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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



송승환 대표는…
1957년 서울 生
서울 휘문고·한국외국어대(아랍어학)
65년 아역 탤런트 데뷔
68년 연극 데뷔
77년~ 76극단 단원
89년 극단 환퍼포먼스 창단
96년 ㈜PMC프로덕션 창립
2002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문화산업포럼 공동 대표
2005년~ 명지대 문화예술학부 전임교수
2007년~ 한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
 


<상훈>
68년 동아연극상 특별상(극단 광장 <학마을 사람들> )
82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극단 실험극장 <에쿠우스> )
94년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극단 반도 <영원한 제국> )
98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2003년 한국연극 예술상
2004년 자랑스런 외대인상
2006년 2006 타워상(문화사업 부문), 한국CEO그랑프리(문화 CEO)
2007년 서울시 문화상(연극 부문)
 


<저서>
<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ceo 송승환> (2003년·북키앙)

월급 받는 직원 200명, 연간 매출 200억~250억원, 경상이익 30억~40억원. 웬만한 중소기업을 능가한다. 고등학교 친구 둘이서 1억원씩 내 직원 다섯 명으로 출발한 회사가 11년 만에 이렇게 성장했다. 타악 퍼포먼스 〈난타〉로 유명한 공연기획사 PMC프로덕션 스토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탤런트로 데뷔해 연극배우, 방송인으로 날리던 이 회사 공동대표 송승환(51)은 이제 성공한 문화벤처기업의 CEO이자 기획 연출가로 더 유명하다.
1월 중순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는 공연 일정을 협의하러 서울 서소문 호암아트홀에 들렀다가 로비에서 이어령 전 문화관광부 장관을 만났다. 이 전 장관은 인도네시아 발 통계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에서 본 것 중 인상적인 것 열 가지를 뽑았는데 〈난타〉가 1위더라고. 경복궁·덕수궁보다 순위가 높았다.

그러면서 “공연 더 열심히 하라”고 덕담을 건넸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보고 느낀 가장 인상적인 추억으로 〈난타〉를 꼽는다. 〈난타〉는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된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매해 600만 명 정도 오는데 사실 보여줄 만한 공연이 없었어요. 가이드에게 한국적인 공연이 보고 싶다고 하면 권하는 곳이 워커힐호텔의 가야금 쇼나 한국의 집에서 밥 먹으며 듣는 국악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철저하게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마케팅을 했습니다. 여행사를 일일이 찾아 다녔어요. 600만 외국인 중 순수 관광객은 약 300만 명, 그 중 150만 명이 일본인이란 사실을 알고 마케팅팀이 도쿄·오사카 등지의 여행사를 돌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덕분입니다.”

2000년 서울 정동에 <난타> 전용 극장을 열 무렵만 해도 외국인 관객 비율은 약 5%. 볼 만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2001년 말부터 관객의 80%가 외국인이다. 일본인들은 개인 또는 팀별로, 중국과 동남아 관광객은 단체 관람이 많다.

정동 <난타> 전용 극장 객석이 468석인데 370여 석은 외국인 차지다. 매일 두 차례, 일 년 365일을 공연하므로 한 해 약 27만 명의 외국인이 〈난타〉를 본다는 이야기다. <난타> 가 외국인에게 통하는 이유는 이렇다.


코리아 최고 문화 브랜드 〈난타〉


“국내 시장이 워낙 작아 해외로 나가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기획했어요. 하지만 우리 말로 해선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으니 논버벌(nonverbal·비언어)로 만들었죠.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선 작품 한 편 만드는 데 100억~150억원을 들이잖아요. 우리야 자본에서 달리니 그 사람들이 돈을 아무리 들여도 못하는 것을 만들어야죠. 소재의 독특함으로 승부를 걸었지요. 사물놀이에서 한국적 리듬이라는 아이디어를 얻고, 주방이라는 보편성을 가진 공간을 활용한 게 먹힌 겁니다.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보편적인 재미와 감동을 주는 소재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보편성만으로 그 친구들(브로드웨이나 웨스트앤드)을 이길 수 없으니 동양적인 소재로 독특함을 살려야 하고요.”

