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동도급계약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있어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도입된 공동도급계약제가 건설사들의 담합으로 유명무실해지며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동도급계약을 체결한 건설사들이 시공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참여한 것으로 속여 공사비를 챙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코노미스트가 단독 입수한 건설사들의 ‘정부 조사 유형별 대응 지침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 지침서는 공동도급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실태 조사에 대비, 건설사들이 직원들의 행동 요령을 문서화한 것이다. 쉽게 말해 도급 공사에 참여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직원들에게 지침을 내려 교육한 문서다. 더욱 큰 문제는 건설사들의 이 같은 담합행위로 인해 혈세가 낭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공동도급 공사의 경우 관급 공사가 80%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조사에 대비 치밀한 ‘지침’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건설업체 K사의 ‘정부 실태 조사 대응 지침서(이하 지침서)’를 살펴보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공동도급계약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A4용지 3장으로 구성된 K사의 ‘지침서’는 ▶초기업무 ▶상황발생시 대처요령 ▶현장업무 등 총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초기업무 항목에선 감리단·발주처 등을 포함한 현장 조직도를 갖출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는 시공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조치다. 현장 조직도뿐 아니라 발주처·시공사·하도급사의 직원, 감독자의 이름까지 일일이 숙지해야 한다는 점을 담고 있다. 내용 중에는 “과거 현장 발령 사실이 있을 때 숙지할 것”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과거 대응 사례와 헷갈릴 것에 대비한 치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공정 및 현장 상황도 꼼꼼히 파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침서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주공정 및 개략적 공정표를 파악하라’ ‘공동도급 현황 및 당사 지분율을 파악하라’고 돼 있다. 정부 조사단이 나왔을 때 실수하지 않도록 가짜 공사 진행 상황을 숙지하도록 한 것이다. 더욱 놀랄 만한 항목은 ‘상황발생시 대처요령’이다. 여기엔 정부 실태 조사에 대비한 유형별 가상 대응 시나리오가 담겨 있다. 정부 조사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신속하게 본사에 연락하고, 점검자의 인적 사항을 파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본사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대처요령 지시사항도 치밀하다. ‘공동도급제도 편법 운영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정부 조사가 들어왔을 경우’에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답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답변 매뉴얼은 이렇다. “회계예규에 의해 공동 수급체 구성원으로 하여금 출자 비율 또는 분담 내용에 의해 실제 계약에 참여하게 돼 있어, 우리 회사 지분율 00%만큼 00월 00일 제가 참여하게 됐습니다.” 다시 말해 계약 내용을 근거로 참여한 것처럼 계속 우기라는 뜻이다. 반면 ‘정부 조사가 단순한 점검일 경우’엔 “조직도를 보여주며 계속 근무 중이라고 단순 해명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지침서엔 또 현장에서 부득이하게 이탈했을 때를 대비한 시나리오도 담겨 있다. “해당 현장을 이탈 시에는 현장소장에게 (본사 기준으로) 휴가원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정부 조사를 피하기 위해 가짜 휴가원까지 만들었다는 얘기다. 마지막 현장업무 항목은 이 같은 대응지침이 ‘시공목적’이 아니라 ‘정부 실태 조사를 무력화할 계획’으로 작성됐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침서에는 “본 대응방안의 취지는 공정 진행이 아니라 위기 대처 및 현황 파악이다. 특정 업무가 없더라도 당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또 다른 건설업체 D사의 지침서도 비슷하다. “공동도급 관련 정부의 실태 점검 계획 일정이 입수됐다”는 문구로 시작된 이 지침서를 통해 D사는 “직원이 투입되지 않은 현장에선 해당 회사에 연락해 조사 전까지 모든 공동도급 직원들이 상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정부의 실태 조사가 나오면 현장 직원을 파견하라는 것이다. 또 “공동도급 부분은 현장마다 조금씩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답변이 조금씩 달라야 할 것”이라며 “갑자기 나온 점검에서 서류를 찾느라 서두르면 그나마 힘들게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니 주의하라”는 대목도 있다. 정부의 실태 조사에 대비해 작성한 ‘가상 시나리오’대로 차분하게 대응하라는 것이다.
