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이트는 아직 살아있다
Freud in Our Midst 늘 그렇듯이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사의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우리는 파멸을 당하면서도 자신들끼리도 파괴하는 비이성적인 인간들에게 둘러싸였다. 우리의 운명은 반성할 줄 모르는 지도자들 수중에 있다. 베스트셀러 자서전에서 기술한 내용과는 달리 별다른 고생 없이 자란 사기꾼 작가들은 우리의 문화를 납치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울먹이며 반성하는 체하는 자서전 저자에게서 환멸을 느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순간 어둠 속에서 낯익은 모습이 눈에 띈다. 냉소적이고 엄숙한 표정의 그 인물은 근심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삶의 고통이 완화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의료 기계 속에 머리를 집어넣거나 알약을 복용한다. 또는 TV 쇼에 출연해 과거를 고백하면서 마지막 TV 광고가 나오기 전에 고통이 치유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걸린 질병의 정체조차 모른다. 그렇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얘기다. 나치에 쫓겨 사랑하는 빈(오스트리아)을 떠난 뒤 1939년 런던에서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우리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프로이트 말이다. 그는 정신의 새로운 광대한 영역인 무의식을 탐구한 이론가였다. 무의식은 인간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지하감옥이다. 그 기억들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절규하면서 가끔 꿈·말 실수·정신질환 등을 통해 의식세계로 탈출해 나온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이 인종 배경이나 가정 환경이 아닌,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된다고 통찰한 철학가였다. 또 정신분석이라는 독특한 치료법을 창안한 정신치료 전문가였다. 정신분석은 혁명적인 개념을 발전시켰다. 분석이 가능한 질병은, 인류의 시초부터 시작된 ‘말하기’(talk) 방법만으로도 치유된다는 개념이다. 기도·제물·퇴마의식 혹은 약물·수술·섭식의 변화가 아니라, 동정적인 전문가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는 말하기 작업만으로. 그런 개념은 의학 기술적 치료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심정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매년 산더미처럼 처방되는 프로작(우울증 치료제)도 그 개념을 매장하지는 못했다. 오늘날 1주일에 4일씩 정신분석 전문가의 소파에 누워 치료받기를 원하는 환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각종 말하기 요법(융·아들러식의 분석법, 인지 행동 요법, 정신역학 요법 등)의 엄청난 확산은 프로이트식 개념의 영속적인 힘을 증명한다. 프로이트는 한 세기 동안 인류 문화를 사로잡아온 보통 사람들의 성 담론을 만들어냈다. 프로이트가 없었다면 우디 앨런은 엉터리이고, 토니 소프라노는 단순한 깡패에 불과하다. 또 오이디푸스는 존재해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없었다. 그리고 만찬 참석자들은 조지 부시의 장남(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그토록 사담 후세인을 파멸시키려고 기를 쓰는 이유도 설명하지 못하리라(이것은 프로이트가 죽은 지 한 세기나 지난 나폴레옹을 분석하면서 개발한 사교형 대화법의 일종이다. 프로이트의 결론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맏형 조제프와의 경쟁의식이 삶의 큰 원동력이었다. 이는 나폴레옹이 조세핀이라는 이름의 여성에 심취한 점, 그리고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의 발자취를 따라 이집트를 침공한 이유도 설명해준다). 오늘날 미국에서 프로이트는 과학자보다는 문필가로서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정신 분석을 훈련시키는 40여 개 연구소 밖에서는 그렇다. 사실 지난해만 해도 뉴스위크는 오늘날까지 계속 지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윈과 달리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이미 한물 간 철학자로 뭉뚱그려 다뤘다. 따라서 속죄하는 뜻에서, 그리고 5월 6일 프로이트 탄생 150주년에 맞춰 예정된 각종 강연·세미나·출판의 쓰나미에 앞서 고지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뉴스위크는 이렇게 화두를 던진다. 프로이트는 죽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그를 아직 살아있게 만드는가? 그에게 아직도 생명이 남아있다는 자체가 놀랍다. 그의 이름을 검색엔진에 쳐넣으면 비난의 글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비난은 그가 19세기에 자신의 저술을 처음 출간한 때부터 시작됐다. 