〈난타〉는 배우 송승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1997년 10월 10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첫 무대에 올린 뒤 10년 4개월째 연속 공연이다. 연인원 370만 명이 관람했다. 1억원을 들여 만든 〈난타〉는 10여 년 동안 7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난타〉가 처음부터 관객몰이에 나선 것은 아니다. 공연 초기 수입은 그럭저럭 꾸려 나갈 정도였다. 2000년 서울 정동에 전용극장을 마련하면서 관객도, 수입도 쑥쑥 불어났다.

해외 공연도 순풍을 탔다. 99년 한국 공연 최초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2004년에는 브로드웨이 미네타 레인 극장에 전용관을 마련해 흥행에 성공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테스트 마켓이었어요. 관객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자신감을 얻었지요. 사실 우리는 해외 정보에 너무 약해요. 어디에 돈 받고 (문화상품을) 팔아본 적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현지 사정과 정보에 밝은, 경험 많은 에이전트를 활용했지요. 페스티벌 직전에 브로드웨이 아시아라는 회사와 배급 계약을 맺었고, 지금까지 해외 공연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해외 공연이 부쩍 많아졌어요.”

〈난타〉 공연은 모두 6개 팀이 국내외 무대를 누비며 맡는다. 서울 정동과 청담동(293석)에 전용극장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축제를 열며 초청하고, 기업과 대학에서도 부른다. 해외에선 그동안 25개국 200여 도시를 돌며 공연했다. 현재 홍콩과 터키에 팀이 나가 있고, 1월 하순에는 중국 상하이(上海) 공연이 예정돼 있다.

국내 최장수 공연인 〈난타〉로 PMC프로덕션의 기반을 다진 송승환 대표는 〈난타〉의 수익금으로 창작 뮤지컬에 투자한다. 지난해 MBC와 함께 <대장금> 을 공연했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장금> 은 오는 9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경희궁에서 야외 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올린다.

“아무래도 54부작 TV 드라마를 한 편의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국내에선 호된 비평도 받았지만 일본과 중국 사람들은 아주 좋아합니다. 사실 <대장금> 도 아시아 시장을 보고 만든 거에요. 지난해 일본에서 라이선스로 공연해 반응이 괜찮았고, 올 4월에 베이징(北京) 공연이 예정돼 있습니다. 난타를 통해 다른 작품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는 거지요.”

제작자 송승환은 한국 공연계의 아이콘이다. 국내 처음으로 주식회사 극단을 만들고 첫 전용극장을 마련했다. 그에게는 ‘최초’, ‘처음’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연간 매출이 200억원을 넘는다.

〈난타〉 전용관 매출이 약 100억원, 〈난타〉 외에 〈비보이코리아〉, 〈달고나〉 등 다른 공연으로 약 100억원, 〈난타〉 공연 장면이 새겨진 머그 컵과 티셔츠, 앞치마 등 캐릭터 상품을 팔아 3억원대의 매출을 올린다.

“현재 기념품 수준인 캐릭터 상품을 더욱 발전시키고 영역도 넓히려고 합니다. 〈난타〉의 브랜드 가치를 활용해 의류와 식음료 제품을 만들거나 철판구이, 햄버거 체인점 등을 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물론 그런 분야는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업체와 공동 마케팅을 해야겠지요.”
 

2~3년 내 코스닥 상장


▶1999년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직후 인터뷰하는 송승환 대표.

배우 송승환은 89년 자신의 끝 이름을 딴 ‘환퍼포먼스’란 극단을 창립했다. 뮤지컬을 공연하다 보니 제작비가 몇 억원씩 들어가는데 운영 방식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이었다. 맨파워를 갖추려면 제때 봉급을 주고 4대 보험 혜택도 필요한데 공연하다 망하면 소주 한 잔 같이 먹고 끝내는 식이었다.

이래 갖고선 백날 해도 좋은 공연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주식회사 전환을 생각해냈다. 고교 친구로 기업(당시 부친 회사 충남방적 전무)에서 일하는 이광호 공동대표와 1억원씩 내 자본금 2억원으로 출발했다.

