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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으론 2% 부족해

영어만으론 2% 부족해

한국외대 영어과 졸업생 이유라(25)씨는 올해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에 입학한다. 그러나 영어 동시통역이 아니라 한아(한국어-아랍어) 과정이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유엔이나 국가정보원, 한국석유공사 등에 취업하고 싶다”고 이씨는 말했다. 영어과 졸업생의 통역번역대학원 한아과 입학은 이씨가 처음이다. 이씨는 대학에서 우연히 아랍어 강의를 들었다가 그 매력에 빠졌다. 2003년과 2005년 아랍어 사용국인 이집트와 시리아로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대구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46)씨는 대구 스페인문화원에서 매일 스페인어 강의를 듣는다. 스페인어를 익힌 지 5~6개월이 됐다. 스페인어 방송을 듣고 신문을 읽고 싶어서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에서 이 분야의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이미 미국 CNN, 일본 NHK, 중국 CCTV를 즐겨볼 정도로 원래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김기열(42)씨는 서울 정동교회 베트남어 중급반에서 2006년 8월부터 5개월 동안 베트남어를 배웠다. 베트남에 진출해 피망 농사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향후 10년간 베트남의 비약적 발전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 아랍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학습자가 늘어난다. “영어 하나만으론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제1외국어인 영어, 주류 제2외국어인 중국어, 일본어가 아닌 특수 외국어 학습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대학원생 서주희(29)씨도 “학습자가 비교적 적은 스페인어를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특수 외국어 바람은 업계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삼성전자는 2003년부터 총장추천제를 도입해 외국어에 뛰어난 학생을 채용해 왔다. 대상에는 영어 등 주류 외국어뿐 아니라 아랍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 특수 외국어 전공자가 포함됐다. LG상사도 매년 중국어, 일본어뿐 아니라 아랍어, 스페인어 같은 특수 외국어 우수자를 채용한다. 전체 채용 인원의 30~40%가 영어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까지 뛰어나다고 한다. “영어는 기본으로 하되 현지 언어나 문화를 잘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LG상사 인력개발팀의 이길현씨는 말했다. “앞으로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러시아 쪽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 이 밖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나 한국수출입은행도 아랍어를 포함한 특수 외국어 우수자를 꾸준히 채용했다. 각 기업이 중동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아랍어 등에 뛰어난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올해 처음으로 공채에서 특수 외국어 전공자를 우대했다. “제3세계와 BRICs(신흥경제 4국인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을 말한다)의 중요성이 커져 다른 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베트남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특수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면 채용했다”고 기업은행 인력개발부 김성일 계장은 밝혔다. 특수 외국어 중에서도 아랍어 학습자 증가가 가장 활발하다. 중동 붐이 일었던 70, 80년대에는 꽤 많은 사람이 아랍어를 배웠다. 그래서 61년 한국외대 아랍어과가 생긴 이래 4개 대학에 추가로 아랍어 관련 학과가 개설됐다. 그러나 중동 붐이 꺼지면서 아랍어 학습 열기는 시들해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정이 바뀌었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오명근 교수는 “예전에는 아랍 출장을 갈 때 영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현지어로 사업을 하겠다며 아랍어를 배우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비즈니스 아랍어 서적도 많이 출판됐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72년 한국외대 아랍어과 입학생은 30명이었지만 2007년 아랍어과 신입생 모집 인원은 서울, 용인 캠퍼스 합쳐 76명”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서울대, 고려대 등 아랍어과가 없는 몇몇 대학에서도 아랍어 교양강좌를 개설했다. 