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으로 도시 모습 바꾼다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음식점 냅킨에 그린 스케치로 한 박물관의 증축 프로젝트를 따냈다. 하지만 콜로라도주 덴버 미술관 신관의 경우에는 비행기 탑승권이 냅킨을 대신했다. 리베스킨트는 덴버시 상공을 날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창 밖으로 보이던 로키 산맥의 험준한 절벽을 모방했다.” 리베스킨트는 자신의 혁신적이고 추상적인 디자인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능력에서만큼은 ‘위대한 소통자’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다. 그는 이런 능력으로 세계의 관심이 쏠린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붕괴 현장의 재건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 계획은 뉴욕 부동산업계와 정계의 비난을 샀지만 그동안 덴버에서는 그의 새 박물관 건물이 조용히 세워졌다. 10월 7일 문을 연 이 박물관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리베스킨트가 미국에 건축한 최초의 건물이다. 이 건물 지붕의 모서리는 뾰족하다. 이 모서리들이 멀리 있는 로키 산맥의 봉우리들을 모방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리베스킨트의 디자인은 언제나 뾰족한 각을 특징으로 했다. 중요한 얘기는 이 건물이 기막히게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마치 톱날처럼 들쭉날쭉한 형태들이 땅에서 솟구쳐 나와 순간적으로 굳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으로 한데 엉겨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하다. 번쩍이는 은색 티타늄 표면은 이 미술관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티타늄은 우주시대의 첨단 소재답게 매우 견고하면서도 외견상으로는 반짝반짝 물결치는 두꺼운 실크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프레데릭 C 해밀턴 빌딩이라고 이름 붙은 이 9050만 달러짜리 새 건물은 덴버 미술관 신관이다. 작고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지오 폰티가 1971년 지은 구관은 총안(銃眼) 같은 구멍들이 나 있고 타일을 붙인 괴상한 요새의 형상이다. 그러나 신관과 구관 사이에는 수수한 인도교가 놓여 있어 사실상 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이나 다름 없다. 신관은 주변에 충격적일 만큼 참신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게다가 외부의 기묘하게 생긴 모서리들이나 경사진 벽들에도 불구하고 내부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이다. 천장에서 빛줄기가 퍼지는 4층짜리 중앙 홀부터, 공간이 넉넉한 전시실들, 배의 갑판을 연상시키는 조각 테라스까지. “처음부터 네모 반듯한 공간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이 미술관의 관장 루이스 샤프는 말했다. 그는 전시실 인테리어를 직접 디자인했다. 불규칙한 형태의 공간 안에 전시된 현대 미술품과 비(非)서구 미술품들은 제자리를 찾은 듯 편안해 보인다. 개막 전시회에서는 깜짝 이벤트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빌려온 고미술품들과 태피스트리를 전시한다. “덴버는 대담하고 참신한 도시”라고 리베스킨트는 말했다. 미술관 건너편 쪽에 그가 디자인한 콘도 단지가 곧 문을 연다. ‘리베스킨트 라이트’(‘코카콜라 라이트’에 빗댄 말)라고 부를 만한 담백한 스타일이다. 또 부근에 추상표현주의 화가 클리퍼드 스틸을 기념하는 작은 미술관이 들어선다(건축가는 이번 가을 정해진다). 덴버 현대 미술관은 런던의 인기 건축가 데이비드 애드자예에게 신축 프로젝트를 맡겼다.“도시가 지난 20년 동안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덴버 미술관 이사회의 일원이기도 한 존 히켄루퍼 덴버 시장은 말했다.“사실 미국 전역에서 디자인 수준이 높아졌다.”맞는 말이다. 요즘 미국에는 덴버처럼 새로운 디자인을 갈구하는 도시들이 많다. 지난 8월 문을 연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의 글래스 파빌리온(유리 전시관)은 도쿄의 전위적인 건축설계사무소 SANAA가 미국에서 완성한 첫 프로젝트다. 구조도 탁월하지만 우아한 곡선의 유리 층들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오스트리아 빈의 전위적인 건축회사 쿠프 히멜블라우가 미국에서 처음 맡은 오하이오주 애크런 미술관은 내년 봄 준공된다. 그리고 뉴욕의 아방가르드 건축 디자인 회사 딜러 스코피도 + 렌프로가 보스턴 해변에 세운 첫 작품 보스턴 현대미술 연구소도 곧 문을 연다. 이 21세기의 디자인들은 음식점 냅킨에서 나왔든, 첨단 컴퓨터에서 나왔든 미국 도시들의 얼굴을 바꿔간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하늘에 붕 뜬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디자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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