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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부활한 일본 경제의 새 그늘

비정규직 부활한 일본 경제의 새 그늘

일본 경제의 신기록이 세워졌다. 2002년 2월부터 계속된 경기확장은 작년 11월로 58개월에 이르렀다. 마침내 전후 최장의 ‘이자나기 경기’( <용어 설명> 참조)를 넘어선 것이다. 수치상으로는 버블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10년’ 을 지나 이제 일본 경기가 완전히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 시민의 체감경기는 아직 싸늘하다. 국세청이 실시하는 ‘민간급여 실태조사’에 따르면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의 2005년 평균 급여는 437만 엔으로 2004년과 비교해 5%가 줄어 8년 연속 감소세가 이어졌다. 청년 노동자 중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격차 사회’‘워킹 푸어(working poor·일하는 빈곤층)’라는 말로 대표되는 일본의 현실이다. 일본 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정규직 사원을 줄이고 계약직이나 파견근로,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늘려왔다. 현재 기업이 고용한 비정규직 인력은 1600만 명을 넘어 전체 고용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하게 해석될 일이 아니다. 고용환경이 12년 전 재계가 제언한 그대로 진행된 결과다.


일자리는 ‘비정규직’뿐 1995년 일본경제인연합회(현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새 시대의 일본식 경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종신고용이 보장되던 다수의 정규 직원을 소수의 핵심인력으로 줄이고 전문·일반직은 승급이나 퇴직금, 연금이 없는 기간제 형태의 비정규 직원으로 옮겨 간다는 내용이다.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97년 이후 대기업은 정규직 직원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빈자리를 비정규직 근로자로 채웠다. ‘불황 극복’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고용 비용을 대폭 줄인 것이다. 불똥은 근로자에게 튀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취직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후생노동성의 ‘임금구조 기본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월 19만 엔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급여 32만 엔의 60%에 그친다. 본지가 추계한 생애 전체 임금으로 보면 격차는 더 커진다. 정규직 근로자가 40세 후반의 정점에서 총액 2억 엔을 받는 반면 상근 비정규직 근로자는 1억 엔, 아르바이트 근로자는 4600만 엔 선에 그친다. (그래프 참조)
경기 회복이 느린 지방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일부 지방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다른 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아오모리·아키타·이와테·오키나와현의 시급은 610엔으로 OECD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임금 수준도 일본과 큰 차이가 없지만 지난 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후 큰 폭의 임금인상이 검토되고 있다. 일본만 홀로 뒤처진 꼴이다. 2004년 일본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승자’로 남은 정규직 근로자의 상황도 안심할 것은 못 된다. 부담이 훨씬 커지고 있는 것이다.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 비율이 세계 최고다. 2위 미국을 멀찌감치 제쳤다.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노동자 4명 중 한 사람은 월 80시간 잔업을 처리한다. 과로사 위험이 있다는 기준 수치를 넘는다. 그럼에도 최근의 노동분배율(용어설명 참조)은 최저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사를 당할 정도로 일하면서도 수입은 낮은 비정규직 근로자.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한다 해서 정규직이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부단히 고용개혁을 해 온 일본의 ‘현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재계는 아직 고용개혁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용 국회’…처리 법안 산적 ‘고용 국회’. 국회의원들은 지난 1월 25일 열린 2007년도 정기국회를 이렇게 부른다. 채용에서 은퇴까지의 일반 고용규칙을 명문화한 ‘노동규약법’ 외에도 ‘노동기준법’이나 ‘시간제 노동법’ 개정 등 처리를 기다리는 고용 관련 법안이 산적해 있다. 2008년에는 ‘노동자 파견법’이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재계 희망사항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노동자파견법이 정한 의무 규정을 바꾸는 것이다. 현행 법에 의하면 기업은 일정 기간이 지난 파견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또 하나는 노동기준법에서 정한 노동시간 규제의 해제다. 지금은 모든 사무직 근로자의 노동시간은 법으로 규제돼 있으며, 이 시간을 초과할 경우 초과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기업은 특정 사무직 근로자를 초과수당 지급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이른바 ‘화이트 칼라 배제법(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하겠다는 의도다. 재계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정계는 정당을 떠나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당인 자민당은 “재계의 주장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비판하며 당내에 ‘고용 및 생활조사 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 실시되고 있는 근로시간 관리제도 자체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이트 칼라 배제법’을 도입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산당과 사민당도 ‘절대 반대’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고용문제는 7월 치르는 참의원(양원제 국회에서 상원에 해당)선거에서도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20일 일본 내 일류기업의 본사가 모여 있는 도쿄 오피스 거리에 2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과로사나 과도한 업무에 대한 부담으로 자살한 사람의 유족들이다. 이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열심히 전단지를 돌렸다. 전단지에는 ‘화이트 칼라 배제 제도 도입 반대’를 외치는 그들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당신도 과로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며 동참을 호소했지만 대부분은 외면한 채 바쁜 걸음을 옮겼다.

