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현지 집중취재] 세 대륙의 허브 부활하는 터키
[터키 현지 집중취재] 세 대륙의 허브 부활하는 터키
카스피해 연안국을 중심으로 살펴본 “뉴 오일 로드를 따라서” 특집(2005년 12월 13일자)을 취재하면서 새삼스레 터키의 존재를 발견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스탄’국가 모두가 하나같이 터키와 정치·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석유값 상승이 빚어내고 있는 제3의 중동경기 붐은 터키 경제의 부활에 결정적인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만약 터키 경제가 유라시아의 종합 허브로 부상할 경우 터키는 카스피 경제권뿐 아니라 흑해 경제권이라는 새로운 지도를 그려낼 것이 틀림없다. 편집자
고도(古都) 이스탄불의 지중해 앞바다에는 수많은 배가 늘어서 있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흑해로 들어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배들이다. 반대편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퍼올린 석유를 실은 배들이 세계로 나가기 위해 한쪽으로 비켜 서 있다. 이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거대한 배들은 보통 하루에서 이틀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이스탄불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의 폭은 80m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좁은 목을 지나지 않고서는 동유럽과 러시아의 외부 소통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돼 있다. 거대한 유조선과 화물선으로 교통체증을 이루고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모습은 터키의 몸값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말 그대로 동서양의 길목이면서 중동과 흑해 그리고 카스피해 국가로 이어지는 통로이자 접점이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과거 600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후예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정치불안 속에 국제적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온 게 사실이다. 10년 주기의 쿠데타, 이슬람이 가져다 준 종교적 고충, 게다가 유럽 국가들로부터의 노골적인 견제와 괄시 속에 평가절하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세계가 터키의 부활에 주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을 국가적 목표로 정한 가운데, 중동 오일 붐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급부상으로 터키가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징조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스탄’국가들이 죄다 터키와 함께 발을 묶고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탄불 공항의 전광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이른바 ‘스탄’국가치고 이스탄불에서 뜨지 않는 비행기는 없다. 이 나라들의 공항시설 또한 모두 터키에 의해 건설됐다. 또 빌딩과 주택, 도로 등 인프라 공사 역시 터키 건설업체들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터키 건설협회의 에르달 에렌(Erdal Eren) 회장은 “중앙아 5개국은 물론이고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등 카프카스 국가들 역시 큰 틀에서 보면 터키 민족”이라며 “그런 나라들에서 터키 건설사가 휩쓸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중앙아시아뿐만이 아니다. 중동에서도 터키의 바람은 거세다. 3차 오일 붐으로 두바이를 비롯해 아랍국가들에서 불고 있는 건설바람의 최대 수혜자는 터키다. 두바이든, 쿠웨이트든, 사우디아라비아든 터키 건설사와 근로자들이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의 쿠르드지역 역시 터키 업체들이 점령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하이브리드(hybrid:혼합, 잡종)인 터키는 사방으로 뻗어나가기에 좋은 곳이다. 에렌 건설협회 회장은 자신들의 경쟁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 지방과는 크게 봐서 한 핏줄이다. 그들은 사실상 터키 민족이다. 중동국가들과는 이슬람으로 뭉쳐 있는 종교적 형제다. 개인적으로 나는 쿠르드족의 피를 물려받았다. 쿠르드 지역은 내 고향이나 다름없다. 지역적으로 유럽에 속해 있는 우리는 유럽에서 사업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유라시아 지역의 모든 나라들이 터키와 특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이다. 터키의 미래를 밝게 하는 또 다른 측면은 ‘오일’이다. 현재 터키는 사실상 원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 연간 2억5000만 배럴의 오일을 소비하는 터키는 90%를 수입에 의존할 정도다. 하지만 ‘오일’은 최근 터키 경제 호황에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지도를 펴면 알 수 있듯이 터키의 동·남·북쪽에 산유국들이 위치해 있다. 서쪽에는 세계 최대 석유 소비시장 중 하나인 유럽 대륙이 자리 잡고 있다. 이쯤 되면 터키의 ‘지경학적(geo-economical)’ 위치의 중요성을 감지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오일이 묻혀 있어도 팔려야 ‘달러’가 된다. 올 5월이면 카스피해 서안에서 출발하는 BTC 파이프라인이 제이한(Ceyhan)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가게 된다. 