“‘경영은 네가 맡아라. 나는 작품 할 테니’ 하는 식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충남방적이 망했잖아요(웃음). 그 뒤 친구가 PMC 일에 전력투구하게 됐고…. 친구끼리 동업이 어렵다는데 저희는 시너지 효과를 잘 내고 있어요. 금전출납부와 대본 둘 다 보면 역부족일 텐데, 각자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 하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성공한 동업 모범 사례로 인터뷰하자는 데도 있더라고요.”

송 대표는 PMC프로덕션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나중에 참여한 에인절 투자자와 우리사주 조합원들도 상장을 원한다.

“전용관 첫해인 2000년 72억원 매출에 28억원 순이익을 냈어요. 그 때는 〈난타〉 하나만 공연했으니 그랬는데 지금은 〈난타〉에서 번 돈으로 다른 것을 해 까먹고는 있지만…. 매출이 계속 늘어나고 순익도 매년 꾸준히 30억~40억원은 되니까 2~3년 안에 코스닥에 상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자금이 좀 넉넉해져 극장을 짓는데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PMC프로덕션 대표로서의 현안은 전용관을 짓는 일이다. 임대해 쓰는 정동 전용극장이 오는 6월에 헐리기 때문이다. 대학로에 극장을 지으려고 터를 알아보다 땅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래서 요즘 마음이 더욱 바쁘다.

“정부더러 극장을 달라고 할 순 없고 시유지나 국유지를 좀 빌려주면 좋겠어요. 그 위에 건물은 우리 돈으로 짓고 20년 정도 쓰다가 반납하는 방식은 어떨까요. 서울시와 관광공사에 알아볼까 하는데 괜히 특혜 시비에 휘말린다고 여기는 것 같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뮤지컬 전용 극장이 들어서고 좋은 공연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고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데…. 정부가 문화산업의 중요성은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정책으로 나타내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려요. 사실 한류 바람이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얼마나 기여를 많이 했어요. 〈난타〉도 외국인들이 보고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으니까 한류에 큰 기여를 하는 셈인데….”

송 대표는 올해 안에 제주도에 전용관을 마련할 계획이다. 며칠 전 제주도청에 다녀왔는데 공무원들의 일하는 자세가 너무 답답하다고 털어놓는다.

“제주도에는 〈난타〉를 공연할 만한 극장이 있어요. 일 년에 공연 몇 번 안 하고 비어 있는데 우리가 돈 내고 쓰겠다는 데도 선뜻 못 내줘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도민들이 서울 사람에게 특혜를 줬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더라고요. 참 이상한 방어벽이지요? 제주도가 자연 풍광이 얼마나 좋아요.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서 가족 단위로, 여성 관광객도 많이 오는데 밤에 볼 게 없어요.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여관방에 처박혀 있어야 하고…. 〈난타〉 전용극장 하나 만들면 얼마나 좋겠어요. 관광 자원이 하나 더 생기는 거잖아요. 그것도 그냥 쓰자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겠다는데…. 얼마 전 마카오에 가 보니 제주도보다 훨씬 작고 볼 만한 자연도 없는데 미국계 자본이 엄청 들어오더라고요. 제주도를 잘 활용하면 대한민국 전체를 먹여 살릴 수도 있을텐데 너무 답답해요. 제가 제주도지사라면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마카오처럼 카지노를 50개 정도 먼저 올리겠어요.”

그는 국내 뮤지컬 시장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했지만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한계에 직면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본 인프라인 뮤지컬 전용 극장이 부족해서다.

“한국 영화가 폭발적으로 커진 건 멀티플렉스란 복합상영관이 생기면서부터입니다. 개봉과 동시에 스크린 200~300개에 올릴 수 있으니 말이죠. 영화 배급에 혁명이 일어나 영화산업이 발전한 겁니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인력들도 좋아졌지만…. 뮤지컬도 지금 프로덕션이 생겨나고 뮤지컬을 하겠다는 배우도 많은데, 무대에 올릴 수 있는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얼마 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 불도 났지만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빌리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요.”


“기업이여, 강당보다 극장을 지어라”


▶일본 중학교 2·3학년 음악 교과서에 ‘손으로 만든 음악 공방’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난타〉.

