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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MONEY! 농협중앙회

아이구MONEY! 농협중앙회



임기응 전국농업협동조합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믿기지가 않았다. “농협중앙회가 이젠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기준조차 망각한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상 농협중앙회가 지방 단위협동조합에 정치자금을 공식 문건으로 강제 모집한 꼴이었다.”

 지난 8월 24일 농협중앙회는 ‘2010년 국회 농수식품위원회 후원 계획(안)’을 기획실 대외협력팀 명의로 전국 16개 지역본부에 하달했다. 농림수산식품위원 18명을 후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원별로 200명씩 모두 3600명의 농협 직원이 후원에 참여하게 하자고 했다.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농협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망된다고 강조했다. 모금 기간은 8월 27일까지였다.

농협중앙회는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내부 검토 없이 담당 직원의 실수로 발송된 것으로 정식 문건이 아니다”며 “중앙회는 해당 문건을 즉시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가 후원금 모금 계획을 없었던 일로 한 건 문건이 발송되고 이틀이 지난 뒤였다. 8월 26일 농협 노조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임기응 국장은 “당일 중앙회 기획팀이 노조로 찾아왔었다”며 “중앙회는 그 날 4시 넘어서 부랴부랴 후원 계획안을 폐기했다”고 밝혔다.

농협이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정치 후원금을 모금하는 일은 사실 오랜 관행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들조차 “지역농협의 시·도 지부장들이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관행화됐던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일은 방법과 시기가 문제다. 농협중앙회가 이렇게 공식 문건으로 후원금 모금을 추진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농림수산식품위원회가 새로 구성되고 얼마 안 된 때다. 농협중앙회의 운명을 결정할 농협법 개정안이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를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중심으로 한 농협지주로 재편하는 게 골자다.

올해 상반기에는 통과될 걸로 기대를 모았던 농협법 개정안은 5월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반면에 농협중앙회는 이미 지주회사 개편을 기정사실화했다. 구조개편기획부, 경제구조개편기획부, 금융구조개편기획부, 경영구조개편기획부를 신설했고 1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입장에선 새로 구성된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하루빨리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농협중앙회의 의원 후원금 모금 계획이 농협법 통과를 위한 로비로 낙인 찍힌 이유다. 임기응 국장은 “지금이 농협법 개정안 통과라는 이해 문제가 얽힌 민감한 시기라는 걸 감안하면 중앙회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농협지주회사 설립은 농협의 숙원사업이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농협의 두 축이다. 신용사업은 농협은행을 중심으로 NH카드, NH증권, NH보험으로 구성될 금융지주로 분리된다. 경제사업은 농협유통, 남해화학, 농협물류, NH무역이 주축이 될 경제지주로 나뉜다. 농협이 은행, 카드, 증권, 보험업이라는 4륜 구동 엔진을 단 국내 4위의 금융지주로 거듭나는 셈이다. 동시에 지역 단위까지 유통망을 확보한 대형 유통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농협 조직을 경쟁력 있는 기업 집단으로 진화시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2009년 경제사업은 75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신용사업이 5209억원의 흑자를 봤지만 순이자마진은 시중은행 평균을 밑돈다. 농협을 지금 같은 느슨한 연합체에서 지주사를 중심으로 한 단일 기업 집단으로 개혁하게 되면 사업 경쟁력을 키워볼 수 있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농협법 개정안이 상반기 국회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일단 보험업계의 반발 탓이 컸다. 쟁점은 방카슈랑스 규정이다.



농협과 정부마저도 입장이 달랐다. 농협은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설립할 충분한 자본금이 없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농협은 정부가 6조원 정도의 자본금을 출연 형식으로 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연으로 해야 경영 자율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원 규모와 방식 모두 미리 정해둘 생각이 없었다.

결국 농협법 개정안은 내부 진통 끝에 표류했다. 하지만 5월 국회가 끝난 뒤 몇 달 동안 정부와 농협 사이의 불협화음은 상당히 조율됐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이견이 상당부분 해소됐다”면서도 “다만 지원 자본금 규모는 기획재정부 입장을 고려해야 하고 방카슈랑스 유예는 금융위원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절차가 좀 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 역시 “정부 역시 농협지주회사가 온전히 출범하려면 충분한 지원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고, 어차피 법 개정이 하반기로 미뤄진 만큼 차근차근 이견들을 조정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대로 국회만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올해 안에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도 가능하다. 로비라도 하고 싶을 만큼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의원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란 얘기다.

그러나 농협의 신경지주회사 출범에 얽힌 진짜 갈등은 보험 시장이나 정부와 있었던 게 아니었다. 농협 안에 있었다. 농협법은 농협중앙회를 농협지주회사로 재편하는 걸 골자로 한다. 지역 농협은 농협지주의 협력 업체로 남게 된다. 농협지주에 대한 농협중앙회와 지역 농협의 온도차가 클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농협 관계자는 “농협지주회사 출범은 사실 지역 농민들의 이해관계와는 별 상관이 없다”며 “농협중앙회의 살림살이가 나아진다고 해서 지역 농협의 영세성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임기응 국장도 “농협중앙회가 지주회사로 재편되면 지역 농협과 농협지주는 완전히 남이 되는 셈이고 농협중앙회는 지주회사 재편이 농협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설명하지만 지주회사의 이익과 협력사의 이익은 별개”라고 지적한다.

농협금융지주가 특정 지역에 은행 직영점을 설치해서 해당 지역 농업협동조합과 경쟁할 수도 있다. 농협경제지주가 특정 지역에 대형 수퍼마켓을 세워서 농민들의 지역 경제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 지역 농협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농협 노조가 농협중앙회만을 위한 농협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다.



중앙회만 살리는 농협지주농협 노조가 새삼 농협중앙회의 의원 후원금 모금 계획을 폭로하면서 각을 세운 것도 농협 내부의 이해 상충이 밖으로 드러난 결과다. 임기응 국장은 “이번 일은 지역 농협 조합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중앙회가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중앙회가 지역 노동조합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라는 사실은 지주회사가 출범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면서 “농협지주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업을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 역시 “농협지주가 출범되더라도 지역 조합은 주주의 형식으로 지주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 농협지주가 농협의 설립 취지를 잊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인다.

농협중앙회와 정부가 이견을 보이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정부는 농협지주의 새 이름을 농업협동조합연합회로 하려고 한다. 농협중앙회는 지금 이름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연합회와 중앙회의 차이는 분명하다. 연합회라는 이름에는 중앙과 지역 조합의 벽이 없고 중앙회에는 있다. 농협이 농협지주로 거듭나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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