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세상은 변했다, 다음은?”…33인의 CTO가 답했다
[CTO 33인의 大전망]①
기술로 바뀌는 세상…기술로 변화를 이끄는 기업만 살아남아
자율주행 시대 예언…“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
이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이들은 엔지니어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도 변화도 어려운 시대다. 이런 엔지니어들이 꿈꾸는 최고의 자리는 ‘최고기술책임자’로 불리는 CTO일 것이다. 최고경영자만큼 혹은 창업가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지만, 기술로 세상을 바꾼다는 철학으로 그들은 뒤에서 묵묵히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낸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궁금했다. CTO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다. AI 시대를 이끌어낸 이들이 예언하는 다음 세상은 무엇일까. 숨어있던 33명의 CTO가 직접 답했다. 9월 한달 동안 대기업부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CTO들에게 20개가 넘는 항목에 대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기술, 그 변화에는 기업 역할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진보된 기술을 대중이 체감하는 건 결국 서비스·제품 등이기 때문이다. 최근 50년간 인류의 일상을 극적으로 변화케 한 사례만 봐도 그렇다. ▲1981년 개인용 컴퓨터(PC) 보급 ▲1995년 인터넷 확산 ▲2009년 스마트폰 대중화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혁신적 발명품’이 14년 주기로 나왔다.
PC 상용화 후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터넷의 보급이 이뤄진 뒤에는 아마존·구글·네이버 등이 기회를 잡았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곳도 애플이란 기업이다. 카카오·인스타그램·우버 등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손을 점령했다.
스마트폰 시대 개막 후 다시 14년이 지난 2022년 11월, 미국 기업 오픈AI가 챗GPT를 세상에 내놨다. ‘질문에 유려한 답변’을 적어내는 서비스가 등장한 뒤로 인공지능(AI) 개발 열풍이 불었다. 다양한 기업이 AI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챗GPT 등장은 ‘아이폰 모멘트’로 불릴 정도로 일상의 다양한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AI 시대 개막에 맞춰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기업, 그 안에서 기술의 진보를 주도하는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이야기를 조망하기로 했다. 기술 변화에 민감한 스타트업부터 단숨에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굴지의 대기업까지. 다양한 곳에 소속돼 있는 CTO 33인의 ‘최근 생각’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의 단면을 엿봤다.
이번 설문은 ‘CTO 업무의 특성’과 ‘AI 시대에 대한 생각’ 등을 알아보기 위한 문항으로 구성됐다. 객관식의 경우 CTO의 생각을 최대한 많이 담고자 모두 복수로 응답을 선택할 수 있도록 꾸렸다. 또 객관식 항목에 적절한 선택지가 없다면 별도의 답변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주관식의 답변은 이름과 소속 기업의 공개를 원하는 이는 그대로 옮기고, 나머지는 익명 처리해 기사에 담았다.
‘해결사’ CTO가 본 가장 중요한 기술
“AI의 상용화가 이뤄진 다음에 ‘시장을 지배할’ 기술로는 자율주행을 꼽겠습니다.”
“CTO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연 기술을 제품·서비스에 접목하는 ‘응용력’이고, 직원들에게는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하곤 합니다.”
“기술 기반의 사업을 꾸리는데 ‘인재 유치’가 가장 어렵습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정부의 지원 제도 확산과 규제 완화 등의 변화가 필요해요.”
본지가 9월 한 달간 진행한 CTO 대상 설문에 응답한 33인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이들이 세상과 기술을 보는 시각은 비교적 명확했다.
설문에 응답한 33인 CTO들은 본인의 업무 중 중요한 것으로 ‘기술 변화에 대응’(26명)과 ‘다른 임원(C레벨-CEO·CFO·CIO 등 최고 의사결정권자)과의 협업·소통’(26명)을 꼽았다. 기술 개발(20명)과 프로젝트 관리(20명)를 선택한 이도 많았다. ‘임직원 관리’를 선택한 이도 11명이나 됐다. 기술 개발뿐 아니라 사내 의사결정 등 ‘관리 업무’ 역시 CTO 직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본 셈이다. 반면 개발 업무와는 다소 성격이 동떨어진 마케팅·영업 등 ‘비즈니스 관리’를 선택한 이는 4명에 그쳤다.
