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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BIZ 시네마] 창고에서 잠잔 ‘아카데미 작품상’

[임준수의 BIZ 시네마] 창고에서 잠잔 ‘아카데미 작품상’

지난주는 미국의 아카데미상 발표를 둘러싸고 세계의 영화계가 떠들썩했다. 세계 영화시장의 80%(극장 수입 기준)를 차지한 미국의 영화계가 1년간의 실적을 총결산하는 이벤트이고 보면 이 같은 반향은 당연했다. 그러나 영화인들에겐 시상식 자체보다 그 전에 벌어지는 수상 후보작 지명 경쟁이나 시상식 이후의 흥행 판도에 관심이 더 많다. 제작사를 포함한 세계의 영화인들이 아카데미상 발표를 전후해 폭풍전야의 긴장과 후폭풍의 파장에 휩싸이는 것은 상의 향방에 따라 세계 영화시장의 판세가 달라지고 배우의 몸값과 제작자의 돈벌이 운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탄 영화의 수입 증가율은 평균 12%였다. ‘아카데미 약발’이 이러하니 시상식의 현란한 무대 쇼나 레드 카펫에서 벌이는 여배우들의 공주병 쇼는 호사가들의 관심사로 끝날 뿐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올해 아카데미상 작품상은 미국의 인종 갈등을 다룬 ‘크래시’에로 돌아갔다.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브로크백 마운틴’은 감독상을 포함해 각색상과 작곡상을 받는 3관왕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일찌감치 작품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은 단 한 개의 트로피도 건지지 못했다. 다만 그가 제작에 참여한 ‘게이샤의 추억’이 미술상·의상상·촬영상 등 잔챙이 상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아카데미상의 후폭풍을 노린 국내 극장가의 흥행 작전은 일단 실패로 끝난 것 같다. 작품상을 기대하고 먼저 개봉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뮌헨’이 밀려나고 개봉을 미뤘던 ‘크래시’가 뜻밖에 그 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하면 흥행의 보증수표와 다름없어 부가 수익이 엄청 뛰어오른다는데, 개봉의 우선순위를 잘못 잡은 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작전 실수라 할 것이다. 그래도 ‘브로크백 마운틴’은 3관왕에 힘입어 예매율이 크게 뛰었다는 소식이다. 작품상을 따낸 ‘크래시’ 필름은 창고에서 낮잠을 자는 바람에 대박의 기회를 놓쳤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작품성을 알아보고 선뜻 사들인 수입사의 안목은 평가받을 만하다. 이 영화는 수상에 힘입어 다음달에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큰 재미를 못 볼 것 같지는 않다. 아카데미 열기가 식은 뒤에 선보이는 데다 이미 복제판이 대량으로 나돌아 볼 사람은 다 봤을 테니 말이다. 수입사 측은 이 영화를 내려받은 누리꾼들을 무더기로 고발했다는데 청소년들한테서 벌금을 물려봤자 얼마나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제7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특징은 오스카 트로피가 골고루 배분된 점이다. 3관왕이 네 개 나왔지만 감독이나 각본, 주·조연 배우상 등 비중있는 상을 한꺼번에 차지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메이저 스튜디오의 영화가 전멸한 가운데 큰 돈을 들인 대작이 수상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도 특징이다. 상업주의에 물들었던 아카데미상 위원회가 철이 든 것일까? 그러나 본게임에 들어가기 전 비즈니스 공세는 매우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권을 가진 5000여 명의 아카데미 위원을 상대로 막후 교섭이 불꽃 튀었고, 일단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의 관계자들은 작품상·감독상 등 주요 상을 손에 넣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여론몰이를 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하나의 대중예술로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줘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그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보여준 성숙된 자세였다. 그러나 그 한쪽에서 이 명망있는 시상제도에 편승해 왕창 돈을 벌어보겠다는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린 것도 사실이다. 스크린을 통해 인종 차별과 테러를 개탄하는 목소리로 도덕성의 폼을 잡았다. 그러면서 “이런 좋은 영화를 너희 나라 국민에게 더 많이 보여라”고 스크린 쿼터를 늘리도록 윽박지르는 것이 아카데미상을 중흥시킨 할리우드의 상혼(商魂)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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