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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객원기자의 공개하지 못한 취재수첩] “경제인들도 쿠데타나 일으켜 보자”
- [이호 객원기자의 공개하지 못한 취재수첩] “경제인들도 쿠데타나 일으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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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일을 해야겠다” “앞으로 90세까지는 직접 일을 챙기면서 건강하게 살아야겠는데 83년에 심장 수술을 받았더니 장시간 얘기하면 힘이 좀 달려요. 그 전엔 100리를 걸어도 무리했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였는데.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일하다가 죽을 정도는 건강이 유지돼야 한다고 그런 기도를 해요.”
회장님께서는 개성상인으로 유명했던 분인데, 처음부터 직접 사업을 하셨습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장사밖에 배운 게 없어요. 내 고향이 개성인데, 그곳은 다른 지방과 달리 일찍 장사를 배우려면 자기 집에 아무리 부(富)가 있어도 남의 집에서 심부름부터 해야 하거든. 나와 같이 활동했던 이회림 회장이 남의 가게 무급점원부터 시작해 동양화학그룹을 일으켰지만 개성상인들은 그렇게 시작을 하는 게 전통처럼 돼 있어요. 그렇게 시작한 사람이라야 성공을 해.”
49년 10월 일본 안에서 ‘재일(在日)한국경제인동우회’가 발족했고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이 동우회를 이끌었던 것으로 돼 있습니다. 회장님도 교포 상공인들하고 왕래가 있었습니까. “그 전에는 국교가 없었고 5·16 후부터 내왕을 했지요. 혹시 일본에 있던 교포 상공인들이 우리나라 초기 경제 개발하고 무슨 연관이 있나 해서 물어보는 것 같은데, 5·16 전에는 연관이 없고 국교 정상화가 된 다음에 우에무라 고고로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만나 협력하자고 했지 전엔 연관이 없었어요.”
국 경제 성장에 日 역할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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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말까지 일본도 체계적인 경제정책이 불확실했다는 말씀인데 국내 사정도 비슷하지 않았겠습니까. 경제인들이 독자적으로 기업활동을 하게 되는 것은 5·16 후부터로 봐야 합니까? “이건 5·16이 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의 얘기가 되겠지만 경제를 고민한 건 기업하던 사람들이 군사정부에 잡혀갔다가 풀려나서 경제인협회가 생기고부터예요. 세계적으로 이런 경우가 또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경제 재건을 하겠다면서 기업인들부터 잡아넣고서 시작이야, 허허. 이론으로는 전혀 정상이 아닌데….” 이 회장에 따르면 전경련이 만들어진 데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은 작고한 김용태 전 무임소 장관이다. 김 장관은 민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5·16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서울대 사대 출신으로 경주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5·16 이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보좌하면서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고문으로 있었다.
5·16 직후에 부정 축재자라고 해서 많은 기업인이 구속되지 않습니까? “4·19 직후에도 소급법을 만들어 민주당 계통이 아닌 사람들은 다 부정 축재자들로 몰아 고급관리들까지 잡혀가서 벌금 물고 나왔는데 5·16이 터지니까 이번에는 기업인들까지 죄다 잡혀갔어요. 박흥식씨를 포함해 이름만 조금 알려져 있으면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갔지요. 좌우지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느닷없이 끌려와서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는데 사흘째가 되니까 울화통이 치미는 것이, 우리가 사람을 죽였느냐 도둑질을 했느냐 말이오. 사업가라고 해서 부정 축재자로 몰았으니 이런 분할 노릇이 있느냔 말이오.”
대부분 자수기간에 자수를 한 겁니까? “자수는 무슨 자수요! 장사한 사람들이야 혁명군들이 말하는 부정 축재가 뭔지도 모르는데 무슨 죄를 지었다고 자수야. 물건 파는 게 간첩인가? 전부 집에 있거나 가게에 있다가 느닷없이 끌려온 거요. 어떤 이는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어디로 간다는 메모 한 장 못 써놓고 잡혀왔다고 내내 울상이야. 서대문 형무소라는 것도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처음 들어가 봤고. 그만큼 나쁜 짓은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하여간 화가 치밀 대로 치미는데 나흘째 되던 날이지, 의복을 다 꾸려가지고 나오라고 해요. 그래서 나갔더니 이번에는 전부 차에 타라는 겁니다.” 석방을 한다면서 각자 알아서 가라고 할 것이지 차를 타라고 한 것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무 소리를 못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향한 곳은 최고회의 집무실이었다. “시청 앞에 옛날 시민회관이 있던 그 자리, 국회의사당 하던 곳, 거기에 혁명위원회인지 최고회의인지 사무실이 있고 의장실은 옛날 원호처 건물 꼭대기에 있고. 하여간 응접실로 안내를 해서 들어서니까 박정희 장군이 검은 안경을 쓰고서 가운데 앉아 있고 나머지는 누군지도 모르지만 고약하게 생긴 사람들이 그 옆으로 쭉 앉아 있어요.”