CTO는 기업 내 ‘해결사’라고도 불린다. 기업이 마주한 기술적 난관을 뚫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술 난관을 해결하는 비결’을 묻는 말에 한 대기업 소속 CTO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의 목적이 무엇이고, 인력을 투입해 이 업무를 ‘왜 진행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본다면 난관을 해결하는 방안들이 보이곤 한다”고 답했다. 임현진 팜에어 CTO도 “기술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고 대안을 찾곤 한다”고 했다.
최신 기술 동향이나 외부 전문가에서 답을 찾는 경우도 많다. 이해성 내일이비즈 CTO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마주했다면, 그 분야의 최근 5년 내외의 논문을 살펴보곤 한다. 대다수 기술적 난관은 물리·수학 문제로 회귀하는데, 이 지점을 찾아내는 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며 “물리·수학적 접근이 불가능한 문제라면 프로젝트 관리에서 오류가 나타난 경우가 대다수라 이에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현 왓챠 CTO·김환수 에스티씨랩 엔지니어링 디렉터·김명현 올림플래닛 CTO 등도 외부 협력이나 논문·앞선 사례 등을 살펴 해결책을 찾는다고 했다. 박성진 디오비스튜디오 CTO는 “대체·대안의 문제로 접근한다. 기술로 해결하기 힘든 점은 서비스의 영역에서 관점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문제 정의 자체를 다시 내릴 때도 있다”고 답했다.
CTO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한정된 기업 내 자원을 ‘어떤 분야 연구에 투입’할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투자 분야’를 묻는 주관식 문항에 33명의 응답자 중 27명이 AI와 관련된 분야를 적어냈다.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업종·규모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가 ‘AI를 업무·서비스·제품 등에 접목’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기술 시장에서 AI 분야 중요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IT 상장사 소속 CTO는 “라이브 서비스 고도화에 AI를 활용해 효율성을 대폭 높이고 있다”며 “다만 생성형 AI의 경우 자체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기보다 GPT 모델이나 제미나이 등 다양한 모델을 활용해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AI 모델의 개발이 무척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회사의 자원을 투입해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는 것보다, 트렌드에 맞는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게 소모를 줄이는 방향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AI 시대’에 대한 CTO의 생각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대기업에 재직 중인 한 CTO는 이번 설문에서 “AI는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라며 “현재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시장 변화가 빠르다”고 했다. CTO들이 왜 AI 분야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CTO들은 다만 시장 변화에 대응해 AI 기술을 사업에 접목하는 과정이 “속도가 능사는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성’ 역시 중요한 지점이라고 답한 CTO도 많았다. 또 AI 서비스 자체에 불확실성이 커 시장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접근해야 사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기순 로앤컴퍼니 CTO는 “AI 기술을 도입할 때 내부적으로는 물론 외부(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문규 알스퀘어 CTO도 “AI는 이해보다 실행이 어려운 기술”이라며 “AI로 기존에 해결이 어려웠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도 존재하지만, 확률에 기반한 기술인만큼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해결률을 올리는 데엔 자원·시간 등 비용이 수반돼 ‘효과가 큰 경우’에만 AI 적용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CTO는 “AI 등장과 함께 저작권 침해·범죄 등의 문제가 나타나면서 사용 자체에 대한 기피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다수다. 차별·비하·폭력 등 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연구 단계에서부터 수반돼야 한다”며 “AI 활용 범위가 늘어난 만큼 AI 윤리를 잘 지킬 수 있는 내부 규범을 확립해 이용자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유익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CTO들은 이 밖에도 ‘AI 기술을 사업에 접목할 때 유의할 점’을 묻는 말에 “AI에 대한 사용자 경험을 충분히 고려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AI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사전에 명확히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한 뒤 사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등의 조언을 건넸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으론 ‘규제 완화’와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해외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면 ‘국내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란 관점에서 규제 완화가 전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송인성 디셈버앤컴퍼니 CTO), “기업이 접근하기 힘든 데이터·프로세스의 표준화 구축을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면 좋겠다”(심상우 마키나락스 CTO), “AI 산업의 기반인 ‘고성능 슈퍼컴퓨팅 클러스터를 구축’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김종국 레신저스 대표), “국가 차원의 질 높은 데이터를 만들어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AI 학습 자료를 검증할 ‘밸리데이션 셋’(Validation Set)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양수열 크라우드웍스 CTO) 등의 의견도 나왔다.
