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여운 ET는 가고 공포의 외계인 오다
Fear Factor
1억3500만 달러를 들여 외계인의 지구 침공 영화를 만들 때는 몇 가지 규칙을 정해놓아야 좋다. 그래서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몬트리올에서 ‘터미널’을 찍는 동안 대본작가 데이비드 켑은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제작 시 피해야 할 구태의연한 장면 목록을 정리해 캐나다로 날아갔다. “이 영화에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될 장면들”이라고 켑은 말문을 열었다.
“첫째, 유명한 건물을 부수지 않는다. 둘째, 뉴욕시를 필요 이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 셋째, 정치인이나 과학자나 장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넷째, 군 지휘관들이 대형 지도 위에서 지휘봉으로 선박을 밀어대는 장면은 안 된다. 다섯째, 세계 각국의 수도 모습이 나오면 안 된다.” 이 두 사람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었다면 여섯째 조건을 추가했을 법도 하다. ‘오프라’ 쇼에 출연해 쓸데없는 실언으로 빈축을 사거나 영화 홍보 기회를 자신의 애정생활에 대한 심판무대로 바꿔놓는 배우는 곤란하다고 말이다.
한 가지 희소식이라면,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에서 만들어낸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관객들이 일단 보고 나면 최근 에펠탑에 올라가 케이티 홈스에게 청혼한 톰 크루즈 관련 논쟁이 시시껄렁하게 여겨지리라는 점이다. “스필버그는 어떤 양식의 영화를 찍든 그 양식을 재발명한다”고 제작자 캐슬린 케네디는 말했다. “베끼기를 싫어한다”며 그녀는 웃었다.
“어쩌다 베낄 일이 생기면 자기 자신을 베끼는 경우다.” ‘우주전쟁’을 통해 스필버그는 자신을 사상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만들어준 재미 위주의 영화로 돌아갔다. ‘미지와의 조우’보다 훨씬 참혹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비행기의 잔해, 연락선 뒤에서 솟아오르며 큰 모습을 드러내는 외계인의 세 발 우주선, 시신이 가득한 강, 나무들 사이로 마치 눈 내리듯 분분히 떨어지는 시신들의 옷 등등. 그리고 크루즈의 연기도 훌륭하다.
역사상 최초의 외계인 침공 이야기인 H. G. 웰스의 1898년 동명 공상과학소설을 바탕으로 한 ‘우주전쟁’은 사실 행성 간의 전쟁이 아니다. 인류의 말살에 더 가깝다. 크루즈는 이혼한 항만 노동자 레이 페리어로 나오는데 어린 딸(다코타 패닝)과 사춘기 아들(저스틴 채트윈)보다 고속 자동차에 더 관심이 많다.
거대한 세 발 우주선들이 나타나 그들 앞에 거치적대는 전부를 무조건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레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크루즈는 능력있고 자신만만한 배역을 워낙 많이 맡아와서 그 반대 역할을 써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켑은 말했다. “레이는 본인의 생각대로 인생이 풀려가지 않으며 그 결과 멍청한 사람이 됐다”(크루즈 본인은 이 기사 관련 인터뷰를 사양했다).
잔가지 묘사는 웰스의 원작에 비해 많이 바뀌었지만 그 중심의 공포는 여전하다. 1938년 오슨 웰스가 만든 라디오 드라마는 너무 실감나게 방송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무서워 엉엉 울고 피난을 떠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지금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조지 팰 감독의 1953년 영화도 당시에는 관객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이 영화 제목이 그 추악한 고개를 쳐들 때는 언제나 어떤 분위기가 그에 앞서 형성됐다”고 스필버그는 말했다.
“늘 세계가 불확실한 미래로 향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웰스의 소설은 영국 식민주의의 침공에 관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오슨 웰스는 미국이 2차대전에 휘말리기 몇 해 전 라디오 드라마를 방송했다. 팰 감독의 영화는 냉전시대에 나왔으며 당시 사람들은 원자탄 때문에 다 죽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이제 내가 만든 영화는 9·11의 그림자에서 나왔다.” 외계인들이 1차 파괴전을 개시하자 패닝(11)은 소리지른다. “테러범들인가요?”
