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최대 완구 회사 반다이는 TV 애니메이션 드라마의 주요 스폰서다. 애니메이션이 자사의 완구 판매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개 그 자체 흥행이 아니라 아이들의 완구 구매욕을 자극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제작된다. <디지몬 어드벤처> 는 캐릭터 상품, <탑 블레이드> 는 팽이 장난감, <유희왕> 은 게임 카드를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유희왕> 탑> 디지몬>
“엄마, 사이버다크드래곤 카드 어떻게 했어?” 서울 서초동에 사는 박정훈(12·가명) 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이버다크드래곤 카드는 정훈이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희귀한 카드였다. 정훈이의 어머니 조효선(37) 씨는 아이가 유희왕 카드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카드 일부를 숨겨 놨다. 하지만 식음을 전폐하며 떼를 쓰는 아이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조씨는 아들이 “악착같이 용돈을 모아 유희왕 카드만 사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초등학생 남자 아이를 자녀로 뒀다면 유희왕을 모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출판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동용 신발이나 가방, 문구류 등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면 꼭 유희왕 캐릭터가 들어있다. 부모가 가장 많이 골머리를 앓는 것은 ‘유희왕 카드 게임’일 것이다. 아이들은 유희왕 카드를 사 모으기 위해 끊임없이 부모를 졸라 돈을 타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드를 많이 사 모을수록 게임에서 강해지기 때문이다. 유희왕 카드를 사 모으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유희왕 카드는 2006년 현재 누계 판매 160억 장을 넘어서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카드 게임으로 <기네스 북> 에 신청됐다.
‘이야기’는 감성이 지배하는 21세기에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열쇠로 꼽히고 있다. 포브스코리아는 지난 호에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현지 취재를 통해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이야기란 유전자(DNA)를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하는지 소개했다. 4월호에선 이야기의 힘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 완구업체들의 ‘미디어 믹스’ 전략을 분석해 본다.(편집자) |
<유희왕> 의 성공은 <해리포터> 시리즈와 비교하면 미미한 것일 수도 있다. 매출액 등 여러 수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겐 <유희왕> 의 성공이 훨씬 더 고무적일 수 있다. <해리포터> 는 조앤 롤링이라는 천재 작가의 등장을 필요로 했지만, <유희왕> 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기획실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이 일궈낸 일이기 때문이다. <유희왕> 과 비슷한 것으로 10년 전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포켓몬스터> 가 있다. <포켓몬스터> 는 전 세계적으로 250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해리포터> 와 달리 <유희왕> 이나 <포켓몬스터> 로 대중적인 지명도를 얻은 사람은 없다. 천재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기획실에서 만든 ‘상품’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이런 거대한 상품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요인은 많지만,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미디어 믹스(Media Mix)’ 전략일 것이다. 미디어 믹스는 광고 업계의 용어로, 상품을 광고할 때 TV, 신문, 잡지, 인터넷 등 여러 종류의 미디어를 조합하는 기법을 말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하나의 원작을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상품 등으로 전개해 나간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결과만 보면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와 거의 같아 보인다. 실제로 그런 뜻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원 소스 멀티유스는 하나의 소재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배급하는 것이다. 월트디즈니에서 자사의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캐릭터 사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일본의 미디어 믹스 전략은 하나의 소스를 다양한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히려 하나의 결정적인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다른 미디어를 사실상 광고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TV 애니메이션을 30분짜리 CF로 사용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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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스터> (왼쪽)과 <파워레인저> 파워레인저> 포켓몬스터> |
현재 도쿄(東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TV 애니메이션은 매주 60편 정도, 그 중 18개는 심야에 방송된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에 방영되는 심야 애니메이션은 대학생 정도가 돼야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다. 심야에 TV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들은 마니아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못 보고 넘어간 것은 궁금해 견딜 수 없고, 마음에 든 것은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한다. 심야 애니메이션은 단 한 번만 방영하며, 절대로 재방송을 하지 않는다. 또 보고 싶으면 DVD를 사거나 빌려 봐야 한다. 심야 애니메이션은 DVD를 팔기 위한 CF인 셈이다.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30분짜리 CF로 처음 활용한 것은 만화 잡지 <소년 점프> 였다. 1980년대부터 <소년 점프> 의 인기 연재 만화는 거의 모두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드래곤볼> , <슬램덩크> , <원피스> 같은 작품들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무척 많았다. <아톰> 이나 <철인 28호> , <마징가z> 같은 경우다. 