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의 남존여비 너무해!
저녁 8시 반,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풍자 뉴스 프로그램 스트리시아 라 노티치아(스트립 뉴스)에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중년 남자 두 명이 조명 아래 서 있고, 그중 한 명이 손에 쥔 벨트에는 ‘남성’을 암시하는 마늘대가 매달려 있다. 한 여성이 엎드린 자세로 바닥을 미끄러지듯 기어온다. 목 부분이 V자로 배꼽아래까지 깊게 파이고 엉덩이 부분은 T자형인 반짝이 의상 차림이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남자 한 명이 그녀의 벌린 입 앞에 마늘을 늘어뜨린다. 그녀는 그것을 두 손에 쥐고 자신의 볼에 문지른다. “어서, 돌아봐, 몸을 좀 보자.” 다른 남자가 말하면서 여자의 엉덩이를 툭툭 친다. “고마워, 아가씨.”
이탈리아 TV의 황금시간대 방송 내용이다. 외설스러운 내용이 퍼레이드를 하듯 꼬리를 물고 이어져 눈을 피하기가 어렵다. 현재 이탈리아 정부의 수뇌부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타락의 표출이자, 이탈리아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진화와 관련된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74세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시시덕거리는 10대 모델, 콜걸, 모로코 벨리 댄서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지만 남성은 남성이고 여성은 장식품이라는 점을 미디어는 확실히 보여준다. 보이콧, 항의시위, 심지어 불평도 거의 없으며 설사 그런 소리가 들린다 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추한 노인네처럼 행동하는 듯해도 상당히 많은 이탈리아 여성이 오랫동안 그의 저속한 게임에 기꺼이 응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런 식으로 상황을 이끌어 왔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처음 총리에 오르기 오래전부터 추문투성이였던 그 미디어 제왕은 이탈리아 TV 시장의 45%를 소유했다. 그리고 총리직에 오르면서 국영TV까지 장악했다(나머지 50%). 이제 TV 시장의 95%가 베를루스코니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이탈리아 여성들이 어떻게 보여지고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에 그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국가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다른 유럽국가들은 국가번영의 초석으로 남녀평등을 적극 장려하지만 베를루스코니는 그들과 반대 반향으로 달렸다. 여성이 직업적으로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무엇보다 섹스 대상으로 간주되는 세상을 만들어 사실상 여성의 숨통을 조여 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0년 10월 발표한 글로벌 남녀격차보고서를 보면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어처구니없는 실상이 드러난다. WEF는 유럽 전역에서 남녀격차를 좁히면 유로존의 GDP를 13%나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임금평등, 노동참여, 경력향상 기회 같은 문제를 조사한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탈리아는 뒤에 처져 구경꾼 신세로 전락할 듯하다. 교육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크게 뒤떨어졌다. 노동참여에서 세계 87위, 임금평등 121위, 여성이 지도적 위치에 오를 기회 97위다. 이탈리아는 현재 보고서의 여성처우 종합 순위에서 세계 74위다. 심지어 콜롬비아·페루·베트남에도 뒤졌으며 2008년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에 재선됐을 때보다 일곱 계단이나 떨어졌다. “이탈리아는 계속 EU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 1년 새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그 보고서는 지적했다.
매일 접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포르노를 암시하는 저속한 내용이 뉴스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한 세대 전체가 성장해 왔다. 베를루스코니의 TV채널 카날5가 스트리시아 라 노티치아의 방송을 시작한 지 23년이 흘렀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벨리네(말그대로 ‘종이조각’)라는 관능적인 여성들이 퍼레이드를 한다. 요즘엔 모든 방송채널에 쇼걸이 등장할 뿐 아니라 일부는 베를루스코니의 지명으로 정부에 입각하기도 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이탈리아의 젊은 여성은 의사, 변호사 또는 사업가가 되기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TV 벨리네가 되고 싶어한다.
