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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terview] “난 국민은행을 1등으로 안 봐”

[人 terview] “난 국민은행을 1등으로 안 봐”

■ 이명박 당선인 그렇게 어려운 줄 몰라 ■ 이 당선인 일하는 거 쫓아가려면 참모들 혼 좀 날 것 ■ 제대로 된 금융인 키우려면 10년 걸려 ■ 고객 니즈 만족시키는 전략적 업무 강화 ■ 아시아 이끄는 리딩 뱅크 되는 게 목표 ■ ‘토종’ 내세우는 것, 앞으로는 안 통해 ■ 회장·행장 아닌 금융 선배로서 인정받고 싶어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을 두고 설전이 오가고 있다. 특히 금산 분리 완화, 국책은행 민영화 등 ‘뜨거운 감자’를 안고 있는 금융 개혁에 대한 공방이 거세다. 이런 때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이 김승유(65)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이자 금융계의 파워 CEO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서울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빌딩에서 김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뜻밖에도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차 한잔 하자”는 요청에 김 회장은 바로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특별한’ 인연 때문에 언론 접촉을 꺼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전화를 건 기자가 민망할 정도였다. 김 회장은 이렇게 기대(?)와 달리 아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요즘 여러 가지로 바쁘시지요? “뭐…. 그런 거 없습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으로는 물론이고, 요즘엔 금융위원장 후보로도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데요. “아, 전혀…. 그런(공직 진출) 능력 저한텐 없어요. 민간 금융인 출신이 될 가능성이야 있겠지요. 하지만 난 아냐. 허허.” 자신이 ‘금융정책 수장’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대해 김 회장은 “난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대통령 당선인과의 인연을 먼저 물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 회장과 이명박 당선인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다.

-두 사람이 무척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친하긴 뭘, 그런 거 없어요.”

-사적인 자리에서 따로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시나요? “둘이 만날 일이 있나? 공적인 자리에서나 보지. 1월 24일 고려대 경영대 행사 때는 내가 동창회장이라 초대했어요. 한 20~30분 있다가 가셨지요. 근래에는 만난 기억 없어요. 허허.”
“MB는 집사람이 감탄한 남자”


-가끔 운동도 같이 하시지요? “골프, 그것도 다 옛날 일이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는 전혀 못했어요.”

-학부 시절부터 친했습니까? “사실 별로 안 친했어요. 난 솔직히 그렇게 (이 당선인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줄 몰랐어. 전혀 못 느낄 만큼 본인이 철저하게 관리했어요. 그때 교복을 입긴 했지만 자유 복장이어도 아무도 몰랐을걸. 철두철미했거든.”

-김 회장도 금융계에서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하잖습니까. “나야 뭐, 지금도 보세요. 엄청 부지런하잖아. 이 당선인은 7시 반에 회의한다지요? (이 당선인이) 일하는 거 쫓아가려면 참모들이 아마 혼 좀 날 거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우리 집사람이 감탄한 일이 있었어요. 20년 전인가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갔는데 다섯 쌍인가 밤새 술을 마셔서 다들 좀 취했지. 근데 그 사람이 일일이 다니면서 친구들 베개 챙겨주고 이불 덮어주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난 못 봤고 집사람이 요즘도 두고두고 그 얘기를 해요. 사람이 겉보기와 다르게 정이 많았어….”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라는 게 있습니까? “나야 뭐(김 회장은 인터뷰하는 동안 이 말을 자주 썼다), 그쪽(인수위원회)에서 맡은 일 잘해주기만 바라지요. 좀 걱정스러운 건 지금 국민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모든 게 한 번에 바뀌겠어요?”