기술로 바뀔 우리의 일상
CTO들이 투자를 집중하는 분야이자 기회가 창출되리라고 입을 모은 AI가 안착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이 질문에 CTO들은 저마다 그리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김동현 빅밸류 CTO는 “의사결정은 간소화되고 향상된 자동화 개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작업 환경에 긍정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고난도의 일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적인 작업도 AI로 대체할 수 있어 삶의 질은 높아질 수 있으나, 일을 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황덕수 케어식스 부사장의 말처럼 ‘AI 일상화’가 이뤄질 가까운 미래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다. 또 “정치·경제·사회 곳곳에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내용의 답변을 적어낸 이도 4명이나 됐다.
이외에도 “반복 업무가 노동의 처음이었다면 AI는 빠르고 다양한 일을 하는 노동의 마지막을 열 것”, “현재 AI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답변하는 환각 현상이 있어 우선 정답이 없는 예술 분야에서 변화가 이뤄지다, 점차 신뢰도가 높은 서비스가 나오면서 인류의 일 처리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꿀 것”, “반복 업무의 극단적인 축소”, “AI 활용 능력이 사람 간 격차를 만들 것” 등의 의견이 달렸다.
인류는 PC·인터넷·스마트폰에 이어 AI를 주목했다. 현재 산업계 전반을 지배한 AI가 일상화가 된 뒤에는 ‘또 다른 기술’이 세상의 주목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AI 다음에 주목받을 기술을 묻는 문항에 16명이 ‘자율주행’을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CTO 중 절반 정도가 AI에 대응하는 동시에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차세대 지배 기술로 자율주행을 꼽은 CTO들은 그 이유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크다”, “실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게 사업성을 결정하는데, 현재 기술 중 자율주행보다 파급효과가 큰 분야는 찾기 힘들다”, “AI의 일상화는 데이터 처리의 고도화를 의미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율주행을 여는 키가 될 것” 등을 들었다.
자율주행에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신경망처리장치(NPU) 등 ‘차세대 반도체 관련 기술’(13명) ▲증강·가상·확장 현실(AR·VR·XR)과 디지털트윈 등 ‘메타버스 관련 기술’(10명) ▲양자암호·블록체인 등 ‘보안 관련 기술’(9명) ▲발사체·인공위성 등 ‘우주항공 관련 기술’(5명) ▲탄소 포집 등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술’(1명)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기타 답변으론 ▲법률·의학 등 전문 분야 특화 AI 서비스(3명) ▲데이터 의미화와 AI 에이전트 ▲스마트폰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언어모델(SLM) 상용화 ▲웨어러블 기기와 로봇 산업 ▲콘텐츠 제작·시장 분석·문서 자동화 등 인력 대체 가능 기술 ▲양자컴퓨팅 등이 나왔다.
박성진 디오비스튜디오 CTO는 AI로 인해 곧 마주할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적었다.
“인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지는 않겠지만, 업무·개발 영역은 송두리째 바뀔 가능성이 높다. 도면을 연필로 그리던 시대에서 마우스로 그리는 시대가 되면서 사무실 풍경이 많이 바뀐 것과 같다. 개발자의 모습 또한 AI로 인해 ‘연필에서 마우스로’ 정도의 변화가 있으리라고 본다. 또 한 국가 사회 안에서도 양극화된 세대 간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부유층·상류층은 AI를 활용해서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해 내고, 이에 익숙하지 않은 빈곤층은 여전히 노동집약적 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는 맞물려 있다. 어느 한 국가가 사라지는 경우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발생한다. 그래서 국가는 나름의 역할을 지속하고, AI는 특정 국가들의 산업 기반으로 계속 자리 잡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예전에 비해 좀 더 지적인 도구를 얻었다. 훨씬 더 고도화된 일을 수행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이제 해볼 만 하다고 느낀다. 창의적일수록 좀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깔리고 있다. 앞으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은 영향력이 더욱 커지겠다. 반면 AI에 의존하는 사람은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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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기술, 그 변화에는 기업 역할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진보된 기술을 대중이 체감하는 건 결국 서비스·제품 등이기 때문이다. 최근 50년간 인류의 일상을 극적으로 변화케 한 사례만 봐도 그렇다. ▲1981년 개인용 컴퓨터(PC) 보급 ▲1995년 인터넷 확산 ▲2009년 스마트폰 대중화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혁신적 발명품’이 14년 주기로 나왔다.
