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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상무’들에게 닥치는 췌장의 반란

‘술 상무’들에게 닥치는 췌장의 반란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는 A상무(52)는 며칠 전 밤, 갑작스러운 복통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처음에는 배꼽 왼쪽 위 복부와 반대편 등 쪽에 묵직한 아픔이 느껴지다 차츰 그 강도가 세져 주저앉아 무릎을 감싼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당황한 그의 아내가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렀고, 다음 날 아침 정밀검사를 한 후에야 병명을 알았다. 췌장에 심한 염증을 일으키는 급성 췌장염이 원인이었다.

회사에는 속된 말로 ‘술 상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들은 대인관계가 좋고 술을 잘 마셔 거래처 접대를 도맡다시피 한다. 수주를 통해 매출을 일으키는 건설회사나 기업체 영업관련 부서에 이런 사람이 많다. 건장한 체격에 두주불사(斗酒不辭)를 자랑하던 A상무도 사내에서 인정 받던 술 상무였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술자리가 잦았고 한번 마셨다 하면 3차가 기본이었다. 술자리 영업에 정평이 나 있는 A상무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다름아닌 길이 약 15㎝, 두께 약 2~3㎝, 무게 약 100~200g의 작은 장기 췌장이었다.

A상무는 자신이 하도 술을 자주 마시기 때문에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위장이나 간장 쪽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조그만 췌장이 우리 몸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췌장은 우리 몸의 혈당치를 조절하는 인슐린을 분비하며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소화 분해를 담당한다.

소화액인 췌액이 이곳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흘러 들어가 강력한 소화작용을 한다. 체내에 인슐린을 분비하는 유일한 기관은 오직 췌장 한 곳이어서 췌장염이 발병한 경우에는 인슐린 분비에 큰 영향을 미치고 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고혈당증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췌장의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알코올과 담석이 급성췌염의 주요 원인췌장에 심한 염증을 일으키는 급성췌염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알코올의 다량 섭취가 전체 환자의 약 35%, 담석이 약 25%를 차지한다. 알코올이 원인인 췌염 환자는 남성이 많고 그중에서 50대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담석이 담췌관의 말단 부위인 오디 괄약근 부위에 들어가 박히거나 담췌관을 통해 배출되는 과정에서 오디 괄약근의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경우 췌장염이 발생할 수 있다.

알코올은 췌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많이 마시면 췌액의 분비가 눈에 띄게 증가하며 췌관의 압력이 높아져 췌액이 췌장 내에 체류하게 된다. 또 알코올의 분해 산물이 췌액의 세포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 결과 부담이 생긴 췌장 자체를 체류한 체액의 소화효소가 소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급성췌염은 술이나 기름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수 시간 후에 극심한 복통과 함께 찾아오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통증이 계속되며 구토나 발열을 수반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한시라도 빨리 구급차를 불러야 할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다.



음주 후 꿀물은 오히려 해로워병원에서는 혈액이나 소변검사, 초음파검사, CT(컴퓨터 단층촬영) 등으로 췌장의 상태나 염증의 퍼진 정도를 살펴본다. 일단 췌장염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긴급 입원을 결정하게 된다. 췌장염에 걸리면 췌장을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일시적으로 식음을 중단하고 생리식염수나 췌장염을 억제하는 약 등을 링거수액을 통해 투여하게 된다.

가벼운 췌장염은 약 3~4일의 단식이나 단음 후 조금씩 유동식으로 바꿔주면 증상이 안정돼 7~10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증인 경우에는 사망에 이를 확률이 10%나 되는 매우 무서운 병이다. 중증 췌장염 환자는 집중 치료실에서 호흡기나 순환기, 신장 등 전신의 관리와 2~3개월의 입원 기간이 필요하다.

남편이 술을 마신 후 속이 아프다고 투정하면 꿀물을 내주는 아내들이 많다. 하지만 췌장염으로 인해 복통이 찾아왔을 때 꿀물을 마시면 오히려 해가 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의 김나영 교수는 “배출하지 못한 소화액이 역류하면서 췌장 세포를 파괴해 급성 췌장염을 일으킨다”며 “과음한 다음 날 명치 끝이 아프고 구토를 할 때 술도 깨고 수분도 보충할 겸 이온음료나 꿀물을 마시면 증상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췌장염이 발병하면 음식과 수분 섭취를 중단해 췌장에 안정을 취하는 게 최우선이다. 이때 영양은 링거수액을 통해 정맥으로 공급받게 된다. 췌장 내에서의 소화효소(단백분해효소)의 작용을 저지하기 위해 분해효소저해약을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항균약도 투여한다.

한방에서는 소염제나 면역억제제는 염증의 발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약을 중단하게 되면 염증이 재발할 위험이 매우 높다고 본다. 윤제한의원의 조윤제 원장은 “췌장염도 진액이 부족해서 오는 소화기의 만성염증성질환과 같은 선상에 있다”며 “췌장점막세포를 보호하는 점액질 보호막을 재생하기 위해 보혈음(진액을 보하기 위한) 처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췌장염이 발병했을 때에는 체내에 열을 생기게 하는 쑥, 마늘, 생강, 홍삼, 녹용과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다. 췌장염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복부조영술 때 석회화 증상이 진단되는데 이를 췌경화증이라 한다. 췌경화가 이루어진 부위는 향후 암세포로 진행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 염증을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급성 췌장염은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에 예방할 수 있는 병이다. 술을 마시더라도 맥주는 하루 1병, 소주는 반 병 이내로 제한해야 하며,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완전히 금주해 장기가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A상무처럼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면 언젠가는 췌장의 비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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