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 법의학 산실 ‘시체 농장’을 가다
시신 부패 과정 연구로 범죄 수사에 일대 혁명…주변에선 반발 테네시주 동부의 봄은 아름답다. 울창한 참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햇빛은 내리쬐고, 미풍은 향나무의 상쾌한 냄새를 사방으로 퍼뜨린다. 그러다가 바람의 흐름이 잠시 바뀌면 갑자기 시신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테네시주 녹스빌에 있는 ‘시체 농장’의 봄은 늘 그렇게 다가온다. 그 농장의 공식 명칭은 ‘테네시 대학교 인류학 연구 시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단지 ‘시설’이라고만 부른다. 2에이커가 채 안 되는 면적이지만 현재 이곳에선 188구의 시신이 편히 쉰다. 시신 중 일부는 매장되고, 일부는 잔디나 나무 위에 놓여 있다. 1981년 이후 그 ‘시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고 시신 수백 구를 연구했다. ‘시체 농장’은 사법 당국이 미제의 살인사건을 종결짓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사망자를 대신해 ‘증언’하기도 한다. 당사자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됐지만 시신은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 농장은 유사 시설로는 최초이며 법인류학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구더기, 부패 과정, 기타 끔찍한 장면을 해석해 죽음의 실제 시간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불에 타거나, 절단당하거나, 폭발사고로 날아간 시신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런 과정을 통해 미국에서 법의학이 큰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어느 정도 명성까지 얻었다. 실제로 그 시설은 추리소설 작가 퍼트리시아 콘웰의 1994년 작 ‘시체농장’(The Body Farm)의 주무대였으며 TV 범죄수사물 CSI에서도 종종 언급됐다. 그러나 윌리엄 배스 박사가 생각해 낸 이 농장이 생긴 지 30년이 된 지금 미 전역의 법인류학과에도 ‘시체 농장’이 속속 생겨난다. 그중 하나는 웨스턴 캐롤라이나 대학교(노스캐롤라이나주 컬로위 소재)에 곧 생기고, 캔자스·텍사스·플로리다주에도 유사한 ‘농장’이 들어선다. 노천 ‘공동묘지’ 옆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을 주민들이 달가워하진 않는다. 텍사스주에선 시신을 뜯어 먹는 말똥가리들이 몰려들어 비행기 항로를 방해하고, 급기야 집값까지 떨어지자 이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시위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웨스턴 캐롤라이나 대학교의 경우엔 ‘시신 식별 연구소’ 부근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내느라 공을 많이 들였다. 그 지역 주민들은 테네시 대학교 의료센터 뒤 몇 에이커 규모의 주차장에 둘러싸인 ‘시신 식별 연구소’가 오히려 ‘잘 관리되는 조용한 공동묘지’(보다 정확히 말하면 ‘잘 관리되는 조용한 실험실’)란 사실을 알고 나면 위안이 될지 모른다. 그 연구소는 중요한 실험실이기도 하다. 시체 농장이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부패의 단계를 다루는 엄밀한 과학이 없었다. 가장 단순한 의문조차도 해답을 얻지 못했다. 예컨대 시신에 검정파리가 달라붙는 시기는 언제며 시신이 뼈만 앙상하게 남기까진 얼마나 걸릴까? 사망 시기를 판단하는 일은 대개 법인류학자의 기술과 경험에 의존하는 부정확한 과학이었다. 그 농장의 시신 중 다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 때는 비닐 백에 싼 채 보관한다. 유족들에게 그들이 사랑하던 사람의 썩어가는 시신도 어느 정도 품위 있게 다뤄진다고 안심시키려는 취지다. 게다가 시신들엔 이름 대신 번호만 매겨진다. 시신은 본인이 기증했거나 전통적인 장례 절차의 대안을 찾던 가족들이 기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머지는 카운티 내 시체 공시소에서 연고자가 찾아가지 않는 시신들이다.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거나, 간염을 앓았거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에 감염된 시신만 거절된다. 그러나 뼈는 그런 문제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기증받는다. 