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공부하는 미국 경제의 비밀 ③] 세계 지배하는 ‘달러의 힘’
[부자들이 공부하는 미국 경제의 비밀 ③] 세계 지배하는 ‘달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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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만 예외인가 경제 논리상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면 자국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그리고 부족한 만큼의 외자를 수혈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큰 미국만은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2005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약 8000억 달러이며 그동안 쌓인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5조3000억 달러다. 이는 2005년 말 기준 GDP 12조5000억 달러의 42%에 이른다. 이 얘기는 미국이 빚을 전부 갚으려면 1년 중 5개월은 생산만 하고 전혀 소비하지 않아야 갚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올해에도 80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내년에는 한 해의 절반인 6개월간 생산만 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미국은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에도 끄덕 없는가? 더구나 달러 가치에도 큰 변화가 없다. 바로 이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미래학자인 레스터 서로는 이에 대해 미국이 지나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세계가 1년에 4% 성장한다면, 미국은 경상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원히 연 3%만 성장해야 한다. ‘영원히’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영원히’는 세계 평균보다 매년 1%포인트 적게 성장해도 경상수지 적자를 갚을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이렇게 경상수지 문제가 치유 불가능의 상태에 돌입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용어로 ‘글로벌 불균형’이라고 한다. 이상한 것은 이런 어려운 상태에서도 달러 가치가 지켜지는데다,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간단한 답은 미국 이외 국가들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 외환위기에서 탈출했듯이 미국도 끊임없이 해외에서 자금을 흡수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자금을 흡수할까? 2004년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 자금 흡수 과정을 ‘신비로운 길’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포의 균형’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정말 신비로운 것은 미국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별다른 정책이나 미국의 강요가 없는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자진 납세’ 현상 <그림: 신비로운 길의 흐름도> 를 보자. 제조업이 약한 미국은 공산품과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할 때 그 대가로 달러를 지불한다(기초 자본순환).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받은 국가에서는 달러가 쌓일 것이고, 이들 국가는 이런 여유 달러로 미국의 예금이나 국채, 그리고 주식을 매수한다. 중동이나 유럽 국가처럼 미국과의 무역 비중이 작은 국가들도 외환보유액을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자동으로 해결됨과 동시에 자금까지 풍부해지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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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세 가지 장악 비결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도 외환위기를 겪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수지 균형을 이룬 유럽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이후 미국은 연평균 2.6% 성장했지만 선진 유럽연합(EU) 지역은 1.8%, 일본은 1.7% 성장에 그쳤다. 실업률에서도 미국은 4.8%에 불과하지만 독일은 10.6%, 프랑스는 8.9%나 된다. 같은 기간 중 유가는 3배 올랐고, 미국은 9·11테러를 겪었고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있다. 왜 부채투성이의 미국은 건재한 것일까? 첫째 이유는 미국이 여타 국가에 비해 너무 강하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달러도 강하다. 물론 미국이 해외에 진 빚, 즉 누적 경상수지 적자 6조 달러를 한꺼번에 갚으라고 한다면 미국은 바로 외환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지금 달러는 전 세계 공용 화폐다. 달러는 남대문 시장뿐 아니라 북한, 태국의 푸껫, 중국의 오지에서도 자국 화폐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높은 대접을 받는다. 이를 기축통화 효과, 일명 세뇨리지(seigniorage) 효과라고 한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상거래는 달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거래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이나 많은 통계도 달러 기준으로 작성된다. 이런 현실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달러 가치를 지키는 일을 우선시하게 만든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대부분 대량살상무기(WMD)나 원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라크가 수출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한 것도 큰 배경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하는 한 달러는 가장 안전한 통화가 된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율은 매우 높다. 한국에서는 불과 8년 만에 상장 시중은행 소유권의 70%가 해외투자가에게 넘어갔다. 일본과 중국도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로 해외 자금이 출자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식시장 전체의 외국인 지분보다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 전체의 외국인 지분율은 40%이지만 은행은 70%다. 이런 현상은 금융기관의 세계화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매수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미국계 금융기관을 경유해 투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익숙한 골드먼 삭스,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뿐 아니라 론스타 등 사모펀드가 바로 은행을 매수하는 해외 자금의 정체다. 