단순히 그의 이론이 틀렸다는 이유(추종자들도 그가 많은 점에서 틀렸을지 모른다고 시인한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비판이 제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추종자들은 프로이트식 설명을 갖다 붙인다. 베일러 의대의 정신의학자 글렌 O 개버드는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은 매우 위협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알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힘들에 이끌려 움직인다고 암시한다. 이는 인간의 나르시시즘(자아도취)에 심각한 타격이다.” 프로이트에 맞선 저항은 일찍이 그의 핵심 개념 중 하나에 아연실색한 중산층이 이끌었다. 어린이들이 성적(性的) 환상 속에 살아간다는 개념이다. 뉴스위크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성인들은 그 이론을 76 대 13으로 거부했다. 서양 문화만 프로이트의 이론에 분개하지 않았다. 지난 2월 뉴요커지 데이비드 렘닉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하마스 지도자 셰이크 나예프 라주브는 이스라엘을 파멸시켜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덕을 파괴한 장본인 프로이트는 유대인이었다.” 여권운동가들도 프로이트를 거부했다. 그들은 남근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반박해왔다. 여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생각(요컨대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이라는 생각)들이 틀렸다는 지적은 이제 보편적으로 수긍된다. 그에게 동조적인 전기작가 피터 게이는 이렇게 농담을 던졌다. “만일 프로이트가 하버드대 총장이라면 사임해야 할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의 평판이 최저로 떨어진 시점은 1990년대 초인 듯하다. 당시 TV 토크쇼에는 많은 여성이 출연해 자신들의 무의식에서 끌어낸 어린 시절의 가정 내 성폭행 체험을 늘어놓곤 했다. 프로이트로선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프로이트는 본인도 인정했듯이 일평생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내세우곤 했다. 피고가 된 부모와 형제들 편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탓했다. 그가 초기 저술에서 그릇된 관념(실제로 일어난 성폭행에 관한 억압된 기억이 성인 신경증의 보편적 원인이라는 주장)을 전파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겼다는 비판이었다. 원고 측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집단적 압력에 비겁하게 굴복했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회복된 기억은 실제로는 어린 시절의 성적 환상에 불과하다는 프로이트의 최종 결론을 겨냥한 비난이었다. 당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을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의에게 보내는 일은 유대인을 나치에 보내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꼬았다. 프로이트의 평판은 이제 겨우 회복되기 시작했다. 억압된 기억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미 의회 도서관의 프로이트 관련 자료들(상당 부분은 수십 년 뒤에나 공개될 예정이었다)이 학자들에게 공개됐다. 덕분에 프로이트 비판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할 많은 자료를 확보해 간다. 그들은 프로이트의 정통 ‘치료법’이 실은 희망적 기대 내지 의도적인 조작의 산물에 불과하며, 그의 이론은 순환논리의 함정에 빠졌다고 주장해왔다. 엄격한 실험과 두뇌촬영술로 프로이트 심리학의 타당성을 입증하려는 노력은 아직 초보 단계다. 정신과의사이자 ‘프로작에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Prozac)의 저자인 피터 D 크레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이트 이론에 타당성이 없는 듯하다.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일종의 배신 행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근 선망, 유아 성욕 등 모든 가설이 잘못됐다.” 현재 크레이머가 집필 중인 프로이트 전기는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프로이트가 어느 정도까지 이런 폭로를 견뎌낼까? 시카고대의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인 조너선 리어는 프로이트의 평판을 지켜내는 ‘핵심 개념’을 인정한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하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그 갈등은 적극적으로 억압된 본능과 욕망에서 비롯되는 만큼 의식에서는 인지되지 않는다(그런 욕망과 본능에 부모와 성관계를 갖고 싶은 욕구가 포함된다고 굳이 믿을 필요는 없다). 