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특등석 더 넓고 더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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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탑승객들에게 항공기 좌석은 근육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비좁고 불편하다. 대부분의 승객은 고문을 받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글렌 존슨은 항공기 좌석도 우아한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여겼다. 영국 런던의 왕립미술학교를 나온 그는 항공기 좌석 제조업계의 선두주자인 B/E 에어로스페이스의 수석 디자이너다. 그의 집무실에는 일반 사무용 의자 대신 항공기 좌석들이 놓여 있다. 방문객들도 물론 그런 시제품 좌석에 앉아야 한다. 그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 다양한 좌석 디자인을 스케치한 그림들을 보여줬다. 그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혁명적인 신개념의 좌석은 안락하고 기능적이며 심지어 아름다워야 한다. “MP3 플레이어와 소비자 가전제품 분야에서 애플이 일으킨 혁명을 우리도 시도하려 한다. 우리라고 항공산업계의 애플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의욕 넘치는 목표이긴 해도 시의적절해 보인다. 최근 항공기 업계에선 새롭고 혁신적인 좌석의 도입을 비롯해 기내환경 개선 경쟁이 뜨겁기 때문이다. 이런 혁명적 변화는 대체로 특등석 객실에 국한된다. 그러나 항공사들은 일반 객실에도 신세대 좌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비해 더 가볍고(연료비 절감 효과), 약간 더 안락한 좌석이다. 항공기 좌석의 편리성을 평가하는 웹사이트 시트구루(SeatGuru.com) 설립자 매튜 다임러는 “항공사들끼리 마치 군비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면서 “안락한 좌석은 중독성이 있어 한번 앉아 보면 다른 의자에는 못 앉는다”고 말했다. 이런 동향 덕분에 B/E 같은 좌석 공급업체들은 요즘 특수를 맞고 있다. 이 회사의 2007년 매출은 전년 대비 49%가 늘어 16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항공산업계의 이런 리뉴얼 붐은 지난 수십 년간 진행돼온 느린 ‘진화’ 과정을 거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짐 해든이 1965년 이 업계에 들어왔을 때 항공기 좌석은 강철과 알루미늄 그리고 두툼한 쿠션으로 이뤄져 있었다. 현재 아메리칸 항공의 객실 디자인 책임자로 근무하는 해든은 “당시 좌석들은 육중했다. 일반 가정의 거실 소파와 비슷했다”고 회상한다. 1970~80년대는 항공사들이 쿠션 부피를 줄이고(공간 확보를 위해) 골격을 알루미늄만으로 만든(중량을 줄이기 위해) 좌석을 도입했다. 그러나 좌석에서 가장 큰 변화는 배치 방식에서 일어났다. 항공사들은 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 앞뒤 좌석의 간격을 좁혔다. 일부 항공사는 좌석 간격이 74cm밖에 안 돼 승객들은 무릎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비즈니스 클래스의 좌석들은 조금 더 넓었지만 불만족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2000년께부터 변화가 일었다. 브리티시 항공은 대양을 오가는 비즈니스석 승객들의 숙면을 돕기 위해 업계 최초로 180도까지 젖혀지는 좌석을 도입했다. 좌석 등받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도록 모터와 전자 제어장치도 설치했다. 승객의 프라이버시를 조금 더 존중하는 의미에서 공간도 조금 넓혔다. 승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그러나 항공사 입장에서는 그런 공간이 기내 바닥 공간을 훨씬 더 많이 차지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B/E의 디자이너들은 업계 전문용어로 LOPA라고 불리는 ‘승객 좌석공간 배치’를 혁신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내에 더 많은 좌석을 설치하려면 기존 방식대로 모든 좌석이 비행기 앞부분을 향하게 배치해선 안 된다는 게 디자이너들의 판단이었다. 2000년 브리티시 항공은 일부 좌석이 비행기 꼬리 쪽을 향해 배치된 새 비즈니스석을 선보였다. 