또 바쿠에서 출발해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 에르주룸으로 오는 가스 파이프라인이 이미 건설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에너지의 보고로 재발견된 카스피해의 출구는 터키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세계 제1위의 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을 자랑하는 러시아에도 터키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가스분쟁으로 표면화된 이 문제는 발트해 3국과 동유럽 국가의 나토 가입, EU 가입, 민주화 혁명 등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러시아는 흑해를 통해 지중해로 나가는 방법을 강구해 왔다. 결국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야 하고 여기에는 터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오일 벨트로 둘러싸인 터키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교통체증과 사고 위험을 이유로 최근 러시아에 터키를 종단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제안했고, 현재 이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라크 북부에 다량으로 묻혀 있을 가스 역시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미국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터키는 이미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터키 국영석유회사인 TPAO의 무라트 울루(Murat Ulu) 기획국장은 “러시아, 카스피해, 중동을 포함해 근처에 있는 항구 중 가스액화시설을 갖춘 곳은 터키의 제이한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터키가 유럽으로 향하는 에너지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히 오일의 수송만이 아니다. 또다시 지도를 보자. 터키 주변에 있는 나라 중 서쪽의 유럽을 제외하면 제조업 기반이 갖춰진 곳이 거의 없다. 중동,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주변의 오일 붐을 타는 나라들은 오일 달러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최근거리 국가가 바로 터키다. 연간 2000만 대의 TV를 생산하고, 세탁기, 냉장고 등을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터키는 그런 면에서 완전히 차별화된 나라다.
베스텔, 베코 등 터키의 전자회사는 멀리 키르기스스탄에까지 광고를 하고 제품을 판다. 건설도 마찬가지다. 고급 엔지니어링을 제외한 토목, 건축 부문에서 터키의 경쟁력은 막강하다. 터키 건설업체가 그루지야에서 이라크에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터키에는 이미 전 세계 모든 자동차 메이커가 합작사로 들어와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자동차의 상당부분이 중동, 유럽, 러시아로 실려간다. 오일 가격 상승으로 터키 주변에 몰려든 돈이 터키로 다시 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 인종, 문화 간의 접경지라는 점이 터키가 공짜로 얻은 외부적 호조건이라면 최근 EU 가입 추진은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긍정적인 변화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EU 가입 협상은 터키의 40년 숙원인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일본의 메이지유신 때 구호이기도 하다)’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실제 터키 경제인들은 한결같이 터키의 EU 가입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터키 최대 은행인 이시은행의 에르신 외진제 행장은“국민이 EU 가입에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터키의 4대 은행에 속하는 야피 크레디(Yapi Credi)의 아흐멧 지멘노글루(Ahmet Cimenoglu)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EU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서 외국 투자자들은 터키 경제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과 EU 가입 협상 개시는 터키 경제의 두 개 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키는 재정적자,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항상 불안했다. 두 개의 국제기구 개입으로 실질적으로 경제 불안 요인이 완화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해 나가고 있다는 독특한 주장이다(터키는 공화국 수립 이후 19번이나 IMF의 관리를 받아왔다). 실제로 터키의 EU 가입 협상은 터키 경제를 이슬람의 변방에서 유럽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가도록 강요하고 있다. EU에 가입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싫어도 하는 수 없이 국내 제도들을 고쳐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군의 지나친 정치간섭 배제 요구가 대표적인 예다. 국가안보위원회는 대통령, 총리, 군 총사령관, 외무·내무 장관, 육·해·공군 사령관과 치안군사령관 등 9인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다. 하지만 사실상 안보 외에 정치적인 문제도 여기서 결정된다. EU가 이 기구의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터키 군부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교역 측면에서는 유럽과 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과 제조업 기반으로 유럽 기업들의 투자가 많다. 또 전체 교역량의 55% 정도가 EU 국가와 이뤄지고 있다. EU와는 1996년 관세동맹 체결로 대부분의 제품을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이처럼 EU 가입 추진은 터키의 오랜 숙원인 ‘유럽화’를 위한 노력이다. 동시에 외부의 힘을 이용해 터키 내의 미진한 개혁을 추진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EU 가입은 양수겸장인 셈이다. 또 주변 22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정도로 대외개방에 적극적이다. 제조업 기반이 있는 터키가 주변 국가와의 무역에서 그만큼 적극적이라는 얘기다. 전통적으로 요충지에 있는 터키는 오스만튀르크가 그랬듯이 고립보다는 해외진출을 통해 국부를 키워나간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
