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고 빠른 놈이 왔다
신형 벤틀리 수퍼스포츠의 외양은 화려하고 기능적인 동시에 우아하다. 그뿐만 아니라 정지상태에서 불과 3.0초 만에 시속 100km에 이를 만큼 빠르며 지름 51cm의 탄탄한 바퀴도 위풍당당하다. 유선형으로 잘빠진 곡선은 먼 훗날까지도 사랑 받을 듯하다.
이런 묘사는 마치 F1 프리우스 레이스카(프리우스는 휘발유와 전기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하지만 이 차에는 꼭 들어맞는다. 수퍼스포츠는 벤틀리가 그동안 선보인 라인업 중 가장 최신 모델이다. 적자에 허덕이면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이 전설적인 영국회사가 이들 라인업에 힘입어 일약 자동차 시장의 신데렐라로 도약한다.
요즘 플로리다주 팜 비치의 워스 거리를 따라 늘어선 고급 음식점 앞, 런던 해로즈 백화점 앞, 베벌리 힐스(벤틀리의 최대 시장) 로디오 드라이브의 패션 부티크 옆에 주차된 벤틀리가 부쩍 늘어났다. 영국 여왕이 애용하던 이 브랜드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경제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1920년대 출범 당시부터 벤틀리는 정통 기술을 자랑했다. 창업자 W O 벤틀리는 1차 대전 당시 복엽 전투기(Sop with Camel)의 엔진을 개발한 인물이다. 롤스로이스 소유주들이 뒷좌석에 편히 앉아서 세상을 둘러봤다면 벤틀리 주인들은 운전대를 잡는 데서 자부심을 느꼈다.
벤틀리는 처음부터 레이스카 회사로 간주됐다. 벤틀리 자동차는 잉글랜드의 브룩랜즈, 프랑스의 르망에서 열린 유명 대회를 휩쓸었다. 우승하는 레이스카 제조사라는 명성에 힘입어 초반에는 판매가 호조를 띠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기술 도입에 소극적이었으며 시대가 바뀌어도 기존 디자인을 고집했다.
툭하면 노사분규가 발생해 생산이 중단됐다. 반면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같은 경쟁사들은 그 뒤 수십 년 동안 날렵하고 섹시한 자동차로 수많은 팬을 확보했다. 1931년 벤틀리는 롤스로이스로 넘어간 뒤 뒷방마님 신세로 전락했다. 롤스로이스를 무적의 최고 영국 브랜드로 만들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롤스로이스조차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폴크스바겐이 벤틀리를 인수한 뒤(롤스로이스는 BMW로 넘어갔다) 장기적인 모델 혁신작업에 착수했다. 폴크스바겐의 막대한 투입자금과 독일의 일류 공학기술은 이 최고급 자동차 회사를 살리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완전히 현대적이고 세련되고 기능적이며 믿음직한 자동차가 됐다”고 에드먼즈닷컴의 칼 브라우어 편집장이 말했다. “그러나 요즘 벤틀리를 구입하는 대다수 사람은 분명 벤틀리가 꽤 알아주는 레이싱 카의 혈통을 지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리라고 생각한다.”
폴크스바겐의 벤틀리 현대화 작업은 눈부신 결과를 낳았다. 부자동네에서 눈에 띄는 벤틀리가 갈수록 늘어난다. “벤틀리의 한 가지 매력은 가령 벤츠처럼 누구나 소유하는 차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브라우어가 말했다. “특정 부자 동네에서는 공급과잉 수준에 가깝다. 너무 흔하지 않고 적정수준을 유지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지난해의 경제위기가 그 문제를 해결해줬다. 2008년 벤틀리의 전 세계 판매대수는 7604대. 지난해엔 구매자가 4600명을 약간 웃돌았다. 그러나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폴크스바겐을 모기업으로 둔 덕분에 벤틀리는 불경기를 충분히 이겨낼 역량을 갖췄다. 그리고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모기업과 달리 벤틀리는 수월한 틈새시장을 찾았다.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고급 대량생산 모델과 롤스로이스나 페라리 같은 수제작 모델 사이에 걸치는 가격대의 시장이다. 수퍼스포츠 모델은 19만7763유로로 벤틀리 자동차 중 가장 비싸다. 이런 고가정책으로 올해에는 250명의 한정된 고객에게만 판매할 계획이다.