나머지 사람도 성차별은 도리없는 문제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베를루스코니의 남존여비 문화는 여성들에게 뛰어난 이력보다 유혹이 더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항의하려면 채널을 돌리는 방법뿐이다”고 에어로빅 강사 콘체타 디 소마(30)가 말했다. “그러나 기상 리포터까지 가슴골을 드러낼 때 못마땅하다며 채널을 돌려버리면 일기예보를 보지 못한다.” 정부와 기업계에 그들의 대표자가 적기 때문에 여성은 내부로부터 시스템을 바꿀 가망이 거의 없다. “교회부터 시작해 전체가 남성우월주의 사회”라고 귀금속 판매점 사장 마리나(57)가 말했다(사업이 타격을 받을까 두려워 성을 밝히지 않았다). “광고나 TV에서 여성이 매춘부처럼 보이는 이유는 남자들이 그런 모습을 원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광고를 만들고 돈도 더 많이 벌기 때문에 제품을 어떻게 홍보할지를 결정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 로렐라 자나르도는 최근 밀라노에서 어느 은행 고위관리자와 만난 일을 떠올렸다. 그의 책상 위 눈에 잘 띄도록 놓인 캘린더에는 매월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이 포즈를 취한다. 그의 커피 테이블에 놓인 잡지는 반라의 여성이 표지를 장식했다. “그는 사내 의사결정자 자리에 여성을 몇 명이나 배치할지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결정을 내릴 때 그는 잠재의식 속의 그런 메시지와 현실을 어떻게 분리할까?”
최근의 남녀평등 조치는 모두 국제적인 압력으로 이뤄졌다. 이탈리아의 정부 공직이나 기업 이사직을 여성으로 채우려는 움직임은 단명한 이전 중도좌파 정부 때 계획됐거나 EU의 기업 지배구조 규약에 따라 강제 집행됐다. 특히 출산연령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조치는 단속 기관이 없어 대체로 유명무실하다. 베를루스코니는 “권한을 축소하고 예산을 줄이는 방법뿐 아니라 종종 경험이 없거나 기존 여성 권익옹호 단체에 연줄이 거의 없는 인물을 책임자로 앉히는 방식으로 여성 문제에 대처하는 기관들의 힘을 약화시켰다”고 콜로라도대에서 여성 및 남녀 관계를 연구하며 이탈리아 문제를 주제로 폭넓게 저술활동을 해온 셀레스티 몬토야 조교수가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주로 늘어나는 가정 내 폭력에 여권신장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여기서도 베를루스코니는 핵심을 벗어난 듯하다. 지난해 그는 강간 건수의 증가에 대처하지 못한 데 사과하며 이렇게 변명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강간을 막을 병력이 부족하다.”
이런 관행이 쌓이면서 직장에서 조금이라도 출세욕을 드러내는 여성은 환영받지 못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적대시되는 환경이 조성됐다. 전체 이탈리아 여성 중 직장생활자 비율은 EU에서 가장 낮은 45%에 불과하며 그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반면 노르웨이 여성의 80%, 영국 여성의 72%가 직장생활을 한다. 직장에 다닌다 해도 이탈리아 여성의 봉급은 남성보다 평균 20% 적으며 기업 경영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7%에 불과하다(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평균 33%).
이탈리아 직장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주당 21시간으로 폴란드와 슬로베니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국가의 여성들보다 많다(미국 여성의 주당 가사노동 시간은 4시간에 불과하다). 이탈리아 남성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 여성을 이해하려면 이탈리아 남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홀몸으로 딸을 키운 퇴직교사 마리아 실비아 비티(59)가 말했다. “다른 나라 여성들마냥 남성에게 동업자 의식이나 가사노동 분업은 기대하지 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성의 하루 여가시간은 같은 수준의 여성보다 80분 더 많아 OECD 국가 남성 중 최고를 기록했다(노르웨이 남성의 하루 여가시간은 여성보다 불과 3분 더 많다). 비교적 소규모 단체인 이탈리아 남성전업주부협회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이탈리아 남성의 70%가 레인지를 사용해본 적이 없으며 95%가 세탁기를 돌려보지 않았다.