건설사 담합으로 편법 춤춘다  | ▶정부의 실태 조사에 대비하기 위해 작성된 K건설사의 ‘정부조사 대응 지침서’ | |
공동도급계약제도란 발주자가 공동수급체와 체결하는 계약을 말한다. 이를테면 ‘무릉~사북 간 도로확장·포장공사’를 A사(지분율 70%), B사(11%), C사(10%), D사(6%), E사(3%) 등 여러 업체가 맡는 식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것은 87년 ‘예산회계법 시행령’에 “공동도급계약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가능하면 공동도급계약을 체결한다”는 규정이 신설되면서부터다. 이는 95년 제정된 ‘국가계약법’에 승계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동도급계약제의 취지는 ‘대기업이 독점하던 대형 공사에 중소기업도 끼워주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소기업 보호 차원에서 공동도급계약제가 탄생했던 것. 국토연구원 김재영 박사는 “공동도급계약의 주요 목적은 대형 건설사와 중소건설업체의 상생협력이었다”며 “공동도급계약제를 통해 중소건설업체의 수주기회를 높이고, 기술능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동도급계약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불법·편법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건설사들의 ‘지침’에서도 드러났듯 입찰에만 참여하고, 실제 시공엔 불참하는 건설사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감사원 조사 결과(2006년 3월)에 따르면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 중인 ‘마석~답내 간 도로확장 및 포장공사’의 경우, 총 20개 공동도급 건설사 중 단 6개 업체만 시공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14개 업체는 시공에 불참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총 12개 공사현장에서 건설사들의 시공불참 사례가 적발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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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도급계약제가 이처럼 파행 운영되고 있는 까닭은 간단하다. 입찰에만 참여하고, 실제 시공을 하지 않으면 그만큼 ‘돈 벌기’가 쉽기 때문이다. 가령 1000억원 공사에 10%의 지분만 가지고 있으면 ‘공사도 하지 않고’ 100억원을 챙길 수 있다.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엄격한 처벌규정에도 공동도급계약제가 유명무실해진 이유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정부의 실태 조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대부분 건설사는 정부의 형식적 조사에 대비한 대응지침을 마련해 놓고 있어, 공동도급계약제의 불법·편법 운영을 적발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동도급계약을 체결한 건설사들이 시공에 참여하지 않고 공사비를 챙기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공동도급 공사에서 편법이 난무하는 것은 건설사들의 담합 결과다. 공동도급 공사에 명의를 빌려준 업체는 참여 업체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게 된다. 또 시공에는 실제로 참여하지도 않았으면서 계약서 지분율만큼 공사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는 건설사들이 담합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건설사들의 이런 편법으로 혈세가 낭비된다는 점이다. 시공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가 공사비를 받게 되면 그만큼의 세금이 낭비되는 것이다. 부실공사 우려도 있다. 도급 공사에 참여한 업체는 이익이 줄기 때문에 불량자재를 쓰거나 공사 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GS건설 경제연구소 이상호 소장은 “공동도급계약제만큼 이상(중소기업 보호)과 현실(파행 운영)의 괴리가 존재하는 영역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만큼 공동도급계약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이어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공동도급계약제의 실효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며 “시장 상황도 바뀌었고, 건설업계의 환경도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동도급계약제가 과연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후퇴시키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용어설명
공동도급계약제 공동도급계약이란 발주자가 공동수급체와 체결하는 계약을 말한다. 공동도급계약과 가장 유사한 것은 일본의 공동기업체다. 일본의 공동기업체 제도도 중소건설업체 보호·육성 정책의 하나다. 하지만 미국의 공동도급(Joint Venture)은 취지가 조금 다르다. 중소기업 보호대책의 의미는 없고, 융자능력·기술력 등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공동도급계약은 정부 주도로 성장해 왔다. 실제 관급공사에서 공동도급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조달청에 따르면 관급공사(조달청 발주) 중 공동도급계약액 비중은 2005년 85.4%, 2006년 83.0%, 2007년 79.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의 30%(계약금액 대비)보다 훨씬 높다. 공동도급계약 위반 처벌규정 재경부(현 기획재정부) 회계예규 ‘공동도급계약운용요령(제13조 제1항)’에 따르면 계약담당 공무원은 공동수급체 구성원들이 출자 비율 또는 분담 내용에 따라 실제 계약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각 중앙관서의 장은 공동수급체 구성원 중 정당한 이유 없이 실제 계약이행에 참여하지 않은 구성원에 대해 입찰자격 제한조치를 할 수 있다. 감사원도 공동도급제 위반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감사원은 2006년 3월 “재정경제부 장관(당시 직함)은 공동도급계약 체결 당시 공동수급체별로 계약이행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개선하고, 건설교통부 장관과 협의해 책임감리 업무 범위에 공동도급공사 이행에 대한 확인, 감독업무를 추가하는 등 지역공동도급제도의 실효성 확보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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