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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기아차 사장] “남자가 일 말고 할 건 운동뿐”

[정의선 기아차 사장] “남자가 일 말고 할 건 운동뿐”

"아-.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에는 거의 안 알려졌지만 정몽구 회장이 외아들인 정의선 사장에게 줬던 결재권한을 다시 빼앗더라고요. 기업인이 자식 경영수업을 저토록 철저하게 시키는구나 생각을 했죠.” 현대·기아차그룹 고위 인사의 전언이다. 정의선(37) 사장은 2005년 3월 기아자동차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아버지인 정몽구(68) 현대·기아차 회장이 본격적인 경영권을 이양한 첫 조치였다. 그는 바로 직전까지는 변변한 결재권한이 없던 현대모비스 부사장이었다. 따라서 기아차 대표이사로서 처음 제대로 된 결재권한을 갖게 된 셈이다. 당초 정몽구 회장은 정 사장에게 ‘대표이사 부회장급 결재권한’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석 달 뒤 ‘대표이사 사장급 결재권한’으로 축소시켰다는 얘기다. 이는 정 회장이 아들의 경영수업을 위해 취한 다각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고 그 인사는 설명했다. 정 회장은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비자금 문제로 사태가 커진 글로비스를 정 사장에게 맡겼다. 현대차 관계자는 “글로비스는 이주은 사장이 있었지만 사실상 최종 결재권한은 정 회장이 아닌 정 사장이었다”며 “이 회사는 정 사장의 실질 소유기업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글로비스는 2001년 정 사장이 최대주주로 59.85%, 정 회장은 40.05%를 투자해 설립된 회사다. 이와 비슷한 회사가 바로 건설회사인 엠코다. 엠코도 2002년에 정 사장 25.06%, 정 회장 10.00%로 지분 투자해 만든 회사다. 정 사장이 최대주주다. 정 회장은 이같이 왕자의 난(2000년) 끝에 어렵사리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 다음해인 2001년부터 일찌감치 외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훈련을 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정 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집안 얘기를 들어보자. 현대가에 정통한 한 인사는 “아버지(정 회장)는 외아들인데도 매우 엄하게 키운 것 같았다”며 “예컨대 가족회의 분위기를 보면 정 사장은 거의 발언권이 없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또 “정 사장은 착하고 온순하게 성장했는데 반대로 누나들은 매우 활달했다”며 “엄한 아버지, 내 편만 들어주는 엄마, 활달한 세 명의 누나와 함께 막내아들로 큰 가족 분위기를 상상하면 이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 정 회장이 딸들까지 대략적인 재산 분할을 해주고 교통 정리한 것도 이 같은 가족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정 사장은 아버지를 워낙 어려워하는 반면 장인인 강원산업의 정도원(59) 회장을 편하게 생각해 자주 찾아와 인생상담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박태준 전 총리의 장남 박성빈씨와 동서 간이기도 하다. 정 사장은 ‘어눌하지’ 않다. 무뚝뚝하지도 않다. 아버지(정몽구 회장)와 작은아버지(고 정몽헌 회장)가 정면 승부한 ‘왕자의 난’ 때 그는 갓 서른을 넘긴 예비경영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3부자(정주영 명예회장·몽구 회장·몽헌 회장) 동시 퇴진’ 발표로 언론이 시끄럽자 똑소리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명예회장님이 당초 생각하셨던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삼촌이 건설과 증권 등을 맡고 자동차는 이쪽(몽구 회장)에 맡기는 게 당초 계획 아니었나. 집안에서도 그러면 될 것인데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3부자 동시 퇴진 발표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서 불만이다. 장관들도 무슨 잘못만 하면 바로 물러나는데 그게 해결책은 아니지 않은가. 전문경영인들을 앞에 내세우되 1년 동안이든 얼마간은 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해결한 뒤 물러나는 방식이 옳다고 본다.” 이후 현대그룹 위기에 대한 가신 경영인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제법 오너 3세답게 의젓하면서도 따끔한 코멘트를 날렸다. “주위 사람들(가신 경영인)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우리(현대家)에게도 책임이 있다. 사람을 잘못 쓴 건 우리 집안의 잘못이다. 그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 사태가 도대체 국가를 위해 그러는 것인지, 회사를 위해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이익치 회장만 해도 (현대)증권 회장을 하고 있는데 무엇이 아쉽겠느냐. 나는 그 이유가 질문 사항이다.”

