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동자가 없는 이유
▎모딜리아니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100×65㎝, 1919년, 상파울루대학미술관.
화가가 생애 마지막 겨울을 맞으며 그린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작품이라 귀중하다. 두툼한 외투에 머플러까지 두른 것으로 봐서 겨울 한가운데 그린 것으로 보인다. 창백한 얼굴에서는 병세가 악화된 모습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죽기 한두 달 전쯤 그린 것으로 보인다.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눈은 검은색이 도드라져 공허한 인상을 더욱 부추긴다. 얼굴은 붓 터치를 넣지 않고 차분한 붓질로 곱게 처리했는데, 이 때문에 흡사 가면 같은 느낌이 든다. 얼굴과 손을 빼고는 작은 붓질의 흔적을 화면 전체에 골고루 깔아 놓았다. 그래서 얼굴이 더 이질적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그린 작품과 느낌이 좀 다르다. 모딜리아니의 특징인 강철선을 구부린 것 같은 생명력 가득 찬 선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탱탱한 볼륨감을 찾아볼 수 없다. 색채의 기름진 맛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밑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쓱쓱 칠해서 빛바랜 색채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선이나 색채에서 힘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36년 동안 이승과 인연을 맺었던 모딜리아니. 살아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전형적 천재 화가다. 그림 그리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그는 화가로서는 성실했지만 생활에는 너무나 서툴렀다. 14세에 발병한 폐결핵은 그의 짧은 생과 같이했고 결국 저승길로 안내했다. 힘겨운 현실을 견디려고 술과 마약에 빠졌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병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회한과 자책이 밀려왔을 것이다. 비관적 미래와 아직도 터널 같은 현실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앞날이 막막하지만 미완의 삶을 죽음으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나 억울했을 심사를 자신의 모습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완성처럼 보이는 거친 붓질로 화면을 채워 숙성되지 못한 화가로서의 삶을 표현했다. 가면처럼 매끈한 얼굴은 아직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성공한 화가로서의 꿈은 아닐까.
이루지 못한 꿈이기에 배경과 이질적인 모습으로 그려 심정을 말하려 한 것일까. 죽음의 기운이 추위처럼 다가오는 1919년 어느 겨울날 모딜리아니는 희망을 볼 수 없기에 눈동자 없는 검은 눈을 더욱 진하게 그렸다.
오른쪽으로 쏠린 복잡한 구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모딜리아니 뒤쪽으로 비죽 나온 의자 등받이와 바닥과 벽을 구분 짓는 선이다. 그는 자신을 오른손에 팔레트를 잡고 왼손에 붓을 든 왼손잡이처럼 그렸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이기 때문이다. 화면 구성은 평범해 보이지만 상식을 벗어났다. 보통 인물화 구성은 인물의 앞쪽을 단순하게 처리해 시야를 시원하게 터준다. 또 인물의 성격이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머리 뒷부분에 소품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그림은 상식과 엇박자를 이룬다. 모딜리아니의 얼굴 앞쪽이 복잡하고 머리 뒤쪽 배경에는 아무것도 배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란스러워 보인다. 생각은 단순해지고 앞날은 막혀 있는 작가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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