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물면 다 아픈 열한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픈 열한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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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LCD·TV 시장 석권 이 전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다음 선택은 액정디스플레이(LCD). 삼성전자는 95년 기흥 공장에서 첫 LCD 제품을 생산했지만 불량률이 50%에 달하는 등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삼성을 경계한 도시바, 샤프 같은 일본 선진업체들이 값을 내려 패널 값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이때 소집한 대책회의에서 일부 경영진은 “반도체로 번 돈을 다 까먹으려고 하는 것이냐”고 LCD 사업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오히려 LCD를 10년 뒤 먹고살 주 사업으로 선택했다. 이후 일본 업체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순이익보다 더 많은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면서 2002년 LCD 시장마저 석권했다. 반도체의 뒤를 이을 21세기 먹거리를 개발한 셈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소니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였던 삼성전자가 2004년 충남 아산 LCD 공장에서 소니와 합작 투자사인 S-LCD 출범식을 한 것은 세계시장에서 달라진 삼성전자의 위상을 말해준다. 20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면서 이 전 회장은 많은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세계 1등 제품 11개를 완성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것은 국내 1위라는 자만에 빠진 직원들의 눈을 해외 경쟁시장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그는 ‘1등주의’에 젖어있는 직원들에게 쉴새 없이 위기의식을 일깨웠다. 또 그는 미래 전자시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5년, 10년 전부터 변화에 대비했다. 이 전 회장은 어릴 때부터 전자제품을 해체·조립하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92년 LA 출장 중 갑자기 사라진 이 전 회장이 호텔방에서 외제 명품 VTR을 ‘뜯어보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93년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후쿠다 보고서’를 접한 뒤로 강조해온 ‘디자인 경영’도 최근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06년 TV 시장에서도 1위를 달성한 것이다. TV나 모니터 같은 세트 제품은 D램처럼 기술로만 승부할 수 없다. 소비자들이 직접 선택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TV 하면 소니’라고 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소니에 대한 충성도는 높았다. 36년 동안 TV 사업에 매달렸음에도 이 전 회장이 미국 양판점에서 참담함을 느낀 이유다. 하지만 최근 아날로그(브라운관) TV 대신 디지털(PDP, LCD) TV가 각광 받으면서 삼성전자는 기회를 잡았다. 소니의 빈틈을 타고 디지털 시장을 노린 것이다. 이 전 회장이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계 각국에 대대적인 스포츠 마케팅을 펼친 것도 주효했다. 삼성전자는 이 외에도 무선 휴대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 기술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선점했다. 이 사업은 2006년부터 이탈리아, 일본,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상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것처럼 반도체, TV, 와이브로 등 11개 제품 모두 이 전 회장에게는 매우 특별할 것”이라며 “그가 자식과도 같은 1등 제품을 말하면서 눈물을 보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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