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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5개월 최고령 우승 최상호 프로··· “3년간 금단 고통 딛고 집중력 키워”
- 50세5개월 최고령 우승 최상호 프로··· “3년간 금단 고통 딛고 집중력 키워”
7수 만에 프로 테스트 합격 70년대 중반 경기도 고양시의 뉴코리아 골프장 연습장에서 최상호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골프장 근처에 살던 소년 최상호는 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연습 볼 코인을 팔면서 골프장과 일찍 인연을 맺었다가 연습생이 됐다. 그는 재능이 모자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성질 고약한 선배들로부터는 공을 잘 못 친다고 구박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상호는 77년 7수 만에 기어이 프로 테스트에 합격하고 만다. 동기생 6명 중 다섯 번째로 합격했으니 그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최상호가 더 빨리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통산 43승의 한국을 대표하는 골퍼 최상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긴 연습생 생활이 그의 기초를 더 탄탄하게 했고, 동료보다 더 길고 고된 수련 과정에서 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었다. 최상호는 “동기생들이 먼저 프로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더 빨리 됐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최상호는 777(77년 7수 만에 합격)이라는 행운의 숫자와 함께 프로가 됐고 이듬해 잭팟을 터뜨리게 된다. 78년 열린 여주오픈에서다. 당시 우승 상금이 60만원 정도였는데 이 대회는 파격적으로 변두리 집 한 채 값인 300만원이나 됐다. 그래서 일본 프로 25명이 왔고 골프 사상 처음으로 동양방송에서 녹화 중계도 했다. 3라운드에서 6언더파로 코스 레코드를 세우면서 선두권으로 올라온 최상호는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당대 최고의 골퍼였던 한장상(63)·김승학(56) 프로와 함께 경기를 벌여야 했다. “햇병아리 선수가 챔피언 조에 서 있다는 자체도 부담스러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대선배들과 TV 카메라까지 떡 버티고 있으니 티잉그라운드에 오를 때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신인들은 그런 부담감 속에서 십중팔구 무너지지만 거기서 무너졌다면 최상호가 아니다. 최상호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과 ‘도둑 골프’로 배운 집중력으로 위기를 타개한다. 도둑 골프란 최상호가 연습생 시절 달밤에 골프장에 들어가 몰래 골프를 친 것을 말한다. 연습생 신분으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최상호는 낮에 프로 선배의 골프백을 메고 골프장을 둘러본 후 밤에 실전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잘못 치면 비싼 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한 타 한 타에 엄청난 집중이 필요했다”는 것이 최상호의 기억이다. 카메라·대선배·갤러리가 지켜보는, 바늘방석 위에 앉은 것처럼 불편한 위기상황에서 이 집중력이 빛을 발했고 최종일 5언더파를 쳐 합계 10언더파로 우승을 차지했다. 7수 만에 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재능 없는 늦깎이 프로가 입문 이듬해 곧바로 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우승을 맞는 최상호의 자세는 우승보다 값졌다. “우승이 기뻤지만 앞으로 갈 길이 훨씬 멀다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훈련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그건 내 골프 인생의 시작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말에서 50세에 우승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 “20, 30대 때보다 실력 좋아졌다” 최상호는 1m70㎝인 자신의 키가 작다고 여긴다. 통계로 보면 그의 키는 작은 편은 아니지만 그의 높은 목표에 그의 신체는 작게만 느껴진 것으로 보인다. 약간의 콤플렉스도 있는 듯하다. 연습생 동기 6명 중 다섯 번째로 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것도 키 때문이고, 80년대 중반 미국 진출을 시도하다 좌절한 것도 키와 근력이 모자라 샷거리가 짧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목표에 맞게 몸을 맞췄다. 키는 늘릴 수 없었지만 팔은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최상호는 무거운 쇠파이프에 고무를 감아 휘두르는 등 스윙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팔이 길어진 것이다. 