PC 상용화 후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터넷의 보급이 이뤄진 뒤에는 아마존·구글·네이버 등이 기회를 잡았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곳도 애플이란 기업이다. 카카오·인스타그램·우버 등이 시장에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손을 점령했다.
스마트폰 시대 개막 후 다시 14년이 지난 2022년 11월, 미국 기업 오픈AI가 챗GPT를 세상에 내놨다. ‘질문에 유려한 답변’을 적어내는 서비스가 등장한 뒤로 인공지능(AI) 개발 열풍이 불었다. 다양한 기업이 AI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우리의 일상이 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챗GPT 등장은 ‘아이폰 모멘트’로 불릴 정도로 일상의 다양한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AI 시대 개막에 맞춰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기업, 그 안에서 기술의 진보를 주도하는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이야기를 조망하기로 했다. 기술 변화에 민감한 스타트업부터 단숨에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굴지의 대기업까지. 다양한 곳에 소속돼 있는 CTO 33인의 ‘최근 생각’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의 단면을 엿봤다.
이번 설문은 ‘CTO 업무의 특성’과 ‘AI 시대에 대한 생각’ 등을 알아보기 위한 문항으로 구성됐다. 객관식의 경우 CTO의 생각을 최대한 많이 담고자 모두 복수로 응답을 선택할 수 있도록 꾸렸다. 또 객관식 항목에 적절한 선택지가 없다면 별도의 답변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주관식의 답변은 이름과 소속 기업의 공개를 원하는 이는 그대로 옮기고, 나머지는 익명 처리해 기사에 담았다.
‘해결사’ CTO가 본 가장 중요한 기술
“AI의 상용화가 이뤄진 다음에 ‘시장을 지배할’ 기술로는 자율주행을 꼽겠습니다.”
“CTO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연 기술을 제품·서비스에 접목하는 ‘응용력’이고, 직원들에게는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하곤 합니다.”
“기술 기반의 사업을 꾸리는데 ‘인재 유치’가 가장 어렵습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정부의 지원 제도 확산과 규제 완화 등의 변화가 필요해요.”
본지가 9월 한 달간 진행한 CTO 대상 설문에 응답한 33인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이들이 세상과 기술을 보는 시각은 비교적 명확했다.
설문에 응답한 33인 CTO들은 본인의 업무 중 중요한 것으로 ‘기술 변화에 대응’(26명)과 ‘다른 임원(C레벨-CEO·CFO·CIO 등 최고 의사결정권자)과의 협업·소통’(26명)을 꼽았다. 기술 개발(20명)과 프로젝트 관리(20명)를 선택한 이도 많았다. ‘임직원 관리’를 선택한 이도 11명이나 됐다. 기술 개발뿐 아니라 사내 의사결정 등 ‘관리 업무’ 역시 CTO 직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본 셈이다. 반면 개발 업무와는 다소 성격이 동떨어진 마케팅·영업 등 ‘비즈니스 관리’를 선택한 이는 4명에 그쳤다.
CTO는 기업 내 ‘해결사’라고도 불린다. 기업이 마주한 기술적 난관을 뚫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술 난관을 해결하는 비결’을 묻는 말에 한 대기업 소속 CTO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의 목적이 무엇이고, 인력을 투입해 이 업무를 ‘왜 진행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본다면 난관을 해결하는 방안들이 보이곤 한다”고 답했다. 임현진 팜에어 CTO도 “기술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고 대안을 찾곤 한다”고 했다.