일부 평론가들은 웰스의 원작처럼 스필버그의 영화도 외계인들이 왜 그렇게 인류를 태워 죽이려 하는지 원인 설명이 없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감독은 그것이 전부 긴장감 고조 작전이라고 말했다. “외계인들이 왜 수십만 명의 인간을 죽이는지 모르는 편이 그들이 지구에 와서 선전포고를 하고 작업에 돌입하는 편보다 더 무섭다.” 어쨌든 켑은 나름대로의 지론이 있다. “물이 전쟁 원인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이 살던 행성은 물이 마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쟁이란 물·땅·석유 등 아주 기본적인 이유 때문에 벌어지게 마련이다.”
영화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크루즈에게는 만용을 부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그저 버티기에 급급하다. 레이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다른 사람(팀 로빈스)의 지하실에 딸을 데리고 숨는 장면이 나온다. 겁에 질린 딸이 아빠에게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하자 그는 아는 자장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크루즈는 크게 상심한 얼굴이다.
“모든 감독의 꿈은 배우가 의식활동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스필버그는 말했다. “크루즈가 그것을 첫 촬영에 해냈다. 그 순간 아주 진실한 무엇이 일어났다. 그는 자기 감정에 몰두했고 아마도 무슨 감정에 빠졌는지조차 모르고 오랫동안 멍한 표정으로 있을 때 내가 ‘컷’을 외쳤다.”
그렇다고 크루즈가 남성적 매력을 발산할 만한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다. 지난 2월 뉴스위크 기자가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 크루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웃통을 벗고 스턴트 장비에 묶인 채 콘크리트 바닥 위쪽의 고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위험한 장면을 몸소 찍겠다는 배우를 나는 반기지 않는다”고 스필버그는 불 붙이지 않은 시가를 손에 쥐고 말했다.
“대역배우를 데리고 다섯 번 찍었는데 그때 크루즈가 들어와 내가 자기를 빼고 찍는 줄 알고 곧바로 장비에 올라갔다.” 스필버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쩌겠느냐는 몸짓을 했다. “대역배우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나는 상관없다. 웬만해선 톰 크루즈를 말리지 못한다.” 어느 행성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그를 말리려 드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1억3500만 달러를 들여 외계인의 지구 침공 영화를 만들 때는 몇 가지 규칙을 정해놓아야 좋다. 그래서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몬트리올에서 ‘터미널’을 찍는 동안 대본작가 데이비드 켑은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제작 시 피해야 할 구태의연한 장면 목록을 정리해 캐나다로 날아갔다. “이 영화에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될 장면들”이라고 켑은 말문을 열었다.
“첫째, 유명한 건물을 부수지 않는다. 둘째, 뉴욕시를 필요 이상으로 파괴하지 않는다. 셋째, 정치인이나 과학자나 장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넷째, 군 지휘관들이 대형 지도 위에서 지휘봉으로 선박을 밀어대는 장면은 안 된다. 다섯째, 세계 각국의 수도 모습이 나오면 안 된다.” 이 두 사람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었다면 여섯째 조건을 추가했을 법도 하다. ‘오프라’ 쇼에 출연해 쓸데없는 실언으로 빈축을 사거나 영화 홍보 기회를 자신의 애정생활에 대한 심판무대로 바꿔놓는 배우는 곤란하다고 말이다.
한 가지 희소식이라면,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에서 만들어낸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관객들이 일단 보고 나면 최근 에펠탑에 올라가 케이티 홈스에게 청혼한 톰 크루즈 관련 논쟁이 시시껄렁하게 여겨지리라는 점이다. “스필버그는 어떤 양식의 영화를 찍든 그 양식을 재발명한다”고 제작자 캐슬린 케네디는 말했다. “베끼기를 싫어한다”며 그녀는 웃었다.
“어쩌다 베낄 일이 생기면 자기 자신을 베끼는 경우다.” ‘우주전쟁’을 통해 스필버그는 자신을 사상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만들어준 재미 위주의 영화로 돌아갔다. ‘미지와의 조우’보다 훨씬 참혹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비행기의 잔해, 연락선 뒤에서 솟아오르며 큰 모습을 드러내는 외계인의 세 발 우주선, 시신이 가득한 강, 나무들 사이로 마치 눈 내리듯 분분히 떨어지는 시신들의 옷 등등. 그리고 크루즈의 연기도 훌륭하다.