수퍼스포츠는 아무나 관심을 보일 만한 차는 아니다. 덩치가 상당히 크고 승차감이 좋아 보이는 탓에 그렇게 빨리 달린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진다. “벤틀리 수퍼스포츠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스포츠형 개조차”라고 오토모빌 매거진의 진 제닝스 편집장이 말했다. “로켓처럼 빠르고 아주 화려하다.”
가벼운 탄소섬유를 많이 사용해 무게를 줄인 데다 강력한 6L, 12기통(W12), 621제동마력(bhp) 트윈 터보 엔진을 탑재해 역대 벤틀리 모델 중 가장 빠르다. 시속 329km에 이르러도 떨림이 거의 없다. 수퍼스포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벤틀리에 사용되는 고급스러운 광택의 경재 베니어 대신 화려한 색의 래커를 입힌 탄소섬유를 사용했다.
스포티한 자동차 애호가들은 분명 이를 값비싼 마감장식으로 여길 듯하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합금 스포츠 페달은 레이스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문짝에는 다이아몬드 무늬를 퀼트로 박아 넣은 알칸타라 스웨이드 가죽을 입혔다. 운전대는 두툼하고 촉감이 부드럽다. 4인승의 경우 뒷좌석이 있을 자리에 널따란 화물선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가죽 시트의 테두리 장식과 바늘땀의 조화는 영국 특유의 고급스러운 멋을 자아낸다. 비싼 값을 하는 기능들이다. 선택사양인 나임 15스피커 사운드 시스템은 즐거움을 주지만 2인승 자동차에 정말로 그렇게 많은 스피커가 필요할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모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수퍼스포츠는 분명 도를 넘었다.
최근 시운전하면서 ‘스포츠’ 모드를 선택한 뒤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가 공중으로 거의 솟구치다시피 하면서 여왕의 애마가 놀라 날뛰듯 앞쪽이 번쩍 들렸다. 마치 뒷바퀴만으로 달리며 곡예를 하는 듯했다. 며칠 뒤 모하비 사막의 공항 활주로에서 페달을 끝까지 밟아볼 기회가 있었다. 가속페달을 한껏 밟으면서 활주로를 일직선으로 달리도록 바퀴를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속도계의 바늘이 시속 317km에 닿는 모습을 보며 온몸에 짜릿한 쾌감이 번져나갔다. 옆에서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아마 그보다 기록이 좋았지 싶다. 자동차는 내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정면을 향해 달려나갔다. 어느 정도는 접지력이 뛰어난 4륜구동과 매끄러운 변속 덕분이다. 하지만 그런 막강한 추진력에는 돈 이상의 대가가 따른다.
수퍼스포츠는 환경보호운동가들의 주요 공격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내주행시 연비가 100km당 24.5L로 기록됐으니 아마 수퍼스포츠는 지구를 살리는 데 필요한 제품 목록에는 분명 오르지는 않을 듯하다. 어쩌면 올여름부터 휘발유나 E85 바이오연료를 모두 사용하는 연료겸용(flex-fuel) 기능이 추가되면 도움이 될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연말께 출시될 벤틀리의 신형 컨티넨탈 GT 모델에 장착되는 엔진의 연비가 현재의 GT보다 40% 더 좋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소형의 친환경 모델로 자동차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분명 아니다. “벤틀리는 아주 훌륭하게 구매자의 과시욕을 충족시켰다”고 로스앤젤레스의 자동차 컨설팅 그룹 오토퍼시픽의 조지 페터슨 사장이 말했다.
“프로 스포츠 선수, 방금 거액의 계약금을 받은 소설가, 벤츠보다 더 독특한 차를 원하는 사람 등이 주요 고객이다.” 벤틀리는 이들이 혹할 만한 또 다른 차를 준비한다. 이 회사의 대표적인 대형 세단인 2011년형 멀산이다. 미리 나온 사진을 보면 벤틀리 전통의 고급스러운 외관을 따르지만 윤곽선은 확실히 진화했다. 그래도 수퍼스포츠보다는 빠르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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