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종합금융그룹 세울 것”
“베트남에 종합금융그룹 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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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증시 침체 없을 것” 중국 주식시장과 함께 최근 국내 투자자들의 최고 관심사로 떠오른 베트남 주식시장과 관련, 이 회장은 “버블이 심하다”며 쉬었다 갈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베트남 주식투자 열풍이 불면서 지금까지 2조원 이상의 국내 자금이 투자된 상태다. “베트남 증시는 초기 버블 단계입니다. 넘치는 유동성이 주가를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태죠.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해 거침없이 올랐던 증시가 최근 조정 국면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죠.” 실제로 연초 대비 56%나 올랐던 베트남 비나지수는 지난 3월 1170.67포인트를 정점으로 25% 가까이 하락한 후 지금은 게걸음 장세가 펼쳐지고 있는 상태다. 이 회장은 조정 장세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00여 개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우량 기업들의 상장이 이어지면 기존 고평가된 상장기업들의 주가는 재평가될 수밖에 없다”며 “재평가 과정 속에서 증시는 약세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 증시가 건강한 조정을 거치면 고속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베트남은 경제가 여전히 성장 국면에 있기 때문. 따라서 베트남 주식투자도 3년 이상 길게 보고 결정할 것을 충고했다. “젊은 국가 베트남은 여타 이머징마켓보다 성장 가능성이 뛰어난 나라입니다. WTO 가입 등 정부의 경제개발 의지도 확고하죠. 베트남 주식투자를 고민하는 고객이라면 조정 후 성장을 감안해 3년 이상 길게 보고 펀드 투자할 것을 권합니다.”
이상준 회장은… |
베트남 마지막 왕자의 후손 이상준 골든브릿지 회장의 베트남 사랑은 남다르다. 아니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피 속에는 베트남이 흐르고 있기 때문. 화산(花山) 이씨인 그는 1226년 안남국(安南國·베트남)의 반란을 피해 고려로 망명한 리(Ly) 왕조의 마지막 왕자 이용상(李龍祥)의 후손이다. 베트남의 리 왕조는 멸족됐지만 이용상은 한국에 와서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됐고 혈통을 이어왔다. 화산 이씨는 현재 남한에만 1500여 명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장이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먼저 베트남 진출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2004년부터 베트남을 왕래하며 현지 금융시장 진출을 준비했고, 2005년 현지 사무소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하이퐁증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자산운용사, 캐피털 등의 라이선스를 따내는 등 베트남 종합금융그룹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베트남 내에서도 이상준 회장은 왕가의 혈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회장이 2005년 현지 사무소를 설립할 당시, 베트남 언론들은 ‘리 왕조의 귀환’ ‘리 왕조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찬사를 보냈다. 이 회장은 골든브릿지의 베트남 진출뿐만 아니라 베트남 내에 금융한류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는 베트남 법인과 사무소에 현지 인력을 채용토록 하고, 이들을 금융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MBA에 보내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골든브릿지 베트남 법인과 사무소에는 30여 명의 현지인이 근무하고 있다. 또 자비를 들여 한베재단(Hanviot)을 설립해 베트남 장학생을 돕는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베트남 경제인과 금융인 간 인적 교류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회장은 폼 나는 왕족 출신이지만 한국에서의 성장 스토리는 파란만장 그 자체다. 서울대 공대 출신인 그는 ‘운동권’에서 활동한 덕에 대학을 졸업하는 데 18년이 걸렸다. 또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팀장, 보험노조연맹 홍보부장 등을 지내면서 수배생활도 겪었다. 사회생활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부동산 시행사, 인테리어회사, 건물철거 회사 등 일곱 번의 사업 실패로 집 없는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 했다. 이후 국회의원(김영선 한나라당 최고위원) 보좌관으로 들어간 그는 구조조정 시장을 담당하면서 금융에 눈을 뜨게 된다. 인생역전을 시작한 것은 2000년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인 골든브릿지를 창업하면서부터. 당시 그는 휴스틸, 삼익악기, 프로칩스 등 법정관리 기업들의 구조조정 및 매각 자문을 맡으면서 금융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03년 쌍용캐피탈, 2004년 골든브릿지자산운용(구 뉴스테이트자산운용), 2005년 브릿지증권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자본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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