서울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은 이슬람 문화 전파를 위해 30여 년 전 아랍어 강의를 열었다. 그러나 90년대 사람들의 관심이 줄면서 아랍어 강의를 없앴다. 그런데 최근 수강생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강의를 맡은 이주화 이맘(이슬람 교단의 지도자)은 “아랍어 강의를 찾는 사람이 이제는 70명에 이른다”고 했다. 2005년 국내 일간지에 이 강의가 소개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30년 전 아랍어 강의 초기 수강생이 60명 정도였으니 아랍어가 최소한 예전 인기는 되찾은 셈이다. 사설 외국어학원 두 곳도 2006년 아랍어 강좌를 개설했다. 같은 해 동영상으로 아랍어 강의를 제공하는 웹사이트가 두 군데 생겼다. 또 요즘 국립국어연구원은 아랍어 한글 표기안을 심의 중이다. 아랍어가 그만큼 한국에 가깝게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Egypt’를 한글로 표기할 때 서구인이 불렀던 영어 표기인 ‘이집트’로 쓰느냐, ‘Egypt’를 뜻하는 원래 아랍어인 ‘미스르’를 쓸까 국립국어연구원은 고민 중이다. 과거 중국어, 일본어의 한글 표기안을 고민한 적은 있지만 특수 외국어의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아랍어 학습자가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에서 아랍어 강의를 하는 이주화 이맘은 “중동 국가 항공사 승무원을 꿈꾸는 등 일자리와 구체적으로 연결 지어 아랍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많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주화 이맘에게서 2006년 9월부터 4개월 동안 아랍어를 배운 자영업자 윤상준씨는 “여건이 되면 중동 쪽에서 사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랍어가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늘었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조교 김한지씨는 2003년부터 아랍어 능통자의 추천을 의뢰해 오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LG·삼성 등에서 아랍어 우수자를 특채했고, 국정원에서도 요청이 들어왔다.” 예컨대 이 학과 4학년 양영신(25)씨는 총장추천제를 통해 지난해 말 삼성전자 해외사업부에 채용됐다. 양씨는 “한국외대 아랍어과 학과장이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시험을 주관해 아랍어과 학생 2명을 선발했고, 그 학생들이 총장추천을 받아 해외사업부에 입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졸업생 이화용(25)씨도 2006년 2월 아랍에미리트항공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채용 시 면접관으로 들어온 이집트인이 아랍어 능력을 측정했다고 한다. 같은 학과 졸업생으로 2005년 KOTRA에 입사한 주재원(28)씨도 아랍어 특기가 입사시험 합격에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아랍어 학습자가 늘어난 또 다른 이유는 정치, 사회적인 환경 변화다.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한아과 이인섭 교수는 “이라크 사태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중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자이툰 파병 부대원들은 아랍어 교육을 받고 이라크로 향했다. 이 교수는 국내 입국자 중 중동 출신 외국인의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에 아랍어 능통자의 수요도 커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최근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아랍어에 능통한 인력 5명을 별도로 채용했다. 이인섭 교수는 경찰외사과에서도 아랍어를 잘하는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선일씨가 피랍됐을 때 한국 외교통상부가 가장 필요로 했던 외교관은 아랍어에 뛰어나고 중동 지역 이해가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해외관광 증가도 또 다른 이유다. 이슬람 사원 아랍어 강의에서 만난 서울대 성악과 유태열 명예교수는 관광을 하다가 아랍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여행 다니기를 좋아해 외국어 배우는 데도 흥미를 느끼게 됐다”고 유 교수는 말했다. “고불거리는 아랍어 철자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아랍어는 유 교수의 8번째 언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전체 한국인 해외여행자 수는 3배가 늘어났지만 중동으로 떠나는 여행자는 5배 증가했다. 스페인어 학습자도 최근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레알스페인어 학원 신중현 원장은 “2002년 월드컵 이후로 관심이 증가하더니, 2003년부터는 스페인어를 처음 배우려는 사람의 문의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스페인어 전공자가 수강생의 다수였지만 2003년부터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하겠다며 스페인어의 A, B, C부터 배우는 일반인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친 곳은 1955년 한국외대에 개설된 스페인어과가 최초다. 