여기서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우리나라 땅값이 워낙 비싸 개인이 극장을 짓기 힘드니 큰 기업과 정부가 좀 나서 달라는 주문이다.

“기업들이 고층 빌딩을 지을 때 지하에 작은 극장을 하나씩 만들면 어떨까요? 높은 층에 강당을 지어 놓고선 시무식과 종무식 등 일 년에 한두 번 쓰고 말잖아요. 이런 유휴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바꾸자는 겁니다. 그러면 기업이 쓰지 않을 때 거기서 콘서트나 연극, 뮤지컬을 할 수 있잖아요. 건물을 설계할 때 강당이 아닌 극장으로 해야 합니다. 서울 시내에 구민회관이 많긴 한데 애초 강당으로 지으면 극장으로 쓰기가 힘들어요. 극장은 얼마든지 강당으로 쓸 수 있지만…. 정부도 일정 규모 이상 건물에 조형물을 두도록 의무화하듯 문화공간을 설치하도록 하는 거지요. 이런 식의 문화산업 진흥정책을 쓰면 극장 부족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텐데 말이죠. 서울시와 문화관광부에 이야기하니 수긍은 하는데 정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진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어요.”

브로드웨이가 자리 잡은 뉴욕 42번가에 50여 개의 극장이 있는데 원래 이곳은 방적공장 자리였다. 터가 넓은 방적공장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극장으로 꾸민 것이다. 서울시도 구로공단 공장이 나간 자리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화가 연습실이나 작곡가들의 작업공간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대한민국 경제 규모가 세계 12~13위라지만 국가 이미지나 브랜드 인지도는 40위 내지 50위권이잖아요. 문화적 파워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제품만 잘 만든다고 일류 제품이 되는 게 아니에요. 문화적 파워를 키워야 하는데 이미 한류 바람이 이를 입증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진정한 세계 12~13위가 되려면 문화 수준을 함께 올려야 합니다.”

송 대표는 이 대목에서 최근 동방신기의 노래 ‘퍼플 라인즈(Purple Lines)’가 일본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서 1위를 하고, 중국에선 ‘가장 기대되는 가수’로 뽑힌 사실을 거론했다.

“우리 어릴 때 팝송 가사 뜻을 알려고 영어 사전을 뒤적였듯 지금 감수성이 예민한 중국 10대들이 동방신기의 노래를 이해하려고 한중(韓中) 사전을 볼 거 아니에요. 팬레터를 보내려고 한글을 배우고. 동방신기가 입은 청바지 입고 싶어서 백화점에 가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을 찾고 말이죠.”

그는 이런 한류 바람이 10대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10대가 자라 20대가 되고, 30대 사회인으로 소비의 주체가 돼서도 어릴 적 환상 때문에 ‘메이드 인 코리아’ 하면 호감을 갖도록 만들어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는 이야기다. 송 대표가 상하이에 〈난타〉 전용 극장 건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류 바람이 장차 우리에게 가져다 줄 이익은 지금 단순히 수치로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큽니다. 드라마나 가요나, 〈난타〉나 알고 보면 훌륭한 효자 수출품입니다. 정책을 맡은 분들이 이런 점을 알고 있기는 한데 구체적인 지원 방안과 같은 액션플랜을 내는 데는 약해요. 좀 더 길게 보고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이런 일에 적극 나서주면 고맙지요.”


정식 대졸 아닌데도 명지대 교수로


여기서 송승환 대표의 문화산업 신성장론을 더 들어보자. 그동안 우리는 문화를 국내 시장으로만 보았지 글로벌 시각으로 보지 못했다. 또 문화를 갖고 돈을 벌겠다는 경영 마인드가 부족했다. 돈은 굴뚝 산업, 즉 제조업이 벌어주는 것으로만 알았다. 최근 정보기술(IT) 분야에 눈을 돌리긴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문화산업은 일종의 자선사업으로 여겼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문화 정책은 가난한 예술가를 지원해주는 선에 머물렀다. 문화를 산업화하는 정책이 없었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자본이 필요한데 정부의 문화 분야 예산이 전체의 1%도 안 된다. 그것도 어디 문화에만 쓰이는가? 관광·체육·문화가 나눠 쓰므로 순수 문화 부문 예산은 0.5%도 안 된다.

