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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이상의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왕년의 건설 스타’ 박영준 전 진흥기업 회장(오른쪽)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같은 회사 노조위원장을 지낸 유기택 사장(왼쪽)과 함께 필리핀 세부에서 ‘명가 부활’을 선언했다. |
12월의 태양은 고맙게 뜨겁다. 바다는 에메랄드를 심어놓은 것처럼 파랗다. 야트막하게 자란 야자나무는 그 바다와 친구처럼 어우러진다. 인천국제공항에서 4시간이면 바로 닿는 곳. 필리핀 세부의 겨울은 이렇게 아늑하다. 세부-막탄 공항에서 10분쯤 떨어진 바닷가. 이곳에서 필리핀 최초의 한국인 소유 호텔을 조성 중인 백발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날 수 있었다. 박영준(75) BXT코퍼레이션 회장. 한때 국내 10대 건설사로 이름을 날리던 진흥기업의 옛 오너 경영인이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희수(喜壽)인 박 회장은 “지금은 임피리얼 팰리스 세부 리조트의 현장사무소 대리이자 대관 업무 담당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시(市)에 사업 면허 신청을 냈어요. 공무원을 붙잡고 늘어지기를 6개월, 5월부터는 아예 이곳에 상주하면서 실무를 맡고 있습니다. 하루 10시간씩 대리급 사원으로 일하고 있지요. 나이요? 잊은 지 오래됐어요. 사실은 늙을 새가 없어요. 서울에 나이를 두고 왔다고 할까요?” 2001년 회사를 정리하고 부산에 머물던 박 회장에게 새 사업을 제시한 사람은 진흥기업 시절 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유기택(54) BXT 마케팅 부문 사장이다. 꿈에서라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댈 것 같은 오너와 노조위원장 사이가 둘도 없는 사업 파트너로 바뀐 것이다. “이 사람이 우리 회사(진흥기업)에 노동조합을 만든 사람이에요. 위원장만 내리 5대(代)를 했지, 장장 15년이나 독재했다고, 하하하.”(박영준 회장) 마치 큰형이 막내 얘기를 하는 듯하다. 그의 말대로 유 사장은 88년부터 15년 동안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78년 진흥기업에 입사한 유 사장은 “더 투명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진언을 하다 노조까지 만들게 됐다. 어떻게 하다 보니 ‘15년 독재’로 이어졌다”며 웃는다.
현지 호텔 서비스는 0점 수준 처음엔 저희가 꽤 ‘강성’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 사장이 부패에 연루됐다는 보고를 올리면서 ‘사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결국 그분은 회사를 그만두었지요. 이 사건을 계기로 회장님과는 긴장과 협력 관계가 계속 됐습니다.” 박 회장 역시 노조가 경영진 발목을 잡기만 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2001년 유 사장은 조일건설이라는 회사를 세워 독립한다. 두 사람 모두 진흥을 떠났지만 파트너로 다시 만난 것도 이런 인간적인 믿음에서 비롯됐다. “은퇴하고 난 뒤에는 가끔 식사를 하는 밥 친구로 지냈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1월인가 세부에 가자는 연락이 왔어요.” 스킨스쿠버를 즐기던 유 사장이 필리핀 세부에 좋은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면서 박 회장과 동행했던 것. 세부의 바다는 첫눈에 박 회장을 매료시켰다. 청록색 바다에 반한 박 회장이 호텔에 며칠 더 머물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호텔 서비스는 정반대였다. “세부에 특급 호텔을 짓자는 발상이 ‘열 받아서’ 나온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시 저희 일행이 S호텔에 묵으면서 하루 240달러를 냈는데, 숙박을 연장하려고 하니까 ‘빈 방이 없다. 정 그렇다면 70달러를 더 내라’는 겁니다.” 돈 쓰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하다니. 그런데 거꾸로 보니 이게 사업이 되겠더란다. 세부를 찾는 한국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나 지금은 연 50만 명이 넘는다. 영어 연수를 위해 오는 학생만 연 7000명에 이른다. 이렇게 한국인이 많은 곳에 한국계 리조트 호텔이 없다는 것이 영 아쉽더란다.