이후 11개 대학에 스페인어 관련 학과가 추가로 개설됐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윤석영 명예교수는 “스페인어과의 초대 졸업생은 11명이었으나 2006년 스페인어과 전·후기 졸업생은 서울·용인 캠퍼스 합쳐 162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최근엔 스페인어 전문 사설 교육기관도 생겼다. 2001년 홍대 앞에서 문을 연 레알스페인어 학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 이후 스페인어 전문학원이 2개 더 만들어졌다. 2002년 설립된 대구 스페인문화원의 현재 수강생은 개원 초기의 5배로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 개설된 스페인어 관련 학과가 전부였다. 대구가톨릭대 김우중 교수는 “영어 아닌 특수 외국어를 배울 곳이 많지 않아 스페인어와 같은 특수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설학원이 느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직접 스페인에 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도 증가 추세다. 서울 EEC 스페인 유학원 박희영 이사는 “EEC 스페인 유학원을 거치는 스페인 어학 연수생이 매년 2배 이상 증가한다”고 밝혔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올 8월 졸업하는 정우근(26)씨는 종합상사에 취직할 생각이다. 대우인터내셔널, LG상사, 삼성물산 등이 목표다. “스페인어는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데, 특히 미국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이 미국 인구 수의 30% 정도”라고 정씨는 말했다. “영어는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스페인어를 잘하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 ” 스페인어에 능하면 취업 선택 폭도 넓어진다는 의미였다. 같은 대학 스페인어과를 2월 졸업하는 김민영(25)씨는 2006년 11월 섬유무역을 하는 한세실업(주)에 입사했다. 김씨는 “채용 과정에서 스페인어 전공자를 우대했다”고 했다. 한국-스페인 교역 규모도 계속 는다. 델핀 콜로메 스페인 대사는 “올해 양국 간 무역규모가 작년 대비 13% 증가했다”고 밝혔다. 스페인어 사용권인 중남미와의 무역도 확대 일로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 중남미 수출입 규모는 37%가 증가했다. 대륙별 무역규모 증가율 1위다. 미국 문화를 더 많이 알아가면서 스페인어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도 있다. 대구 스페인문화원에 다니는 신유정(31)씨가 그런 예다. 신씨는 미국 유학 중 스페인어에 눈뜨게 됐다. “영어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신씨는 말했다. 사실 미국은 스페인어가 제1외국어다. 지하철 안내어는 영어와 스페인어로만 돼 있다. 캘리포니아 경찰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미국의 스페인어 상용 인구는 3500만 명이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윤석영 명예교수는 “2006년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계 인구가 아프리카계 인구 수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대구가톨릭대 국제실무외국어학부장 김우중 스페인어 전공 교수는 “한국의 미국 유학생 중 방학 때 귀국해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학생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히스패닉 노동자를 고용해 상점을 운영하는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 스페인어 학습 열풍이 한 차례 불었고, 이 현상이 한국 유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김 교수는 생각한다. 스페인어의 인기는 대학 관련 학과의 경쟁률이 높아진 데서도 잘 나타난다.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 전공 2007학년도 입시 경쟁률이 크게 올랐다. 대구가톨릭대 김우중 교수는 “스페인어 전공 2007학년도 지원 경쟁률이 처음으로 영문과, 중문과를 제치고 외국어대학 학과 중에서 최고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조선대에서도 2007학년도 입시에서 스페인어과 경쟁률이 7대 1로 치솟았다. 조선대 내 학과 경쟁률 중 최고다. 한국에서 스페인어 자격시험인 DELE에 응시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진다. 2004년 첫 DELE 응시생이 30명이었으나 올해 응시생은 500명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DELE 응시생이 가장 많은 국가가 됐다. 한국에서 베트남어 교육이 본격 시작된 때는 67년이다. 역시 한국외대가 베트남어과를 개설하면서다. 