EU 가입 통해 내부 개혁 박차 이런 외부적 요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적 안정에 따른 일관된 정책의 효과다. 2002년 11월에 출범한 현정부(AKP)는 모처럼 단일정권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집권 뒤 경제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EU 가입을 터키의 당면목표로 내걸고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80년 이후 매년 60~100%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던 터키 경제는 2004년에 9.32%로 30년 만에 한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달성했다. 경제성장률 역시 2002년 7.9%를 시작으로 2004년 9.9%, 지난해 5.0%로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주기적인 경제위기 발생의 원인인 정치불안, 포퓰리즘적 정책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의 스티브 비데시(Steve Bideshi) 터키 지사장은 “단일 정부가 이끌어가고 있어 경제정책이 안정돼 있고 ROE(자기자본수익률)가 높은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가 안정돼 더욱 매력적이란 말이다.
터키 경제의 또 다른 강점은 인구다. 수적으로 7259만 명으로 유럽권에서 독일에 이은 2위 국가다.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장차 거대한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인구성장률 1.5%로 2020년에는 역내 최대 인구 대국이 될 전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 구성 비율이다. 전체 인구의 63%가 35세 미만으로 ‘젊은 피’로 가득하다. 독일, 프랑스 등 인구 대국이 있지만 늙어가는 유럽과는 차원이 다르다. 장차 가구수 증가에 따른 구매력 증가가 터키 경제의 활력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런 인구구조 덕분에 터키의 임금은 유럽 평균 임금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싸다. 여러 나라가 터키의 EU 가입을 견제하는 것도 이런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비관적인 측면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가장 큰 불안은 역시 정치적 향방이다. 군부의 개입을 비롯한 정치적 불안정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군 참모총장이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식적으로도 내각 회의 때 참모총장이 장관보다 높은 서열로 대우받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군의 강력한 막후 영향력은 여전히 터키 정권에 대한 불안감으로 작용된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불안감의 요체다. 1960, 80년 등 군부 개입으로 정치상황이 급변했던 터키는 그 후 쿠데타는 재발하지 않았지만 잦은 연정 붕괴 등으로 정치적 불안이 지속됐다. 1923년 공화국 건국 이래 지금까지 59차례나 내각이 바뀌었으며 23명의 총리가 배출됐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업과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킨 터키가 여전히 1인당 국민소득 5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정치적 혼란 때문이다. EU 가입을 원하는 터키로서는 이슬람교의 문제도 늘 잠재된 폭탄이다. 외국인들의 신인도도 높아졌지만 터키가 과연 EU에 가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표면적인 이유는 경제적 격차, 제도적 문제 등이지만 역시 뿌리는 종교적 차이다. 로이터 통신의 나탈리 해리슨(Natalie Harrison) 기자는 2월 12일자 터키의 영자지인 ‘터키시 데일리 뉴스(Turkish Daily News)’에 쓴 기사에서 “많은 EU 시민은 2004년 5월 10개국의 새로운 멤버로 확장된 이후 또다시 확대되는 것에 의구심이 많다”면서 “25번째 국가는 상당히 크고 상대적으로 가난하며 더구나 중요한 점은(mainly) 무슬림 국가라는 점에서 걱정하고 있다”고 썼다. 이슬람 국가가 EU에 가입하는 데 상당한 거부감이 있음을 드러낸 글이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과 접하고 있는 동남부 국경은 상대적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강한 곳이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발호할 경우 서구식 경제개혁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군부개혁, 중국과 경쟁이 변수
정치적 안정, 종교적 문제가 경제 외적 변수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라면 중국은 좀 더 직접적인 요소다. 제조업 위주의 산업 발전을 해 온 터키로서는 제조업의 세계적 강자인 중국과 경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터키가 현재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저가 가전제품, 자동차 부품과 합작생산 능력, 봉제 등은 중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높은 세금, 과다한 지하경제, 비효율적인 공기업, 심각한 빈부격차 등 개발도상국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터키도 안고 있다. 18%에 이르는 부가가치세와 막대한 특소세는 정상적인 소비활동을 막는 지경에 와 있다. 예를 들어 수출형인 NF쏘나타 2.4의 경우 특소세 84%에 부가세 18%가 붙어 현지 가격으로 5만5000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2배에 가깝다. 휘발유의 경우 1ℓ에 1800원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세금이 높은 것은 공식 경제 규모의 66%로 추정되는 지하경제 때문이다. 