그리고 2003년 버진 애틀랜틱 항공은 좌석들이 대각선으로 배치된 이른바 ‘청어 가시 패턴’(승객의 발이 통로 쪽을 향한다)을 채택했다. B/E의 간부인 톰 플랜트는 유나이티드 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위한 새로운 좌석 배치도 초안을 만들었다. 한 쌍의 좌석이 서로 마주보게 배치하되 그 사이에 TV 화면과 발걸이가 부착된 칸막이를 설치한 구조였다. 플랜트는 그 디자인 초안을 존슨에게 제출했다. 존슨은 레이아웃은 맘에 들었지만 칸막이가 보기에 흉했다. “마치 남성용 소변기처럼 보였다.” 그는 디자인 팀에 칸막이를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곡면으로 하고 손가방을 넣을 만한 공간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유나이티드는 지난해 11월부터 이 새로운 디자인의 좌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공을 많이 들인 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완벽한 시설을 갖춘 비즈니스석으로 개조하려면 비행기마다 3만5000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스위트룸’ 같은 1등석 객실은 훨씬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싱가포르 항공이 새로 취항시킨 에어버스 A380기에는 밀실 형태의 1등급 스위트룸이 12개 있다. 각실에 비치된 황갈색의 가죽 의자는 트윈 베드 크기로 펼쳐진다. B/E 디자이너들은 제트 에어웨이스와 에미리트 항공사에도 비슷한 형태의 ‘수퍼 1등급’ 스위트룸을 만들어줬다.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들은 그런 고급 좌석이 비싼 이용료만큼의 값을 한다고 여긴다. 안락한 좌석에서 숙면을 취하면 시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EOS 항공은 뉴욕과 런던을 오가는 비즈니스석 전용 항공편에 180도로 펼쳐지는 198cm 길이의 좌석을 제공한다. 이용료는 8000달러다. EOS의 최고 라이프스타일 책임자(CLO) 애덤 코맥은 “편안하고 공간이 넉넉해 운동선수와 패션모델들이 우리 항공사를 애용한다”고 자랑했다. 이에 비한다면 이코노미석(3등석)의 경우는 여전히 눈에 띄게 불편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시설이 조금은 개선될지 모른다. B/E와 미국 텍사스주 소재 웨버 에어크래프트는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는 차세대 좌석 모형을 출시할 예정이다. 4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항공기 실내시설 박람회에서 B/E는 뒤로 젖혀질 뿐 아니라 바닥 부분이 몇cm 정도 길어지는 이코노미석 의자를 선보인다. 웨버 에어크래프트는 신형 보잉787기에서 사용될 비슷한 형태의 좌석을 제작 중이다. 아메리칸 항공의 해든은 “향후 2년 새에 이 분야에서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항공사들이 승객들의 불편을 염려해 이런 수고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업계 컨설턴트인 마이클 보이드는 “앨커트래즈 교도소 당국이 ‘어떻게 하면 재소자들을 더 편안하게 해줄까’라며 고민할 것 같은가? 항공업계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이 이코노미석을 개선하려는 목적은 무엇보다 중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B/E의 신형 좌석 ‘스펙트럼’은 기존 의자보다 5.4㎏ 정도 무게가 덜 나간다. 무게가 0.5㎏ 줄면 좌석 한 개에 연간 200달러 정도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사 대다수는 보다 안락한 이코노미석을 설치하는 데 비용을 더 들일 생각이 없다. 이코노미석 이용자들은 대부분 가격으로 항공편을 고르기 때문이다. 존슨 같은 디자이너들이 고심하는 부분도 바로 그 점이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아이콘’이라는 새로운 의자에 각별한 자부심이 있다. 아이콘에는 뒤로 의자를 젖힐 때 뒷승객의 공간을 침범하거나 무릎이 부딪치지 않게 하는 혁신 공법이 적용됐다. 존슨은 “아이콘은 50년 만에 등장한 가장 혁신적인 이코노미석 의자지만, 일부 항공사는 그것이 너무 무겁고 비싸다고 지적한다”고 말했다. 아이콘이 만약 업계에서 외면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해도 B/E의 본사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멋진 사무용 의자로 환영 받을 만하다.
With ASHLEY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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