정원은 20명이었다. 90년대 이후 한국과 베트남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등 양국 간 관계가 호전됐고 91년에는 부산외대에 베트남어과가 개설됐다. 처음 정원이 40명이었으나 2005년 50명으로 늘었다.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배양수 교수는 “2005년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영어, 일본어, 중국어과 정원을 줄이고 지원자가 늘어난 베트남어과 정원을 증원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증원을 했는데도 베트남어과 경쟁률이 줄지 않았다고 한다. 배 교수는 “베트남어 학습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들어 수요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서울 정동교회 베트남 강의 수강생 수 또한 늘었다. 2003년 선교 목적으로 시작된 이 강의 수강생은 처음에 비해 8배 이상 늘었다. 2006년 현재 수강생 수는 40명에 이른다. 국내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쳐주는 곳은 많지 않다. 그래서 2005년 부산에 1곳, 2006년 서울 1곳의 사설학원에서 베트남어 강의가 개설됐다. 온라인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로제타월드(www. rosettaworld. co. kr)에서도 2006년 2월 베트남어 동영상 강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부터 베트남어 강의를 들은 사람은 영어를 제외한 전체 외국어 온라인 수강생 수의 7%를 차지할 정도로 베트남어 수강생 수가 꾸준히 늘어간다. 베트남 어학연수 또한 크게 늘었다. 서울 위더스관광의 김동준 과장은 “5년 전과 비교해 베트남 어학연수생이 50%쯤 늘었다”고 말했다. 변영철(35)씨는 2005년 8월부터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학 부설 교육기관에서 베트남어를 1년 동안 배웠다. 한국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만들 생각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대안으로 베트남이 떠오른다”고 변씨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베트남어를 배우려는 한국인 수요도 늘어난다. ” 중국 북경대 어학연수 중 하노이 국립대학 중국어과 학과장을 만나면서 베트남어 학습을 시작하게 됐다. 변씨는 1월 베트남에 다시 들어가 베트남어를 더 익힐 생각이다. 정동교회 베트남어 강좌 수강생 김진용(52)씨는 베트남으로 진출해 무역을 할 생각이다. 김씨는 “미래가 있는 베트남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2006년 부산외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한 김기훈(20)씨는 “베트남에서 택배사업을 크게 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고등학교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베트남어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의 경제교류도 크게 늘어간다. 안희완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교수는 “한국의 대베트남 투자액은 최근 몇 년째 상위 4개국 안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부산외대 베트남어과 조교 김현미(25)씨는 “베트남어에 뛰어난 학생을 찾는 기업의 요구가 최근 3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국제결혼도 베트남어 학습자 증가에 일익을 담당했다. 부여에서 조경 일을 하는 민경수(49)씨는 2006년 가을, 베트남인 아내를 위해 매주 두 번씩 부여와 서울을 왕복하며 서울 정동교회에서 베트남어 강의를 들었다. 민씨같이 베트남 여성과 결혼 한 한국인 남성이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1년 130여 쌍에 불과했던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 사례가 매년 2배 이상씩 증가, 2005년에는 6000여 쌍에 달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남성-베트남 여성 커플은 모두 1만297쌍이 만들어졌다. 덩달아 경찰청 외사과도 베트남어에 뛰어난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해야했다. 관광이나 노후설계 때문에 베트남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 정동교회 베트남어 강의를 4개월 째 듣고 있는 김원(53)씨는 지난해 7월 베트남에 놀러갔다가 그곳 분위기에 반했다.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호찌민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그곳에서 은퇴 후 생활을 꾸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특수 외국어에 보이는 한국인의 관심을 해당 언어 사용국은 무척 반긴다. 86년부터 주한 리비아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스테이위 M M 엘자디 리비아 부대사는 “흐뭇하다”(Anaa s’iid!·아나 사이드)를 연발했다. “한국인들이 서방 언론이 보여주는 아랍권의 부정적 이미지에 익숙해 안타까웠다. 