지하경제가 커지면서 세원이 줄어들자 세율을 높인 것이다. 세율을 높이자 또다시 지하경제가 느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막대한 지하경제와 높은 세금은 외국 기업의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요 기간산업을 맡고 있는 공기업의 비효율 역시 최근 터키 정부의 큰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빈부격차 역시 심해 이스탄불의 경우 최상위층 1%가 29%의 부를 점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많지만 터키 경제의 장래는 매우 낙관적이다. 골드먼삭스도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통해 터키를 브릭스(BRIC’s) 이후의 ‘11개 차기 경제대국 후보(N-11)’로 꼽았다. 이 보고서는 멕시코와 한국을 치켜세우고 있으나 오히려 터키가 훨씬 훌륭한 실적을 올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치 안정만 계속된다면 당장 환율이 안정될 것이요, 환리스크만 상당히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유럽, 러시아, 중동지역으로부터 투자는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일 것이다. 이미 돈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형국이다. 과연 터키가 오스만튀르크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모델 배워 고속성장할 것” “지금은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가이드하고 있다. 2001년 경제위기는 터키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2001년 위기는 실질 경제 분야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그 이후 국민들은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릴 이브라힘 악차 국가기획원(SPO) 차관보는 2001년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정책방향의 기본은 ‘경제’라고 강조했다. 국가기획원은 경제발전, 경제개혁의 전략을 수립하는 기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부터 터키의 SPO와 ‘한-터키 지식공유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한국의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자는 취지다. 그는 “SPO가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며 “한국이 짧은 시간에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처럼 우리도 하루빨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그는 “EU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 경제 등 그동안 잘못 정착된 정책들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며 “2002년 이후 정착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과 맞물릴 때 경제는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안정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2002년 사상 처음으로 단일 정당에 의해 정부가 구성됐다”며 “앞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경제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어난 오일 가격상승도 터키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최근 에너지를 둘러싼 분위기가 터키에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터키가 가진 지리적인 이점 및 중앙아시아와 중동 국가들과 가진 문화적 동질감으로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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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벨트로 둘러싸인 터키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교통체증과 사고 위험을 이유로 최근 러시아에 터키를 종단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제안했고, 현재 이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라크 북부에 다량으로 묻혀 있을 가스 역시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미국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터키는 이미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터키 국영석유회사인 TPAO의 무라트 울루(Murat Ulu) 기획국장은 “러시아, 카스피해, 중동을 포함해 근처에 있는 항구 중 가스액화시설을 갖춘 곳은 터키의 제이한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터키가 유럽으로 향하는 에너지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히 오일의 수송만이 아니다. 또다시 지도를 보자. 터키 주변에 있는 나라 중 서쪽의 유럽을 제외하면 제조업 기반이 갖춰진 곳이 거의 없다. 중동,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주변의 오일 붐을 타는 나라들은 오일 달러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최근거리 국가가 바로 터키다. 