하지만 만화 연재가 끝난 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같은 내용을 TV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데 누가 만화 잡지를 사겠느냐’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 온 것이 81년에 방영된 <닥터 슬럼프> 였다. 당시 <소년 점프> 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를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방영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잡지와 만화 단행본의 판매부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캐릭터 사용료 등 엄청난 부가 수입도 올렸다. TV 애니메이션이 만화 잡지의 광고 역할을 한 것이다. 대략적인 논리는 이렇다. 잡지 연재 만화를 3~4개월 단위로 묶어서 단행본으로 출판한다. TV 애니메이션은 단행본과 약간 시차를 둔다.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본 시청자들은 그 뒤의 내용이 궁금해서 단행본을 사 보고, 결국 매주 만화 잡지를 보게 된다. 이런 선순환 구조 덕분에 <소년 점프> 는 90년대 초반 매주 600만 부 이상이 판매됐고, <슬램덩크> 단행본은 초판 인쇄 250만 부란 기염을 토했다. 근래에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출판 만화 중에는 광고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과 출판 만화는 닌텐도의 게임기 ‘게임보이’를 판매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인기가 있어서 게임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게임기를 판매할 목적으로 애니메이션과 출판 만화를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많다. <디지몬 어드벤처> 는 캐릭터 상품, <탑 블레이드> 는 팽이 장난감, <유희왕> 은 게임 카드를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 ▶애니메이션 <유희왕> 유희왕> | |
미디어 믹스 전략의 핵심은 애니메이션 같은 TV 프로그램 자체를 광고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을 활용한다고 모두 대박이 나는 것은 아니다. 교묘하고 치밀한 상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악랄하게도 느껴지는 상술이 필요하다. TV 아사히에서 방영하고 있는 <슈퍼 히어로> 시리즈가 교묘한 상술의 정점이다. <슈퍼 히어로> 는 <파워레인저> 처럼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특수 촬영 드라마를 말한다(정확하게 말하면 <파워레인저> 는 <슈퍼 히어로> 시리즈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것이다). 시청률이 높은 편이 아닌데도 30년째 내용이 비슷비슷한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다. <슈퍼 히어로> 의 스폰서는 일본 최대의 완구 제조업체인 반다이다. 쉽게 말하면 일 년이란 방영기간에 반다이의 장난감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TV 드라마인 셈이다. 영국이 <해리포터> 로 벌어들인 수익이 삼성이 반도체로 벌어들이는 영업이익과 비슷하다고 한다. 원작자인 조앤 롤링의 등장은 콘텐트 산업의 지도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일본이 만화·애니메이션 왕국이 된 데에는 <아톰> 의 원작자인 데쓰카 오사무(手塚治蟲)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을 감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같은 천재 감독이 등장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미디어 믹스 전략을 보고 있으면 콘텐트 산업에 필요한 상상력이나 창의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미디어 믹스 전략 하에서 콘텐트 홍보용으로 제작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는 제약 조건이 많다. 판매 상황에 맞춰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 하므로, 판매가 부진해 재고가 쌓인 캐릭터를 부각하는 스토리를 만들거나, 신상품 출하를 염두에 두고 복선을 깔아둬야 한다. 장난감을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캐릭터 디자인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봉제 인형을 싸게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이나, 플라스틱 장난감의 금형 비용을 줄이는 디자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개 완구회사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하고, 그에 맞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만든다. 흔히 창의성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디어 믹스 전략에서 필요한 크리에이터는 각종 제약 조건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CF 역할을 하는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얻어야 주력 상품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틀을 박차고 나가는 기발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틀 안에서 최대한의 재미를 찾아내는 기획적인 상상력도 주목과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마케팅의 일 년 주기
매년 2월 :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시작된다. 5명의 주인공 전사가 등장하는데, 각자 전용 전투 장비를 지니고 있다. 그래야 장난감 개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평소 용돈으로 장난감을 사는 시기이므로 비싼 것은 내놓지 않는다.
3월 중순 : 전사들의 전투 장비가 합체되는 거대 로봇이 등장한다. 일본은 4월에 신학기가 시작된다. 3월은 아이들이 친척이나 친지로부터 입학, 진학 축하금을 받는 시기다. 용돈이 풍족해지는 시기이므로 비싼 물건을 내놓는다.
5월 초 : 신병기가 등장한다. 어린이날이 끼어 있어 아이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전, 강력한 적이 출현하면서 기존의 로봇은 패하고 신형 로봇이 등장한다. 여름방학은 아이들이 시골에 놀러 가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용돈을 받는 시기다.
크리스마스 : 연말에 접어들면서 적의 보스가 타도 되지만 끝이 아니다. 배후에 숨어 있던 진짜 보스가 등장한다. 새로운 적을 타도하기 위해 모든 무기들이 총동원된다. 여름방학 전에 패배했던 구형 로봇까지도 동원된다. 창고에 남아있는 재고를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
하울의> 아톰> 해리포터> 슈퍼> 슈퍼> 파워레인저> 파워레인저> 슈퍼> 슈퍼> 유희왕> 탑> 디지몬> 포켓몬스터> 슬램덩크> 소년> 소년> 닥터> 마징가z> 철인> 아톰> 원피스> 슬램덩크> 드래곤볼> 소년> 소년> 포켓몬스터> 유희왕> 해리포터> 포켓몬스터> 포켓몬스터> 유희왕> 유희왕> 해리포터> 유희왕> 해리포터> 유희왕> 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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