우리의 자의식이 그런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갈등들이 온갖 상징으로 위장된 채 의식 표면으로 떠오를 때 이를 확인하고 풀어주는 작업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그 밖의 개념들은 논란의 여지를 허용한다. 정통 프로이트 학파의 추종자들도 그의 이론체계가 모든 세부사항에서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은 더 큰 그림을 얘기한다. 미시간대 심리학자 제임스 핸셀은 “프로이트 이론은 많은 점에서 틀렸지만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인간사를 관찰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미 정신분석협회 회장으로 내정된 K 린 모리츠 세인트루이스대 의대 교수는 “프로이트는 예컨대 인간의 행동과 사랑의 깊은 의미와 동기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이다. 비록 그런 도움이 과학자보다는 시인에게 적합한 역할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인생에서 바로 그 깊은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3400명(1998년의 3200명에서 조금 늘었다)으로 구성된 모리츠 박사의 정신분석협회 회원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미 정신분석진흥협회의 회원 1500명에게 도움이 된다. 이와 비교해 미 정신의학협회의 회원 수는 3만3500명이나 된다. 이들 정신과 의사는 정신질환을 치료하도록 훈련받은 의사다. 대개 그들은 자신들에게 보내진 환자들을 약물요법 위주로 치료하거나, 병원·클리닉에서 중환자를 다룬다. 한편 의학 학위 없는 심리요법 전문가들을 대표하는 미 심리학회는 회원은 무려 15만 명이나 된다. 뉴스위크 설문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약 20%는 어떤 형태든 치료나 상담을 받았던 경험이 있으며, 4%는 현재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답했다. 특정 질환의 경우 약물요법이 두뇌 시냅스(신경세포 연접부)에 직접 작용한다면 정신분석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치료 효과는 환자마다 다르며, 일부 환자에게는 약물 치료와 말하기 요법을 병행할 때 최선의 효과를 보인다. 모리츠는 사춘기의 ‘경계성 성격 장애’ 같은 질환에는 정신분석이 최상의 치료법이라고 주장한다. 프로이트 자신도 한동안 약물요법을 옹호했었다. 다만 그가 권장한 약물이 코카인이었다는 점이 유감이다. 이는 아직도 많은 미국인에게 프로이트 하면 떠오르는 생각 중 하나다. 정신분석의 쇠퇴는 의료보험회사들이 매달 2000달러가 넘는 끝없는 치료비 부담을 꺼린 탓이 크다. 1950년대만 해도 정신분석은 사회적 지위와 세련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요즘엔 성형수술이 이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에 충실한 삶을 영위할 만큼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분석은 아직도 귀중한 ‘사치품’이다. 개버드 교수는 “간단한 치료나 약품으론 효과를 못 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해주길 원하며 단순한 증상 치료를 뛰어넘어 자신의 진실을 찾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모리츠 교수의 환자 한 명의 예를 보자. 40대 기혼 여성인 그녀를 우리는 ‘도린’이란 가명으로 부르겠다. 프로이트의 가장 유명한 환자 중 하나인 ‘도라’라는 가명의 여성을 기리는 의미에서다. 도린은 프로이트가 빈에서 보낸 초기 시절 상담한 많은 환자의 전형적인 유형에 속한다. 교육받은 중상층 여성으로 너무도 조용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요즘 환자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증상은 모호했고, 특별한 이상도 없었다. 노이로제(신경증)는 더 이상 히스테리성 시각 상실이나 마비를 수반하지 않기도 한다. “괜찮은 삶을 사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그녀는 직장에선 늘 주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일이 벅차도 기꺼이 맡았다. 그러나 가족들에겐 자신의 쾌활함과 유머감각을 억누르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매주 4시간씩 4년간 치료받을 필요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치료는 지금도 계속된다). 그러나 정신분석 치료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결과를 안겨줬다. “정신분석은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되돌아보게 하며 자신의 태도·믿음·행동의 근본 뿌리를 이해하도록 해준다. 나는 훨씬 더 행복해졌다. 이는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며 직시하기 힘든 자신의 여러 부분들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모리츠 박사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해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물론 프로이트가 이용하는 기법의 골자다. 그는 내적 발견을 해나가는 과정에 심취한 학자였다. 