▶2004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첨예한 쟁점, ‘화이트 칼라 배제’ 현행법상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이 시간을 넘어 일할 경우 기업은 초과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이 법을 바꾸자는 것이 ‘화이트 칼라 배제법’이다. 물론 지금도 경영진과 같은 입장에 있는 관리·감독자나 연구직, 디자이너, 기자 등 노동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직종은 예외로 본다. 하지만 앞으로 이 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사무직 근로자가 초과수당을 받지 못한다. 연봉이 일정 수준 이상인 근로자나 업무상 중요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근로자, 근로시간으로는 성과 측정이 불가능한 직종의 근로자가 그들이다. 총무·경리·인사·법무직 등의 직종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후생성은 ‘상당 수준’이라고 할 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큰 논란이 예상된다. 이미 노사의 대립이 첨예하다. 경영계는 이 제도 도입이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며 “시간으로는 성과 측정이 어려운 근로자에게는 더욱 자유로운 근로형태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계 얘기는 다르다. “제한도 없는 장시간 노동이 합법화되면 과로사나 과로로 인한 자살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놀라운 것은 샐러리맨의 반응이다. 이 제도가 샐러리맨의 수입과 근로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는데도 정작 이들 샐러리맨의 관심은 낮다. 지난해 11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20~40대의 남녀 정규직 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70% 이상이 이 제도를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내용까지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겨우 9%에 불과했다.


화이트 칼라 배제법이란… 영어로 ‘white collar exemption’.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고 더 일하면 초과수당을 주게 돼 있는 규정을 간부급 사무직원 등에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제도. 임금이 일정 수준 이상인 화이트 칼라 샐러리맨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노동의 질을 절대시간으로 추정하기 어려운 환경을 감안한 것이다. 일본의 개정안에 따르면, 새 제도를 적용받는 간부급 샐러리맨은 자신의 판단으로 출퇴근 시간 등 하루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지만 8시간 넘게 일해도 초과수당을 받지 못한다. 임금은 업무성과로 결정된다. 새로운 제도의 적용 대상자는 ▶노동시간으로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직종 근로자 ▶중요한 권한 및 책임을 가진 직급 보유자 ▶업무 수단과 시간 배분에서 회사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는 근로자 ▶수입이 일정액 이상인 근로자 등이다.

용어 설명

이자나기 경기=
일본의 고도 성장기인 65년 11월부터 70년 7월까지의 57개월 동안 계속됐던 경기 확장기. 일본 전설에 나오는 신(神) 이자나기의 이름을 붙였다.

노동 분배율=
한 나라의 경제나 기업에서 생산된 소득 가운데 자본가나 경영자가 아닌 근로자에게 분배되는 임금이나 급여의 비율이다. 노동분배율을 산업이나 기업 단위로 파악할 때는 생산액에서 생산에 투입된 모든 비용을 공제해 부가가치(附加價値)를 구하고, 거기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율로 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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