그래서야 무슨 문화산업 진흥이 되겠는가? 새 정부가 2%로 높이겠다는 데 두고 봐야 안다. 미국을 보라. 많은 인력이 제조업에서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옮겨갔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가? 지금 세계는 문화 시대다.

문화가 없으면 관광도 없다.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우리도 문화산업, 특히 공연산업에 관심을 가질 때다. 늦었지만 문화경영을 공부해야 한다. 거기서 일자리 창출도 이뤄진다.

“저희 회사가 96년 다섯이 모여 시작했는데 지금 정규 직원이 120명입니다. 계약직 배우가 약 80명이고. 고용 창출을 많이 한 것 아닙니까! 지금 저희가 운영하는 극장만 5개에요. 극장이 하나 생기면 무대·조명 감독이 필요하고 스텝이 있어야 하고. 일 년 365일 6팀이 〈난타〉를 공연하는데 팀마다 매니저와 마케팅 담당 직원이 따라 붙고. 이런 식으로 저희가 월급 주는 직원이 현재 약 200명입니다. 11년 사이 고용 창출을 40배나 한 셈인데….”

송 대표는 한국외국어대 재학 시절 연극이 너무 좋아 2학년까지만 다니다 말았다. 대신 신촌 76극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연기하는데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입학한 지 20년 만인 96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그런 그가 명지대로부터 교수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학 졸업장도 없다”며 자격이 안 된다고 하자 학교 측은 “박사 학위보다 〈난타〉를 만든 게 더 훌륭하다”며 전임교수로 모셨다. 그래서 만든 게 뮤지컬과다. 지금까진 주로 배우를 양성했는데 공연기획과도 만들어 프로듀서(PD)를 키울 계획이다.

“사실 아시아권에서 창작 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일본이 가끔 만들긴 해도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고, 대부분 라이선스 뮤지컬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창작 욕구와 인프라가 대단하다는 얘기입니다.”


뮤지컬 강국…배우는 많은데 PD 없다


▶〈난타〉의 브로드웨이 입성을 알려 주는 공연 소개 책자.

여기서 송 교수의 뮤지컬 개론을 들어보자. 뮤지컬은 작곡, 작사는 물론 스토리 구성 능력을 요구한다. 배우도 노래는 물론 춤을 출 줄 알아야 한다. 한국만큼 짧은 기간에 뮤지컬 이 급성장한 나라가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질이 풍부해서다. 끼가 있고 즐길 줄 안다.

인프라도 좋다. 농담 같지만 동네마다 노래방 있는 나라가 지구 상에 없다. 전 국민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유전자에 예술적 감각이 숨어 있다.

다만 이런 능력을 꽃피우도록 만들 PD가 부족하다. 비처럼 노래를 잘하는 이가 수백 명 있다. 보아처럼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아이들도 수백 명이다. 그런데 보아를 만든 이수만이 몇 명 없고, 비를 키운 박진영이 몇 명 없는 거다.

지금 이처럼 자질이 풍부한 인프라를 갖고 마케팅을 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돕는 PD가 필요하다. PD는 경영과 마케팅을 알고 글로벌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문화 쪽에 그런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공연 쪽에선 <난타> 가 최초로 해외로 나갔고, 음반은 이수만·박진영 씨가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배우나 가수는 굳이 대학 나올 필요가 없잖아요. 능력 있고 뛰어난 감성이 있으면 하는 건데…. 하지만 PD는 달라요. 문화산업의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려면 능력 있는 PD를 많이 양성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공연예술계의 주목을 받는다. 과거 극단은 동인제 시스템이었다. 극단 대표가 제작과 연출을 도맡아 했다. 이런 공연계에 처음으로 PD 개념을 도입한 게 극단 환퍼포먼스였고, 이를 주식회사로 전환한 곳 또한 PMC다.