이탈리아 여성은 다른 유럽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6개월의 후한 법정 출산휴가를 누린다. 그뿐만 아니라 출산 후 최대 1년까지 일자리가 보장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법으로는 금지됐지만 고용주들은 입사 지원자들에게 드러내놓고 출산계획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많은 중소기업은 일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는 위험을 무릅쓰기보다 출산 적령기 여성의 고용을 기피한다. 자녀를 둔 소수 직장여성의 경우 적당한 어린이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전체 직장여성의 절반 이상이 할머니에게 아이 양육을 맡긴다.
이탈리아의 워킹맘(유자녀 직장여성)들은 유럽의 대다수 다른 나라보다 더 큰 낙인을 달고 산다. 특히 농촌지역에선 자녀를 어린이집(있을 경우)에 보내고 직장에 나가는 여성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무책임한 엄마로 간주한다. “많은 전통적인 이탈리아인은 엄마가 어린애를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고 토리노대 경제학자 다니엘라 델 보카가 설명했다. 따라서 엄마가 자녀양육을 도맡을 가능성이 크다. 아빠가 실업자인데도 워킹맘이 아이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 여성의 이 같은 이상화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탈리아의 출산율은 1.3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낮다. 일을 해야 하는 여성은 일과 자녀 중 택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직장생활을 원할 경우 아이가 둘 이상이면 버티기가 힘들다”고 은퇴교사인 비티가 말했다. 낮은 출산율은 고령화 사회인 이탈리아에는 커다란 문제다. 전체 인구의 무려 22%가 혜택을 받는 연금으로 이미 GDP의 15%가 빠져나간다. 엄마가 더 쉽게 직장생활을 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이탈리아가 성장경제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전체 이탈리아인의 삶의 질이 한없이 떨어지느냐를 판가름할지도 모른다. WEF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여성 600만 명 중 수십만 명이라도 취업하게 되면 국가 GDP가 1%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는 고학력 여성 인력의 활용방안을 경제발전의 열쇠라기보다는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는 쇼걸 출신의 마라 카르파냐를 균등기회 장관으로 지명했다. 그녀의 상반신을 드러낸 토플리스 사진들이 실린 캘린더가 아직도 이탈리아 의회 안에 걸려 있다. 그녀는 여성의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장려하는 연설을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자신은 그 문제와 관련해 조금도 사과할 기색이 없다. 최근의 한 집회에서 그는 여성이 미래의 행복과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는 한 가지 방법은 “돈 많은 남자친구를 찾는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 방안은 비현실적이지 않다.”
1년 전 10만여 명의 여성이 ‘베를루스코니가 여성을 모독한다’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는 “내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며 코웃음쳤다. 마침내 일부 가톨릭 언론이 베를루스코니를 가리켜 “마음이 병들었다”고 그의 탈선행위를 비난했지만 총리가 좌지우지하는 방대한 미디어 업계에선 그런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다. 곧 베를루스코니와 이혼하게 될 베로니카 라리오가 남편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규탄했을 때 일부 매체가 신속하게 반응했다. 여러 우익신문이 ‘배은망덕한 쇼걸’이라는 제목 아래 그녀의 결혼 전 토플리스 사진들로 1면을 도배했다(맞다, 이탈리아의 퍼스트 레이디도 토플리스 배우였다).
만일 베를루스코니가 축출된다면 정계·미디어·성차별 사이의 유해한 연결고리가 분명 약화될 듯하다. “그의 사퇴가 교훈을 남길 것”이라고 델 보카가 말했다. 그러나 정말로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려면 이탈리아의 남녀 모두 사고방식을 뜯어고쳐야 한다. 단순히 채널을 바꾸는 행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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