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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品으로 외국산 공습 막아내자

名品으로 외국산 공습 막아내자

한·미 FTA 타결로 한국 농업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농민단체에서는 한국 농업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그 원성을 돈으로 막을 태세다. 그러나 흥분하고, 위로하는 것만으로 농업이 살아날 수는 없다. 경쟁력을 높이는 혁명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희망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농업을 산업으로 전환해 부농의 꿈을 이룬 농가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이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아우성만 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농업의 살 길에 관한 해법을 찾아나섰다.
오는 4월 21일 충남 금산 다락원이라는 곳에 농민 700여 명이 모일 예정이다. 경찰은 출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날 ‘한국 농업 희망 선언문’을 선포할 거라고 한다. 화두는 ‘자강불식(自强不息)’. 농업인 스스로 쉼없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리 본 희망 선언문의 골자는 이렇다. ‘정부에 의존하지 않겠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소비자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겠다’ ‘농업이 한국 경제 발전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 개방의 파고 속에 그들은 ‘희망의 싹’을 심으려고 한다. 농업이 다 죽는다는 데 그들에게 정말로 희망이 있는 것일까?

왜 농업은 위기에 빠졌나 희망을 얘기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왜 우리 농업은 위기에 빠졌나를 따져봐야 한다. 농업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수입 개방’ 그 자체다. 1991년 농산물 수입액은 11억 달러 정도였다. 지난해 수입액은 120억 달러. 10배 이상 늘었다. 해외 농산물 개방 확대는 공급 과잉을 불렀고, 농산물 가격은 하락했다. 불가피하게 농가수지도 악화됐다. 두 번째는 정부 탓이다.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는 130조원이 넘는 예산을 농촌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뭐가 달라졌나? 일부 농업 인프라가 개선되고, 유통체계나 농업 기술 발전은 이뤄냈지만 들인 돈에 비하면 ‘비효율적인 지원정책’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농민은 정부에 대안과 희망을 보여달라고 요구해왔지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정부의 대안은 돈을 주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농업 지원책을 농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어려운 농촌을 도와줘야 한다는 지원성 사업으로 인식해 온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한·칠레 FTA 타결 후 향후 10년간 119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돈 정책’을 다시 썼다. 이번 한·미 FTA 체결 이후에도 정부는 “혁명적 대책을 내놓겠다”면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소득보전과 폐업보상금뿐이다. 세 번째는 농민 자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92년 우루과이 라운드(UR) 개방 이후 25년이 흘렀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경쟁력을 갖추는 데 소홀했다. 개방의 문이 열리면 열릴수록 정부에 의존했다. 농업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결국 한·미 FTA와 곧 다가올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한·중 FTA, 한·유럽연합(EU) FTA를 불안하게 맞이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가구당 빚 다섯 배로 늘어나 ‘잃어버린 농업 25년’의 결과는 참담했다. 가장 큰 문제는 ‘희망’을 잃었다는 점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민들 10명 중 8명은 ‘현재 생활수준이 5년 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5년 후는 더 나아질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10명 중 1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해 농가 가구당 부채는 2816만원으로 92년보다 다섯 배 늘어났다. 반면 소득 증가율은 계속 하락세다. 도시와 농촌 간 소득 격차는 계속 확대됐다. 85년 도시 가구가 100만원을 벌 때 농민 가구는 113만원을 벌었지만, 2005년에는 78만원에 불과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자, 젊은이들은 그곳을 떠났다. 산업 구조적인 변화 탓도 있지만, 농촌 인구 중 60세 이상 비율은 70년 7.9%에서 요즘은 40%를 넘어섰다. 성장 잠재력까지 잃었고, 이는 농업 경쟁력 악화, 농가소득 불안정, 농촌사회 활력 저하 등 악순환의 덫이 됐다. 이제 더 이상 농업은 온실 속에서 보호받기 어려워졌다. 개방과 경쟁이라는 밀림으로 나왔다. 일부에서는 ‘한·중 FTA가 체결되면 한국 농업은 끝장난다’고 걱정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중국 발전연구중심(국무원 산하 연구기관)의 공동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중 FTA가 체결돼 농산물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중국산 농산물 수입은 연간 107억 달러로 폭증한다. 국내 농업 생산액은 2020년에는 274억 달러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한다. 2005년에 비해 20%나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유통개혁 통해 희망 찾아야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벤처농업대학 전준일 교수는 “농업을 명품화하면 기회는 있다”고 단언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은 “아직은 농업을 버릴 때가 아니고 희망의 싹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이미 작은 성공 사례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농업의 기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유통을 개혁하고, 고부가가치 농작물을 개발해 고급 브랜드화시켜 성공한 사례도 많다. 시장이 개방됐지만 역으로 수출 시장이 크게 열렸다는 점도 분명 기회다. 자리 잡은 ‘웰빙 트렌드’로 명품 농산물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벤처 농업도 늘면서 억대 부농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정부가 시혜성 지원에서 벗어나, 이런 성공 사례를 늘리는 데 정책을 집중하면 기회는 있다는 것이 농업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견은 있다. 일부 농업전문가는 농가 소득 보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업의 특성상 구조개선과 경쟁력 강화가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농업 지원금을 대폭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식 기업농은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 맞지 않고, 벤처 농업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논리도 편다. 하지만 농가에 돈만 대주는 정책은 지난 25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실패작’으로 판명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농업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일정 부분 농업 소득을 정부가 보장하는 정책은 유지해야겠지만, 정책의 방향은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농업’은 이 점에서 배울 점이 많다. 네덜란드 정부는 90년대 들면서 농가자금 저리 융자 등 직접적인 지원대책을 줄였고 농업 전문화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인력은 구조조정하고, 농업경영체를 적극 육성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양국의 경지 면적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가 182만ha고, 네덜란드는 192만ha다. 농가 수는 우리가 124만 가구인데 비해 네덜란드는 8만4000가구다. 하지만 농가 소득은 네덜란드가 우리보다 2.4배가 많다. 농산물 수출액은 32배나 차이 난다. 어차피 350만 농민을 모두 끌어안고 갈 수는 없다. ‘작지만 강한 농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나오는 얘기다.