“많은 후배들이 PD 시스템을 도입하고 극단도 주식회사로 바꿔가고 있어요. 동인 모임에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거죠. 사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 의식이 돼요. ‘아! 내가 잘못하면 안 되는구나. 후배들이 바라보니까’ 하고 말이죠. 일종의 사명감이라고 할까요. 톡 까놓고 말해 제가 좋아서 이 일 하는 거지, 뭐 국가 브랜드를 높이려고 하는 것도 한국 문화를 수출해 나라 이름을 빛내려 하는 것도 아닌데 나이를 먹으니 하는 일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더라고요.”
 

▶1997년 10월 10일 〈난타〉 10주년 기념 축하 공연



“2009년은 <난타2> 의 해 될 것”


송승환 대표는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창작 뮤지컬을 고집한다. 널리 알려진 라이선스 공연으로 쉽게 하는 방법을 알고 돈도 있지만 다 만들어 놓은 것 가져다가 카피하는 것으론 재미를 못 느껴서다.

“일을 꼭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재미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긴 안목으로 보면 창작이 결국 큰 수입원이 돼요. 라이선스는 쉽긴 하지만 일회성이잖아요. <맘마미아> 나 <캣츠> 는 한 번 데려다가 공연하면 끝이지만 <난타> 처럼 잘 만들면 10년이든, 20년이든 롱런하는 효자가 되니까요.”

그 작업 중 하나로 지금 <난타2> 를 만들고 있다. 춤과 더욱 강렬해진 타악을 겸비한 작품이다. 주방에서 네 명의 요리사가 해프닝을 벌이는 난타와 달리 <난타2> 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직업인들이 움직이는 것으로 이름도 달리 붙일 참이다. 올해 안에 작품을 만들어 내년 초 <난타> 처럼 호암아트홀에서 초연을 가질 예정이다.

“ <난타> 는 앞으로도 20~30년 계속 갈 겁니다. 지금 관객의 80%가 외국 관광객이고, 관광객은 늘 다른 사람들이 오므로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난타는 계속 가져 가면서 또 다른 새 작품을 만들 시기가 된 것 같아요.”

PMC프로덕션은 올해 세 편의 창작 뮤지컬을 더 선보인다. 3월에 <형제는 용감했다> (장유정 극본·연출), 7월에 로맨틱 코미디 <폴라로이드> , 9~11월에는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가 관객을 찾는다.

그는 다재다능 그 자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탤런트로 데뷔했고, 6학년 때 연극 무대에 섰다. 또 MBC 라디오 <여성시대> 를 3년 동안 진행한 방송인이다.

“연기와 제작, 두 가지 일 모두 재미있어요. 골 넣는 축구선수도 신이 나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감독도 기분 좋거든요. 물론 적자를 본 공연도 있어요. (2002년)가 그런 경우인데 너무 앞서갔어요. 브레이크 댄스를 하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는데 그 때만 해도 비보이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그래도 타율이 3~4할대는 되지요. 기획을 오랜 기간 철저히 하니까 그럴 거예요.”

그는 참 젊게 보인다, 얼굴도, 옷 입은 것도, 생각하는 것까지.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가? 1월 10일 51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흰 머리가 나길래 염색하러 미용실에 갔다가 옆 자리의 젊은 친구가 회색으로 물들이는 것을 보고 더 밝은 흰색으로 염색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머리 감을 때마다 색이 조금씩 변해 갈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저 봄에 연극해요. <아트> 란 작품인데 직접 출연합니다. 68년 아역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섰는데 운 좋게도 그 해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받았어요. 그 40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섭니다. TV는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닌데 솔직히 요즘 제가 할 만한 역할이 없어요. 주인공 삼촌이나 고모부 그런 거 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나이 좀 더 먹은 뒤 개성 있는 할아버지 역할이라면 모를까….”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물었다. <난타> 공연을 하면서 나오는 음식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환경부 홍보대사 시절 환경부 장관도 공연을 보고 아깝다고 해 동물 사료로 주려고 했더니 나무 도마에 도마질을 하다 보니 톱밥 같은 나뭇결이 섞여 재활용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인터뷰를 마치고 정동 난타 전용극장을 나서는데 중년의 일본인 부부가 극장 앞 <난타> 를 상징하는 조형물(조각가 임옥상 작품) 앞에서 다정스레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겨울 짧은 해는 이미 이화여고 교정 뒤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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