-이 당선인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당선자가 한 얘기 중에 마음에 드는 말이 있어요. ‘5년이란 시간이 참 짧다. 그 시간 동안 지금 마음이 안 변하도록 하겠다’고 했지요.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말, 하나금융그룹이 자립형 사립고(자사고)를 설립하겠다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마침 이명박 당선인의 정책공약 중 하나가 자사고 200개 설립이지요. “결코…. 내가 옛날부터 (자사고 설립을) 하려고 했어요. 물론 거기에 대해 (이 당선인과) 같이 얘기한 적은 있지요. 이 사람(이 당선인) 때문에 하려는 게 아녜요. 예전에 파스퇴르에서 민족사관학교를 맡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하고 싶었지만 그쪽에서 이름을 바꾸면 안 된다는 거야. 난 당연히 ‘하나고등학교’로 하고 싶었지. 그래서 접었는데 마침 이 당선인이 그 얘기를 하기에 내 의견을 말한 것뿐이에요.”
“백화점서도 금융인재 데려와야”


-자사고를 설립하려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우리 직원들 중에 기러기 아빠가 많아요. 이건 교육 문제를 넘어서 사회 문제더라고. 애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자고, 밤에 학원 갔다가 학교 가서 또 자고. 자사고에 기숙사·수영장·헬스장을 같이 지어서 오후 4시에 수업 끝내고, 2시간 동안 운동하고, 8시부터 원어민 영어수업 받고. 그렇게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었어요.”

-기러기 아빠는 직접 경험하신 건가요? “아니, 나는 그런 거 안 해봤어요. 간다는 걸 못하게 했어요.”

-‘하나고등학교’가 설립되면 졸업생들이 금융계로도 오겠군요. “10년 후 다 인재가 될 아이들입니다. 서울시장을 한번 뵙고 투자계획을 얘기하려고 해요.”

-요즘 금융인재 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예, 훈련해야지요. 근데 제대로 된 금융인 하나 키우려면 몇 년 걸리는 줄 아세요? 10년이 넘어요. 요즘 떠들썩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나 2003년 신용카드 대란, 97년 외환위기 같은 비즈니스 사이클(Business Cycle)을 두 번은 겪어봐야지요. 지금 당장 안 되면 밖에서 데려오고요. 나는 왜 금융권에서만 데려와야 하는지 궁금해요. 왜 종합상사·백화점에서는 안 되냔 말이지요. 무슨 금융인이 따로 있습니까. 유통업 하던 사람한테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만 붙여주면 고객이 필요한 것을 딱 찾아서 상품으로 패키징(packaging)해 주잖아요. 안에서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데려와서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 회장은 금융인들이 일반기업보다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김 회장은 직원들의 ‘한 번 실수’는 눈감아준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한 번 실수를 경험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김 회장 자신도 “외환은행·LG카드 인수에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금융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금융지주가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을 인수합병(M&A)할 대상자로 지목되고 있는데요. “M&A는 정상적 업무의 일환입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할 수 있어요. 국경을 뛰어넘어서 할 수도 있고요.” 금융업계에서는 하나금융지주가 기업은행 인수를 위한 태스크포스(TF) 팀을 가동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주회사로 체제를 바꾼 후 ‘4등 은행’으로 떨어진 하나은행에 이번 새 정부 출범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소문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하나은행을 두고 국민·신한·우리에 이어 ‘3등에 많이 처진 4등’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웃으면서) 외부에서 걱정해주시는 건 고맙지요. 고마운데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서브프라임 사태 보세요. 금융시장이란 게 확확 바뀌거든요. 앞으로 또 달라질 거예요.”

-규모가 너무 차이 난다고들 하는데요. 지난해 4월에는 PB(프라이빗뱅커) 수를 대폭 줄이면서 하나은행의 특화된 경쟁력에 손실을 입었다고도 합니다. “4위는 4위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아 코멘트(언급)하기가 좀 그렇네요.” 은행부문의 실적 부진을 두고 업계에서는 김 회장과 김종열 하나은행장의 불화설이 돌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하나금융 고위 관계자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김 회장이 임기가 다한 김 행장의 연임을 결정한 대신 행장으로서의 권한은 상당 부분 줄어들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규모로 보면 국민은행을 1등 은행이라고 하지요. 확실히 소매 영업에서는 제일 잘해요. 하지만 전 국민은행을 1등 은행으로 안 봐요. 어떻게 1등 은행입니까. 온라인 거래가 늘면 스프레드(예대마진의 차이)가 많이 줄 텐데 거기에 타격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어딘가 생각해 보세요. 금융시장이 변하는 건 시간 문제거든요. 길게 보면 국민은행이 꼭 1등이다 그렇게 볼 수 없어요.” 그는 규모가 아닌 조직 문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규모가 크면 도움이 되긴 하겠지요. 1만t급 배랑 1000t급 배가 태평양을 건너는데 풍랑을 만나면 1만t짜리가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 정도지. 어차피 침몰의 위험에서 해방되는 건 아니거든요. 규모는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금융인으로서 꿈 다 이뤄”


