의 영역을 개척할 겁니다. 가장 쉬운 예는 기능성 식품입니다. 이미 우리는 고려대에 ‘하이푸드 연구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래에 ‘먹으면 젊어지는 과자’가 나오지 말란 법 있나요? 기능성이 추가되면 시장은 기호품이 아니라 필수품으로 바뀝니다. 문화를 담은 과자도 기대되는 시장입니다. 유형의 과자에 문화와 추억·스토리·라이프사이클 같은 무형의 요소를 접합하는 거죠. 예를 들어 백일에 꼭 먹어야 되는 과자,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먹는 과자, 셰익스피어의 문학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과자 등입니다. 이건 간식이 아니라 문화가 됩니다. 와인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듯이 과자도 그런 영역을 개척할 수 있죠. 이런 사업이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윤 사장은 최근 소문이 나돌고 있는 빙과업체 인수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그쪽에서 팔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저희는 제과업 시너지를 위해 언제든 인수할 용의가 있다는 원칙론을 얘기한 겁니다. 살 사람이 있으면 언젠가 팔 사람도 생기겠죠.” 또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최대 제과 업체로 성장시키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해태 인수로 국내 언론은 롯데와의 양강 구도를 얘기하고 있지만 이처럼 그는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 국내 산 중 1000m가 넘는 봉우리는 다 올랐다는 윤 사장은 4월 24일 해발 3952m로 대만의 최고봉인 옥산(玉山)에 오른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두 번째다. 임원·부장 등 20여명과 함께 올라 정상주(酒)를 마시며 각오를 다지는 행사다. 그에게 해태제과 인수는 등산으로 치면 7부 능선에 오른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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