지금처럼 아랍어 학습자가 늘어나면 아랍 문화를 바로 이해하는 사람도 늘게 된다. ” 주한 스페인대사관은 2007년 서울 스페인문화원 설립을 계획 중이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특수 외국어에 보이는 관심의 증가가 “편중됐던 인식에 균형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미국, 유럽 중심주의나 선진국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가 다양한 지구촌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사회의 변화상과도 관계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 교수는 나만이 할 줄 아는 무엇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려는 젊은 세대의 실용적 성향도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 낸 요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충남 엄사중의 7가지 외국어 세상 중학생들에게 영어 말고 6개 외국어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있다. 2000년 설립된 충남 계룡시 엄사중학교다. 2001년부터 다양한 외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성하철 엄사중학교 교감은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3학년 때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국어, 6개 언어 중 학생이 학습할 제2외국어를 선택한다. 성 교감은 “2005년 아랍어를 선택한 학생이 전년에 비해 2배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공립인 엄사중학교의 7가지 외국어 교육 과정은 다른 중등 교육기관에는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추가 재정지원을 받지는 않는다. “때문에 강사료 등과 같은 부분에서 재정적 어려움이 많다”고 성 교감은 말했다. 학생들은 1, 2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을 중심으로 해당 언어를 익히고, 3학년 때는 정규 교과시간에 한문, 컴퓨터 같은 선택과목의 하나로 각 외국어를 배운다. 3학년 학생들은 일본어 4학급, 중국어 2학급, 독일어, 스페인어, 아랍어, 프랑스어 각각 1학급으로 편성돼 1주일에 2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고등학교 1학년 제2외국어 과정을 미리 배운다. 해당 언어 철자와 기본적인 회화 구문을 익힌다. 외국어 동아리는 총 10개가 운영된다. 일주일에 2번 정규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30분씩 동아리 활동을 한다. 1년에 두 번씩은 동아리에서 준비한 공연을 한다. 아랍어로 춘향전이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꾸며 본다. 지난해 11월 열린 외국어 동아리 발표회에서는 스페인어 동아리 울라깨달 반 윤철혁 학생이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불렀다. 이날 영어 동아리 학생 6명은 연극 ‘반장 선거(The Election for Class President)’를 공연했다. 견학도 동아리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다. 2006년에는 동아리 회원들이 서울에 있는 독일, 프랑스, 중국 문화원과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수업은 외부에서 초빙된 강사가 맡는다. 우선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수업은 주변 고등학교의 순회교사제를 활용한다. 스페인어·프랑스어 수업은 대전에서 초빙된 시간제 유료 강사가, 아랍어 수업은 서울에서 통근하는 시간제 유료 강사가 맡는다. 전에는 외국인영어 강사 2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부 한국인 강사다. 엄사중학교에서 3년 동안 외국어를 익힌 학생은 일정 수준 이상의 외국어 실력을 갖춘다. 이 학교에서 외국어 동아리를 담당하는 강정혜 교사는 “졸업하면 배운 외국어로 인사, 날씨 설명, 문화 소개 정도는 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엄사중학교의 외국어 수업을 굉장히 좋은 기회로 여긴다”. 학부모의 호응도 좋다. 강 교사는 “특히 자녀가 아랍어를 배우는 경우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배우기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아랍어를 정규과목으로 편성한 고등학교는 2140개 전체고등학교 중 10곳으로 0.5%에 불과했다. 200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제2외국어 과목이 7개 언어로 늘어나, 아랍어가 포함됐는데도 그렇다. 반면 수능에서 아랍어를 고른 학생은 2005년 이후 2배 정도 증가해 2006년 수능에서는 4000여 명이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선택했다. 이들 중 다수는 EBS 아랍어 수능 강의를 듣는다. 