역사상 최초의 외계인 침공 이야기인 H. G. 웰스의 1898년 동명 공상과학소설을 바탕으로 한 ‘우주전쟁’은 사실 행성 간의 전쟁이 아니다. 인류의 말살에 더 가깝다. 크루즈는 이혼한 항만 노동자 레이 페리어로 나오는데 어린 딸(다코타 패닝)과 사춘기 아들(저스틴 채트윈)보다 고속 자동차에 더 관심이 많다.
거대한 세 발 우주선들이 나타나 그들 앞에 거치적대는 전부를 무조건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레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크루즈는 능력있고 자신만만한 배역을 워낙 많이 맡아와서 그 반대 역할을 써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켑은 말했다. “레이는 본인의 생각대로 인생이 풀려가지 않으며 그 결과 멍청한 사람이 됐다”(크루즈 본인은 이 기사 관련 인터뷰를 사양했다).
잔가지 묘사는 웰스의 원작에 비해 많이 바뀌었지만 그 중심의 공포는 여전하다. 1938년 오슨 웰스가 만든 라디오 드라마는 너무 실감나게 방송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무서워 엉엉 울고 피난을 떠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지금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조지 팰 감독의 1953년 영화도 당시에는 관객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이 영화 제목이 그 추악한 고개를 쳐들 때는 언제나 어떤 분위기가 그에 앞서 형성됐다”고 스필버그는 말했다.
“늘 세계가 불확실한 미래로 향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웰스의 소설은 영국 식민주의의 침공에 관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오슨 웰스는 미국이 2차대전에 휘말리기 몇 해 전 라디오 드라마를 방송했다. 팰 감독의 영화는 냉전시대에 나왔으며 당시 사람들은 원자탄 때문에 다 죽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이제 내가 만든 영화는 9·11의 그림자에서 나왔다.” 외계인들이 1차 파괴전을 개시하자 패닝(11)은 소리지른다. “테러범들인가요?”
일부 평론가들은 웰스의 원작처럼 스필버그의 영화도 외계인들이 왜 그렇게 인류를 태워 죽이려 하는지 원인 설명이 없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감독은 그것이 전부 긴장감 고조 작전이라고 말했다. “외계인들이 왜 수십만 명의 인간을 죽이는지 모르는 편이 그들이 지구에 와서 선전포고를 하고 작업에 돌입하는 편보다 더 무섭다.” 어쨌든 켑은 나름대로의 지론이 있다. “물이 전쟁 원인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이 살던 행성은 물이 마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전쟁이란 물·땅·석유 등 아주 기본적인 이유 때문에 벌어지게 마련이다.”
영화의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크루즈에게는 만용을 부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며 그저 버티기에 급급하다. 레이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다른 사람(팀 로빈스)의 지하실에 딸을 데리고 숨는 장면이 나온다. 겁에 질린 딸이 아빠에게 자장가를 불러 달라고 하자 그는 아는 자장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크루즈는 크게 상심한 얼굴이다.
“모든 감독의 꿈은 배우가 의식활동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이라고 스필버그는 말했다. “크루즈가 그것을 첫 촬영에 해냈다. 그 순간 아주 진실한 무엇이 일어났다. 그는 자기 감정에 몰두했고 아마도 무슨 감정에 빠졌는지조차 모르고 오랫동안 멍한 표정으로 있을 때 내가 ‘컷’을 외쳤다.”
그렇다고 크루즈가 남성적 매력을 발산할 만한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다. 지난 2월 뉴스위크 기자가 촬영장을 방문했을 때 크루즈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웃통을 벗고 스턴트 장비에 묶인 채 콘크리트 바닥 위쪽의 고공에 거꾸로 매달렸다. “위험한 장면을 몸소 찍겠다는 배우를 나는 반기지 않는다”고 스필버그는 불 붙이지 않은 시가를 손에 쥐고 말했다.
“대역배우를 데리고 다섯 번 찍었는데 그때 크루즈가 들어와 내가 자기를 빼고 찍는 줄 알고 곧바로 장비에 올라갔다.” 스필버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쩌겠느냐는 몸짓을 했다. “대역배우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나는 상관없다. 웬만해선 톰 크루즈를 말리지 못한다.” 어느 행성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그를 말리려 드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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