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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모델의 명암

덴마크 모델의 명암

지난 6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포브스 CEO 유럽포럼’이 열렸다. 필자는 포럼 중 포브스의 스티브 포브스(Steve Forbes) 사장과 레고(Lego)의 마트스 외블리젠(Mads Øvlisen) 회장 사이에 오간 대담을 진행했다. 스티브 포브스는 낮은 세율과 적은 규제, 높은 리스크와 보상이 특징인 미국식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반면 외블리젠은 훨씬 높은 세금과 사회지출 비율을 특징으로 하는 덴마크식 모델을 찬양했다. 포브스 독자에게는 스티브 포브스의 주장이 낯익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외블리젠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의 정치 풍자가 P J 오루크(O’Rourke)는 스웨덴의 제도에 대해 “잘 굴러가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덴마크도 아주 잘나가고 있다. 덴마크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4%, 올해 상반기 4%를 기록했다. 이는 덴마크의 노동인구 중 40%가 최고 63%에 이르는 소득세를 부담하고 이룬 실적이다. 사실 덴마크의 경우 고용주가 부담하는 소득세는 적다. 하지만 전체 소득세가 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수준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것은 분명하다. 외블리젠이 레고의 CEO로 근무할 당시 최고 연봉은 30만 달러였다. 세금을 제하고 실제로 손에 쥔 급료는 겨우 11만5,000달러였다. 미국 대기업의 CEO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연봉이 낮은데 세금은 높으면 근로 의욕 저하와 경기침체로 이어질 듯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덴마크는 예외다. 이유는 무엇일까. 외블리젠은 덴마크가 인구 50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로 사회적 평등이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스티브 포브스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 정부가 미국 정부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부족적인 성향이 강한 덴마크 국민은 정부와 목표•수단을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뇌물수수•부패가 드물다. 로비스트는 거의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정책 미국보다 속히 폐지된다. 반면 미국은 1898년 만든 ‘미국•스페인 전쟁세’를 전화요금의 일부로 올해 초반까지 부과한 바 있다. 덴마크는 이른바 ‘유연 안정성(flexicurity)’이란 노동력의 유연성 개념도 도입했다. 고용주는 이런 ‘제3의 길’ 덕에 근로자를 쉽게 고용•해고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실직자에게 상당한 보상과 재훈련을 보장한다. 홍콩의 영자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북유럽 모델이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와 유연한 노동시장을 잘 결합한 결과 낮은 실업률로 이어진 듯하다”고 평했다. 올해 들어 프랑스도 나름대로 유연 안정성 모델을 선보였으나, 격렬한 반대 시위에 부닥치면서 잽싸게 철회했다. 프랑스는 청년실업률 20%를 유지할 듯싶다. 덴마크 국민의 세부담은 높지만 세율 63%가 의미하는 바와 달리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 상속세율은 15%, 법인세율이 28%에 불과하다. 법인세를 1이라고 볼 때 소득세는 2.25다. 이 같은 세율 차이는 납세자들이 세 부담을 옮기도록 한다. 똑똑한 덴마크 사람이라면 소규모 법인을 설립해 소득을 흡수하고 자동차 구입 같은 경비는 비용으로 상각한다. 세무당국이 이런 조세 피난 행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아닐까. 외블리젠은 “노”라고 답했다. 덴마크 정부는 인플레율을 낮게 묶은 가운데 3%의 경제성장률만 유지하면 조세 피난 행위를 기꺼이 눈감아 준다. 덴마크는 잘 굴러갈 수 있다. 엄청난 세부담에도 불구하고 잘 굴러간다는 것은 국가 경제가 문화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하나의 증거다. 싱가포르는 긍정적 의미의 권위주의로 건실한 성장을 일궈 가고 있다. 중국은 다소 거친 권위주의로 10%의 고도 성장을 구가 중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권위주의가 먹혀들리 만무하다. 진보세력의 바람과 달리 스칸디나비아식 모델도 미국에서는 뿌리내릴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높은 리스크, 높은 보상 시스템은 다양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문화의 다양성은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이민 전통에 기반한다. 미국인에게는 리스크를 즐기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미국은 단일 민족으로 이뤄진 나라가 아니다. 덴마크식 모델로는 따분해 못 견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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