아랍어가 쉽게 출제돼 아랍어를 전혀 모르는 학생이 이 과목에 응시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크게 보면 ‘학생들의 수요를 학교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이인섭 한아과 교수는 말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윤유숙 연구사는 “아랍권의 중요도가 부각돼 2005년 수능부터 기존의 제2외국어 과목에 아랍어를 더하는 등 정부가 특수 외국어 교육을 확대하려는 의지는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외국어 교육 확대 방안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매년 초 각 시·도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순환교사제를 활용하는 등 방안을 강구해 보자는 권유만 할 뿐이다. 제2외국어 교육은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광주시교육청의 사례는 돋보인다. 이곳은 조선대학교에 위탁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를 관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방학 때 희망 학생을 모아 교육하고 학점도 인정한다. 현재 이 프로그램에 30여 개의 학교가 참여해 좋은 반응을 보인다. 윤 연구사는 “특수 외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민원이 계속 들어와 교육부에도 확대 계획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더 일찍 눈떴다 일본에서도 아랍어, 스페인어, 베트남어를 많이 배운다. 그 셋 중 가장 최근 인기가 오른 언어는 베트남어다. 도쿄외국어대 베트남어과 우네 요시노 교수는 “일본에서 베트남어 관련 책과 CD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베트남어 인기 증가의 큰 원인은 베트남의 경제적 잠재력이다. 우네 교수는 “최근 많은 일본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열었다”며 “인구 8300만이 넘는 베트남의 시장가치는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베트남으로 관광을 떠나는 일본인이 많은 점도 베트남어 인기의 한 원인이다. 일본인은 베트남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일본인은 베트남 요리와 아오자이라는 베트남 전통의상을 좋아한다. 일본인이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한 때는 도쿄외국어대에 베트남어과가 개설된 1964년 무렵이다. 우네 교수는 “베트남전쟁 때문에 65년께부터 일본인들이 베트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어를 학습하는 일본인 수도 많다. 도쿄외국어대 스페인어과 다카가키 도시히로 교수는 “20개 일본 대학에 스페인어과가 있으며, 일본의 대다수 큰 대학은 제2외국어의 하나로 스페인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또 2005년까지는 일본에서 스페인어 자격시험인 DELE에 응시하는 사람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았다. 일본의 스페인어 교육은 한국보다 이른 70~80년 전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세계에 눈을 일찍 떴다”고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윤석영 명예교수는 말했다. “특히 외국 문물을 받아들였던 메이지 시대에 스페인어 관심이 커졌다. ” 그러나 16세기 후반 일본의 통일을 주도한 노부나가(識田信長)가 1573년 스페인과 무역을 시작했다. 일본인이 아랍어와 아랍권 국가에 관심을 가진 지는 100년이 넘었다. 메이지 시대(1853∼1877년)에 메이지 정부가 이집트와 터키에 사절단을 파견했던 일이 계기다. 당시 유럽 지역 국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은 메이지 정부는 이 조약의 개선 방법을 이집트와 터키에서 찾으려 했다. 이 두 나라는 메이지 정부보다 먼저 유럽 지역 국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몇몇 중동 전문연구소가 생겼다. 중국과 인도네시아같이 일본 황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이슬람의 협력을 얻어낼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이었다. 1940년에는 오사카외국어대에 처음으로 아랍어과가 설립됐다. 1973년 오일 쇼크 후에는 아랍권 국가와 이란의 협력을 얻으려고 일본 대학에 새로운 아랍어 관련 학과와 연구소가 설립됐다. 도쿄 오차노미주대 비교역사학과 미우라 도루 교수는 “많은 일본인이 아랍어 학습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현재 일본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중동과 이슬람의 역사와 문명, 중동과의 정치·경제 관계에 흥미를 보인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또 2005년 일본의 중동 연구와 교육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일본 대학에 48개 아랍어 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다. 학생 수는 700명에 이른다. 초급 아랍어 강의는 50개 대학에 개설돼 있다. 미우라 교수는 “일본 교육부, 문화부, 기술체육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큰 규모의 중동과 이슬람 지역 연구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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