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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신세대 건축가들

떠오르는 신세대 건축가들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은 올해 초 ‘현장: 스페인의 새로운 건축 양식(On-Site: New Architecture in Spain)’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스페인이 현대 건축 디자인의 온상임을 보여준 전시였다. 물론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헤르초크&드뫼롱, 장 누벨 같은 저명한 대가들의 첨단 건축물도 전시됐다. 그러나 건축 문화 저류에 흐르는 미묘한 변화의 기운도 감지된 자리였다. 전위적인 대가들의 작품 근처에서는 도발적인 작품 수십 점도 보였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진취적인 스페인 건축가들의 작품들이었다. 카나리아 제도의 우에르만 단지를 보자. (카사리에고와 게라도 참여한) 아발로스&에레로스의 작품이다. 아래 부분에는 캔틸레버(기둥 없이 수평으로 걸쳐진 구조물)가 있고, 꼭대기에는 경사가 나있는 놀라운 탑이다. 혹은 산초-마드리데요스 팀의 아름다운 바예아세론 성당을 보자. 스위스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제의 롱샹 성당을 21세기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다른 유럽 국가의 신예 건축가들도 소개됐다. 예컨대 베를린 출신의 위르겐 마이어 H는 세비야의 고대 로마 유적지를 거대한 버섯 모양의 덮개로 뒤덮을 계획이다. 루이스 캐럴(‘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저자)과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상상력을 합쳐 놓은 듯한 작품이다. 또 런던에서 활동하는 부부 건축가 그룹 ‘FOA’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 해변에 지은 매력적인 극장 건물(포장도로에서 공중으로 급상승하는 모양의 석조 단일체 구조물)은 중력에 도전하는 듯하다. 차세대 건축가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신선한 에너지와 경이로움은 세계 건축 예술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스타 건축가(starchitect)’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게리(77)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다. 최근 그는 LA에 예상 비용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주상 복합단지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보석류 등 다른 상품들의 디자인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와 동시대 사람인 브라질의 모더니즘 건축가 파울루 멘데스 다 로차는 최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누벨은 오는 6월 두 개의 주요 건축물 제막식을 갖는다. 미니애폴리스의 거스리 극장과 파리의 뮈제 뒤케 브랑리 미술관이다. 그리고 노먼 포스터(세계 최대의 ‘스타급’ 건축 회사를 소유했다) 같은 건축가들은 여전히 세계적인 건축 프로젝트에 독보적인 기술을 적용한다. 그러나 반동의 조짐도 보인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명 건축가의 설계로 지은 값비싼 타워형 아파트(지난 몇 년간 택지 개발업체들의 사랑을 받았다)에 저항하는 흐름이 시장에서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일부 문화기관의 관재인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거물급 건축가들과 함께 작업할 경우 일이 복잡해지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한 디자인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 쪽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마찬가지의 건물을 짓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최초의 건물, 개성 있는 건축물을 좋아한다. 그런데 거물 건축가들의 작품은 이제 개성적이지 않다.” 진지한 건축물을 추구하도록 거장들이 만들어냈던 분위기는 이제 차세대의 첨단 작품을 갈망하도록 부채질한다. 그래서 신세대 건축가들이 주목받는다. 그들이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기성세대와 다른 점은 디자인뿐만 아니다(그들은 대가들을 흉내 내는 듯한 스타일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작업 방식 자체가 다르다. 신세대는 자주 공동작업을 하며, 건축과 조경·도시계획·미술 사이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 때가 많다. 또 문화의 경계선마저 쉽게 넘나들며 협업을 한다. 예컨대 말레이시아 태생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는 크리스 리의 경우를 보자. 그는 뭄바이 출신의 동료 건축가 카필 굽타와 팀을 이뤄 카타르의 초현대적 상가 건물을 설계했다. 또 중국 태생의 마옌쑹과 일본 태생의 하야노 요스케가 팀을 이룬 MAD도 있다. 이들은 주로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활동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광저우(廣州)와 몽골에서 작업하며, 최근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대규모 건축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MoMA의 스페인 전시회 큐레이터인 테렌스 라일리는 “영웅적인 거장들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소장 건축가는 이상화된 형태에 집착하기보다는 디자인과 탐구 과정을 강조한다. 그런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거장 렘 쿨하스와 로테르담에 있는 그의 건축회사 OMA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뉴욕 건축가 연맹 회장인 로살리 제네브로는 이렇게 말했다. “신세대는 좀 더 융통성 있고 실용주의적인 듯하다. 