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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품격 그리고 변명 [이근면의 시사라떼]

계엄사태로 군 수뇌부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
군 정치에 개입시킨 민간인들에게 더 큰 책임 있어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오른쪽)과 권영환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왼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규백 위원장의 '2차 계엄 준비' 관련 질의에 상반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체포되고 구속되었다. 국무총리·행안부장관·경찰청장 등 정부를 운영하는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탄핵되거나 구속되어 국가 운영 리더십의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 특히 군이 심각한데 육군참모총장·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방첩사령관·정보사령관 등 군의 수뇌부가 모조리 형사범죄의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했다.

이번 사태는 우리 군이 다시 정치의 일선에 개입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과 걱정을 일으켰다. 그러나 계엄이 선포되고 2시간 만에 국회가 계엄해제요구안을 가결하고 사태가 조기수습됨에 따라 우리 사회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매우 잘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군은 통수권자인 민간 대통령의 지시에 복종했고 국회가 계엄해제를 의결한 이후엔 두 말 없이 병영으로 돌아갔다. 군이 스스로 독점한 무력을 기반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자신의 힘을 절제하고 민간 정치인들의 결정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문민통제…군사전문가 집단에 대한 문민의 예우·존중 뜻해

문민통제는 말 그대로 군을 민간인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군복 입은 군인들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야 한다. 이 원칙은 선언적, 이념적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전략과 작전에까지도 적용된다. 그러나 그 엄밀한 의미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한 군사전문가 집단인 장교단에 대한 문민의 예우와 존중이 뒷받침되었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이 민군관계 연구의 역작 ‘군인과 국가: 민군관계의 이론과 정치’에서 군을 의사, 변호사와 같이 국가 안보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군은 기꺼이 민간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고 민간 정치권력은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예우하는 것이 현대 민군관계론에서 이야기하는 문민통제의 핵심이다. 

우리 군의 전문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민에 대한 존중과 복종심도 성숙해 있다. 문제는 통제해야 할 문민의 자세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마치 국회의원이 상관이고 장군이 부하인 듯한 태도로 군의 최고 지휘관들을 추궁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직위해제 되었어도   엄연히 현역 군인이자 최고위 계급인 이들이 수갑 찬 채 압송되는 모습을 전국에 생중계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장군들의 명령에 따라 유사시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수십만 장교, 부사관들이 지켜보고 있고 아들을 징집병으로 군에 보낸 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다.

문민이 안보분야 전문가 집단인 군을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군의 자발적인 복종과 통제도 없다. 존중과 복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국회의원들이 이들을 모욕하고 조리돌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상호 예의를 지키는 태도로 질문하고 답하게 했어야 한다. 국가 보위의 최후 보루는 어느 국가나 결국 군, 그리고 명예는 그들의 존재 이유이다. 그 역할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국민 모두의 의무이자 국가를 지탱하는 덕목과 가치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여행 시 한국군 전역증조차 우대받는 것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이렇듯 미국은 군인, 특히 장교를 상대할 때 상당한 수준의 국가적 예우를 한다. 국가가 그들의 공헌을 기리는 행위는 사회적 합의된 정의적 우선 가치이며 진심이다. 최근 우리나라 보훈 정책도 그들의 노고에 대한 기억과 선양, 사회적 보상에 관련된 활동이 강화되었다. 다만 이번 사태에서 군복을 입고 법정에 섰던 그들의 모습에 사회가 고려해야 될 부분 또한 많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복을 입고 재판장에 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장군 인사와 군의 명령 체계도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몇 가지 유형의 장군상이 참군인이다 아니다라는 둥 여러 모습이 회자되었고 장군이 장군 같지 않다는 얘기도 거론되었다. 군 내부에도 지휘 계통의 혼선과 예단적 행동들이 많이 나타났었다. 군은 장군의 육성, 양성, 선발, 관리의 전반적인 인사 시스템에 대한 혁신이 요구된다. 명령과 보고 체계의 기본도 흔들린 것이다. 군 작전 태세의 전반적인 점검과 혁신 또한 필요하다. 

군인이 스스로 명령에 대한 옮고 그름을 따져 거부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든다는 일각의 움직임도 있는데 참으로 걱정스럽다. 전쟁 시에는 앞에 총탄이 빗발같이 쏟아져도 작전을 위하여 ‘공격 앞으로!’ 하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고 전진하는 것이 군인의 본 자세이다. 그때 소대장의 절체절명한 명령을 위반해 뒤로 돌아오면 즉결 처분이라는 전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했겠냐마는 백 번 양보해 이런 것들은 군을 해체하고자 하는 기도로 오해될 수도 있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은가. 60만 개개인 군인이 스스로 생각을 하라니 명령은 필요 없는 것이다? 군은 군인으로서 남아 있어야 하고 군인은 그 어떤 것에도 좌고우면하는 직업이 아니다. 

2024년 12월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장군 품격과 권위 인정하는 전통 세워야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장군의 품격과 권위를 인정하는 전통을 바로 세워야 한다. 장군들에 대한 예우와 인정은 곧 국토방위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전문가 집단인 군에 대한 예우와 같다. 아무리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국회의원이라 할지라도, 임명된 고위직일지라도 군인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군 통수권자가 계엄령을 발령했고 국방장관이 병력 출동을 지시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명령에 따랐고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 직후 부대로 복귀했다. 명령이 떨어졌는데 주저하고 움직이지 않는 장군들에게 우리 군을 맡길 수 있겠는가? 오히려 생각하는 장군은 군에서 꼭 필요한 리더인가? 누가 군 통수권자이던 이런 장군에게 아들들을 맡길 수 있을지 국민의 생각이 궁금하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군을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시킨 민간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장군들의 잘못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고 그 작은 잘못의 책임을 추궁할 땐 매우 절제되고 예우를 갖춘 형식을 통해 장군의 권위를 지켜줘야 한다. 이것이 국가를 지키는 길이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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