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이제는 영산강과 민주당이 화해할 차례

이제는 영산강과 민주당이 화해할 차례

▎4대강 살리기 사업계획이 확정된 지난 6월 8일 전남 나주시 금천면 영산강 둔치에선 중장비와 트럭이 동원돼 영산지구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계획이 확정된 지난 6월 8일 전남 나주시 금천면 영산강 둔치에선 중장비와 트럭이 동원돼 영산지구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런 ‘해당행위자’들을 가만둡니까. 민주당은 콩가루당입니까?”

지난 11월 23일 국회 본청의 민주당 사무실. 걸려오는 지지자들의 항의전화로 한때 업무가 마비됐다. 전날(22일) 전남 영산강 공구에서 열린 4대강 사업 기공식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축사를 한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를 성토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전화들이었다고 한다.

기공식에는 광주·전남 출신 민주당 의원들도 초청받았으나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사전에 “가면 절대 안 된다”고 단속한 결과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의원들에게 모종의 ‘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지자체장은 달랐다. 박 시장과 박 지사는 “성공한 지도자로 남기를 기원 드린다”고 이 대통령에게 축사를 했다. 이 대통령 양편에 나란히 서서 팔을 들어올리는 장면도 연출했다.

이를 TV로 지켜본 민주당 당직자들은 “눈뜨고 못 보겠다”며 스위치를 꺼버렸다. 이튿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세균 대표는 “당원은 당의 뜻에 따라야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두 사람을 비판했다. 우상호 대변인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를 넘은 발언이었다”고 공격했다.

박 시장은 25일 “민주당 시장으로서 4대강 사업에 대해선 이를 반대하는 당론과 입장을 같이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박 지사도 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당론에 반대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지역발전을 위해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비난은 격화됐다.

정동영·천정배 의원과 김근태 전 의원 계파에 속한 민주당 의원들의 모임인 ‘민주연대’는 성명을 내고 “아무리 지역현안이라 하더라도 두 사람의 행동은 해당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해당행위자들에 대해 소환과 해명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며, 당사자들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최인기 의원, 영산강·민주당의 ‘화해’ 주도수도권(오산)이 지역구인 안민석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두 사람의 탈당과 지도부의 공천 배제를 요구했다. 그는 “말로는 서민정치를 외치면서 주말이면 골프장에서 노는 ‘박쥐 정치인’은 당에서 자숙해야 하고 더 이상 용인돼선 안 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갈등이 확산되자 정 대표는 26일 전남도당 여성위원회 워크숍 참석을 명목으로 광주를 전격 방문했다.

박 시장과 박 지사는 예고 없이 역에 나와 정 대표를 마중했다. 두 단체장은 정 대표와 5분간 비공개로 만나 자신들의 행동을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지자체장이 대통령을 예우한 건 당연하지만, 대운하로 의심되는 4대강 사업에 영산강이 들러리를 서는 상황을 감안해 조심했어야 했다”고 훈계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간판이 아니라도 자력으로 당선될 수 있는 후보를 찾는 게 목표”라며 “호남부터 과감한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이번 사태로 촉발된 당내 내홍을 차단하기 위해 정 대표가 두 사람의 공천 여부를 놓고 경고를 날린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전남지사 공천이 안갯속에 들어갔다”는 전망도 따랐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에선 당이 두 사람에 대한 ‘조치’와는 별개로 영산강 사업은 다소간 절충을 거쳐 결국 받아들일 것이란 분석이 많다. 당장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이시종 의원은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을 전면 부정할 게 아니라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자는 입장”이라고 못 박았다.

이 의원은 “영산강의 경우 수질이 몹시 나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4대강 사업 중에서도 수질 개선 등은 민주당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우리 당은 수질 개선이든, 제방 보강이든 심사를 거쳐 인정할 건 해서 사업 내용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주장했다.

당내외 인사들은 “박 지사와 박 시장이 혼쭐난 직후에도 민주당의 예산정책 실무 지휘자가 이런 발언을 한 건 민주당이 영산강 사업만큼은 부분적 수정을 거치면 정부 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을 ‘국가적 재앙’ ‘예산 블랙홀’이라며 극력 반대해 왔지만 영산강에 대해서만은 태도가 달랐던 게 사실이다.