박 의장하고 첫 대면이었군요. “희한한 인연이지. 나중에 경제 재건에 앞장서 달라고 해서 의장실 들락거리며 자주 뵌 걸 생각하면 그렇게 만날 게 뭐야. 근데 박 의장 첫 마디가 고생들 했다고 인사를 하더구먼? 그러니 이건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석방도 아니고 말이오. 그런데 박 의장도 그 다음엔 말이 없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이들이 전부 최고회의 위원들인데 쭉 앉아 있기만 하지 그이들도 박 의장 얘기만 기다리고. 그러다가 박 의장이 얘기를 하는데 난 놀랐어요.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요. 아주 차갑고 분명해. 카리스마가 아주 강해. 그래서 그때 느낌이 ‘야아, 혁명을 할 만했던 사람이구나’ 싶더라고.” 박 의장은 “우리가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혁명을 했는데 하고 보니 경제가 엉망이다. 여러분을 위해서 방을 내줄 테니 어떻게 하면 경제 성장을 시켜 이 나라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연구해 달라”고 말했다.
거기서 석방이 된 겁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그리고 나오니까 다시 차를 타라는 거요. 방을 준다고 했기 때문에 어디 사무실 같은 곳으로 안내하나 보다 했지요. 근데 중앙정보부가 있는 남산 앞을 지나더니 필동 수도경비사령부로 가요.” 경제인협회를 만들라고 하더니 이번엔 군부대로 데려간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지났지만 사무실로 안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지하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사실 이 시기 최고회의 주체들 사이에는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용태 경제고문을 중심으로 석방시켜야 한다는 측과 그렇다면 왜 구속시켰느냐며 반대하는 강경파가 맞섰다. 박 의장도 결심을 보류하고 장고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다시 유치장에 감금됐다면 기업인들은 불만이 없었습니까? “말도 못 하지. 방 하나를 칸막이해서 다 집어넣으니까 사람들은 오글오글하지, 박 의장한테 들은 얘기는 있지, 보통 원성이 터지는 게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거기서 우리가 농담 같은 소리를 했는데 그걸 누가 엿들었는지 문제가 됐어요. 뭐냐 하면 화가 나니까 정주영씨가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 ‘여기서 나가면 우리가 쿠데타 일으켜서 저것들 다 잡아넣자, 당신은 총리하고, 당신은 내무장관, 누구는 국방장관하고, 그래서 우리가 경제를 살린다면 국민도 환영할 거다’ 그런 식으로 조각까지 하면서 농담을 했다고.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이 화가 나 있는데 무슨 소리를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완전히 농담이지 그게 될 소립니까. 그런데 스파이가 있었는지 혼났어요. 사흘간 찍소리 못하고 쪼그린 채 지냈어요. 누구라도 나서주면 좋겠는데 전부 눈치만 보지, 내가 도저히 못 참겠어요. 경제 구상을 해보라고 하더니 이게 무슨 짓들이냐고, 책임자가 누군지 나하고 얘기 좀 하자고, 막 항의를 했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어요. 이건 완전히 고문이에요. 또 열흘쯤 갇혀 있었어요.”
국가 재건회의 거쳐, 다시 수경사로
혁명위원회 쪽에서 뭔가 원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80년대 국보위 때도 기업인들이 잡혀가서 재산 포기서나 기업 헌납서 같은 걸 썼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내가 항의를 하다가 유치장 책임자한테 그랬어요. 박 의장한테 전하라고 말이야,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느냐, 필요한 게 있으면 뭐가 필요하다고 그래라, 여기 있는 사람들 도장 전부 챙겨줄 테니까 가져가라고! 그리고 다음날인가? 그제서야 나오라고 해서 이젠 석방인가 했지요. 근데 또 공덕동 형무소로 옮기잖아. 휴우, 이젠 다 살았나보다 했어요. 근데 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내서 의견을 묻는 모양이야. 그게 김용태 그 양반인데, 경제구상 아이디어를 듣고 반발하는 최고위원들이 많으니까 반성문을 쓰라는 거예요. 석방을 시킬라니 뭔가 명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더니 33일 만에 풀어줘요. 그러면서 그때 처음으로 경제인협회라도 만들라고 얘기가 나온 겁니다. 기업인들이 뭉쳐서 일을 시작해보라고.” <계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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