박영준 회장은… | 1931년 김포 출생. 한국전쟁 때 미국 육군60병기단 노무처장으로 있다가 미8군 부사령관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했다. 함께 군납하던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영어 통역을 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59년 진흥기업을 세운 이후 관광·요업·유통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83년 회사가 부도난다. “남의 돈 한 푼 떼먹은 것 없이” 16년간의 은행관리를 졸업한 것이 99년. 2001년 회사를 처분하고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을 경영하다 지금은 세부 리조트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 |
박 회장은 “아무도 안 하면 내가 하겠다”며 현지법인인 BXT코퍼레이션을 세워 호텔 건설에 나섰다. 유 사장도 “회장님이 너무 좋아서” 이 회사의 마케팅 사장으로 합류했다. BXT는 힐튼·샹그릴라 호텔 등이 줄지어 있는 막탄 섬 바닷가에 2만2000여 평을 사들였다.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부지를 잡은 것이다. “호텔 짓는 것보다 공무원과의 싸움이 더 힘들었어요. 구조부터 환경·교통 등 관련 서류를 내면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도 없이 그냥 돌려보내기 일쑤였습니다. 이유도 없이 서류를 받아주지 않으니 호소할 곳도 없지요. 지난해 12월에 호텔 신축 신청서를 냈는데 올해 7월 23일 최종 승인이 났습니다.” 대관 업무는 건설 사업에 밝고 미8군에서 통역 장교를 지내 영어에 능통한 박 회장이 도맡았다. 5월부터 현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혈압이 높아져 두 번이나 병원 신세를 지고 몸무게가 3㎏ 줄어들기를 서너 차례. 지금은 ‘체어맨 박’이 떴다 하면 현지 공무원들이 알아서 모실 정도가 됐다. BXT는 서울 강남에 있는 토종 호텔인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옛 아미가)과 손을 잡았다. 사업 시행은 BXT가, 호텔 운영은 서울의 임피리얼 팰리스가 맡는다. 정식 이름도 ‘임피리얼 팰리스 워터파크 리조트 앤드 스파 세부’다. 이 호텔은 우리나라 토종 호텔 브랜드의 해외 진출 1호가 된다. 2008년 12월 정식 개관 예정인 임피리얼 팰리스 세부는 8개 호텔동과 47실의 풀 빌라로 이뤄져 있다. 모두 607개의 객실에 전용 해변과 워터파크가 들어선다. 인근에 바다 150㏊(약 50만 평)를 메워 27홀 골프장도 짓고 있다. 이 중에 호텔 객실 397실, 풀 빌라(수영장이 달려 있는 독립 객실) 47실을 일반인에게 분양할 예정이다. 평당 분양가는 700만~900만원으로 잡고 있다.
초기 3년은 연 8% 수익 보장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분양형 호텔 상품”이라며 “투자 가치와 이용 가치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 10월에는 풀 빌라를, 2008년 12월에 정식 개관할 예정입니다. 연간 60일까지 호텔을 이용할 수 있고 잔여일에 대해서는 운영 수익을 배분할 계획입니다. 사업 시행 초기 3년은 연 8%의 수익률을 보장합니다. 은퇴 이민 상품으로 추천할 만하지요. 무엇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인천~세부는 4시간이면 닿는 데다 공항에서 리조트까지는 10분밖에 안 걸립니다.” 유 사장의 설명이다. 박 회장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부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코리아타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 광화문 앞에 미국 대사관과 경제기획원 건물(현 문화관광부)이 있잖아요. 그게 58년에 지은 겁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이 요구하는 건설업 자격을 갖춘 회사가 국내에 없어 필리핀 업자가 와서 지었어요. 이것을 보면서 제가 건설업을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정확히 반세기가 지나 우리가 필리핀에서 건설 사업을 합니다. 좋은 호텔 짓는 것은 물론이지만 한국 문화까지 전파할 의무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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