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욕탕서 ‘때 밀던 손’ 큰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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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명익 성호기업 사장은 180억원을 투자해 철스크랩의 묵은 때를 벗기는 일을 하고 있다. |
검게 그을린 얼굴, 굵직한 몸매, 짧은 스포츠 머리. 언뜻 손명익 사장을 본다면 동네서 힘깨나 쓰는 건달로 오해할 법하다. 사실 잘못 본 것은 아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이 창피했고 죽어라 일해도 빚 갚기도 버거운 농사일이 싫었던 그는 문제아였다. 지나가면서 고급승용차를 보면 백미러를 부술 만큼 분노도 많았다. 동네 선후배와 어울려 싸움질이 잦다 보니 소년원에만 두 번 다녀왔다. 스무 살이 되기 전 그의 이력에는 빨간 줄이 가 있었다. 스무 살. 아직 어린 나이에 좀 더 폼 나는 일이 하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소년원에서 나오니 동네 선후배들이 절 다시 찾더라고요. 그러나 아버지의 눈물을 보니 다시 그럴 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돈도 안 되는 농사일을 할 수도 없고. 숙식도 해결되고 몸을 숨길 수도 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목욕탕이었습니다.” 18년 전 경주. 새롭게 문을 연 최신 목욕탕 ‘남산장’에서 손 사장이 했던 일은 때밀이였다. 때도 밀고 청소도 했다. 쉬는 날 없이 일만 했다.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 숙식이 해결된 상태에서 버는 그대로 돈을 모으니 돈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5시 20분부터 밤 8시 30분까지 때를 밀었다. “하루에 100명을 밀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어느 설 연휴였던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밀었습니다. 계속 밀다가 냉탕에 들어가 우유 한 잔 마시고 버텼죠.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웠으니 말이죠.” 어느 날은 제일 친한 친구의 아버지께서 목욕탕에 오신 날이 있었다. 그는 그만 화장실에 숨어버렸다. 이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학 다니는 아들 둔 친구 아버지가 자신을 좋지 않게 볼까 봐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잠깐뿐이었다. 그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목욕탕이 너무 감사하다. “육체노동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일하면서 다시 일어날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한때 가졌던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씻어버렸죠. 오히려 지금처럼 머리로 일할 때보다 몸으로 일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았던 것 같습니다.” 목욕탕 일을 해 한 달에 170만원까지 벌 수 있었다. 그곳에서 꼬박 3년을 일했다. 이번엔 고물상을 시작했다. 목욕탕 손님이 추천해 준 일이 고물상이었는데, 초기 자본금이 덜 들고 몸으로 때우면 돈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생각해보소, 누가 과거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받아준답니까? 회사에 들어가 볼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일찍부터 사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목욕탕에서 일한 후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뭐든지 도전하게 된 덕을 봤죠.” 손 사장이 인생역전의 포인트로 짚은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그 ‘긍정적인 생각’이란 구체적이고 단순해야 한다. “처음부터 매출 10억 1000억 해야지 하고 꿈을 꾼다고 되겠습니까? 조금씩 나가야죠. 처음에는 트럭이 두 대 있었으면 하던 게 넉 대가 되고, 공장도 짓고 싶고. 그리고 좀 솔직해집시다. 고급승용차 갖고 싶으면 끈질기게 일하며 목표를 이뤄야죠.” 좋게 말하면 긍정적인 생각이고 어찌 보면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고물상 수준이던 사업이 고철 중간상, 이제는 철스크랩을 가공해 제강업체에 납품하는 기업이 된 것도 다 이런 그의 생각 덕분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사업 때 반드시 찾아오는 힘든 고비를 넘게 해준다. “사업은 계단식으로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고비를 반드시 넘겨줘야만 또 좋은 일이 있죠. 처음 고물상을 할 때는 현금을 선지급하고 물건을 받아와야 했기 때문에 자본조달이 힘들었죠. 여기서 만족하고 더 큰 것은 포기할까 여러 번 망설였지만 저보다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이 부러웠고 저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때문에 가족이 고생 많았죠. 추운 겨울 사무실 바닥에서 전기장판 깔고 살다 보니 둘째 아이는 아직도 비염이 있지요.” 그렇게 고비를 넘기다 1999년 또 한 번의 큰 시련이 닥쳤다. 거둬온 철스크랩 중 장물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전기로’ 만드는 게 꿈 “6개월을 감방에 있었습니다. 제 과거가 문제가 되더군요. 제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했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데 미칠 지경이었죠. 결국 6개월을 살고는 벌금 30만원 내고 나왔습니다. 감옥에서 처음 한 달은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이렇게 힘든 일을 겪었는데 더 좋은 일이 반드시 온다’고 믿었죠.” 그의 입버릇처럼 나쁜 일이 있으니 정말 좋은 일이 왔다. 그 후로 사업은 꾸준히 성장했다. 성장의 비결은 꾸준한 투자와 때를 벗기는 정성이다. 그는 불순물이 적은 고철을 가공하는 데 필요한 투자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지난해 ISO 9000과 14001(제강 및 주물용 철스크랩의 가공·판매 및 부가서비스) 인증을 획득했고, 11월에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인 ‘INNO-BIZ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180억원을 투자해 천북지방산업단지에 공장을 완공해 최대 규모의 철스크랩 공장을 만든 것은 손 사장의 자랑이다. 손 사장은 “고철 더미도 이곳에 오면 때를 싹 벗고 간다. 제강업체 고객들이 만족하는 최상의 상태로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비를 맞아 녹물이 떨어지는 고철 더미를 상상할 수 없다. 철스크랩은 공장 안에서 깨끗이 목욕한 후에 상자 모양 혹은 연탄 모양으로 가공돼 나온다. 2.5t트럭 한 대 분량이 1500만원 정도다. 이 제품은 포스코나 대한제강 등으로 간다. 이뿐만 아니라 손 사장은 관련사업 분야로 꾸준히 사업을 확장했다. 자동차부품가공업에 진출하기 위해 ㈜태일테크를 설립했다. 2006년 1월에는 철강재 유통업 ㈜성호스틸을 세웠고, 3월에는 ㈜성호종합건설도 설립했다. 성호기업은 2007년 기준으로 총 7개의 계열사 전체 매출액 1156억원, 영업이익은 45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원자재 값 상승과 철스크랩 수요 증가로 매출이 3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월 수입 100만원에서 연 매출 3000억원의 차이를 15년 만에 만들어 낸 손 사장은 이제 전기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우리나라 제강업체들의 창업 1세대 중에는 고물상으로 시작하셨던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존경해 왔습니다.” 기자가 경주를 방문한 그날도, 전기로 전문가가 성호기업에 와 있었고 6만6000m2 부지를 추가 매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찌는 여름, 시원하게 목욕이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 사장에게 그가 일했던 남산장이 남아있냐고 물었다. “네. 아들과 함께 가 옛날 이야기도 나누지요. 그런데 때 밀어 달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아직 제가 힘이 있는데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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