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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프로 블로거시대 열리나

한국에도 프로 블로거시대 열리나

지난 7월,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황윤조(29)씨는 아들의 돌잔치를 앞두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즐겨찾기 목록에 빼곡히 들어찬 블로그들이 그의 요리 선생이다. 대부분 주부들이 직접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라 요리법도 쉽고 간단하다. 황씨는 “계란, 밀가루 같은 기본적인 재료만으로 백설기 머핀 같은 특색 있는 요리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가 자주 찾는 블로그 중 하나가 ‘문성실의 아침 점심 저녁’이다. 3년째 요리 블로그를 운영 중인 문성실(32)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와이프로거’(육아, 가사, 요리 등의 콘텐트를 생산하는 주부 블로거)다. 많은 신혼 주부가 문성실씨의 요리책 한 권쯤은 샀고, 삼각김밥 틀이나 미니오븐 토스터 같은 그의 추천 상품은 즉시 품절 사태가 빚어진다. “토스터를 샀다고 말해온 사람만 500명이 넘는다”고 문성실씨는 말했다. 그의 블로그 누적 방문자 수는 900만 명에 육박한다. 일기장에 불과했던 블로그가 하루에도 수천 명이 방문하는 1인 미디어로 변신한 셈이다. 당연히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는다. 식품·가전 업체들이 공동 마케팅을 제안하고 신문, 잡지의 인터뷰와 원고 청탁도 넘쳐난다. 벌어들이는 수익이 웬만한 억대 연봉자 부럽지 않다. 문씨의 성공은 블로그 특유의 접근성과 소통 능력 덕분이다. 앞으로 요리뿐 아니라 IT, 연예, 서평,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2, 제3의 문성실이 기대되는 이유다. 블로그 운영과 콘텐트 생산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프로 블로거’ 말이다. 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돈벼락을 맞는 프로 블로거가 늘어간다. 2005년 뉴요커지 기사에 따르면 최신기술 전문 블로그 엔가제트(Engadget)를 운영하는 피터 로하스는 2005년 가을 블로그가 AOL에 합병되면서 “평생 먹고 놀아도 될 만큼”의 돈을 벌었다. 실리콘 밸리의 신생 웹2.0기업을 소개하는 마이크 애링턴의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그 자체가 잘나가는 웹 기업이 됐다. 신랄한 연예계 가십 블로그 페레즈힐튼닷컴(PerezHilton.com)은 하루 방문자 수만 300만 명이 넘고 운영자 페레즈 힐튼은 전 세계에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준‘연예인’이다. 프로 블로거들의 가장 큰 수입원은 블로그에 설치한 광고 수익이다. 페레즈 힐튼은 TV 방송국부터 미용용품까지 수십여 개 광고주를 거느린다. 블로그 한켠에 일주일간 조그맣게 광고를 실어주는 대가로 약 9000달러를 받는다. 물론 이런 거물 블로거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B급 블로거들도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면 생활비 정도는 번다”고 뉴요커지는 보도했다.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 블로그 생태계)의 지속적인 성장세로 한국에서도 스타급 프로 블로거가 등장하리라는 기대감이 고조된다. 인터넷 조사업체 코리안 클릭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블로그 서비스 시장은 2005년 이래 약 222% 성장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이 누구나 사용 가능한 서비스형 블로그로 대중화를 이끄는 한편, 이용자의 자율성을 강화한 설치형 전문 블로그도 최근 인기를 얻는다(얼마 전 다음이 인수한 티스토리가 그 예다). 웹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블로그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다음 홍보팀의 박현정 과장은 “미니홈피 같은 기존의 1인 미디어가 전년 대비 4%대 성장에 그친 반면, 전문 블로그 시장은 50%에 이르는 성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용층이 두터워지면서 블로그는 ‘혼잣말’이 아니라 ‘말 걸기’로 변해갔다. 