이 점은 프로이트가 1901년 출간한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에도 잘 나타나 있다. 프로이트는 로마시대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시에 나오는 라틴어 단어 ‘aliquis’[‘누군가’란 뜻. 영어론 ‘someone’에 해당하며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쓰임]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젊은 남성과의 만남을 그 책에 써넣었다. 그런 순간을 프로이트가 놓칠 리 없다. 하필이면 그 낱말만 기억을 못 하는 이유가 모호하다는 점이 더욱 흥미를 끌었다. 만일 환자 자신이 그런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안다면 프로이트는 그런 사람을 붙들고 정신분석을 시도하진 않았으리라. 프로이트는 자신의 주무기인 자유연상법(free association)을 활용해 환자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자유연상법은 어떤 말이 주어지면 그 말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연상해 나가도록 하는 정신분석의 한 기법이다. 그 과정에서 환자는 ‘aliquis’란 단어에서 ‘liquid’(액체)와 ‘blood’(피) 등을 떠올렸다. 프로이트는 여러 분석 단계를 거친 뒤 결국 그 젊은 남성은 자신과 내연 관계의 여성이 생리를 걸렀다는 사실을 우려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위 가공할 정신분석의 세계라 할 만하다. 그러나 프리랜서 역사학자 피터 스웨일즈는 이견을 제시했다. 그런 남성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 낱말을 기억하지 못한 사람도 실은 프로이트 자신이었으며, 프로이트가 걱정한 여성도 다름 아닌 자신의 처제인 민나 베르네이스였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만일 스웨일즈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도 프로이트의 천재성에 등을 돌려야 할까? 리어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겐 전혀 관계없다. 프로이트의 입장이 됐다면 누구도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그런 문제는 [프로이트의 업적에 관한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만일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처제와 놀아났다 해도 빛의 속도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 바뀌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로 프로이트다! 그는 자기 이론의 많은 부분을 바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서 끌어낸 사람이다. 프로이트는 후기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플라톤이자 세속판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끝없이 우리를 매료시킨다. 심지어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프레데릭 크루즈 명예교수(영문학)처럼 그를 비난한 덕택에 유명해진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크루즈 교수는 프로이트에의 관심이 그칠 줄 모르는 이유를 신랄하게 설명했다. “인문학자들은 서로 연결된 상징과 손쉬운 인과관계로 가득한 프로이트의 세계에 들어가면 자신의 논문이나 책에 쓸 만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똑똑하고 튀어 보이게 해줄 그런 소재 말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굳이 나쁘기까지 할까? 누구든 ‘해석’을 ‘상징 해석’으로 부름으로써 자신을 똑똑하게 보이게 해줄 구실이 간혹 필요하지 않을까? 정신과 의사 크레이머는 T S 엘리엇의 몽상적 상징주의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리너’에 나오는 ‘감정전이’(transference)에서 프로이트의 흔적을 찾는다. ‘감정전이’란 환자가 부모 중 한 명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정신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치료사에게 느끼는 현상을 가리킨다. 크레이머는 “우리는 누군가를 ‘수동-공격형’이라고 부를 때 프로이트를 들먹인다”며 “100년 전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진 않는다. 의식을 연구하는 학자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의 패트리셔 처치랜드 교수는 “셰익스피어는 정신분석학에 나오는 어휘를 전혀 쓰지 않고도 인간 본성의 온갖 측면을 다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정신분석의 언어는 신경정신과학 용어로 대체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엔도르핀’이란 전문용어는 이제 일반 명사로 바뀌었다. 