글로비스 실질적 주인은 정 사장 정 사장은 휘문고·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9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97년 샌프란시스코대에서 MBA를 딴 뒤 곧바로 일본계 종합상사인 이토쓰 상사에 입사해 2년간 근무하다 귀국했다. 경영수업을 받으러 온 것이다. 그는 95년 잠시 귀국해 친구의 사촌동생인 강원산업 집안 딸인 정지선을 아내로 맞았다. 현재 열 살짜리 딸과 일곱 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다. 운동은 테니스와 등산, 수영을 좋아한다. 골프는 꼭 쳐야 할 때만 친다. 그는 사석에서 “남자가 일 말고 운동밖에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운동은 역시 땀을 흠뻑 흘리는 게 제격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기아자동차 사장이 된 후에는 친구들보다는 사촌지간인 정지선(35·정몽근 회장 아들, 정 사장의 부인인 정지선씨와 동명이인) 현대백화점 부회장을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보다 두 살 아래인 정지선 부회장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사 출신이다. ‘둘 다 미국 유학파에 연배도 비슷해 서로 통하는 게 많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주변인들의 추측이다. 또 정 사장은 삼성그룹의 이재용 상무와는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유명하다. 정 사장이 70년생, 이 상무가 68년생이니 이 상무가 두 살 위다. 두 사람은 평소 애니콜 휴대전화와 자동차 신모델이 나올 때마다 서로 상대방에게 평가를 부탁하는 등 신제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정주영·정몽헌·박정구·박성용 회장 상가에 나란히 나타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재계의 2·3세 모임 등에는 얼굴을 잘 내밀지 않는다. 다음은 정 사장의 휘문고 동창 중 한 명이 전한 말이다. “의선이는 귀가 얇은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 말을 잘 듣는 편이죠. 이렇다 보니 의선이 친구들이 로비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경기도 소재의 중소업체 사장이 의선이를 소개받고 싶어서 사방에 수소문했죠. 그런데 나타난 사람이 바로 의선이 친구를 안다는 겁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은 당시 현대산업개발에 근무했지만 얼마 있다가 의선이 회사인 엠코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죠. 그래서 이 업체 사장은 그에게 의선이를 소개시켜 달라고 2억원이나 준 겁니다. 결국 의선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친구도 못 만났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사기죄로 현재 감옥에 가 있는 겁니다. 에피소드지만 의선이 친구를 사귀는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거죠. 더 재미있는 일이 있죠. 의선이는 자기회사에 친구 등을 암행감사로 한두 명씩 심어놨어요. 현대·기아차 내에서도 몇 사람 만이 아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의선이에게 주기적으로 회사 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해주죠. 이런 사람 중에는 현재 여당의 유력 정치인 조카도 있어요.” 이는 정 사장 경영 스타일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정 사장의 업무 스타일은 “말을 아끼며 신중하게 표현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담당 임원을 쩔쩔매게 하기도 한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말이다. 오전 7시 이전에 사무실에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같이 ‘일벌레’로 통한다.

