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한’ 실명제 vs ‘떳떳한’ 실명제
‘뻣뻣한’ 실명제 vs ‘떳떳한’ 실명제
"인터넷 실명제가 개인정보 유출의 원흉이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말썽 많은 인터넷 실명제에 칼침을 놓았다. 최 의원이 9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내용이 흥미롭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로 불리는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뒤 개인정보 유출 피해 사례가 오히려 크게 늘었다는 얘기다.
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한 해 평균 20%씩 늘어나던 개인정보 침해 신고 건수가 2007년 인터넷 실명제 도입 이후 53%로 껑충 뛰었다. 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이 확대된 2009년 이후도 마찬가지다. 올해 4월까지 신고 건수를 바탕으로 올해 말 추정치를 내 보니 신고 건수가 46%로 급증할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실명제는 도입 당시부터 ‘사이버 범죄와 악플 방지’란 명목과 ‘이용자 표현의 자유 보장’이란 권리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명제를 찬성하는 쪽은 시쳇말로 ‘민증 까고’ 글을 올리면 신분 추적이 가능하므로 심리적 위축 효과를 줘 자연스레 비방이나 사이버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쪽에선 이 같은 실명 확인 제도가 자기 검열 효과를 가져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축시키고, 무분별한 주민번호 수집·관리로 개인정보 유출 위험만 키운다고 손사래를 쳤다.
인터넷 실명제가 과연 사이버 범죄와 악플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가 올 7월 ‘인터넷 실명제 헌법소원 관련 공개 변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인터넷 실명제 관련 독립적 실증조사 7건 중 6건은 악플을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보고했고, 방통위가 본인확인제 근거로 제시한 개똥녀 사건, 최진실 사건 모두 완전 실명제를 적용한 사이트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오히려 부작용은 확연히 드러나는 모양새다.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과 관리 부실이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이런 식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알려진 것만도 3000만 건이 넘는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건당 1원씩에 거래되고, 거짓 이용자 행세를 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와 자발적 실명제 문화가 작동하는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는 어떨까. 지난 7월 블로터닷넷은 실명 확인을 거치는 대신 트위터나 페이스북, 미투데이 같은 SNS 계정으로 로그인해 기사 의견을 남기는 ‘소셜 댓글’ 서비스를 도입했다. 8월 말에는 일간스포츠와 매일경제도 온라인 뉴스 서비스 댓글을 이 같은 방식으로 바꿨다. 민주당 정동영·한명숙,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 등 일부 정치인도 홈페이지 게시판에 소셜 댓글을 적용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방통위 주장대로라면 악플이나 인신공격성 댓글이 늘어나야 할 테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실명 댓글과 소셜 댓글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매일경제 관계자는 “스팸 댓글은 대부분 실명 확인을 거친 회원 계정으로 올라오는 반면 소셜 댓글에선 악플이나 스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실명 댓글 시스템에선 스팸 댓글만 계속 달렸는데, 소셜 댓글을 도입한 뒤 건강한 댓글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소셜 댓글로 남긴 글은 해당 게시판뿐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이용자 SNS로도 동시에 노출된다. 내가 노닐고, 떠들고, 관리하는 공간에 욕설을 내뱉을 이는 드물다. 사회적 소통 시스템 속에서 자연스레 ‘악플’이나 범죄를 걸러내는 ‘거름망 문화’가 작동하는 셈이다. 주민번호도, 나이도 묻지 않으니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없다.
SNS를 활용한 소셜 댓글이 아직까지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댓글을 다는 모든 이용자에게 SNS를 이용하라고 강요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서비스는 정부가 제도로 강제하는 인터넷 실명제를 대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강제적 본인확인제’ 대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건강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적 본인확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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