방문객들과 댓글, 트랙백 등을 통해 즉각적인 소통이 이뤄지고, 블로그에 올린 글이 포털이나 언론 매체로 옮겨지면서 보다 폭넓은 대중과 만난다. IT 컬럼니스트인 김중태 마이엔진 이사의 경우 “KT의 인터넷 요금 종량제 반대글이 수백만 명에게 읽히면서 반대여론의 논거로 사용되기도 했고, 교수들을 만나면 학생들이 블로그 관련 논문에 내 글을 많이 인용한다는 얘기를 곧잘 듣는다”고 한다. “내 블로그가 다른 사람에게, 다른 블로거의 글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매일 실감한다.” 아직 프로 블로거는 아니라 해도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블로거가 늘어난다. 포털 서비스 다음(Daum)은 포털의 접근성과 블로거의 독창적인 콘텐트를 결합한 블로거 기자단을 운영한다. 2006 블로거 기자상 대상을 탄 ‘몽구’는 발로 뛰는 현장 취재로 유명하다. 지난해 3월 롯데월드 무료개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압사사고 현장을 제일 먼저 카메라에 담았다. 압사 당시의 끔찍한 모습이 ‘몽구’의 블로그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추락하는 신동엽 신화, 돌파구 없나’ 같은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눈길을 끄는 방송연예 전문 블로거 ‘승복이’는 23세의 대학생 김성규군이다. 자극적인 제목에 반신반의하다가도 데뷔 초기부터 신동엽의 경력과 새로 시작한 사업 관계, 방송가 동향 등을 종합한 분석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송가와 친분이 있는 어머니에게 “귀동냥”한 일화들과 방대한 자료 조사의 결과물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는 ‘당그니’ 김현근(34)씨는 일본과 한국 문화의 차이점을 다룬 글들로 다음 초기화면에 올랐다. 한 번 초기화면에 실릴 때마다 하루 평균 10만~20만 명이 자신의 블로그를 방문한다. “만화 원고의 반응을 보려고 블로그를 열었는데 결국 책을 내게 됐다”고 김현근씨는 전했다. 반대로 한국에 사는 일본인 얘기를 실감나게 풀어낸 고마쓰 사야카(27)는 블로그를 열자마자 스타 블로거가 됐다. 고마쓰는 수백 개씩 달리는 댓글에 일일이 답하며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느낀다”고 했다. 독특한 주제로 전문성을 인정 받는 ‘틈새’ 블로거들도 있다. 편의점 음식을 전문적으로 평하는 채다인(27)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신제품마다 맛을 보고 글을 올리는데 삼각김밥 리뷰만 320여 건이다. 또 요리 블로거도 다 같은 요리 블로거가 아니다. 독문학 강사였던 김선미씨는 재미 삼아 블로그에 문화와 요리를 결합한 ‘컬처 레시피’를 연재했다. 이를테면 초현실주의 대표작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식탁 위의 카망베르 치즈에서 영감을 받아 그 유명한 흐늘흐늘한 시계(‘기억의 영속’, 1931)를 그렸다는 일화와 함께 당시 달리가 즐겨 먹던 오믈렛 요리법을 같이 올리는 식이다. 이제 김선미씨는 유명 가전업체의 협찬을 받아 블로그를 운영하며, 그동안의 글을 모아 ‘런~의 맛있는 컬처 레시피’라는 책도 냈다. 또 아예 강사 일을 그만두고 요리 공부에 나섰다. “골방에서 공부만 하던 학자였던 내게 블로그는 새로운 인생을 열어줬다”고 김씨는 말했다. 하지만 이들 중 아직 프로 블로거를 자처하는 사람은 드물다. 수익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취재결과 국내 유명 블로거들의 광고 수익은 대체로 한 달에 50만원을 못 넘겼다. 웹서비스 컨설팅 업체 트레이스존의 이준영 대표는 “영어 사용 인구가 20억 명이 넘는데 반해 한글을 이해하는 사람이 약 70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국내 블로그 시장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상업성 논란을 의식해 아예 광고를 달지 않는 블로거도 꽤 됐다. 대신 블로그로 인지도를 높여 출판이나 강의, 기업 연계 마케팅 등으로 연결하는 간접 수익 모델이 자리 잡았다. 김중태 이사는 “직접적인 수익은 얼마 안 되지만 블로그로 상승한 몸값을 감안하면 수천만 원의 경제 효과를 본 셈”이라고 밝혔다. ‘떡이떡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서명덕 전 세계일보 기자나 명승은 전 매경인터넷 기자는 블로그로 전문성을 인정 받아 각각 조선닷컴(Chosun.com)과 야후 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웹 전문 블로거들이 IT 기업의 에반젤리스트(자사의 기술이나 상품을 주로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통해 알리는 전도사)로 고용되는 현상도 프로 블로거의 한 형태”라고 이글루스를 창립한 허진영 SK 커뮤니케이션즈 부장은 설명했다. 