이낙연(3선, 함평·영광·장성)·유선호(3선, 장흥·강진·영암)·박지원(재선, 목포)·최인기(재선, 나주·화순) 의원 등 장관을 역임했거나 현재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거물 의원들의 지역구가 영산강을 끼고 있다.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으로선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중에서도 영산강 지류의 70%가 집중된 나주가 지역구인 최인기 의원이 영산강과 민주당의 ‘화해’를 주선할 선봉장으로 당내에선 꼽히고 있다. 최 의원은 그동안 영산강 사업에 가장 분명하게 찬성 의사를 밝혀, 한때 당 지도부와 각을 세운 듯한 인상까지 줬던 인물이다.

그런 최 의원이 26일 언론에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당내에선 지도부가 그의 주장을 골간으로 삼아 영산강에 대한 당론을 정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의원의 주장 요점은 네 가지다.

①영산강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 전국에 이렇게 오염된 강이 없다. 수질개선이 최우선 과제다 ②다만 과도한 재정투입은 안 된다. 그동안 매년 정부는 5000억원에서 8000억원을 하천정비사업에 써왔다. 좀 더 늘려 1조∼2조원이면 몰라도 정부가 4대강에 투입한다는 22조원은 너무 많다 ③짧은 공기 안에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이른바 ‘졸속추진’도 반대다. 환경 타당성, 에너지 효율, 문화재 보호 등 법에 명시된 사전조사부터 완료하고 사업하라 ④대운하로 의심되는 사업은 절대 반대다. 특히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조령물길’ 건설은 수도권과 영남권을 이어 한나라당 텃밭을 만들려는 정치성 대운하 사업이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등이다.



민주당, ‘영산강 정부 안’ 상당 부분 수용 움직임최 의원은 27일 기자와 만나 “어제 내가 밝힌 4원칙을 당 지도부의 입장으로 보면 된다”며 “운하 건설로 의심받을 사업은 빼되, 영산강 수질개선과 홍수예방 사업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의 말을 자세히 짚어보면 민주당은 영산강에 대해서만은 상당부분 정부 안을 받아들일 것이란 해석이 더욱 가능해진다는 게 당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산강을 살려야 한다’는 걸 제1명제로 꼽은 점, 영산강에 들어갈 예산이 2조원대로 ‘과도한 재정투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 대표적 근거다. 최 의원실 한 보좌관은 “지도부도 가장 낙후되고 버림받아온 영산강에 돈을 쏟아야 한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며 “최 의원은 민주당이 공식 반대하는 ‘보’ 건설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영산강의 수량 확보를 위해선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부가 정비사업 대신 수질개선 조치부터 먼저 하는 등 사업의 우선순위를 바꿔준다면 민주당도 영산강 사업은 충분히 용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시장과 박 지사 말고도 전남·광주 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모두 영산강 개발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곧 민주당 지도부와 최 의원을 비롯한 전남·광주 지역 의원 및 지자체장들이 영산강 사업에 대한 예산 수정안을 내 정부와 절충을 시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파행...노조, 기자회견 예고

2쿠팡 PB 상품 우선 노출했나...공정위 심의 하루 앞으로

3일동제약 우울장애 치료제 '둘록사'...불순물 초과로 회수 조치

4‘오일 머니’ 청신호 켠 카카오모빌리티…사우디 인공지능청 방문

5‘레녹스 합작법인’ 세우는 삼성전자가 노리는 것

6고령화에 日 기업 결단...줄줄이 '직책 정년' 폐지

7여름 아직인데 벌써 덥다...덩달아 바빠진 유통업계

8 민주유공자법 등 4개 법안 본회의 통과…野 단독처리

9SM엔터 ‘고점’ 왔나…하이브, 223억원 손해에도 ‘블록딜’

실시간 뉴스

1삼성전자 노사 임금협상 파행...노조, 기자회견 예고

2쿠팡 PB 상품 우선 노출했나...공정위 심의 하루 앞으로

3일동제약 우울장애 치료제 '둘록사'...불순물 초과로 회수 조치

4‘오일 머니’ 청신호 켠 카카오모빌리티…사우디 인공지능청 방문

5‘레녹스 합작법인’ 세우는 삼성전자가 노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