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A에 울고 웃는 기업

M&A에 울고 웃는 기업

인수·합병(M&A)은 양날의 칼이다. M&A 결과에 따라 기업이 단숨에 일어서기도 하고, 한순간에 쓰러지기도 한다. 그리 길지 않은 국내 M&A 역사 속에서도 숱한 기업이 M&A에 울고 웃었다.
기업의 성장 방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자체 기술 개발과 영업 확대 등으로 사세를 키우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하나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나 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짧은 시간에 도약하는 미국식 성장 전략을 들 수 있다. 시스코·제너럴 모터스(GM)·제너럴 일렉트릭(GE)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국내 기업은 지금까지 미국식 성장 방법인 기업 M&A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M&A에 능한 기업은 뭔가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이런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기업들은 M&A를 구조조정, 사업 시너지 효과 증대, 새로운 사업 진출, 기술 획득 등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정부 주도의 빅딜 후유증이나 벤처 비리 등으로 얼룩지기도 했지만 M&A는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됐다. 증권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5년에 코스피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모두 121건의 M&A가 이뤄졌다. 2004년보다 44%나 늘어난 수치다.

M&A로 웃다 =
유공·한국이동통신·신세기통신 등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운 SK는 국내 M&A 역사에서 성공 사례를 많이 남긴 대표적인 회사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원 수석연구원은 “SK는 공기업 민영화를 변신의 기회로 삼아 기업의 주력을 정유와 이동통신으로 바꾸면서 한국의 대표 그룹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SK는 여전히 M&A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콘텐트 확보에 나선 SK텔레콤은 지난해 서울음반과 IHQ 등을 인수했다. SK(주)는 서린동 본사 사옥을 팔면서까지 인천정유를 사들였다. 이들 회사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SK의 ‘M&A 성장사’를 잘 볼 수 있는 회사가 있다. 싸이월드로 유명한 SK커뮤니케이션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2년에 라이코스, 2003년 싸이월드, 2005년 온라인교육업체 이투스, 2006년 블로그사이트 이글루스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대기업 포털은 실패한다’는 속설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과 성장 잠재력을 믿은 경영진이 싸이월드의 인력과 서버 등을 보강하고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SK텔레콤·라이코스코리아·싸이월드 등 ‘한 지붕 여러 가족’도 잘 추스른 덕이었다. 특히 평가·인사·보상 등의 시스템은 대기업의 체계적인 잣대를 도입하면서도 벤처다운 창의성과 자유로움이 넘치도록 유도해 회사를 안착시켰다. 지난해 1,600억원의 매출과 20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SK커뮤니케이션즈는 올해 들어 야후코리아 인수설이 퍼지면서 포털업계 M&A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너 일가의 비리와 경영권 다툼으로 망신살이 뻗치긴 했지만 두산도 SK 못지않게 M&A로 일어선 기업이다. 김영진M&A연구소의 김영진 소장은 “한국중공업과 대우종합기계 인수 등으로 그룹의 주력을 소비재에서 자본재로 바꾼 두산만큼 극적으로 변신한 기업도 드물다”고 평가했다. 소비재 사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두산은 외환위기 직전부터 알짜 기업과 지분을 팔아 재계를 놀라게 했다. 1996?7년에 당시 잘나가던 코닥·네슬레·3M 지분을 매각했고, 97년 말에는 코카콜라 영업권도 넘겼다. 98년에는 그룹의 간판격인 OB맥주를 벨기에 인터브루와의 합작사로 바꾸고 나중에는 지분도 대부분 넘겼다. ‘파는 M&A’로 실탄을 마련한 두산은 ‘사는 M&A’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 2001년에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두산은 2003년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과 합병 후 두산산업개발로 변경)을 인수한 데 이어 대우종합기계도 사들였다. ‘제값을 치르고 산다’는 등의 독톡한 M&A 원칙으로도 유명한 두산은 10여 년 동안의 M&A로 지난해 매출 13조원, 영업이익 1조원이란 창사 이래 가장 좋은 실적을 올렸다. M&A를 여전히 중요한 성장 전략으로 삼고 있는 두산은 대우건설도 인수해 플랜트 설계(두산중공업)-건설(대우건설)-중장비(두산인프라코어)로 이어지는 중공업 수직계열화를 완성한다는 욕심이다.