배스 박사는 거의 113년이나 지난 사건에서 사자(死者)의 사망 시기를 잘못 추정한 일을 계기로 시체 농장을 세우기로 했다(한 무덤 도굴꾼이 남북전쟁에 참전한 샤이 대령의 묘에서 시신을 끌어냈지만 애초 방부 처리가 워낙 잘된 데다 방수 처리가 된 관에 입관됐기 때문에 최근 사망한 사람처럼 보여 살인사건 희생자로 오판했다). 그런 실수는 사법 당국이 부패가 느리게 또는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 자주 발생했다. 그 시설은 자동차 트렁크에 감춘 시신과 물에 빠진 시신의 부패 과정도 연구했다(전자는 특히 여름에 급속히 부패하고, 후자는 수면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으며 물이 부패 과정을 더디게 만든다). 도굴당한 북미 원주민의 공동묘지에서 나온 유해들을 식별한 뒤 되돌려주기도 했다. 그 시설이 발견한 사실 중엔 충격적이고 끔찍한 내용도 더러 있다. 예컨대 구더기는 시신의 옷 모양을 구겨 이상하리만큼 난잡한 형태가 되게 만든다. 피를 좋아하는 구더기는 상처 부위에 우글거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법인류학자는 이를 근거로 사망원인을 찾기도 한다. 또 너구리는 시신 주변을 맴돌지만 시신을 직접 먹지는 않고 시신에 들러붙은 벌레들을 즐겨 먹는다. 그 과정에서 뼛조각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해 수사관들을 헷갈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유골 중 나머지 부분이 모두 사라지고 난 한참 뒤에도 두개골이 발견되는 이유는 동물은 손가락이 없어 두개골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시설은 또 시신이 부패할 때 나오는 액체가 그 지점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을 1년 넘게 죽도록 만들며 그로 인해 땅이 시꺼먼 색을 띤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리고 꼭 끼는 청바지를 입은 채 사망하면 벌레들이 천과 살 사이로 못 들어가 다리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훨씬 느리게 부패가 진행된다. 부패에 관한 자료를 보다 보면 유골은 아예 무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인류학자들에게 유골은 매우 중요하며 시신의 인종·성별·신장·연령을 말해준다. 치아도 뼈에 난 상처나 변형·부상처럼 시신의 신원 파악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시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려는 사람도 늘었다(현재 대기자만 1200명). 시설 책임자인 리처드 잰츠 박사는 새로운 소프트웨어(일명 ‘포렌직 3.0’)를 완성 중이다. 쉽게 말해 시신의 뼈를 측정한 수치를 입력하면 성별·인종·신장·나이를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 시설은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DNA가 조직·머리카락·뼈에 얼마 동안 잔류하는지, 그리고 핵무기 시대의 뼈가 히로시마 원폭투하 이전 시대 사람들의 뼈와 어떻게 다른지도 연구 중이다. 그 시설은 전미 법의학 학회의 실습지 역할도 맡는다. 경쟁도 치열하다. ‘테네시 대학교 인류학 연구실’에서 동쪽으로 약 200㎞ 떨어진 웨스턴 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법인류학과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보건 당국으로부터 ‘시신 식별 연구소’에 시신을 들여와도 된다는 승인이 나오길 기다린다. 연구소 소장인 존 윌리엄스 박사는 환경의 차이가 시신 부패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려고 그 연구소를 세웠다. 윌리엄스와 그가 이끄는 법인류학과는 기증된 첫 시신을 받자마자 개에게 시신을 찾도록 훈련하는 한편 조류가 부패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작정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라부부 50% 할인에 좋아했는데…'날벼락' 맞았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홍진경, 22년 만에 이혼…유튜브서 입장 밝힌다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고개 푹 김건희 "아무 것도 아닌 제가 심려끼쳐 죄송"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 홈플러스 4개점 인수 관련 대출 5800억, 만기 1년 연장 성공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주가에 막힌 HLB·HLB생명과학 합병, 재추진 가능성은?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