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rld view] 누가 예수 태블릿이라 했나?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이전 이탈리아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를 가톨릭교와 개신교에 빗대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도스(DOS)를 기반으로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계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다. 반면 매킨토시를 ‘단 하나의 참된 교회’ 같은 존재로 여기는 애플의 세계에선 “신도(사용자)들에게 단계별로 교회(회사)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패드[뉴욕 타임스는 부활절 직전 출시된 이 제품이 미국 미디어의 부활을 이끌어주리라는 기대로 ‘예수 태블릿(The Jesus Tablet)’이라는 별명을 붙였다]의 성공은 애플의 이런 경향을 한층 더 부추겼다. 아이패드 출시 전 애플의 기밀 유지를 위한 보안 조치는 단순히 회사의 기밀 수준을 넘어 종교적 미스터리로 불릴 만했다.
애플의 영적 지도자(CEO 스티브 잡스)가 마치 장엄한 미사와도 같은 행사에서 이 ‘매혹적이고 혁명적인’ 제품의 탄생을 자축했다. 그의 머리 위에선 십자가상처럼 널리 알려진 사과 모양의 애플 로고가 빛났다.
이런 분위기에 맞추자면 콘텐트 제작업체들은 ‘기적적인 치유를 꿈꾸며 루르드로 모여드는 장애자들’에 비유된다. 이들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앱스(apps: 응용 프로그램)’의 제작을 허용하는 은총을 내려 위기에 처한 사업을 구원해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런 말을 하면 화형을 당할지 몰라도 이들의 희망은 그야말로 “일장춘몽이다.”
출판업자들의 환상이 지닌 첫째 문제는 아이패드로 신문과 잡지를 읽는 데 응용 프로그램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이다(나도 지난주에 아이패드를 직접 사용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작은 아이폰 화면에서는 응용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아이패드 화면은 큼직하고 밝고 아름답다. 와이파이(Wi-Fi) 연결 상태만 양호하다면 웹브라우저 ‘사파리’만으로 어떤 출판물이든 읽는 데 문제가 없다.
배니티 페어와 타임 등의 잡지사에서 내놓은 값비싼 1세대 아이패드 응용 프로그램들은 실제 잡지를 보듯 페이지를 넘겨 가며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애플의 ‘월드 가든(walled garden: ‘울타리를 친 정원’이라는 의미로 사업 모델의 일종인데 인터넷의 경우 웹 콘텐트와 서비스에 대해 사용자 접근을 제한하는 환경을 말한다)’ 내에서도 울타리가 너무 높아 밀실공포증을 일으킬 만한 사례로 꼽힌다.
댓글 달기와 소셜 미디어의 통합, 다른 사이트나 자료의 링크 등 요즘 사람들이 전자 저널리즘에서 기대하는 기본적인 기능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블로그 네트워크인 고커 미디어의 설립자 닉 덴튼은 이 프로그램들을 ‘CD롬 시대로 한 발짝 후퇴’한 제품으로 평했다.
더 큰 문제는 애플이 지배하는 시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일부 출판업자의 태도다.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은 당초 서비스에 제약이 많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잡스는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CEO)보다 한술 더 뜬다. 애플은 자사 제품에 자사가 지정한 응용 프로그램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며 응용 프로그램 수입의 30%를 차지한다.
애플은 또 사용자들로부터 수집한 데이터 중 어떤 부분을 출판업자들과 공유할지를 결정한다(아이패드의 경우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이 없다). 게다가 애플은 광고를 판매하고 제반 기준을 관리하며 광고 수입의 40%를 차지할 계획이다. 애플의 이런 지배적인 태도로 출판업계도 음반업계만큼 큰 타격을 입을 듯하다.
하지만 애플의 비전 중 가장 염려되는 측면은 검열관 같은 성향이다. 구글은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지만 [중국의 인터넷 만리장성(검열 시스템)에 대항한 영웅적인 결정이 그 증거다] 잡스는 자유로운 표현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시사만화가 마크 피오레의 응용 프로그램 출시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던 결정이 좋은 예다. ‘공인(公人)을 조롱하는 콘텐트’를 금지하는 애플의 아이폰 개발업자 프로그램 라이선스 협정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피오레가 퓰리처상을 받은 뒤 애플은 그 결정을 번복했다. 하지만 애플은 자사 정책과 관련해 변명을 늘어놓지 않으며 언론의 질문을 무시하기 일쑤다. 애플은 특히 스티브 잡스를 조롱하는 기자들에게 앙심을 품기로 유명하다. 신체 노출에 관해서는 바티칸 교황청보다 더 엄격하다. 한 패션 잡지의 편집자들은 현재 개발 중인 자사의 아이패드 응용 프로그램을 ‘이란판’(이란은 이슬람 계율에 따라 여성 신체의 노출을 엄격하게 통제한다)으로 지칭한다고 알려졌다.
1990년대 애플의 폐쇄적인 운영체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좀 더 개방적인 모델에 밀려 참패를 당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다. 아이패드는 훌륭하고 멋진 기기다. 난 앞으로 한동안은 아이패드를 비난하거나 그 제품 없이 지낼 생각이 없다. 하지만 콘텐트 제작업체들은 현재 웹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자신의 허울 좋은 감옥으로 대체하려는 잡스의 의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가톨릭 교회는 미학적 측면에선 늘 개신교에 앞선다. 하지만 혁신과 독립적인 사고에서는 뒤떨어진다. 또 부(富)의 분배에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필자는 뉴 미디어 출판사 슬레이트 그룹의 회장이며 저서로는 ‘부시의 비극(The Bush Tragedy)’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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