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HOOQ를 소리 내서 읽으면…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예술가들에게 모방의 욕구는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힘이다. 자연은 모방 대상의 보고다. 따라서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예술 작품은 자연을 모방한 결과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자연 외에 선배나 동료 예술가의 작품을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다. 명분을 내세워 모방 행위를 공표하는 경우는 예술 창작의 한 방식으로 용인되지만, 은밀한 모방은 일종의 절도 행위다. 모방의 명분은 여러 가지다.
아주 오래된 작품의 훼손을 막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대로 따라 그려내는 것(모사)은 역사적 가치의 전승이라는 명분을 지닌다. 걸작의 감흥을 창작의 동기로 삼는 것은 합법적 예술 창작이다. 음악의 변주곡이 그런 경우다. 페르난도 소르는 ‘모차르트 마술 피리 주제’를 따와 변주곡의 걸작을 만들기도 했다.
파블로 피카소도 벨라스케스, 페르디낭 들라크루아 등 선배 화가들의 작품에서 주제를 가져와 자신의 형식으로 소화해 걸작을 만들어냈다.20세기 현대미술은 모방을 새로운 표현 방식의 하나로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미디어 발달에 따른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기존에 없던 것을 찾아내기가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리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것에 창작의 가치를 두었던 서양 미술이 창의력 고갈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모방에다 그럴듯한 이유를 달아 창작의 새로운 방법으로 내세웠다. 이런 기발한 생각을 미술사에 도입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추앙 받는 이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LHOOQ 복제’는 그런 생각을 단박에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다. 그런 이유로 모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뒤샹의 모방 수법은 독창적 아이디어를 바닥에 깔고 있다. 모나리자의 이미지 자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가 상징하는 기존의 미술 개념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유일한 것, 독창적인 것, 고귀한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에 도전한 셈이다. 뒤샹은 모나리자의 싸구려 복제화에 수염을 그려 넣고 ‘LHOOQ’라는 글씨를 써넣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이 글씨는 소리 내서 읽으면 프랑스어로 “그녀는 끝내주는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서양 미술사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고귀한 명작을 훼손하고, 그것도 모자라 고상하고도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대접받는 여인을 ‘섹스 머신’으로 비하해 버린 것이다. 수염을 그린 이유는 모나리자의 성적인 모호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고전 명작의 이미지를 빌려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식을 ‘패러디’라고 부르며 이는 팝아트의 중요한 표현 방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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