친구들보다 사촌과 더 잘 어울려

▶지난 3월 정몽구 회장(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의선 사장(왼쪽)이 소니 퍼듀 미국 조지아 주지사와 기아차 KMA 투자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정 사장이 실질적인 대주주이면서 그의 입김이 작용하는 건설회사인 엠코를 들여다보면 특이하다. 엠코는 연간 매출이 7000억원이 넘는 큰 건설업체다. 이 정도면 직원이 1500명 이상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엠코 직원은 현재 3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소수정예 직원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직원들은 건설업계에서 최고 대우를 지향하고 있다. 엠코는 대부분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관련 건설공사를 하고 있다. 하청업체들이 엠코와 접촉하려면 우선 부패방지협약서를 써야 한다. 그런 뒤 부사장 앞에까지 가서 서명해야 한다. 건설업계의 한 인사는 “엠코는 감사팀에서 정기적으로 임직원의 동의하에 계좌를 확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부패를 차단하기 위한 이중삼중 장치를 해놓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면 최근에 벌어진 김재록씨 로비사건을 이해하는 데 좋다. “엠코는 건설업계에서 피를 묻힐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서울시 의회에 로비할 일이 생기잖아요. 자신들이 뛰지 않고 하청업체보고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대신 수고한 일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하겠다는 거죠. 김재록씨 로비사건도 그런 게 아닌가요. 김재록씨와 정 사장은 친하게 지내기도 했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경영하지 않았겠어요.”

로비는 하청업체에 맡기는 타입 정 회장은 99년 정 사장을 처음에는 현대정공 자재부 차장으로 입사시켰다. 그러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 회장에게 “의선이가 돌아왔는데 어디에 넣었느냐”고 물어 사실을 전해듣고는 “무슨 소리냐”며 자동차 구매실장을 시키라고 해서 바로 다음날로 자동차 이사로 옮겼다. 이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현대차 내부에는 정공 출신과 현대차 출신 간의 적잖은 갈등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이야 정공 출신인 정 회장의 주도 아래 정공 출신이 득세했지만, 정 사장이 경영수업을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주류는 역시 자동차 출신들이었다. 정 회장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정공부터 차근차근 배우게 할 생각이었지만, 정 명예회장은 손자를 자동차 수장으로 일찌감치 점찍어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전 정 명예회장이 정 사장에게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증거는 또 있다. 그가 휘문고에 다니는 동안 동갑내기 사촌인 일선(현 비앤지스틸 사장, 정 명예회장의 4남인 故 정몽우씨의 장남)과 함께 자신의 청운동 집에서 살도록 했다. 그는 언젠가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늘 훌륭하신 분이라 생각해 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명예회장님을 닮으려 노력하지만 나로서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명예회장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 아니겠느냐.”

정주영 회장이 “현대차로 보내라” 유교적 가풍에 익숙한 정 회장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매우 엄격한 자녀교육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들 의선에게 윗사람 모시는 방법 등 사소한 예의범절까지 일일이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가정교육 때문인지 정 사장은 예의가 바르며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정 사장은 “항간에 나도는 것처럼 회장님(MK)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정 이사(당시 자동차 구매담당)가 회장이 되는 해결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제가 빌 게이츠입니까”라는 답을 하기도 했다. 그럴 능력도 없고 말도 안 된다는 표현이었다. 정 사장은 아버지인 정 회장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언젠가 아버지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표현을 잘 안 하시고 무뚝뚝한 편이다. 요즘(2000년) 바둑책을 보며 바둑을 공부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미국에 있을 때 사주시며 바둑을 배워보라고 권하셨다. 바둑 못 둔다고 혼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6급 정도 될 텐데 아홉 점을 깔고 둬도 지금은 내가 질 것이다.” 그는 왕자의 난이 시작됐던 99년 12월 작은아버지인 고 정몽헌 회장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얘기했다. “작은아버지를 좋아한다. 미국에 오실 때마다 나를 찾아주셨다. 식사도 같이하고 운동(골프)도 같이하면서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하지만 지난해(99년) 12월 미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귀국해 작은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날이 바로 박세용 회장이 현대자동차로 발령나던 날(12월 30일)로 현대 사태가 시작됐을 때다. 이미 그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 의해 무엇인가 준비돼 왔던 것 같다.” 믿을 사람은 아버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즈음 같다. 역시 2000년 왕자의 난이 일어난 직후에 했다는 그의 말이다. “아버지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치밀하고 꼼꼼하신 분이다. 회사를 계속 끌고 가셔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 회장은 아들에 대한 정은 꽤 컸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힘을 많이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과 함께 휘문고를 다녔던 K모씨(회사원)는 “아침마다 의선을 데리러 오는 차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끔 교장과 독대하는 모습도 보여 모두 굉장한 집안의 아들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말했다.