최신 기술 동향이나 외부 전문가에서 답을 찾는 경우도 많다. 이해성 내일이비즈 CTO는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마주했다면, 그 분야의 최근 5년 내외의 논문을 살펴보곤 한다. 대다수 기술적 난관은 물리·수학 문제로 회귀하는데, 이 지점을 찾아내는 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며 “물리·수학적 접근이 불가능한 문제라면 프로젝트 관리에서 오류가 나타난 경우가 대다수라 이에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현 왓챠 CTO·김환수 에스티씨랩 엔지니어링 디렉터·김명현 올림플래닛 CTO 등도 외부 협력이나 논문·앞선 사례 등을 살펴 해결책을 찾는다고 했다. 박성진 디오비스튜디오 CTO는 “대체·대안의 문제로 접근한다. 기술로 해결하기 힘든 점은 서비스의 영역에서 관점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문제 정의 자체를 다시 내릴 때도 있다”고 답했다.
CTO는 기술 개발뿐 아니라 한정된 기업 내 자원을 ‘어떤 분야 연구에 투입’할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투자 분야’를 묻는 주관식 문항에 33명의 응답자 중 27명이 AI와 관련된 분야를 적어냈다. 스타트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업종·규모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가 ‘AI를 업무·서비스·제품 등에 접목’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기술 시장에서 AI 분야 중요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IT 상장사 소속 CTO는 “라이브 서비스 고도화에 AI를 활용해 효율성을 대폭 높이고 있다”며 “다만 생성형 AI의 경우 자체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기보다 GPT 모델이나 제미나이 등 다양한 모델을 활용해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AI 모델의 개발이 무척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회사의 자원을 투입해 거대언어모델(LLM)을 구축하는 것보다, 트렌드에 맞는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게 소모를 줄이는 방향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AI 시대’에 대한 CTO의 생각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대기업에 재직 중인 한 CTO는 이번 설문에서 “AI는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라며 “현재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시장 변화가 빠르다”고 했다. CTO들이 왜 AI 분야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CTO들은 다만 시장 변화에 대응해 AI 기술을 사업에 접목하는 과정이 “속도가 능사는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성’ 역시 중요한 지점이라고 답한 CTO도 많았다. 또 AI 서비스 자체에 불확실성이 커 시장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접근해야 사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안기순 로앤컴퍼니 CTO는 “AI 기술을 도입할 때 내부적으로는 물론 외부(소비자)의 기대 수준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문규 알스퀘어 CTO도 “AI는 이해보다 실행이 어려운 기술”이라며 “AI로 기존에 해결이 어려웠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도 존재하지만, 확률에 기반한 기술인만큼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해결률을 올리는 데엔 자원·시간 등 비용이 수반돼 ‘효과가 큰 경우’에만 AI 적용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CTO는 “AI 등장과 함께 저작권 침해·범죄 등의 문제가 나타나면서 사용 자체에 대한 기피감을 느끼는 소비자도 다수다. 차별·비하·폭력 등 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연구 단계에서부터 수반돼야 한다”며 “AI 활용 범위가 늘어난 만큼 AI 윤리를 잘 지킬 수 있는 내부 규범을 확립해 이용자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유익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CTO들은 이 밖에도 ‘AI 기술을 사업에 접목할 때 유의할 점’을 묻는 말에 “AI에 대한 사용자 경험을 충분히 고려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AI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사전에 명확히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확보한 뒤 사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등의 조언을 건넸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으론 ‘규제 완화’와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았다. “해외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면 ‘국내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란 관점에서 규제 완화가 전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송인성 디셈버앤컴퍼니 CTO), “기업이 접근하기 힘든 데이터·프로세스의 표준화 구축을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면 좋겠다”(심상우 마키나락스 CTO), “AI 산업의 기반인 ‘고성능 슈퍼컴퓨팅 클러스터를 구축’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김종국 레신저스 대표), “국가 차원의 질 높은 데이터를 만들어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AI 학습 자료를 검증할 ‘밸리데이션 셋’(Validation Set)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양수열 크라우드웍스 CTO) 등의 의견도 나왔다.
