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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유혹한 웅장한 패션쇼

중국을 유혹한 웅장한 패션쇼

▶지난 10월 19일 만리장성에서 열린 펜디의 패션쇼.

“이번 패션쇼는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습니다. 패션쇼 장소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만리장성에서 거대한 패션쇼를 치렀으니까요. 펜디는 이번 성공을 계기로 중국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것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 마이클 버크 펜디 회장은 지난 10월 19일, 중국 만리장성에서 펼쳐진 패션쇼가 끝난 후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펜디는 1925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패션 브랜드다. 이 브랜드가 세계 최초로 중국 만리장성에서 대형 패션쇼를 개최한 것이다. 예전 몇몇 패션 업체가 만리장성에서의 패션쇼를 기획했지만 “돌담 외에 아무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패션쇼를 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펜디의 이번 패션쇼는 이런 점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업계에서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패션쇼는 만리장성만큼이나 장엄하고 감동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루이뷔통,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운영하는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감동적이었다”는 말로 경의를 표했다. 펜디의 만리장성 패션쇼는 마이클 버크 회장을 비롯해 수많은 임직원과 중국 정부가 1년 이상 준비한 패션쇼였다. 처음 버크 회장도 만리장성의 패션쇼 개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 펜디 임직원들은 버크 회장에게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발점으로 세계적인 패션 왕국으로 성장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기에 이번 패션쇼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국 만리장성을 몇 차례 다녀온 버크 회장은 결국 2006년 말, 펜디 임직원들에게 “한 번 해보자”고 결심을 밝혔다. 그는 “중국 정부와 임직원의 열정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패션쇼는 펜디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펜트와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주도적으로 준비했다. 또 패션쇼 음악은 세계적인 패션쇼 음악의 거장인 미셸 고베르가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 제작했다. 두 디자이너는 ‘만리장성 최초의 패션쇼’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중국의 문화유산과 이탈리아의 패션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었다. 칼 라거펜트와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내년 봄, 여름(2008년 SS) 컬렉션과 특별 제작된 의류 88벌을 88명의 모델에게 입히기로 결정했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는 “8이라는 숫자는 중국에서 번영을 의미하는 행운의 숫자”라며 88의 의미를 설명했다. 패션쇼는 10월 19일 저녁, 만리장성 거용관에서 해 질 무렵 시작됐다. 44명의 중국 모델과 44명의 세계 각지의 모델은 펜디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패션쇼에 등장했다. 화려하게 디자인된 옷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해 질 무렵이라는 때와 잘 어우러져 옷과 장소를 더욱 돋보이게 한 조명은 펜디 임직원이 1년 내내 고민해 나온 역작이었다. 펜디 관계자는 “이번 패션쇼는 조명과 컬렉션이 잘 조화된 환상적인 쇼”라고 평가했다. 만리장성 패션쇼에는 월드 스타 장쯔이, 케이트 보스워스, 탠디 뉴튼과 전도연이 참석했다. 이들도 펜디의 패션쇼 기획력에 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패션쇼가 끝난 후, 마이클 버크 회장은 “펜디를 통해 세계의 패션과 문화, 중국과 이탈리아가 함께 우정과 단합을 보여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 중국을 공산국가, 폐쇄적인 국가로 보는 이들이 많다”며 “만리장성 패션쇼를 계기로 잘못된 고정관념이 깨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베이징 국제 패션도시 계획에 한발 다가간 것 같아 그 기쁨이 크다”고 정부 당국자는 소감을 밝혔다. 현재 중국에는 ‘펜디’ 부티크가 하나도 없다. 펜디 측은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올해 말까지 베이징, 상하이 등 9개 도시에 10개의 부티크를 설립할 계획”이라며 “커다란 잠재 시장인 중국 패션시장을 앞으로 집중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펜디는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 부부가 로마 비아 델 플레비치토 거리에 핸드백과 모피 제품으로 첫 번째 부티크를 열며 설립됐다. 이들 부부는 당시 흔하지 않았던 수제품을 특별 컨셉트로 고객층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30년대와 40년대 사이 펜디의 이름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펜디는 모피 대중화의 선구자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모은 바게트백.

급성장을 하던 펜디는 65년 젊은 디자이너 칼 라거펜트를 만나면서 일대 변혁에 성공한다. 대중의 모피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은 것이다. 이때까지 모피는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값비싸며 크고 무거웠다. 하지만 칼 라거펜트는 모피를 재디자인하고 재해석했다. 모피를 부드럽고 가벼우며 갖가지 디자인이 가미된 패션 아이템으로 승화시켰다. 누구나 모피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펜디는 프랑스로도 진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시장 개척을 고민한 펜디는 핸드백과 모피 외에 가방, 코트, 드레스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이 상품들을 토대로 펜디는 미국 등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84년 이 브랜드는 손수건, 넥타이, 선글라스 등의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85년에는 로마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향수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제품이라는 고유한 색깔은 계속 고집했다. 이 후 99년 LVMN그룹, 프라다 등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반을 다시 한 번 다진다. 현재 펜디는 전 세계 25개 국가에 110개 이상의 부티크를 가지고 있다. 펜디는 10년 전 한국 법인을 세웠다. 이후 ‘바게트백’으로 한국시장 공략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바게트백은 97년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직접 디자인한 작은 핸드백이다. 어깨 밑으로 바짝 매어 들 수 있다는 장점이 여성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다른 25개국 소비자들도 큰 호응을 보였다. 그 결과 이 상품은 몇 시즌 만에 600종류 이상 탄생했다. 이제 바게트백은 모피 제품처럼 펜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제품이 됐다. 현재 우리나라 명품 시장은 구치(22.6%), 버버리(13.1%), 샤넬(15.1%), 크리스티앙 디오르(10.9%), 루이뷔통(10.8%)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명품 시장 규모는 약 1조5000억원. 펜디는 만리장성 패션쇼에서 “중국시장의 본격적인 공략과 더불어 한국시장에서도 적극적인 마케팅, 영업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펜디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국내 명품시장은 큰 성장성을 갖고 있다”며 “여러 전략을 바탕으로 향후 10년 안에 한국 명품시장에서 구치, 버버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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