연간 2000만 대의 TV를 생산하고, 세탁기, 냉장고 등을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터키는 그런 면에서 완전히 차별화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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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가입 통해 내부 개혁 박차 이런 외부적 요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정치적 안정에 따른 일관된 정책의 효과다. 2002년 11월에 출범한 현정부(AKP)는 모처럼 단일정권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집권 뒤 경제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EU 가입을 터키의 당면목표로 내걸고 국민의 힘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80년 이후 매년 60~100%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던 터키 경제는 2004년에 9.32%로 30년 만에 한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달성했다. 경제성장률 역시 2002년 7.9%를 시작으로 2004년 9.9%, 지난해 5.0%로 탄탄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주기적인 경제위기 발생의 원인인 정치불안, 포퓰리즘적 정책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의 스티브 비데시(Steve Bideshi) 터키 지사장은 “단일 정부가 이끌어가고 있어 경제정책이 안정돼 있고 ROE(자기자본수익률)가 높은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가 안정돼 더욱 매력적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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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개혁, 중국과 경쟁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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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델 배워 고속성장할 것” “지금은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가이드하고 있다. 2001년 경제위기는 터키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2001년 위기는 실질 경제 분야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그 이후 국민들은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릴 이브라힘 악차 국가기획원(SPO) 차관보는 2001년 외환위기 이후 모든 정책방향의 기본은 ‘경제’라고 강조했다. 국가기획원은 경제발전, 경제개혁의 전략을 수립하는 기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말부터 터키의 SPO와 ‘한-터키 지식공유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한국의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자는 취지다. 그는 “SPO가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배우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며 “한국이 짧은 시간에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처럼 우리도 하루빨리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그는 “EU 가입 협상이 시작되면 경제 등 그동안 잘못 정착된 정책들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며 “2002년 이후 정착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과 맞물릴 때 경제는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안정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2002년 사상 처음으로 단일 정당에 의해 정부가 구성됐다”며 “앞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경제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어난 오일 가격상승도 터키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최근 에너지를 둘러싼 분위기가 터키에 긍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터키가 가진 지리적인 이점 및 중앙아시아와 중동 국가들과 가진 문화적 동질감으로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터뷰ㅣ하릴 이브라힘 악차 국가기획원 차관보 | ||
“한국 모델 배워 고속성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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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 ||
터키족이 카스피해를 지나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070년께다. 1299년 셀주크 터키의 한 장수인 ‘오스만’이 오늘날 부르사(Bursa)라는 도시에 수도를 정하고 최초의 터키 국가를 건립하였으며 추후 영토를 확장하여 ‘오스만 제국’으로 확대되었다. 오스만 튀르크는 점차 세력을 확장, 154년 후인 1453년에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유럽 땅에 위치한 콘스탄티노플성을 함락해 약 11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다. 이러한 정복 사업의 계속적인 성공으로 오스만 제국은 1683년 절정에 달한 영토의 확장으로 빈 근처에서 이란 국경까지,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페르시아만 지역의 북부 해안지대와 홍해 지역을, 아프리카에서는 모로코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전역을 통합했다. 또 흑해 연안을 모두 정복하여 수도인 이스탄불의 안전을 도모했다. 제국 말기에 세워진 돌마바흐체 궁전(1842~53년 건설)은 오스만 튀르크의 영화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대 최고의 제국이었던 돌마바흐체궁에는 프랑스산 가구, 이탈리아산 샹들리에, 영국산 유리, 중국산 도자기 등 세계 최고의 제품들이 들어와 있다. 오스만 튀르크의 것이라곤 바닥에 깔린 카펫뿐이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 측의 패배로 끝나자 동맹국이었던 오스만 제국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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