M&A로 울다 =
이른바 ‘빅딜’의 산물인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은 국내 M&A 역사상 가장 큰 실패 사례로 꼽힌다. 과도한 차입과 중복 투자를 줄이고 시너지 효과를 내서 세계 2위의 반도체업체로 키운다는 목표였지만, 합병 회사인 하이닉스는 LG반도체에 지급해야 하는 인수대금 2조6,000억원 등 모두 6조5,000억원의 자금 부담을 안고 출발해 뒤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제품 수명 주기가 짧은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방식과 생산 시스템이 다른 두 회사를 합친 것도 문제였다. 궁합이 맞지 않은 결혼인 셈이다. 합병 후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하이닉스는 곧바로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메모리 부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업부를 파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고 말았다. M&A가 전문인 맥스창업투자의 신용한 사장은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좌지우지된 탓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말했다. 94년 12월 해태전자의 인켈 인수도 한국 M&A사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음료·주력하던 해태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당시 오디오업계 1위 업체인 인켈을 인수했다. 해태는 95년 무선전화기 업체인 나우정밀을 또 인수한 뒤 96년 11월 나우정밀을 흡수 합병하면서 그 해 50억원의 흑자를 내기도 했다. 해태는 그러나 이듬해인 97년 11월 최종 부도처리되고 만다. 인켈을 인수한 직후 공장 부지 매각 등 자구 노력을 게을리했던 데다 인켈이 안고 있던 우발 채무 문제도 불거졌기 때문이다. 해태전자는 97년 1,391억원, 98년 4,487억원, 99년 1,841억원 등 해마다 막대한 적자를 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M&A는 했지만… =
M&A의 성공 실패 여부를 짧은 시간에 가늠하기는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원 수석연구원은 “M&A 뒤 한두 해 적자를 보더라도 나중에 흑자로 돌아서는 기업도 많아 섣불리 실패로 규정하기 어려워 요즘에는 ‘M&A 실패’란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주회사로 변신하고 있는 CJ(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CJ(주)와 계열사들은 지난 2000년 이후 모두 24건의 M&A를 성사시키며 1조2,5000억원 정도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CJ의 지난해 매출액은 2004년보다 3.32%, 순이익은 13.99% 줄어드는 등 M&A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또 CJ의 주가 상승도 2000년 초반 9만6,000~9만7,000원대에서 4월 초 11만~12만원대로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43%)에 크게 못 미쳤다. CJ 관계자는 그러나 “주력 사업을 식품, 엔터테인먼트생명공학, 신유통 등 4개 부문으로 재편하고 CJ(주)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중”이라며 “새로 편입한 자회사의 실적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년간 숨가쁘게 M&A 작업을 진행해 온 이랜드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패션·의류 브랜드 인수에 이어 백화점(NC백화점)·아웃렛(2001아울렛·뉴코아아울렛)·할인점(킴스클럽)·슈퍼마켓(킴스마트) 등으로 유통 채널도 확대해 온 이랜드는 까르푸 인수에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내부 유보금과 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자금 등 M&A 실탄은 충분하다”는 이랜드 측의 주장과 달리 이랜드의 자금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 2002년에 지분을 인수한 국제상사와 4년째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등 이랜드의 M&A 전선에도 이상징후가 노출되고 있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스트레이 키즈, 고마워'...한달 56% 급등한 JYP '1년 전 박진영 발언' 화제

2더 혹독해질 생존 전쟁에서 살길 찾아야

3기름값 언제 떨어지나…다음 주 휘발유 상승폭 더 커질 듯

4‘트럼프 보편관세’ 시행되면 현대차·기아 총영업이익 19% 감소

5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놓친 것

6‘NEW 이마트’ 대박 났지만...빠른 확장 쉽지 않은 이유

7종부세 내는 사람 4.8만명 늘어난 이유 살펴봤더니…’수·다·고’가 대부분

8인도서 ‘일하기 좋은 기업’ 2년 연속 선정된 LG전자

9‘쉬다가 쇼핑하는 곳’ 전략 통했다…이마트의 진화

실시간 뉴스

1'스트레이 키즈, 고마워'...한달 56% 급등한 JYP '1년 전 박진영 발언' 화제

2더 혹독해질 생존 전쟁에서 살길 찾아야

3기름값 언제 떨어지나…다음 주 휘발유 상승폭 더 커질 듯

4‘트럼프 보편관세’ 시행되면 현대차·기아 총영업이익 19% 감소

5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놓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