최상호는 키 1m77㎝인 기자보다도 양팔이 손가락 한 마디 반쯤 더 길었다. 늘어난 팔은 그의 땀과 피와 눈물로 만든 것이다. 스윙 자세가 좀 어색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최상호는 어드레스 때 지나치게 웅크리고 임팩트 때는 일어선다. “거리를 내기 위한 것이다. 허리를 숙일수록 볼을 몸에서 먼 곳에 놓을 수 있어 스윙 궤도가 커져 거리도 더 나간다”는 설명이다. 나이가 들면서 최상호는 드로 구질을 구사하기 위해 왼발을 닫는 클로즈드 스탠스로 바꿨다. 현재 최상호의 드라이브샷이 290야드에 이른다. 80년대 최상호의 샷 거리는 서양 선수들에 비해 20야드 가량 짧았지만 지금은 서양의 동년배에 비해 짧지 않다. 최상호는 “젊을 때보다 근력과 유연성은 떨어지지만 연습과 좋아진 장비 덕분에 20∼30대 때보다 골프 실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하나 최상호의 성공 비결은 한 우물을 파는 집요함이다. 최상호는 골프장에서 살았다. 80년부터 10년 동안 한양골프장, 90년부터 15년간 남서울골프장 헤드프로였다. “아무래도 골프장에 있으면 어프로치나 퍼팅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의 영향으로 다른 프로들도 골프장 헤드프로로 일하기 시작했다. 최상호는 한눈을 팔지도 않았다. “골프 아카데미 등 골프 관련 사업을 하자는 제의도 여러 차례 받았지만 훈련에 방해가 될까봐 모두 거절했다. 돈 관리도 아내가 하도록 맡겼다. 나는 골프뿐이다.” 10년 전만 해도 남자 프로골퍼들에게 담배는 필수품이었다. 잘 맞아도 한 개비, 안 맞아도 한 개비였다. 최상호도 예외가 아니었다. 라운드당 한 갑의 담배를 피웠다. 2000년 그는 금연을 결심했다. “90년대 후반 성적이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건강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금단 증상 때문에 골프가 안 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선수 생명을 건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쉽지 않았다. “금단 증상을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심했다. 클럽만 잡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몸은 근질근질했다. OB가 있으면 OB가 나고, 물이 있으면 물로 공이 들어갔다. 성격도 급해져 실수가 나오면 참을 수 없었다. 그냥 막 쳐 버리고 집에 가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투어를 그만둘까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땐 내가 예전에 어떻게 42승이나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담배 끊으며 샷 되살아나 그러나 그는 담배와의 대결을 뚝심으로 버텼고 결국 승리했다. 3년여 고생하던 그는 지난해부터 부활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승은 못했지만 가끔 선두권에 등장했고 올해 시즌 개막전에서 3위를 한 데 이어 우승까지 차지한 것이다. “담배가 몸에서 완전히 떠난 후 몸이 아주 좋아진 것을 느꼈다. 담배를 계속 피웠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금연의 고통은 심각했었나 보다. 최상호는 “끊는 게 가장 좋지만 후배들에겐 프로 생활 하는 동안에는 담배를 피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권유한다. 담배를 끊으면 골프가 너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최상호는 가족을 첫째, 직업을 둘째로 친다. 특히 부인 안계숙(50)씨를 끔찍이 아낀다. 프로 골퍼 사이에 둘째 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정도로 정평이 나 있는 잉꼬부부다. 그러면서 최상호는 편안한 가정을 갖고 안정적인 내조를 받는다. 최상호는 80년대 포기한 미국 진출을 다시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 도전해 지역예선에서 한 타 차로 떨어졌는데 올해 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갈 계획이다. “골프는 자신감이 중요한데 지난해엔 자신이 없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갔다 왔다. 올해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중년 골퍼들에게 주는 팁 하나. “나이 먹어서도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골프다. 우리 나이가 되면 자식들과 대화하기도 어려워지는데 골프로는 젊은이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거다. 물론 골프로 젊은이를 혼내줄 수도 있다.” 최상호 프로 생년월일:1955년 1월 4일, 신장:170㎝, 체중:70㎏, 혈액형:O형, 본적:경기도, 입회연도:1977년 9월 30일, 골프 입문 연도:1970년, 테스트 응시횟수:7회, 첫경기:PGA선수권, 사제관계:손흥수, 소속:남서울 C.C., 계약:빠제로, 우승기록:국내 최다승 43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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