한편, 와이프로거들은 식품이나 주방가전 기업들과의 마케팅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문성실씨는 기업의 협찬 제품을 이용한 요리법을 만들어 브랜드를 노출하고 제품 활용법을 알려준다. “직접적인 판매가 아니라 제품의 필요성을 만들어내는 셈”이라고 지난 5월 소프트뱅크미디어랩이 주최한 ‘비즈니스 블로그 서밋 2007’에서 문씨가 설명했다. 문성실씨와 김선미씨 등 블로거 6명과 연계해 브랜드 카페를 운영 중인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유명 블로거들이) 블로그를 미디어급으로 키워놨기 때문에 광고비용의 누수가 없고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현재 국내 웬만한 가전용품 업체는 요리 블로거들과 공동 마케팅을 진행 중이라고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밝혔다. 하지만 문성실씨는 최근 무분별한 기업 연계 마케팅에 우려를 표했다. “기업과 나의 성향이 잘 들어맞아서 제품을 믿고 추천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기업 협찬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제품을 홍보하는 블로거들이 있다. 독자의 신뢰를 단번에 잃을 수 있다. 기업 협찬 제의가 들어오는 대로 할 게 아니라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라야 한다.” 이런 가운데 조심스럽게 프로 블로거의 길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 초 대기업을 그만두고 독자들의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웹2.0 취재를 다녀온 김태우(30)씨의 명함엔 ‘블로거/분석가/컨설턴트/기고가’라는 직함이 적혀 있다. IT 관련 회사의 공식 영문 블로그를 맡아 운영하고 강의, 컨설팅 등으로 수익을 올린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의 웹 생태계에 관한 영문 블로그 테크노김치(TechnoKimchi)다. “웹2.0이란 조류는 미국에서 아시아로 왔지만 한국에서 세계로 흘러나가야 할 흐름도 많이 있다. 테크노김치가 그런 채널 중 하나가 됐으면 한다.” 김태우씨는 이런 작업을 하면서 프로 블로거로 성장하는 단계를 밟아갈 예정이다. 아예 처음부터 프로 블로거를 자처한 사례도 있다. 홍난영씨는 지난해 11월 프로 블로깅을 목표로 식도락과 레저 분야를 전문으로 한 ‘먹는 언니의 foodplay’를 열었다. 아직 수익이 크지 않아 프리랜서 일을 겸하지만 “식품이나 주방 업체, 식당들이 일반 소비자(블로거)들과 직접 소통하는 판을 벌이고 싶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다 함께 제품이나 서비스를 즐기고 그에 관한 평을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올리게 하는 방식이다. 또 올블로그가 옥션과 제휴한 상품광고 ‘올블릿’과 구글의 ‘애드센스(AdSense)’를 설치해 광고 수익도 유도한다. 홍난영씨는 “자유로운 인생살이를 위해 프로 블로거를 지향한다”면서 “기업과 개인 블로거의 관계를 명확히 정립하고 콘텐트를 잘만 대중화하다면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한국 블로그 성장의 분수령이 되리라 예상한다. 김중태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글만 써서 먹고사는 블로거는 아직 없지만 이글루스의 허진영 부장이나 올블로그의 박영욱 대표, 미투데이를 만드는 박수만 대표처럼 블로그로 성장해 성공적인 사업으로 확장한 사람은 많다”고 말다. 또, 애드센스만으로 꽤 높은 수익을 내는 개인 사이트도 생겨나고 광고시장도 다양화되므로 곧 프로 블로거가 등장하리라 내다봤다. 블로그 서비스 업체들도 저마다 수익모델을 고민 중이다. 올블로그는 옥션과 제휴해 문맥 맞춤 상품광고 서비스 올블릿을 개시했고, 태터앤컴퍼니는 43개 유명 블로그와 제휴해 마케팅/광고 수주를 대행하는 태터앤미디어(www.tattermedia.com) 사업을 시작했다. 이글루스도 올 하반기에 새로운 광고 모델을 시험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소프트뱅크미디어랩의 류한석 소장은 블로그 미디어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원래 미디어 혁신은 대통령선거 같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이뤄진다”면서 “과거 대선 때 오마이뉴스, 서프라이즈 같은 대안 미디어가 나왔듯 올해엔 블로그와 연관된 형태의 새 미디어가 나올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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