외아들이라 경영권은 ‘보증수표’ 정 사장은 아버지로부터 현장의 중요성을 교육받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공장을 찾는다.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느끼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정 회장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인간 정의선’의 됨됨이를 떠나 ‘경영인 정의선’으로서의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제 막 경영수업 단계를 지났기 때문에 공과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옛날로 치면 세자책봉과 함께 부분적인 대리청정 상태로 보면 되지 않을까. 정 사장은 아버지가 경영권을 거머쥐었던 상황과 매우 다르다. 정 회장의 역사는 치열한 도전의 역사였다. 그 자신은 아버지(정주영 명예회장)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쳤다. AS사업으로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인정받은 정 회장은 컨테이너 세계시장 제패로 아버지로부터 능력을 검증받는다. 그는 90년대 초반 갤로퍼로 또다시 자동차 사업에 대한 소질을 인정받았다. 99년에는 현대차의 대권을 쟁취했고, 2000년에는 경영권 분쟁의 파고를 특유의 뚝심과 돌파력으로 넘었다. 80년대 초 장남인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본의 아니게 장남 역할을 하게 된 정 회장은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쟁취했다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정 회장의 이런 치열한 도전과 경쟁의 역사와는 달리 정 사장은 외아들이라는 숙명 때문에 경영권을 보장받고 있었다. 이번에 검찰이 칼을 휘두르기 전까지 현대차그룹은 차질없이 ‘정의선 체제’가 안착되는가 싶었다. 한동안 언론들은 정 사장에 대한 근황을 기사화하면서 항상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정의선 사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 사장이 2005년 초 기아차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이 같은 꼬리표는 사라지게 됐다. 지난해 5월 27일엔 외부 직함으로는 처음으로 대한양궁협회 9대 회장으로 선출돼 대외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임직원은 물론 재계에서 정 사장이 현대차그룹을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대표이사 선임은 경영수업의 단계를 지나 이제부터 경영 현안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대외적인 메시지다. 그만큼 그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영의 문제였다. 그는 지금 어쩌면 경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너무도 서두른 그룹 경영권 승계 아버지 정 회장은 외아들인 정 사장이 그룹 승계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다 빨리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에게 더 높은 직위와 더 많은 지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분구조상 아직 정 사장이 확실한 후계 구도를 구축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은 마음이 더 급했을 것이다. 2005년 3월 정 사장을 승진시키면서 기아차 대표이사를 맡게 한 것이나 계속해서 지분을 확보하고 가치를 불릴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것 모두 그런 부정(父情) 때문이었다. 정 사장 역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해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서둘러도 너무 서둘렀다. 정 사장은 경영능력으로 시험대에 오르기도 전에 도덕적 심판대에 올랐다. 정 사장은 이번 현대차 비자금 파동의 장본인으로 지목받았다. 경영권 편법 승계로 논란을 겪고 있는 글로비스 등 비자금 조성은 정 사장의 단독 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편법 경영권 승계, 분식회계는 이제 더 이상 처벌을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MBA 출신의 최고 엘리트, 유교적 집안에서 가정교육을 받아 ‘예절 바른’ 3세 기업인이 30대 젊은 나이에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정 회장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것을 아들에게만큼은 제대로 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되레 아들에게 화를 끼친 꼴이 돼버렸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 1970년생 1999년 현대자동차 입사 2003년 현대차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 2003년~현대모비스 부사장 2005년 3월~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정의선 사장 사석에서 한 말을 보면 “내가 빌 게이츠인 줄 압니까?”(현대자동차 이사 시절, 곧 사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아치며) “장관들도 무슨 잘못만 있으면 물러나는데 옳지 않다.” “사람 잘못 쓴 건 우리 집안 잘못이다.”(현대사태 당시 가신 경영인에 대해) “정주영 명예회장님(할아버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 아니겠느냐.” “정주영 명예회장님을 닮으려 노력하지만 나로서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남자가 일 말고 운동밖에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운동은 역시 땀을 흠뻑 흘리는 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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