-규모가 아닌 하나금융지주가 내세울 문화는 무엇입니까. “고객우선주의지요. 모든 것의 출발은 ‘고객’입니다. 다양한 고객의 니즈(Needs)를 만족시키는 전략적 업무를 강화할 겁니다.” 요즘 김 회장의 화두이자 고민은 ‘고객’이다. 그는 고객우선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금융기업 최초로 ‘매트릭스 조직’으로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매트릭스 조직은 계열사들의 업무를 수평적으로 엮는 조직체계를 말한다. “3월이 지나면 매트릭스 체제로 갈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세계적 추세에 맞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니까 미리 거기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어요.” ‘준비’라고 말했지만 김 회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매트릭스 조직을 자주 언급하며 조직 개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우리나라 현행 금융지주법·은행법·공정거래법으로는 당장 시행하기 어렵지만 꼭 바뀌어야 할 부분이지요.”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한 금융창구에서 고객이 원하는 은행·증권·보험 업무를 원 스톱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조직이 성립되지 않으면 지주회사를 세우는 의미가 없습니다. 지주회사를 세우는 이유는 법인끼리 고객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니까요.”

-또 다른 의미로서 1위 은행이 되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나금융지주의 목표는 뭡니까? “저기 한번 보세요.” 김 회장은 접견실 한쪽 벽을 가리켰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시아를 이끄는 리딩 뱅크 플레이어(Leading Bank Player)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인도네시아·중국·베트남 등에서 기반을 닦고 있지요.”

-해외지점이 성공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지금은 ‘파일럿 타임테이블’(실험적으로 하는 편성)이라 생각하고 시작하는 단계예요. 현지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려고 이번 신입사원 공채에서 인도네시아·중국·베트남 사람도 뽑았지요. 금융계도 이제 마음을 좀 열어야 해요.”

-새 정부에 바라는 금융정책이 있다면요? “하나·국민·신한 주주를 보세요. 외국 지분이 60~80%잖아요. 주주의 60%가 미국계 기관투자가인 노키아를 핀란드 기업이냐, 미국 기업이냐고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우리은행이 ‘토종’ 은행을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것도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 거예요. 상황이 달라지고 있거든요.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배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아닌 ‘금융인 김승유’의 꿈을 물었다. “다 이뤘어요. 회장하고, 그런 것만 해도 다 이뤄진 거지요. 제 나이도 그렇고. 직원들한테 고맙네요.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이런 말할 필요 없지만…. 회장, 행장이 아닌 금융 선배로서 인정받고 싶어요.” 김 회장은 소원을 다 이뤘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금융은 끝이 없다”고 했다. “돈을 버는 게 1차 목표라면 돈을 왜 버는지 아는 게 그 다음 할일입니다. 새 정부 아래서는 금융이 잘해서 나라가 잘되면 좋겠어요.”


김승유 회장은…
1943년 충북 청주 출생. 경기고·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한일은행에 입행(65년)했으나 2년4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건너가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공부를 계속해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어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나중에 모교 경영대학원에서 증권분석론과 투자론을 가르치며 ‘묵은 소원’을 풀었다. 한국투자금융 창립 멤버로 합류, 서른일곱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91년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탈바꿈하면서 금융계의 ‘실력자’로 떠올랐다. 97년 하나은행장에 오른 이후 충청·보람·서울은행 인수합병에 성공, 하나은행을 빅4 은행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5년 하나금융지주를 출범시키면서 ‘오너급 전문경영인’으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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