그렇다면 이 외국인 투자가들의 국적은 어디일까. 이에 대한 통계는 불분명하지만 이들이 미국과 달러 가치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근거는 있다. 이들 금융기관의 본점 소재지는 미국이다. 모든 회계 처리와 재무제표는 미국의 회계 기준을 따른다. 이 금융기관에 투자한 투자가들은 달러를 기준으로 경영상태를 평가한다. 또한 운용자산도 대부분 기축통화인 달러로 표시된다. 이런 현상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달러 가치의 급변동은 이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경영상 최대 위협이 된다. 또한 글로벌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투자가들도 주식을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인과관계 때문에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영향권에서 달러 방어의 첨병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미국은 전 세계 금융기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둘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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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민은행 총재의 무례 2005년 2월 22일 일부 언론에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보도가 나가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외환시장은 크게 출렁이면서 달러 가치가 급락했다. 당황한 한국은행은 다음날 급히 이를 부인했고 달러 자산 보유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BOK(한국은행) 쇼크’라고 불린 사건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의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외환보유액의 국가별 통화 비중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언급하자 일본 재무성이 총리의 발언을 즉각 부인하는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해프닝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력한 달러의 위상에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 한마디에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약해진 것은 역시 누적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너무 많고, 부족한 자금을 동아시아 특정 국가들이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 주요 국가의 외환보유액은 2006년 7월 현재 중국 9411억 달러, 일본 8719억 달러, 한국 2257억 달러, 대만 2604억 달러 등 총 2조7192억 달러이고, 4개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1조1000억 달러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거에 미국의 국채를 내다 팔면 미국은 바로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외환위기를 막아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수시로 중국에 대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올해 가질 거의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압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면 중국은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을 줄이겠다고 간접적으로 위협한다. 달러 대신 금(金)으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미 중국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 자산 비중은 2004년 82%에서 현재는 70%대 초반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난해 중국의 인민은행 총재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의 통화 절상 압력에 대해 ‘당신들이나 잘하세요’라는 무례한 언사를 했지만 미국은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 덫에 걸렸나 이런 모순된 상황은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 조그만 충격에도 달러 가치가 요동친다. 과거에는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안정 통화인 달러 가치가 상승했지만 지금은 거의 영향이 없거나 때로는 약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 결과 미국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달러 약세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미국이 17회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미국인들은 해외자산 투자를 늘렸다. 미국의 투자가들은 BRICs 등 이머징 마켓, 10여 년의 구조조정 후 경기 회복세가 뚜렷한 일본이나 독일 등 미국 이외 지역으로 투자처를 늘리고 있다. 반면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던 동아시아 국가들과 중동의 오일머니만이 미국 투자를 늘렸다. 미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어갈수록 달러 방어는 힘들어진다. 하지만 현명한(?) 미국 투자가들은 달러를 회피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약 3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이 미국으로 회귀할 것인가의 여부가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나 미국 최고의 경제 분석가인 스티븐 로치도 달러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국경 없는 자본주의, 다시 말해 자금 흐름의 세계화가 정착되면서 표면적으로 미국이 글로벌 유동성을 조정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내 투자가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덫’에 걸린 것이다. 달러 가치의 안정 여부는 세계 경제의 최대 과제다. 언젠가는 이 ‘신비로운 길’이 무너질 것이다. 미국은 물론 달러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은 신비로운 길이 사라질 때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기는 몇 번의 조짐을 보인 후 일순간에 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당장 위기가 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이후라는 긴 그림 속에서 보면 전조 증세는 벌써 여러 곳에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 집 사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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