기업농…블루오션 찾아야 이제 농업도 블루오션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이미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기업농의 출현은 변화의 한 예다. 농촌경제연구원 김정호 농업구조경영연구센터장은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가족농으로는 농업의 산업화를 실현하기 어렵다”며 “개별 농가의 협업화와 법인화를 통한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농업인도 전통적인 농가 세대주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경영체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파프리카로 일본 시장의 40%가량을 석권하며 수출 1000만 달러를 올린 농산무역이 좋은 예다. 이 회사는 72곳의 농가가 주주로 있는 곳이다. 신(新) 농업인 출현도 희망적이다. 인삼과 초콜릿을 결합해 매달 억대 매출을 올리는 본정초콜릿, 벤처 정신으로 무장해 매년 1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는 전남 광양의 청매실 농원, 새로운 도정기술로 연간 300억원 매출을 올리는 풍년농산 등은 벤처 농업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사례다. 기업과 농촌의 네트워크 구축도 희망찾기의 한 예다. 우리나라 농촌 마을은 약 4만 개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1사 1촌 운동’은 기업과 농촌이 결합해 농촌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방편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까지 약 1만 건의 자매결연이 이뤄졌다. 유통 혁신으로 연간 10% 이상씩 매출이 늘고 있는 경남 밀양 농협이나, ‘안성맞춤’이라는 공통 브랜드로 농업의 브랜드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경기도 안성도 ‘희망 있는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예다. 항암성분인 베타카로틴이 일반 배추보다 48배나 더 많이 들어있는 항암 쌈배추를 개발한 충북 증평의 제일종묘농산은 농업도 연구개발(R&D)에 적극 나서면, 고부가가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사례다. 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 수석연구원은 “세계 각국은 농업 유전자원의 확보와 연구에 미래가 달려있다고 판단하고 이 분야의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농업 부문에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농업’의 등식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곳도 많다. ‘나비 축제’를 여는 함평군, 고장의 문인 이효석을 농산물과 연계시켜 마케팅하는 평창의 봉평면 등은 농촌에서도 농업만이 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예다.

“공무원이 농업을 너무 모른다” 이 작은 성공사례와 더불어 정부의 정책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충북 증평의 한 영농인은 “농업을 다루는 농림부 관료들이 농업을 너무 모른다”고 말한다. 농업정책의 실패가 농업의 밑바닥 실상을 모른 채 탁상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많은 돈을 투자하고 노력은 하지만, 현실감이 전혀 없다”며 “행정고시를 패스해 농림부에 배속되면 적어도 3년 정도는 농업기술센터 등에 파견돼 농촌과 농업의 현실에 부닥치도록 하면 현실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농조합법인’을 예로 들며 “법인을 이끌 능력이 안 되는 농민에게 돈을 지원한들 경영을 할 수 있느냐”며 “기업농은 기업농대로 키우되 일반 농가는 경쟁력 있는 가족농으로 육성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농림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개방의 문턱은 갈수록 낮아질 것이다. 농가도 더 이상 하늘과 정부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가격으로는 더 이상 중국·미국산 농산물과 경쟁할 수 없다. 길은 분명하다. 품질과 유통을 혁신시키고, 소비자들에게 가격과 품질을 뛰어넘는 혁명적 전환을 보여줘야 한다. 눈은 국내에서 해외로 돌려야 한다. ‘델몬트’나 ‘선키스트’ 같은 브랜드를 키워나가야 한다. 정부는 스스로 말한 대로 ‘혁명적 대책’을 반드시 내놔야 한다. 수출기반을 확충하고, 농업 R&D센터 구축을 지원하며, 물류와 유통을 포함한 농업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 임차 농민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통해 농촌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도 정부의 일이다. 여기에 한국 농업의 ‘제3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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