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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다시 서다

63빌딩, 다시 서다



흐린 날엔 손님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멋진 전망을 기대하고 63빌딩 꼭대기에 올라갔던 손님들은 환불해 달라고 난리였다. 한화호텔&리조트 유덕종 상무는 “60층에 63 스카이 아트 미술관이 생긴 뒤로는 그런 민원이 싹 사라졌다”고 말한다. 63 스카이 아트 미술관은 초고층 빌딩에 오르면 날씨가 맑으나 궂으나 무조건 창밖만 바라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2008년 8월 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2년 동안 130만 명이 다녀갔다.

꼭대기 미술관뿐만이 아니다. 지하 1층 63아트홀에선 ‘판타스틱’이 공연되고 있다. 판타스틱은 ‘난타’처럼 대사 없이 율동과 음악으로만 이루어진 공연이다. 판타스틱의 기획홍보를 맡고 있는 장영찬 팀장은 “판타스틱은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라는 설화를 전통 국악과 버무린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볼거리”라고 말한다. 한류 스타 송승헌도 판타스틱 알리기에 앞장섰다. 8월 26일 63아트홀에서는 한류 스타 송승헌의 판타스틱 홍보대사 위촉식이 열렸다.

63빌딩의 변신은 2008년 2월 한화문화사업부의 워크숍에서 시작됐다. 한화그룹은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63빌딩의 주인이 됐다. 그러나 대한생명 인수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한화그룹과 예금보험공사가 법정 분쟁을 벌이면서 63빌딩의 내방객 수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유덕종 상무는 “63빌딩은 오랫동안 내방객의 눈높이에 맞는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63빌딩은 1985년 개관할 무렵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였다. 25년이 지난 지금 63빌딩은 서울에서 제일 높은 빌딩일 뿐이다. 그나마도 위협 받고 있다. 롯데그룹이 잠실에 제2롯데월드 공사를 시작했다. 123층 높이다. 용산드림시티 개발 계획 역시 아직은 진행형이다.

유덕종 상무는 “워크숍에서는 초고층 빌딩 개발 계획이 속속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63빌딩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를 고민했다”며 “초고층의 진정한 경쟁력은 높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직 새롭고 독점적인 콘텐트만이 해답이란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인다. 판타스틱과 전망대 미술관 모두 워크숍에서 나온 해법이었다. 반년 뒤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국제상사중재위원회가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가 “적법하다”는 최종 결론을 전해준 무렵이었다. 63빌딩의 전체 내방객 수는 2006년 193만3000명이었다. 2009년엔 248만8000명으로 늘었다.

63빌딩은 국내 초고층 빌딩의 역할모델이다. 높이 말고도 무언가를 더 가져야 한다. 쇼핑일 수도 있다. 제2롯데월드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는 잠실, 송파 지역의 명품 쇼핑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규모만 믿고 무리한 투자를 해서도 안 된다. 용산드림시티가 대표적 사례다. 유덕종 상무는 “초고층 빌딩 계획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어느 부분은 수지타산을 고민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건물의 알뜰한 활용도 보다 웅장함에 집착하는 건설 계획이 난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발기지수란 게 있다. 초고층 빌딩이 높이 세워질수록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는 적신호란 뜻이다. 63빌딩을 운영하는 한화호텔&리조트는 수족관 사업의 오랜 경험을 살려 제주, 여수, 일산 해양과학관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판타스틱으로 63빌딩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63 스카이 아트 미술관은 천안 갤러리아 백화점 미술관의 모태가 됐다. 63빌딩은 어느새 한화 문화사업의 근간이 됐다. 세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안에 무엇을 넣느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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