이론이나 작품의 의미 등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문제 해결 지향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에게 컴퓨터는 영감의 원천이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환경이나 사회 문제를 작품에 반영한다. 유럽의 젊은 건축가들은 정부 지원 프로젝트의 풍부한 자금력에서 도움을 얻는다. 그런 프로젝트에서는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선정한다. 이런 공모전 중 하나인 유로판(Europan)은 40세 미만 건축가에게만 참가가 허용된다. 특히 네덜란드는 혁신적인 디자인(건축뿐 아니라 일반 상품과 의상 패션에서도)을 창출하는 비옥한 토양 역할을 해왔다. 유엔 스튜디오 같은 건축회사는 그런 역할의 효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이 회사의 작품이다. 알루미늄과 유리로 만들어 화려한 빛을 반사하며 유선형 스포츠카 같은 곡선미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의 소규모 건축회사 워터스튜디오는 물 위에 떠다니는 주택을 실험적으로 설계한다(지구 온난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환경이 건축 동향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건축 회사 기곤/기어의 단단해 보이는 건축물은 험준한 알프스산맥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외관상으론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강력한 견고성과 예상 밖의 정교함이 보인다. 런던의 신세대 건축계도 좀 더 떠들썩한 예술계와 더불어 뜨겁게 달아오른다. FOA는 일본 요코하마의 페리 선착장을 설계해 처음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 건물은 급경사를 이룬 다층 구조의 급진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데이비드 아자예는 우아하고 절충주의적인 디자인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탄자니아 태생의 아자예는 멋진 사람들(예컨대 영화 배우 이완 맥그리거)의 멋진 저택을 지었다. 지금은 세계적 건축가 명단에 단골로 오른다. 이는 오슬로의 낡은 철도역사를 매력적인 노벨 평화 센터(지난해 여름 개관했다)로 변모시킨 덕분이다. 아자예는 중국에서도 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하기야 요즘 중국에 진출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중국 건축가들은 정부 산하의 대형 기관에 소속돼 일하는 경향이 있다. 그곳에서 거국적인 건축 붐을 충족시키는 평범한 설계안들을 양산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소규모의 젊은 전위 건축가 집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큰맘 먹고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해외에서 공부했거나 외국인 회사에서 일했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빌라주택이나 미술관을 설계하는 등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베이징과 선전의 우르바누스, 그리고 상하이의 MADA s. p. a. m. 같은 건축회사들은 요즘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현대적이면서도 중국적인 스타일을 개발한다. 신세대 건축가 집단의 대부이자 1993년 중국 최초로 개인 스튜디오를 설립한 영호창(50)은 “정말로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건축할 기회뿐만 아니라 현대 중국 문화 형성에 기여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학과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정기적으로 오간다. “개발과 보전을 모두 중시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베이징에 21세기형 복합 정원주택을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는 전통적인, 하지만 급속히 사라지는 시내 골목길(hutong)에서 흔히 보는 가옥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미국의 젊은 건축가들은 유럽과 달리 공공 프로젝트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세대 이동의 조짐이 보인다. 하디드,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안도 다다오 같은 세계적 거장들을 고용하는 각종 문화 단체들은 최첨단 설계를 선호하는 흐름을 주도해왔다. 그런 흐름이 이제는 젊은 전위 건축가들에게로 확산된다. 일부 소규모 미술관은 신세대 건축가들이 현대적 소장품과 고객들의 취향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을 만든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미시간주의 그랜드 래피즈 미술관은 캘리포니아의 건축회사 wHY를 고용했다. wHY는 신선한 매력과 함께 노련함을 보여주는 두 명의 젊은 건축가들이 2003년 설립한 회사다(그중 한 명인 태국 태생의 쿨라팟 얀트라사스트는 안도 다다오의 일본 오사카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미술관 설계 작업을 많이 맡았다). 그리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브래드 클로필, 혹은 시카고의 잔 갱 같은 지방 건축가들이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경우도 늘어간다. 젊은 건축가들은 신기술과 급변하는 세계 문화에 익숙하다는 점(모험심은 말할 필요도 없다)이 매력의 요체다. 네덜란드 건축 연구소를 이끄는 평론가 아론 베츠키는 오늘날에는 순수 건축을 넘어서야 성공한다고 믿는다. “프로젝트 중심의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제2의 프랭크 게리보다는 제2의 i팟 같은 첨단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 첨단이란 무엇일까?” 오늘날의 창의적인 젊은 작가들은 그 답을 찾으려고 건축의 외연을 넓히느라 여념이 없다. 장병걸 cbg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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