기술로 바뀔 우리의 일상
CTO들이 투자를 집중하는 분야이자 기회가 창출되리라고 입을 모은 AI가 안착한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이 질문에 CTO들은 저마다 그리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김동현 빅밸류 CTO는 “의사결정은 간소화되고 향상된 자동화 개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작업 환경에 긍정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고난도의 일뿐만 아니라 단순 반복적인 작업도 AI로 대체할 수 있어 삶의 질은 높아질 수 있으나, 일을 구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황덕수 케어식스 부사장의 말처럼 ‘AI 일상화’가 이뤄질 가까운 미래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다. 또 “정치·경제·사회 곳곳에서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내용의 답변을 적어낸 이도 4명이나 됐다.
이외에도 “반복 업무가 노동의 처음이었다면 AI는 빠르고 다양한 일을 하는 노동의 마지막을 열 것”, “현재 AI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답변하는 환각 현상이 있어 우선 정답이 없는 예술 분야에서 변화가 이뤄지다, 점차 신뢰도가 높은 서비스가 나오면서 인류의 일 처리 방식을 전반적으로 바꿀 것”, “반복 업무의 극단적인 축소”, “AI 활용 능력이 사람 간 격차를 만들 것” 등의 의견이 달렸다.
인류는 PC·인터넷·스마트폰에 이어 AI를 주목했다. 현재 산업계 전반을 지배한 AI가 일상화가 된 뒤에는 ‘또 다른 기술’이 세상의 주목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AI 다음에 주목받을 기술을 묻는 문항에 16명이 ‘자율주행’을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CTO 중 절반 정도가 AI에 대응하는 동시에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차세대 지배 기술로 자율주행을 꼽은 CTO들은 그 이유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크다”, “실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게 사업성을 결정하는데, 현재 기술 중 자율주행보다 파급효과가 큰 분야는 찾기 힘들다”, “AI의 일상화는 데이터 처리의 고도화를 의미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율주행을 여는 키가 될 것” 등을 들었다.
자율주행에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신경망처리장치(NPU) 등 ‘차세대 반도체 관련 기술’(13명) ▲증강·가상·확장 현실(AR·VR·XR)과 디지털트윈 등 ‘메타버스 관련 기술’(10명) ▲양자암호·블록체인 등 ‘보안 관련 기술’(9명) ▲발사체·인공위성 등 ‘우주항공 관련 기술’(5명) ▲탄소 포집 등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술’(1명)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기타 답변으론 ▲법률·의학 등 전문 분야 특화 AI 서비스(3명) ▲데이터 의미화와 AI 에이전트 ▲스마트폰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언어모델(SLM) 상용화 ▲웨어러블 기기와 로봇 산업 ▲콘텐츠 제작·시장 분석·문서 자동화 등 인력 대체 가능 기술 ▲양자컴퓨팅 등이 나왔다.
박성진 디오비스튜디오 CTO는 AI로 인해 곧 마주할 우리의 미래를 이렇게 적었다.
“인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지는 않겠지만, 업무·개발 영역은 송두리째 바뀔 가능성이 높다. 도면을 연필로 그리던 시대에서 마우스로 그리는 시대가 되면서 사무실 풍경이 많이 바뀐 것과 같다. 개발자의 모습 또한 AI로 인해 ‘연필에서 마우스로’ 정도의 변화가 있으리라고 본다. 또 한 국가 사회 안에서도 양극화된 세대 간의 기술 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부유층·상류층은 AI를 활용해서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해 내고, 이에 익숙하지 않은 빈곤층은 여전히 노동집약적 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는 맞물려 있다. 어느 한 국가가 사라지는 경우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발생한다. 그래서 국가는 나름의 역할을 지속하고, AI는 특정 국가들의 산업 기반으로 계속 자리 잡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예전에 비해 좀 더 지적인 도구를 얻었다. 훨씬 더 고도화된 일을 수행하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이제 해볼 만 하다고 느낀다. 창의적일수록 좀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깔리고 있다. 앞으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은 영향력이 더욱 커지겠다. 반면 AI에 의존하는 사람은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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