또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전두적’(frontal)이라고 부른다. ‘frontal’은 충동 억제를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frontal lobe)에서 따온 표현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상징을 통한 해석은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는 맞지 않다.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요구하는 본능적 에너지를 일컫는 이드(id)가 지배하는 정치·스포츠·경제 세계에서 프로이트는 경제적 효용의 정 반대편에 서 있다. 치료 효과도 5년 뒤에나 나타날 뿐 아니라 남에겐 전혀 상품 가치가 없는 자신에 관한 지식만 깊어질 뿐이다.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 개전 결정을 재고하려고 정신분석을 받진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뉴욕대 메디컬 스쿨의 케리 J 설코위츠 교수(정신과)는 그 말은 정신분석을 모독하는 말이라며 뉴욕 타임스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부시의 말 속에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 내포됐다고도 비꼬았다. 기업의 CEO와 이사회의 고문으로도 활동 중인 설코위츠 교수는 이런 태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매일 CEO들의 머릿속에 약간의 자기성찰을 불어넣으려 노력한다. “경제계에선 ‘실행’과 ‘행동’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나로선 실행과 자기성찰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음을 그들에게 설득하려 애쓴다”고 그는 말했다.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인 세계에 관한 프로이트의 통찰은 기업에도 적용 가능하다. 회사에선 고위 중역들조차 더러 ‘감정전이’를 사무실로 끌고 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때 부모에게서 받기를 갈망한 인정을 상사에게서 받으려 애쓰는 경우다. 집단역학과 형제자매간의 경쟁에 관한 프로이트의 저술은 사려깊은 CEO에게 큰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설코위츠는 덧붙였다. 그러나 책의 저자를 구체적으로 밝히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프로이트란 이름을 좀처럼 들먹이지 않는다”고 교수는 말했다. 방 구석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는 프로이트가 초조해졌는지 입에 문 시가 끝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듯하다. 미국인들이여! 돈만 아는 인간들아, 당신들 때문에 나는 문명 자체의 미래를 걱정했지. 기회가 있을 때 말해줬어야 했는데. 위대한 유럽 문명에 뿌리를 둔 프로이트는 1909년 잠시 방문한 미국에 관해 쓴 글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가 쓴 우울한 내용의 저서 ‘문명과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에 등장하는 몇몇 퉁명스러운 문장을 보면 그의 태도는 분명하다. 프로이트 자신이 이미 노년에 접어든 1930년 출간된 그 책은 사회적 계약에 관한 심리학적 성찰을 담았다. 예컨대 문명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과 편안함을 얻는 대신 인류는 공격과 성적 지배의 타고난 본능을 포기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보기에 이 거래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거래였다. 그런 본능은 강력하며 이를 억누르면 무의식적 갈등이 유발된다. 리어 교수는 이 무의식적 갈등을 프로이트 사상의 “핵심 개념”이라고 표현했다. 무의식적 갈등은 우리가 이름을 붙이지도, 결코 치료하지도 못하는 질병의 근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런 갈등은 인간의 존재 조건(human condition)에 내재됐기 때문이다. 리어는 프로이트의 인기가 1990년대 초 크게 떨어진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시는 바로 너도나도 최면술 등을 이용해 기억을 되찾는 일이 기승을 부렸고, 냉전 종식 이후 낙관론이 고조되면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역사의 종언’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다. 후쿠야마는 소련 해체로 전 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길이 열린다고 예언했다(그러나 그런 생각은 2001년 어느 쾌청한 날 아침 산산조각났다). 리어 교수는 “우리는 늘 이런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진다”고 말했다. 역사의 종언은 영속적인 인간 갈등의 역학이 끝났다는 신나는 희망의 표시였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강변할 듯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이 또 한 명의 환자를 결코 치료하지 못한다 해도 귀담아 들을 만한 말이다. With ANNE UNDERWOOD 장병걸·강태욱 cbg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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